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결국 니가 쓰는 글은 아무것도 아닌 거야.’
라는 말은
‘니가 글을 쓰는지 아닌지 조차 아무도 모를걸?’
이런 말로 이어지고 결국
‘그냥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멈추는 게 어때?’
여기까지 다다르면 끝내 이런 말이 내리 꽂힌다.
‘그냥 생긴 대로 살아.’
이런 말이 쏟아지는 날이 있다.
실제 이 말은 다른 누군가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기 때문에 쏟아진다는 표현은 상황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말은 아니지만, 결국 나는 이런 말에 흠뻑 젖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는 꽤 정확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말에 젖으면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리에 다시 눕거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고 웃기는 유튜브 채널을 배경 삼아 평소보다 이르게 출근 준비를 한다.
이런 말에 귀를 닫고 평소 나의 규칙대로 일어나 앉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약 삼십 분 동안 노트 세 쪽에 아무 얘기나 휘갈겨 쓴 후, 노트북을 펼치고 약 삼십 분간 흰 화면을 채운다는 마음으로 그저 생각나는 대로 쓰고,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 준비를 한다. 이럴 때면 나도 그리고 내가 쓴 글도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갈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이 잠시 스친다. 이런 생각 역시 앞선 말들처럼 나를 향해 쏟아지면 좋겠지만 내가 기를 쓰고 눈여겨보아도 보일락 말락 할 정도로 작고 연약하다.
뭐가 되려고 글을 쓰는 건 아니어도 결국 이 끝에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 착잡하다.
말로는 ‘그냥 이면지 만든다고 생각하고 쓰는 거야.’ 한 대도 그렇다. 굳이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면지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고, 이보다 더 중요하고 뜻깊은 일이 있을 것 같고, 글쓰기를 향한 나의 욕망은 사람과의 상호관계를 멀리하기 위해 선택한 비겁한 변명이나 독한 이기심 같은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애인도 친구도 없이 늙어가는 부모를 부양하며 글을 쓰는 삶’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서 역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글을 쓰는 삶’
‘자기 안의 고독과 상처를 후벼 파면서, 결국 글감을 자신에게서만 찾는 글을 쓰는 삶’
이런 게 떠오르면 다른 한쪽에선 이런 생각도 고개를 쳐든다.
‘배부른 소리 하고 자빠졌네.’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글쓰기를 진지하게 대할수록 글쓰기는 나를 업신여기는 것 같다.
그냥 좋아서 쓸 때는 글쓰기가 나를 좀 귀여워했던 것도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