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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Nov 20. 2022

거기어때  

01. 캄보디아 

한바탕 비가 쏟아져 내리다가 언제 그랬냐 싶게 뜨거운 태양이 나타나던 곳. 

쏟아지는 비와 뜨겁게 내리쬐는 해가 하루에도 몇 번씩 오락가락하는 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더라고. 극적인 날씨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그런 생각도 한 것 같아. 그래, 날씨는 뭐 그저 하늘의 일인 거지. 그러니 비가 오면 멈춰 서고 해가 너무 뜨거우면 그늘을 찾아가 앉는 거지 뭐. 마음이 좀 겸손해지기도 하고 편안해지더라고. 조국에선 온종일 종종거리던 몸과 마음이 낯선 곳에 온 지 며칠 만에 쉽게 풀어졌어.

 

그곳은 곳곳이 유적지였어. 도시 전체가 그 유적지를 바라보며 사는 느낌이랄까. 경주에 갈 때마다 드는 생각과 좀 비슷하기도 했어. 무덤과 무덤 사이를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거든. “이렇게 과거의 유물에 둘러싸여 사는 기분은 어떨까.” 근데 내가 있던 그곳, 캄보디아는 무덤뿐만이 아니었어. 신을 모시던 사원, 죽은 왕을 기리는 거대한 탑, 어쩜 저렇게 정성을 쏟을 수 있을까 싶던 궁전까지. 그런 게 도처에 있었어. 처음엔 나도 유명하다는 유적지를 볼 때 무척 감탄했어. 그 옛날 사람들의 솜씨와 기술력에 놀라면서 말이야.  

그런데 사나흘 그런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니 이상하게 진이 빠지더라. 그때부턴 내가 있는 곳이 어떤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시큰둥하고, 사람들을 동원해서 기어코 뭘 만들어서 남기려고 한 과거 사람들의 마음도 좀 부담스러웠어.       


그래서였을까. 

중요하지 않고 역사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던 그 돌무더기에 도착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더라. 잔뜩 으스대고 뻐기던 유적지와 다르게 그곳은 세월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어있고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낡아 있었어. 여기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힌 안내판은 먼지가 소복하게 쌓여 있었지만, 그조차도 사람들은 거들떠보지 않고 그냥 지나쳤어. 낡고 스러져가는 그 풍경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참고 있던 숨을 마음껏 내쉴 수 있을 것 같았어. 그곳에선 귀를 따갑게 하던 카메라 셔터 대신 나와 함께 그곳을 걷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렸어. 근처 유명한 유적지에 관광객을 내려주고 셔츠의 단추를 풀어헤치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 현지 가이드들의 곳곳에 앉아있었어. 챙겨야 할 사람들에게서 벗어난   그들은 그저 보통의 젊은이들이었어. 그들의 앳된 얼굴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별일 없이 앉아서 각자의 언어로 소곤대는 사람들.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소리를 좋은 음악처럼 마음껏 즐겼어.   

중턱 즈음 올라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사람들 사이에 나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어. 그 돌무더기에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었나 봐. 하늘은 노랗게 이어서 붉게 색이 변하고 해는 조금씩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어. 널브러진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 속에서 저마다 생각에 빠져 있었을 거야.  


그때 나는 흘러가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어. 멈춘 것 같지만 나를 충분히 꽉 채우며 흐르는 그 시간이 손에 잡힐 것만 같았어. 그렇게 시간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자니 이렇게 시간이 멈추어도 좋겠다 싶더라.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는 생각은 이럴 때 드는 거구나 싶고 말이야. 이어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떠올릴 장면을 내 마음대로 하나를 고를 수 있다면 지금 이 장면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생각지도 못한 말이 내 입에서 불쑥 나온 건 그때였을거야. “아. 행복하다.”라는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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