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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Sep 13. 2023

싯다운스토리클럽

11.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

저는 한 때 내가 왜 태어났을까.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오빠만 있었다면 엄마나 아빠도 덜 힘들고 우리 집이 지금보다 더 나은 형편으로 더 잘 살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났을까. 

창세기를 공부하고 이 구절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내가 왜 세상에 존재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그 모습 그대로 좋았다’고 한다면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날 가치가 있구나라는 생각이요. 

몇 년 전에 몸이 아플 때 알게 된 한 분이 병이 다 나아서 다시 발레를 할 수 있게 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나탈리아 자매님의 어머니에게도 주님의 은총이 그리고 기적이 간절합니다. 주님이 나탈리아 자매님의 어머님에게도 기적을 내려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나탈리아, 나의 사례명. 

자매님,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 간의 호칭.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라는 말. 특정 종교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성당이든 교회든 절이든 그 공간에 들어섰을 때 큰 감정의 동요를 경험한 적이 있노라는 말. 나도 그랬다. 혼란한 마음에 사로잡혀 어쩌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에 찾은 성당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겠는 미사 중에 울음을 터뜨렸다. 마스크 너머로 전해지는 눅눅한 실내 공기와 낡은 건반이 내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읊조리는 기도 문구를 들으면서 나는 울었다. 내가 왜 울지?라는 생각을 할수록 더 많은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걱정하지 마. 너는 청년부도 아니고, 결혼을 안 했으니까 장년부라고 할 수도 없고, 40대 여자는 성당에서 주목하는 신자는 아니니까. 마음 편히 다녀. 마음 편히.”  

성당을 한번 다녀보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 지금은 나의 대모님인 대학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호들갑스러운 환영의 인사나 요란하게 쏟아지는 축복의 말이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그 말에 용기를 얻고 성당을 나갔다. 그래도 시작했으니 뭔가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예비 교리자 모임을 시작했다.      


세례를 받고 난 후 나는 얼마나 달라졌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나, 이 세상을 창조한 존재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나. 

글쎄. 

마스크 너머 눅눅한 실내 공기에 익숙해졌고 미사 마무리 신부님의 실없는 농담에 웃었고 일주일에 한 번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는데 익숙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이게 뭔가 싶을 때가 있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같은 기도문을 외운다는 행위 자체가 우습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잘 알지는 못하지만 왜 늘 신부만 앞에서 미사를 주관하는지, 수녀는 저렇게 불편한 차림새를 할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하면서 마음이 뾰족해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미사에 참석하는 건 좋았다. 혼란한 나의 마음에 필요한 건 규칙적인 습관 같은 거였나 싶을 만큼 일요일이면 미사에 나갔다. 성경의 창세기를 함께 읽고 나누는 모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망설이다 용기를 내 신청을 했다. 그렇게 세명의 자매님을 만났다. 


모임은 느슨하고 정숙했다. 돌아가면서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교재에 있는 질문지에 따라 생각을 나눴다. 모임을 계속해도 자매님들과의 관계 역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눌 만큼, 아는 사람이라고 분류해도 될까 싶을 만큼 가까워지지 않았다. 몇 개월에 걸쳐 드문드문 만나는데도 모임 때마다 처음 보는 것처럼 어색했다. 

모임이 거의 끝나갈 즈음 엄마가 파킨슨과 췌장암 4기 진단을 동시에 받았다. 슬픔이 발목을 잡고, 애통함이 어깨를 쥐고 흔들고, 후회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던 때. 모임 참석이 어려워져서 아무래도 이렇게 마무리가 되겠지 싶어서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걸 자매님들에게 말했다. 내 말에 자매님들은 함께 기도를 하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에게 함께 기도해 달라고 청하겠다고. ‘기도하겠다’는 말이 실제 기도라는 실천을 약속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나의 믿음이 얼마나 진짜이고 깊은 줄 알고 자매님들은 기도를 하겠다는 걸까. 자매님들이 기도를 청한다는 그분들은 나를 모르고 우리 엄마는 신자도 아닌데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그런데도 기도를 청하는 마음이란, 기도의 청함에 응하는 그 마음이란 무엇일까. 


몇 번의 모임이 연기된 끝에 내가 가능한 일정에 마지막 모임을 하기 위해 모였다. 

모임을 이끄는 자매님이 룸꼬 기도로 창세기 공부를 마무리하자고 했다. 

성서 본문을 돌아가며 1절씩 천천히 읽는다. 

잠시 묵상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구절을 묵상한다. 

특별히 마음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이나 단어를 천천히 3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외치고 자유 기도를 한다. 3번 읽는 사이사이에는 잠시 침묵한다. 기도 끝에는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로 응답한다. 

모임을 이끄는 자매님은 차례가 된 사람이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주자고 했다. 내 차례가 오지도 않았는데 시작도 하기 전부터 부담스러웠다.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기엔 이미 늦은 것 같은데 어떤 문구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한 번만 봐주고 넘어가달라고 하면 안 될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맞은편에 앉아있는 자매님이 처음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로 시작해서 나와 나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로 마무리를 하는 자매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울었다. 아직도 어색하고 하나도 안 친한데 그런데 왜 나를 위해 기도하지?라는 생각과 그래도 너무 고맙다, 감사하다, 자매님의 말처럼 정말 기적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쏟아지는 눈물 사이사이 온갖 생각이 뒤엉켰다.  

내 차례가 되었다.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찾기에 나는 너무 울고 있고, 콧물은 너무 흐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이게 끝나지 않을 거니까 마음은 더 급해졌다. 자매님들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나를 기다려 주었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 

이런 일들이 있은 뒤, 주님의 말씀이 환시 중에 아브람에게 내렸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너는 매우 큰 상을 받을 것이다. “      

주님, 지금 저에게 일어나는 일이 저에게 닥친 특별한 불행이 아니라, 그저 흐르는 시간 속에서 생긴 일이라고 여길 수 있도록,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그런 힘과 용기를 저에게 주세요.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나의 기도가 끝나고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자매님과 나는 함께 말했다.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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