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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Feb 17. 2023

웬만해선 드라마가 될 수 없다

01. 징글징글 

#1. 서울미자의 집  

핸드폰이 진동한다. 침대에 누워있던 미자는 협탁으로 손만 뻗어 핸드폰을 쥔다. 이불 사이로 잠옷과 헝클어진 머리가 조금씩 보인다. 핸드폰 화면 글씨 [아버지]를 보고 가벼운 한숨을 쉬며 전화를 받는 미자. 

“아빤데, 너 이번 추석에는 누구랑 올 거야?”  

아버지 동선의 말을 듣자마자 짜증이 솟구치는 미자. 

“아빠, 이제 이런 얘기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어? 내가 남자를 데리고 갈 거면 어? 진즉 얘기를 했겠지. 아, 그만해요 이런 얘기 진짜.” 

미자의 답에 얼떨떨한 동선. 잠깐 시간을 두었다가 답한다.  

“아니. 오빠차 타고 올 거냐고 언니차 타고 올 거냐고. 그거 묻는 거야 나는.”  

동선의 말에 머쓱한 미자가 빠르게 말한다. 

“기차 타고 가요, 아빠. 끊어요.”  

미자는 핸드폰을 협탁 위에 두고 침대에 드러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린다.  


#2. 강원도기차역 앞 구멍가게  

불은 켜져 있는데 조용한 가게 안, 인기척이 없어서 미자는 가게 안에 대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계세요?”  

가게 안에서 얼굴만 밖으로 빼며 답하는 주인. 

“네, 여기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주인의 등장에 살짝 놀라는 미자. 새삼 주인의 말투가 귀에 들어온다. 무뚝뚝하고 끝이 살짝 내려가는 익숙한 고향의 말투가 조금 반갑지만 겉으로 내색하진 않는다. 혹시 자신의 말투에도 고향의 억양이 섞일까 신경 쓰면서 글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을 주어 말하는 미자. 

“선물 세트 좀 보여주시겠어요?”   


#3. 강원도동선의 집이른 아침  

제사를 마치고 음식을 정리하는 중이다. 미자를 포함한 집안의 여자들은 부엌과 거실에서 제사 음식을 정리하는 한편 아침을 차리기 위해 분주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일을 착착 해내는 분위기다. 거실에 흩어져있는 집안의 남자들은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있다. 누워 있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둘 다 하거나. 

제기에 담겨있던 음식을 접시나 밀폐 용기로 옮기고 제기의 기름기를 닦아내고 정리를 하는 미자. 가슴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그려진 우스꽝스러운 티셔츠를 입고 있고, 머리는 위로 올려 묶은 참이다. 제기 정리를 거의 마쳐 갈 때 주섭의 아들이자 미자의 조카인 한용이 다가와 묻는다.  

“고모 그거 무슨 티야?”  

가뜩이나 우스꽝스러운 티셔츠가 신경 쓰이던 미자. 그걸 콕 집어 묻는 조카 녀석이 마뜩잖아서 고개도 들지 않고 말을 뱉는다.  

“야. 이거 내 티 아니다. 그니까 더 이상 말하지 말고 저리 가라.”  

미자의 말에 답이 없는 한용. 말이 너무 심했나 싶어 미자는 고개를 들고 그때 한용이 말한다. 

“그 티 말한 거 아닌데? 고모 얼굴에 잡티 말이야. 흐흐흐”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순간 열이 뻗치는 미자, 한용을 향해 주먹을 보이며 말한다. 

“아오, 진짜. 저기로 안 가냐?”  


#4. 강원도동선의 집아침 식사 중   

6인용 좌식 테이블에 미자의 어머니 순희를 제외한 8명이 비좁게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미자 옹색하게 끼어 앉으며 부엌을 향해 말한다. 

“엄마, 얼른 와서 먹자. 먹고 같이 치워요.” 

금방 오겠다는 말과는 달리 부엌에서 정리를 계속하는 순희. 그러거나 말거나 밥그릇에 코를 박고 먹던 미자의 오빠 주섭이 부엌을 향해 말한다. 

“엄마, 초장 없나. 내가 파는 초장 안 먹는 거 알잖아”  

그런 주섭을 쳐다보는 미자. 얼굴에 못마땅함이 가득하고 눈매가 날카롭다.

“그냥 좀 먹지?”  

미자의 말에 주섭은 너나 그냥 먹으라고 입모양으로 답하고 부엌을 쳐다본다. 초장을 달라는 소리가 반가운 이야기라도 되느냥 밝은 얼굴로 초장을 들고 오는 순희. 고개를 가로저으며 밥을 입에 쑤셔 넣는 미자.  


#5. 강원도동선의 집부엌 

식재료가 널브러진 식탁. 식탁 앞에선 미자의 큰언니 미선이 시금치를 무치고 있고, 가스레인지 앞에선 미자의 새언니 은혜가 계란지단을 부치고 있다. 주방 바닥 좌식 테이블에 앉아 밥에 참기름과 깨를 넣어 버무리고 있는 미자. 밥을 버무리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미선을 바라보며 말을 하는 미자. 

“나는 김밥까지만 싸고 같이 안 가는 걸로 합의 본 거다 언니?” 

미선은 말을 하려다 말고(참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무치던 시금치 간을 보는데 집중한다. 

밥 버무리는 것을 마치고 본격 김밥을 말 준비를 하는 미자. 앞에 놓여있는 김밥 재료를 보니 확 짜증을 내 말한다. 

“밖에서 사 먹으면 응? 맛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굳—이 굳—이 김밥을 싸는 거야 그래?”  

그 말에 설거지를 하던 은혜가 미자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래도 아가씨, 이렇게 여러 식구가 막상 나가면 먹을 데 찾기도 어렵잖아요. 그리고 집에서 한 김밥도 맛있고.”  

‘그래, 며느리 된 입장에서 저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라고 생각하는 미자. 김 위에 밥을 거칠게 펼친다. 


#6. 강원도동선의 집부엌 

“아, 김밥 냄새 좋네.”  

부엌으로 들어서며 코를 킁킁대며 말하는 미자의 둘째 형부 한수. 그런 한수를 보고 순희는 미자에게 형부에게 김밥 하나를 입에 넣어주라고 한다. 김밥 꽁지 하나를 손에 들고 좌식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미자, 다리가 저린지 이마에 주름이 잡힌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연덕스럽게 입을 벌리고 있는 한수는 미자가 주는 김밥 꽁지를 잘도 받아먹는다.  

“아, 이거. 밥에 간이 좀 덜 된 거 같은데. 근데 뭐 그런대로 먹을만하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더니. 그나마 백 년 동안 안 봐도 되니까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속으로 간신히 삼키고 한수에게 나갈 준비 모두 했냐고 묻는 미자. 한수는 미자를 물끄러미 본다. 얼굴에 뭐가 묻었나 생각하는 미자. 

“우린 다 준비했지. 근데 처제, 처제는 안 씻어? 가만 보면 처제 은근 안 씻는다.” 우스갯소리로 한 말인걸 알면서도 부아가 치솟는 미자.  

“형부, 세숫대야랑 폼클렌징 가지고 와서 얘기할 거 아니면 나한테 씻으라 어쩌라 소리 하지 말래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오줌 쌀 시간도 없이 바빴구먼.”  

미자의 말에 그때까지 거실에서 뒹굴대던 미자의 작은 언니 미화가 주방으로 들어서며 말한다.

“저거 형부한테 말하는 것 좀 보소. 저게 다 노처녀 히스테리야.” 


#7. 서울미자의 집저녁 

전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집으로 들어오는 미자. 

“어, 지금 들어왔어요. 출근해야 되니까 바로 온 거지 뭐. 언니네서 자긴 뭐 하러 자, 내 집 놔두고.”  

전화를 끊고 핸드폰과 손에 든 편의점 봉투를 책상에 내려놓는 미자. 봉지 안에는 네 캔에 만원 하는 맥주와 오징어 숏다리 그리고 안성탕면이 들어있다.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는 미자. 맥주캔을 딴다. ‘탁’ 하는 경쾌한 소리. 미자는 500ml 맥주캔을 입으로 가져가 한번에 비울 기세로 거칠게 마신다. 이어서 오징어 숏다리를 봉지에서 꺼내 다리 하나를 힘차게 뜯어 씹으며 말한다. 

“아. 혼자 있는 거 너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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