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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Feb 12. 2023

엔딩크레딧

07. 칠갑산 산마루에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두고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아이를 발견한 후 

행복이 넘쳐흐르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들어 올려 품 안에 세게 안는다.”      


#1 

몇 줄의 지문을 통해 내가 상상한 이 가장, 즉 내가 연기할 캐릭터의 배경은 이렇다.   

이 가장의 인생의 순간순간 어려운 일도 괴로운 일도 있었지만 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괴로움을 보상해 주는 즐거움의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가장은 퇴근 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의 몸 냄새를 들이마시며 편안함을, 품 안에서 아이의 선명한 심장의 진동을 느끼며 하루의 고단함을 잊는다. 이 가장의 인생에서 발을 내디딜수록 푹푹 빠지는 늪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온기를 찾기 어려운 순간에 느껴지는 추위를, 그래서 결국 내 손의 온기에 기대기 위해 온몸을 감싸 안아 보지만 그러고도 추위가 좀처럼 가셔지지 않던 순간의 허망함을 모르리라. 기본적으로 밝은 쪽에 몸을 두고 살 수 있었던 운이 좋았던 사람.      


내가 가장 오래 가깝게 본 가장, 내 아버지의 모습은 이랬다.  

표정 없는 얼굴은 늘 어느 한쪽이 구겨진 것처럼 보였다. 특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게 아닌데도 그랬다.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 누가 무슨 얘기를 할라치면 “밥 먹는데 거 참 쓸데없는 소리”라고 말을 자르던 가장. 텔레비전은 실제와는 다른 상상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어려서부터 했다. 실제라면 텔레비전에 있는 저 아이도 저렇게 재잘거리며 밥을 먹을 수는 없을 테니까.  

“사람은 늘 위를 올려다보며 살아야 한다.” 

열일곱 살, 낯선 도시에서 처음으로 혼자 살아야 했을 때 몇 개 안 되는 이삿짐을 나르러 온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 나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이 말에 어떤 뜻을 담고 싶었던 것인지 나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속뜻과 의도를 전부 알지는 못한다 해도 이거 하나만큼은 알겠다. 이것이 아버지가 본인의 인생을 통틀어 겪은 유일하다시피 한 인생철학이라는 것. 누구를 통해서 들은 말도 아니고 어디서 본 이야기도 아닌, 본인이 몸으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겠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을 만큼 선명하고 떳떳한 교훈이라고 생각했을까. 


#2 

촬영을 시작하기 전 나의 아들 역할을 맡은 아이가 다가온다. 아이는 뒤로 보이는 어머니를 한번 바라본 후 나를 향해 살갑게 인사를 건넨다. 인사를 건네는 내 얼굴이 나의 아버지 얼굴처럼 어느 한쪽도 구겨져 있으면 안 되는데.      


수능을 보기 전날 집에 오니 아버지가 있었다. 아침에 시험장으로 갈 채비를 하며 교복을 챙겨 입는데, 아버지가 집에서부터 챙겨 온 양복을 입고 있었다. 시험을 보러 들어가는 자식을 배웅하는 부모는 많았지만 그중 몸에도 계절에도 맞지 않는 양복을 챙겨 입은 건 나의 아버지뿐이었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한 아버지의 모습은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있는 것만큼이나 어색하고 생뚱맞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여느 날과 다르게 어느 한쪽도 찌푸려져있지 않았다. 구겨진 곳 없이 온전히 펴진 아버지의 얼굴이 낯설었다. 


#3 

“자, 준비하세요. 슛 들어갑니다.” 

좀처럼 꺼내 입을 일이 없는 와이셔츠와 넥타이가 자꾸만 목을 조여 온다. 셔츠의 끝 단추까지 채우고 넥타이를 바짝 올린 나를 본 조감독은 조금 풀어진 느낌이 좋겠다고 말한다. 그 말에 셔츠 단추를 두 개 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푼다. 이제야 좀 숨이 쉬어지는 것 같다.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올라온 아버지를 터미널에서 만난 후 이튿날 11시 결혼식이라는 걸 알게 된 후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내일은 결혼식 마치고 바로 내려가실 수 있겠네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탄 후 집 근처에 도착해 밥생각은 없지만 뭘 먹기는 해야겠다는 아버지와 함께 돼지갈비를 먹었다. 고기를 굽느라, 때맞춰 불판을 갈아달라고 점원을 부르느라, 대화의 순간이 적어 다행이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아버지가 침대를 쓰게 한 후 나는 바닥에 요를 깔고 누웠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방의 불을 끄고 누워서 오지 않는 잠을 청했다.  

이튿날 일이 있어 이른 시간 집을 나섰다 돌아오니 집은 여느 때처럼 비어 있었다. 익숙한 고요가 허전했지만 편안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기 전 서랍을 여니, 속옷과 양말 사이에 아버지가 두고 간 것이 분명한 꼬깃한 만 원짜리 몇 개가 보였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잠시 서 있다가 샤워를 하면서 개수구에 물줄기와 눈물을 섞어 흘려버렸다. 


#4 

특실의 절반도 안 되는 크기인데 방문객 역시 특실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바람에 장례식장은 유난히 넓고 그만큼 허전했다. 며칠째 잠도 못 자고 먹지도 못해 기운 없고 몽롱한 가운데 정신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오래전부터 현관문 앞에 놓여있던 손잡이 부분이 반질반질한 아버지의 지팡이를 만지면서 이제 나는 고아라는 걸 실감했다. 아버지가 없어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돌아간다는 당연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그렇게 되고 보니 괜히 신경질이 났다.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본 적 없이 위를 올려다보기만 한 나의 아버지여 꼭 하늘에 올라가셨기를. 거기서 여기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기를. 그럼 나도 아버지를 본다는 핑계로 자주 세상을 올려다보면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를 향해 달려오는 아이를 품 안에 안고 카메라를 바라본다. 얼굴의 어느 한쪽도 구겨져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잠깐 쉬는 사이 아이가 내게 조심스레 말한다. 

“삼촌, 아파요. 조금만 살살 안아주세요.”  

아이에게 사과한 후 촬영이 시작되고 아이를 안아 든다. 다시 힘이 들어가려고 하면 힘을 풀면서, 어쩔 수 없이 어느 한쪽이 구겨지는 나의 얼굴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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