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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Nov 30. 2022

내 엄마의 요리조리

03. 김밥 

소풍 하면 김밥이라는 공식 때문에 난 소풍이 싫었어.


소풍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난감한 기억. 

전교생이 45인승 버스를 타고 소풍 장소로 향하던 중이었어. 휴게소에 들러 삼삼오오 떠들고 있는데, 애들이 각자 용돈을 얼마 받았는지 이야기를 하는 거야. 나는 속으로 생각했지. 비슷한 형편에 고만고만한 집들이 었으니까 ‘다들 나랑 비슷하게 받았겠지, 뭐’ 내 주머니에는 아빠에게 받은 천오백 원이 있었거든. 

“나는 만원 받았어.”

한 명이 이렇게 말을 했어. 순간 나는 귀를 의심했지 뭐야? 

‘그러니까 용돈을. 만원을. 받았다는 거야?’  

그 옆에 있던 친구도 이어서 말했어. 

“나도, 나도 만원 받았어.” 

친구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지폐를 펼쳐 보이더라. 과연 손에는 파란만 원짜리가 한 장이 들려 있었어.   

그렇게 떠들던 아이들은 휴게소를 향해 군것질거리를 산다고 뛰어갔고, 그 아이들을 멍하니 쳐다보면서 화면이 느리게 재생되는 것 같은 착각도 했던 것 같아. 

‘이제 나는 내 주머니에 있는 단돈 천오백 원을 어떻게 써야 하지?’

그랬더니 겁이 덜컥 나는 거야. 아이들이 용돈으로 받았다는 만원의 십 분의 일 밖에 안 되는 이 돈을 가지고 아이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너무 불안했던 거지. 그래서 나는 먹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어져 버렸어. 없애 버렸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려나. 그래서 그날 내가 얼마를 썼냐고? 

하나도 못 쓰고 그대로 집으로 가지고 온 거 있지? 돈이 적다는, 그래서 아껴야 한다는 생각만 한 나는 정작 그 돈에 손도 못 댄 거야. 온종일 마음만 졸이고. 그때의 당황스러움을 떠올리면 안쓰럽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참 고지식했다는 생각도 해. 그까짓 거 그냥 다 써버리고 필요하면 애들한테 껴서 좀 얻어먹기도 하고 아니면 좀 빌리기도 했으면 됐을걸 혼자서 마음만 졸인 셈이잖아. 


그때 엄마 아빠가 내 손에 천오백 원을 들려 보냈던 건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탓과, 그런 걸 세심하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였을 거야. 내가 열 살 그리고 열한 살에 큰언니와 오빠는 대입 시험을 치렀고, 이어서 엄마 아빠는 대학생 둘의 학비와 생활비를 대야 하는 상황에 놓였지. 농사를 지어서 자식 둘을 대학 보낸다는 게 그때도 참 쉽지 않은 일이었어. 정신이 없었을 만도 했지. 매주 학교에 저축하라고 손에 들려 보내던 용돈도 그즈음부터는 주지 못하더라고. 나는 속으로 그런 생각도 한 것 같아. 

‘우리 집 망하나?’ 

사시사철 농사일로 그리고 번외 현금을 벌기 위해 하는 공사장 인부나 낚시꾼들 밥을 해주느라 엄마는 늘 바빴어. 특히 여름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 같아. 여름휴가철엔 나들이객이나 낚시꾼들 여럿이 함께 밥을 먹었는데, 어떨 땐 방방이 낯선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어. 안방, 사랑방, 건넌방 할 것 없이 크기가 제각각인 상이 차려졌고, 놀러 온 사람과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고 앉았지. 사람들 밥을 먹을 때 같이 먹으려면 우리 네 식구(그때 큰언니와 오빠는 대학생이었고, 할머니는 그런 언니와 오빠를 돌보러 함께 가 있었으니까) 먹을 상도 있어야 하는데 그걸 펼 곳이 없는 거야. 그래서 아빠가 급한 대로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 상을 폈던 게 기억이 나.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어. 

‘여긴, 우리 집인데..’  

‘우리 식구는 왜 마당에서 밥을 먹지?’ 


소풍은 그리고 수학여행은 날씨가 한창 좋은 봄이나 가을에 가기 마련이잖아. 그땐 농사일도 한창이고 밥을 해줘야 하는 외지 사람들도 많을 때였지. 꼭 바빠서 그랬을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소풍 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은 늘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어. 집에만 있을 땐 괜찮았을 거야 이것도. 아빠가 손에 들려준 천오백 원을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신이 나서 손에 꼭 쥐고 학교를 향한 것처럼 말이야.  

집안을 진동하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일찍 잠에서 깨면 오늘이 소풍날이라는 걸 실감하지. 냄새에 이끌려서 마루로 나오면 벌써 그곳엔 상이 차려져 있고 위에 김밥이 쌓여 있기도 하고 잘려있기도 했어. 김밥 안을 채운 건 집에서 담근, 단맛보다 짠맛이 강한 단무지 그리고 보통 김밥에서 녹색을 담당하는 시금치 대신 들어간 부추,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달걀로 만든 계란, 소시지는 들어갈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었어. 처음 엄마가 싸준 김밥을 봤을 때 나는 김밥이 좀 이상한 음식이라고 생각했어. 따로 먹으면 각자 더 맛있는 방법으로 요리할 수 있을 것 같은 재료를 급하게 둘둘 말아 놓은 것 같았달까. 바닥에 종이를 점점 좁게 만들어 가면서 사람 수는 줄이지 않은 채로 그 안에 들어가야 이기는 게임 있잖아. 김밥은 그걸 연상시켰어. 좁디좁은 그곳에 어떻게든 들어가겠다고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불편한 얼굴로 모여있는 사람들처럼 맛도 모양새도 조화롭지 못했어. 김밥 위에 바른 참기름 냄새 덕분에 그나마 먹을 만하다고 생각한 것 같아.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친구들이 모여서 도시락을 펼치잖아. 은근 이때 신경 쓰이는 거 알지? 대부분의 아이들이 도시락을 자랑하는 뿌듯한 표정을 한가득 안고 펼치지. 나는 아이들이 도시락 뚜껑을 모두 열어둔 다음에 그것들을 모두 살펴본 후 더욱 주눅이 들어서 뚜껑을 조금만 열어두는 쪽이었어. 그도 그럴게 다른 친구들이 싸 온 도시락 속 김밥은 내 도시락 속 김밥과 달라도 너무 달랐거든. 어떤 김밥은 위에 솔솔 뿌려진 깨부터 눈에 들어오더라고. 저렇게 깨를 솔솔 뿌려서 먹을 수도 있구나 하면서 감탄했던 기억. 그리고 어떤 김밥은 밥보다 다른 게 더 많은 거야. 무려 소시지와 햄이 따로 있고, 당근도 있고, 맛살도 들어가고. 

‘김밥은 원래 저런 음식이었나.’ 

같은 방법으로 돌돌 말았을게 분명한 걸 알면서도 저건 뭔가 더 다른 방법으로 더 소중하게 말려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김밥 안에 들어 있는 저 재료들도 더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도 했고. 아이들의 김밥에 비교하니 우리 엄마의 김밥은 더 초라해 보여서 나는 도시락 뚜껑을 활짝 열지 못했어. 그래서 점심시간이 고역이었어. 어느 날은 도시락 한 구석에 죽은 파리가 있는 거야. 누가 볼까 싶어서 황급하게 뚜껑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몇 명은 이미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얼굴이 화끈거려. 나쁜 일을 한 것처럼 가슴이 쿵쾅거리며 뛰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  

어느 소풍날 저녁 호되게 체해서 밤새 먹은 걸 비워낸 다음부터 한동안 김밥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났어. 특히 버스 안에서 나는 김밥 냄새는 견디기가 정말 힘들어서 코를 막고 버스에 올라타야 했고. 소풍 때 김밥이 아니라 그냥 밥을 싸 달라고 한 것도 그즈음부터였던 것 같아. 스무 살이 넘어서 까지 나는 김밥이라면 손도 안 댔어. 그냥 김밥은 나에게 맛도 없고 이상한 음식 그리고 죽은 파리를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었지.  


며칠 전 엄마와 통화 중에 전화를 끊으면서 엄마가 말했어. 

“저녁은 영양가 많은 걸로 사 먹어” 

‘영양가 많은’이라는 말이 재밌어서 전화를 끊고도 한참 입안에 그 말을 머금었어. 

어쩌다 내가 오늘은 김밥을 사 먹었다라고 하면 엄마는 제대로 된 밥을 먹어야지 왜 김밥을 먹냐고도 해. 그런 걸 보면 엄마에게 김밥은 영양가도 맛도 없는 음식인가 싶기도. 그때 엄마의 김밥은 바쁘고 고단함을 상징하는 음식이라기보다는 엄마가 관심 없는 음식이었던 거지. 엄마도 나처럼 김밥을 따로 먹으면 다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굳이 이렇게 말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나? 

그래도 도시락 한쪽에 죽어있는 파리를 보면서 얼굴이 벌게졌을 그때의 어린 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긴 해. 그 곁에 지금의 내가 선다면 어깨를 토닥이면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 

“파리는 아무도 못 봤어, 괜찮아. 그러니까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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