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 Mar 23. 2023

웬만해선 드라마가 될 수 없다.

07. 뾰루지

#1. 화장실  

거칠게 양치를 하는 미자. 거울을 보니 코 옆에 큰 뾰루지가 생겼다. 앞으로도 한참 커질 것 같은 예감의 뾰루지, 존재감을 마구 드러내는 뾰루지를 보며 얼굴을 이리저리 당겨 보는 미자. 뾰루지 근처로 손을 가져갔다가 통증이 느껴지는지 금세 얼굴에서 손을 뗀다. 세수를 마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푹 쉬는 미자.      


#2. 카페 

커피를 주문하려고 줄을 선다. 텀블러를 가지고 있으니 직원에게 주문할 경우 200원을 할인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는 바빠 보이고 미자는 하는 수없이 키오스크 앞으로 향한다. 분주하게 커피를 내리던 직원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미자를 확인한 후 반갑게 말을 건넨다. (손은 멈추지 않고 커피머신을 조작하고 있으면서 얼굴만 돌려서) 

“오셨어요? 텀블러 가지고 오셨죠? 그럼 이쪽에서 주문하세요.” 

상냥하게 웃는 그의 얼굴, 직원의 얼굴은 희고 깨끗하고 말할 때 살짝 보이는 이빨마저 고르고 하얗다. 그런 직원의 얼굴을 마주 보다 코 옆 뾰루지가 생각나 어색하게 뾰루지를 가려 보려 손을 얼굴로 가져가는 미자.       

#3. 카페 

미자는 헐렁한 회색 스웻 티셔츠를 입고 있는 직원을 쳐다본다. 티셔츠 가슴에 있는 ‘45’라는 숫자를 쳐다보며 생각에 빠져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자신을 골똘히 바라보는 직원의 시선을 느끼며 생각에서 깨어난다. 직원은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뭐라고 말하고 있다. 어렴풋이 ‘얼굴에’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미자는 허둥대며 직원을 향해 말한다. 

“아, 이거요? 뾰루지가 나서요. 뾰루지가 자주 나는 편은 아닌데, 생리할 때가 돼서 그런가” 말을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대체 왜 여기서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미자. 말 그대로 현타가 온다. 미자의 말에 별다른 반응이 없이 상냥하게 직원이 말한다. 

“아, ‘얼굴에’ 아니고 ‘여기에’라고 말씀드렸어요. 제가 발음이 별로 좋지 않죠? 허허. 여기 커피 나왔습니다.”  

    

#4. 길거리   

텀블러를 받아 들고 나오는 미자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빠른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향해 가는 미자. ‘땡’ 하는 종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카페 직원이 자신을 향해 다가온다. 뭔가 싶어 직원을 보니, 그의 손에 낯익은 자신의 카드가 들려있다. 연거푸 고개를 끄덕이며 카드를 받아 드는 미자. 안녕히 가라고 인사를 건네는 직원, 미자는 그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서둘러 자리를 뜬다.   

   

#5. 사무실 

비밀번호를 누르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미자. 얼핏 시계를 보니 출근 시간이 30분가량 남아 있다. 미자는 익숙하게 텅 빈 사무실로 들어가 불을 켜고, 창문을 열고, 공기 청정기를 돌리며 자신의 자리로 향한다.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고 텀블러를 열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미자. 곁눈으로 모니터 아래 거울을 보니 그새 뾰루지가 더 커진 것 같다.      


#6. 사무실 앞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 1층 밖으로 나가는 미자. 배수관이 있는 곳에 화분을 두고 건물 앞 주차장 한쪽 끝에 있는 수도에서 물을 한 컵 담아와 화분에 물을 준다. 화분에서 물이 조금씩 빠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앉아있는 미자,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고 있다. 그때 뒤쪽에서 사람 소리가 들린다.   

    

#7. 사무실 앞 

사무실 건물 6층에 사는 4살 아기 주호가 어린이집에 가는지 아빠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걸어온다. 머리 한쪽이 눌려 뻗쳐 있고, 얼굴엔 채 흡수되지 않은 로션이 군데군데 뭉쳐 있는 게 보인다. 주호를 향해 반갑게 인사하는 미자. 주호도 미자를 아는지 피하지 않고 가까이 다가온다. 그런 주호를 보다가 아빠가 뭔갈 깜빡한 듯 미자에게 말한다. 

“주호 물컵을 제가 깜빡했네요. 잠깐만 주호랑 있어 주실 수 있을까요? 빨리 집에 다녀올게요.” 그런 주호 아빠에게 천천히 다녀오시라고, 그때까지 주호와 화분을 보고 있겠다고 답하는 미자. 주호 아빠는 주호에게 집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말한 후 빠른 걸음으로 6층으로 올라간다.   

    

#8. 사무실 앞  

주호에게 인사를 건네는 미자. 서툰 말로 답을 하는 주호가 귀여운지 연신 이것저것을 묻는다. 그런 주호를 귀엽게 보다가 휘파람을 부는 미자. 미자의 휘파람이 신기한지 주호가 미자의 얼굴을 골똘히 쳐다본다. 장난기가 돌아 주호에게 이 소리가 어디서 나오는지 아느냐고 묻는 미자. 주호는 미자의 입을 가리킨다. 주호를 놀릴 생각으로 입이 아니라고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지 맞춰보라고 말하는 미자. 이번엔 정확하게 알겠다는 듯 미자의 코 옆 뾰루지로 손을 뻗는 주호.  그때 뒤에서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9. 사무실 앞  

아빠에게 안긴 채 멀어지는 주호, 연신 손가락을 미자의 얼굴을 향해 뻗으며 “아빠 휘파람, 이모 코 옆에서 휘파람”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런 주호를 향해 말없이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미자. 곧 미자는 주호를 향해 흔들던 손을 내려 검지 손가락을 곧게 편 후 다문 입술 가운데 두고 주호를 향해 입모양으로 말한다. “쉿” 미자의 손모양을 그대로 따라 하며 멀어지는 주호.       


#10. 사무실 안  

사무실 문을 열고 자기 자리에 앉는 미자.  

곧 사무실 문이 열리고 수다를 떨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두 명의 직원.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자리에 앉아있는 미자를 발견한 듯 말을 멈춘다. 직원 한 명은 미자를 향해 인사를 꾸벅하고, 다른 직원 한 명은 미자를 향해 다가오며 말한다. “어? 팀장님, 피어싱 하셨어요?” 고개를 들고 직원을 멍하니 바라보는 미자. 그 직원을 향해 주호에게 했던 것처럼, 검지 손가락을 세워 다문 입술 가운데로 가져가 “쉿”이라고 말한 후, 다시 검지를 뻗어 직원 자리를 가리키며 저리로 가라고 하는 미자.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도 안 했는데 미자는 그저 피곤하다. 

작가의 이전글 웬만해선 드라마가 될 수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