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좋게 봐줘도 우리가 지금 하는 건 지적유희 정도죠.
엄살 부리지 말고 씁시다.”
글을 쓰겠다고, 나의 경우엔 드라마 작가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이니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사람 중 한 명이 다들 글쓰기가 힘들다고 하니 땡삐처럼 차갑게 쏘아붙였다. 글 쓰는 사람의 투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위로의 말도 가지각색인데 가끔은 이런 차가운 말이 주변을 환기하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칭찬과 위로와 격려도 때가 지나면 좀 물리거든. 가끔은 이런 새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말이 다시 글쓰기에 대한 마음에 불을 댕긴다.
다들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생업이 있고 그 와중에 원하는 걸 해보겠다고 기를 쓰고 시간을 내서 수업을 틈틈이 들으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 공모전 소식을 기다리고 공모전이 나오면 그걸 위해 준비하고, 도전했다 떨어지면 좌절했다가 금방 다음 공모전을 준비하고. 그런 일의 연속이다. 아는 사람이 공모전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잠시 좌절도 했다가, 누가 봐도 좋은 드라마를 보면서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며 좌절도 했다가. 희망보다는 좌절에 더 많은 자리를 내주는 하루하루. 그런데도 왜들 그렇게 쓰지 못해 안달일까.
결국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는 못 배겨서일까. 자기의 이야기라. 자기 밖에는 못하는 자기 이야기라는 것. 그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다들 어떻게 쓰고 있나 싶어서 가입한 네이버 카페에서도 비슷한 얘기들이다.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과 이걸 계속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에 대한 자문자답과 그건 이거보다 저게 더 낫다는 알은체가 넘친다. 그 와중에 외롭다, 힘들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는 글은 끊임이 없이 올라온다. 그러다 한 사람의 땡삐가 “모르긴 몰라도 여기 글 쓰는 분 중에 현업 작가는 없을 듯”이라는 말로 사람들을 후두려 팬다. 그러는 거기, 너는 뭐, 돼?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래, 글이나 쓰자, 할 사람들. 저마다의 골방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의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려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야기를 길어 올리는 것과 그걸 쓰는 것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능력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애초에 시간 누가 더 들이느냐에 당락이 결정되어 있다면 오래 달리기 승자를 가리는 것처럼 쉬울 수도 있는데. 오래 달리기가 쉽다고 이렇게 쉽게 말해선 곤란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고.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하고 싶다는 그 이유 하나로 이렇게 혼자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보면 세상에 모든 일은 고귀하다는 멀리 나가는 생각도 하고, 나라는 인간의 하찮음에 대해서도 마음껏 투정을 하게 된다.
이걸 불평할 시간에 한글자라도 더 써야 하는데. 아, 불평하는 것도 글로 써야 직성이 풀리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