01. 수제비
언니 기억나?
농사일로 바쁜 여름 그리고 가을이 되면 엄마가 곧잘 저녁으로 해줬던 음식 말이야.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돈 주고 그 음식을 일부러 사 먹는 일은 없었어.
나에게 수제비는 뭐랄까.
그 시절 자식 넷에 시어머니까지 일곱이 되는 식구의 밥을 챙긴 고단한 엄마의 삶이 느껴지는 음식이었거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온 엄마의 얼굴엔 피곤이 가득했어.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어?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서 밭으로 논으로 나갔다가 별을 보며 들어왔는데도 일은 끝날 줄을 몰랐으니까. 자기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 마법처럼 식구들이 먹을 밥이 차려지진 않을 거란 걸 뻔히 알았을 테니까. 꺼칠한 얼굴의 엄마 손에는 밭에서 막 따온 동그란 호박이 들려있었어. 호박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간 엄마가 “광에 가서 감자 네 개만 가지고 와”라고 하면 우린 저녁 메뉴를 단박에 알아챘지. 오늘 저녁은 수제비구나.라고 말이야.
감자를 손에 들고 들어가면 엄마는 물이 담긴 냄비를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있었어. 물 색깔은 대체로 뿌옇거나 고춧가루가 떠있기도 했어. 그 전 밥때에 썼던 냄비를 대충 물로 헹궈서였을 거야. 불을 아주 작게 켜 두고 엄마는 동그란 호박을 대충대충 썰었어. 시골에서는 애호박이어도 기다란 모양은 없었잖아. 그저 공처럼 동그란 모양이었지. 그 동그란 호박의 반을 가른 다음에 무심하게 툭툭 썰어 놓고, 감자를 깎기 시작했어. 감자는 칼이 아닌 숟가락으로 깎는 거였잖아 우리 집에선. 싹이 있는 부분은 숟가락으로 도려내고 말이야. 숟가락 끝으로 감자 겉면을 삭삭 긁어내는 건 언제 봐도 참 신기했어. 엄마가 안 볼 때 따라 해 봐도 손에 빨간 자국만 남기고 감자 껍질은 그대로였던 것 같아. 나는 엄마가 요리하는 걸 거들고 싶었는데 엄마는 자식들이 부엌일을 돕는 것도 농사일을 돕는 것만큼이나 싫어했어. “니들은 그냥 가서 공부나 해. 그게 엄마 도와주는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말이야. 그게 꼭 공부를 하라는 건 아니었어. 그냥 엄마가 하는 그 일을 같이 할 생각일랑 말라는 뜻이었지. 그렇게 하면 고단한 본인의 삶이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래서 나는 엄마 곁을 맴돌면서 음식이 만들어지는 걸 구경만 할 수 있었어. 어쩌다 손이 부족한 엄마가 맡겨주는 심부름을 기대하면서 그렇게.
숟가락으로 껍질을 벗긴 감자를 물로 헹군 후에 큼지막하게 썰어서 끓기 전인 냄비에 넣어. 언니도 그러지 않았어? 도시에 와서 식당에 가면 감자와 호박이 정말 얇게 모두 다 똑같은 반달 모양을 하고 있잖아. 나는 그걸 볼 때마다 꼭 가짜 같더라? 우리 집 음식에서 감자나 호박은 늘 두툼하고 투박했는데 말이야. 식당 음식에 들어있는 너무 얇고 너무 이쁜 감자랑 호박을 보면 먹을 수 없는 게 들어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름이 돋았어.
이제 찬장 한구석에 늘 자리를 잡고 있던 밀가루 대접을 꺼내서 물을 조금 넣은 다음에 치댈 시간. 밀가루가 물과 거친 엄마의 손을 만나면 금세 빵처럼 희고 둥근 모양을 잡기 시작해. 칼국수 반죽과 부침개 반죽 사이 어디쯤, 조금 걸쭉해서 쫀득쫀득해 보이는 수제비 반죽이 있지. 한옆으로 치워놓은 반죽을 나는 엄마 몰래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도 보고 쓰다듬어도 봤어.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입 베어 먹으면 빵처럼 고소한 단맛이 날 것 같았거든.
반죽이 완성될 때쯤 냄비 안에서 끓는 물이 뚜껑을 조금씩 밀어 올리면서 달그락 소리가 나기 시작해. 뚜껑을 열면 감자에서 나온 전분 때문에 국물은 뽀얗게 변해 있어. 이제 수제비를 뜰 시간. 이때마다 물가에서 납작한 돌을 찾아 던지던 ‘물수제비 놀이’가 떠올랐어. 누가 지었는지 모르지만 이름 참 잘 지었어 그치? ‘물수제비’라니, 이름도 너무 귀엽잖아. 걸쭉한 밀가루 반죽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죽 늘리면서 조물조물 댄 후에 눈대중으로 뜯어내서 냄비에 빠트리는 거야. 냄비에 반죽을 넣을 때 납작한 돌이 물 위에서 통통 튈 때 주변으로 튀던 물방울이 떠올라. 손에 쥐고 있던 반죽이 점점 작아지다가 사라지면 국자로 냄비를 휘휘 저어서 반죽끼리 들러붙지 않도록 해야 해. 일 거드는 걸 싫어하는 엄마여도 이쯤엔 나에게 이걸 젓고 있으라고 말하곤 하지. 엄마 마음이 바뀔세라 나는 재빨리 국자를 넘겨받은 후에 냄비 안을 휘젓기 시작해. 처음엔 신이 나서 국자를 돌리다가 점점 뜨거워지는 냄비 열기를 피해서 국자 끝을 가까스로 손으로 잡고 흔들고 있을 때 엄마는 냉동실에서 납작하게 얼려둔 다진 마늘을 꺼내고 밭에서 뜯어온 대파를 썰어.
“엄마 이거 뜨거워서 국자 더 못 들고 있겠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면 엄마는 호박을 냄비에 넣어. 호박이 들어가면 화가 난 것처럼 부글거리던 냄비가 잠깐 잠잠해지지. 이제 다진 마늘과 파를 넣은 후, 국간장을 한두 숟갈 넣어주고, 다시다를 조금 넣은 후에 다시 뚜껑을 닫아. 다시 한번 냄비가 부글거릴 때쯤 간을 한 번 더 본 후에 싱거우면 국간장을, 짜면 물을 넣어서 마무리. 그새 국물은 더 걸쭉해졌고, 국물은 한층 뽀얀 색을 띠고 있어. 이젠 상에 수저 일곱 개를 놓고 냉장고에서 엄마가 며칠 전 담근 열무김치를 꺼내놓으면 돼. 아무리 수제비를 좋아하지 않는 나여도 뭉근한 감자 냄새와 마늘 냄새 그리고 보기 좋은 빛깔의 고춧가루가 섞인 열무김치를 보면 한 숟갈 뜨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어. 뜨거운 게 들어가면 한층 더 뜨거워지는 스테인리스 그릇에 펄펄 끓는 수제비를 담아서 하나씩 조심하면서 상에 올려두고, 언니와 나는 직사각형 모양의 상을 한쪽씩 잡고서 거실로 옮기지. 한쪽으로 기울어서 쏟아지기라도 할까 봐 수평을 맞춰가면서 말이야.
수제비 하나에 반찬은 열무김치 하나. 그리고 싱거운 사람은 알아서 넣게끔 고추, 파, 깨, 참기름이 들어간 뻑뻑한 양념장이 든 종지가 한가운데 있어. 일곱 명이 앉으면 서로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비좁았던 상에서 나는 아빠처럼 양반다리를 하지도 않고, 할머니처럼 한쪽 무릎을 세우고 앉지도 않고 다리를 상 아래로 쭉 펴고 앉았어. 그게 자리를 제일 덜 차지한다고 생각했거든. 옆에 비스듬히 앉아있는 엄마가 늘 안쓰러웠던 것 같아. 엄마는 수제비를 스테인리스 그릇에 옮겨 담지도 않고 냄비째로 가져와 바닥에 주로 눌어붙어 있는 수제비를 먹었지. 누가 어떻게 앉든 뭘 어떻게 먹든 신경하나 쓰지 않는 오빠나 아빠의 무신경함이 부럽기도 했어.
도시에 나와보니 사람들이 수제비를 특별식으로 여기더라? 나에겐 그저 바쁜 농사일을 연상시키는 음식이자 엄마가 휘리릭 빠르게 해 주던 음식이었는데 말이야. 농사일 바쁠 때 엄마가 주로 수제비를 해줬다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어. 수제비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을 바쁠 때 해준 게 이상하다면서 말이야. 엄마는 왜 바쁠 때 수제비를 했을까? 언니는 왜 그랬을지 궁금해 본 적 있어? 그 이유를 짐작해 본 적 있어?
한 번은 엄마한테 물어도 봤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뭐랬게?
“수제비, 그거 참 맛있잖아”
그 말을 듣고 나서였나. 내가 더 이상 수제비를 가여운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 거 말이야. 스트레스받으면 매운 음식이 찾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 엄마도 바쁠 때 수제비가 먹고 싶었나 봐. 그래서 아무리 귀찮고 바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으로 저녁상을 차리고 싶었던 거야!
그냥 수제비는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이었던 거더라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