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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Nov 19. 2022

내 엄마의 요리조리

02. 호박잎 장칼국수 

풀에선 당연히 풀 맛이 났어. 풀 맛이 나는 찔레를 오물거리며 언니에게 물었어.  

“이렇게 먹을 수 있는 풀과 먹을 수 없는 풀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나처럼 찔레를 입안에 넣고 씹다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언니가 말했지. 

“뭐 그런 거 아니겠냐? 우리가 엄마한테 배운 거처럼, 엄마는 엄마의 엄마한테 배웠을 테고, 그렇게 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그런 거 말이야.”  

4킬로미터 이내에는 슈퍼마켓이 뭐야 구멍가게 하나 없는 곳에서 자란 우리에게는 계절마다 산과 들에서 나는 풀이 유일한 간식이었어. 아삭아삭한 식감을 자랑하는 찔러(찔레)을 먹고, 입에 넣자마자 신맛이 감도는 시금치(시경)를 먹고,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아카시아 꽃을 먹고. 어른이 되어서 어려서 먹던 풀을 어쩌다 먹게 되면 말이야, 이건 간식이 아니라 그냥 풀이 었다는 걸 실감하게 돼. 어려선 금세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하나하나 아껴먹고 그랬는데.


자식들을 잘 챙겨 먹여 키우지 못했다고 그래서 죄스럽다고 엄마는 틈만 나면 말하잖아.  

“먹고살기 바빠서 잘해 먹이지도 못했지 뭐” 

“집에서 닭을 키우면서도 달걀을 팔 생각만 했지 애들 먹일 생각을 못했으니 원.” 

“애들 좋아하는 거, 과일 같은 거를 키울 생각도 못했어.”  

그리 좋은 음식점이 아닌데도 우리가 뭘 사주기만 하면 엄마는 자식 덕에 호강한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어. 상 위에 놓여 있는 그저 그런 식당 밥이 무슨 산해진미라도 되는 것처럼. 나는 잘 먹여 키우지도 못했는데 너희들 덕에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서 미안하다고. 논일과 밭일을 하면서 품앗이하는 이웃의 새참과 식사 그리고 간간이 낚시꾼들의 밥을 해주면서 일곱 식구가 먹을 세끼의 음식을 매일같이 차려낸, 그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낸 엄마에게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몸 둘 바를 모르겠어 나는.  

언니도 그렇지 않아? 어려서 뭘 충분히 못 먹고 자랐다는 생각은 안 들잖아? 뭐, 그런 건 있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았다는 뽑기나 주전부리들을 구경도 못했으니까. 뽑기 같은 간식을 보면 반갑게 어린 시절 간식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계절마다 산과 들에 돋아나는 먹을 수 있는 풀을 보면 반가워하는 게 다른 거지 뭐. 오히려 엄마 덕분에 산과 들에서 뭘 먹으면 되는지, 각종 풀에서 어떤 맛이 나는지 잘 아는 사람이 되었잖아. 요즘은 몸 생각에 일부러도 한다는 생식이나 자연식을 우리는 어려서부터 한 셈이기도?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없었으면 하지만) 어디 산골짜기에 고립되는 일이 있다 해도 언니와 나는 비교적 오래 살아남을 것도 같고 말이야.      



엄마는 자식인 우리에게 입에 맞는 간식을 잘 챙겨 먹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까지 어느 식당에서도 본 적 없는 음식을 맛보게 해 줬어. 그중에 단연 으뜸을 꼽자면 나는 호박잎이 들어간 장칼국수라고 봐. 이 말을 듣자마자 입에 침이 고이지? 언니도 좋아하는 거니까.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이나 된장 혹은 고추장에 찍어서 먹는 건 참 별 미지. 요즘도 쪄서 먹을 수 있는 호박잎이 나올 시기가 되면 잊지 않고 주문해서 맛을 보려고 하고. 엄마처럼 딱 알맞게 익히는 건 열에 다섯 정도 성공하지만 말이야. 막 쪄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잎을 손바닥에 펴고 밥을 한 숟갈 얹은 다음 그 위에 강된장을 넣은 후 돌돌 말아서 입에 넣으면, 약간 거친 촉감, 특유의 향이 먼저 반기고 물컹하지만 이빨 사이에서 살살 밀리는 식감이 재밌잖아. 사람들은 참, 어떻게 호박잎을 먹을 생각을 했을까 몰라.  


호박잎을 쪄 먹는 거 다음으로 엄마는 가끔 그걸 넣어서 장칼국수를 만들어 줬어. 밀가루로 반죽을 한 다음 바닥에 밀가루 반죽이 잔뜩 묻은 멍석 비슷한 거를 깔고 그 위에 긴 도마와 쇠로 된 홍두깨를 들고 오면 엄마 손에서 넓게 펴질 반죽이 벌써부터 그려졌어. 흉내 낼 엄두도 나지 않을 만큼 밀가루 반죽이 커지는 순간은 언제 봐도 참 신기해 그렇지? 언니도 기억을 하겠지만 설명을 한번 해볼게. 머릿속으로 한번 그려봐. 그리고 내 기억이 다른 게 있다면 나중에 얘기해줘, 알았지?

긴 도마에 땡땡한 밀가루 반죽을 올려놓으면 시작이야. 처음부터 홍두깨를 반죽 한가운데 놓고 밀지는 않아. 테두리를 한 번씩 밀어서 면적을 넓혀주지. 그렇게 한두 바퀴를 돌리면서 반죽을 조금씩 조금씩 늘려. 그걸 몇 번 반복하면 밀가루 반죽은 가운데만 솟아있고 테두리는 좀 얇아져 있을 거야. 그 상태에서 홍두깨를 어깨너비로 잡은 후에 반죽 위를 한번 굴리지. 홍두깨와 밀가루가 붙지 않게 중간중간 반죽에 밀가루를 뿌리면서 말이야. 가끔 엄마 옆에 바짝 다가앉아 있으면 밀가루를 뿌리는 일은 내 몫의 일이 되기도 했어. 하늘에서 별을 뿌리는 천사라도 된 듯 나는 기쁘게 그리고 진중하게 밀가루를 솔솔 뿌렸지. 

반죽이 커지는 만큼 반죽의 두께는 얇아지고 바닥 멍석을 거의 다 차지할 만큼 커지면 이제는 거의 준비가 된 셈이야. 반죽을 넓게 만들 때 보다 더 많은 양의 밀가루를 뿌리면서 반죽끼리 들러붙지 않게 착착 접어 나가지. 둥그런 원에서 반원이 되었다가 긴 직사각형 모양이 면 이제 자를 때가 된 거야. 

마지막으로 반죽을 접을 때(칼국수 면을 썰기 전에) 드디어 비장의 무기 호박잎이 등장할 차례. 호박잎을 반죽 위에 한 줄로 펼쳐 놔. 호박잎을 감싸면서 반죽을 접어 내면 샌드위치의 햄이나 치즈처럼 반죽 사이에 호박잎이 껴있는 모양이 돼. 이제 알맞게 접힌 반죽을 한쪽 끝에서부터 칼로 썰면, 호박잎이 가운데 들어간 칼국수 면이 숭덩숭덩 나오게 돼. 풀빵 있잖아? 풀빵의 앙금처럼 호박잎의 녹색이 흰색 면과 섞여 있는 모양이지. 다 썰면 엄마는 칼국수 면에 밀가루를 술술 뿌린 다음에 면들을 손가락 사이사이에 들고 흩트리곤 했어. 음, 이건 꼭 머리카락에 에센스를 뿌리고 그게 골고루 섞이게끔 손으로 흩트리는 것과 비슷해. 반죽을 살살 만져가면서 그렇게 하는 거지. 

후, 이제 면이 다 준비된 거야.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치?      


이제 칼국수가 퐁당 들어갈 국물을 만들 시간.  

평소 음식을 할 때도 엄마는 고기나 멸치를 넣어서 국물을 냈던 것 같지는 않아. 그냥 대충 물을 넣고 끓이고 양념을 더하는 식이었지. 하긴, 집에서 한 간장과 고추장 그리고 된장이 있으니까 따로 국물 맛을 낼 필요가 없기도 했어. 물을 한 소끔 끓이다가 고추장과 된장을 절반씩 넣었어. 고추장의 색처럼 빨갛기만 한 게 아니고 그렇다고 된장의 색처럼 누렇지만도 않은 딱 그 중간 어디쯤 색깔이었던 것 같아. 굳이 비슷한 걸 따지자면 약간 탁한 홍시 색이라고 해야 할까. 막상 국물을 먹으면 고추장 맛이 더 많이 난 걸 보면 고추장이 지분을 더 많이 차지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나중에 장칼국수를 흉내라도 낼까 싶어서 고추장과 된장을 얼마큼 넣어야 하냐고 물어보면 엄마의 답은 이렇지. 

“너무 뻘겋다 싶으면 된장을 조금만 더 넣고, 너무 고추장 맛이 안 난다 싶으면 고추장을 조금 더 넣어.”       

빨간 국물이 끓어오를 때쯤 칼국수 면을 넣고 끓이기 시작해. 면을 냄비에 넣을 때 면끼리 들러붙지 않게 넣는 게 중요해. 면을 넣을 때는 가까이에서 저 멀리까지 손이 닿지 않는 사람이 없도록 골고루 음식을 나눠주는 사람처럼 그렇게 넓게 넓게 넣는다고 생각하는 게 좋아. 음. 굳이 비교하자면 이런 마음가짐이면 적당하겠어. 단거리 달리기 출발선에 서 있는 선수들을 향해 출발을 외치는 정확함보다는, 마라톤 경주를 할 때 길거리에 나와 모르는 사람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는 사람과 같은 마음으로 그렇게 넓고 푸근하게.       

칼국수 면의 흰색, 불그스름한 국물, 호박잎의 녹색이 어우러진 장칼국수를 받아 들고 보면서 그런 생각도 했던 거 같아. ‘그냥 칼국수를 끓일 때 호박잎을 넣어도 되는 거 아닌가?’ 굳이 손이 더 많이 가게 호박잎을 국수면 사이에 말아서 해야 하나라고 말이야. 그런 게 그렇게 했다면 호박잎은 아마 칼국수에 들어가는 다른 야채들처럼 조연의 역할만 했을 거야. 근데 칼국수 면과 함께 잘라지면서 당당히 주연의 자리를 꿰차게 되는 거지. 이런 걸 디테일이라고 해야 할까 싶기도?   

“엄마, 나 조금만 더 줘.”라고 말하면서 빈 그릇을 내밀면 엄마의 얼굴에서 보이던 환한 미소를 기억해. 농사일을 돕는 일꾼들에게도 낚시꾼들에게도 해주지 않고 오직 우리 식구들에게만 해줬던 호박잎이 들어간 장칼국수. 이런 걸 해줬으면서 자식들을 잘 챙겨 먹여 키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다니 엄마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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