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눈을 떠보니 여전히 이곳이다. 나는 아직 안 죽었다. 그리고 여기 아들 집에 버리지도 못하는 물건 신세로 어정쩡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애들이 일어나기 전에 화장실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가능하려나. 누운 채로 몸을 왼쪽 그리고 오른쪽으로 움직여본다. 어쩌면 가능할 수도? 왼쪽 팔을 침대 난간에 올리고 힘을 준다. 마음 같아서는 벌써 몸을 일으켜 다리를 내리고 화장실로 향하고도 남았을 텐데 내 몸은 내 생각과 딱 정반대로 움직인다. 팔에 아무리 힘을 주어도 머리카락 하나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 힘겹게 왼쪽으로 돌아누운 후에 두 팔을 침대 난간에 대고 힘을 준다. 잠깐 숨을 멈추고 온 정신을 두 팔에 그리고 상체를 들어 올리는데 집중한다. 그제야 간신히 조금씩 위로 올라오는 상체, 자리에 앉은 것뿐인데 숨이 차서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어야 한다. 그러고 앉아있는데 졸린 눈을 비비고 며느리가 거실로 나온다. 오늘도 나의 작은 목표는 실패다. 아들네 식구가 일어나기 전에 화장실을 다녀오고 얼굴을 씻고 소파에 앉는 걸 목표로 할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 되어버렸다. 고작 화장실을 다녀오는 것만도 한세월이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나는 왜 이런 몹쓸 병에 걸렸나.
며칠 전 꿈에 죽은 엄마가 나왔다. 잠이 깨고 꿈을 꿨구나 싶었는데 그때까지도 엄마가 곁에 있었다. 엄마가 꿈을 넘어 내 곁으로 왔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나도 죽는가 보다, 그래서 엄마가 데리러 왔나 보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마음이 깃털처럼 가볍다. 이만하면 살만큼 살았다. 애들은 내가 이 말을 할 때마다 싫은 티를 내지만 사실인걸. 80이면 오늘 당장 죽어도 아깝지 않은 나이다. 내 엄마보다 10년도 넘게 더 살았다. 내 자식들은 적어도 나만큼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을 거다. 내 엄마는 집에서 혼자 있다가 넘어지는 바람에 그 길로 중환자실에서 며칠을 보내다 가셨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원통하고 아쉽더니 지금은 그게 부럽기만 하다.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신세. 내가 원한 나의 마지막은 이런 게 아니었다. 자식들에게 조금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고, 부담이 된다 싶으면 내 발로 병원에 걸어 들어가리라 다짐했다. 평생을 산 내 집을 떠나 자식 집에 눌러앉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치료로 몸과 마음을 좀먹으면서 죽음을 미루는 삶을 지속할 생각은 절대로 절대로 없었다.
병원엔 아픈 사람이 참 많기도 하다. 아픈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돈벌이는 다 누가하고 집안을 먹여 살리는지 모르겠다. 그 얘기를 했더니 막내딸이 깔깔거리면서 웃는다. 별 걱정을 다 한다면서. 병원 창문 너머에도 많은 사람과 차들이 오간다. 저기 있는 사람들이 일해서 먹여 살리지 엄마,라는 막내딸의 목소리가 산 사람의 건강함을 품고 있다.
지난 진료 때 의사가 앉아있는 책상에 초콜릿과 초코파이가 있었다. 틈틈이 저런 걸 먹으면서 일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숨이 차다고 했더니 의사는 자기 자리에 있는 초코파이를 보면서 숨이 차면 이걸 먹으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이 말을 했더니 막내딸이 엄마 왜 없는 얘기를 하냐고 그런다. 맹세코 의사가 나한테 그랬는데. 가끔 시간이 뒤죽박죽이고 여기가 어디였지 싶을 때도 있지만, 정말로 의사가 나한테 그런 말을 했다. 내 기억이 무조건 틀리다고 생각하는 반응 때문에 서글프다. 왜 정말로 내가 그런 말을 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 지들 귀에 안 들렸을 수도 있는데. 내가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지 아닌지 유심히 관찰하는 자식들의 시선이 갑갑하다. 갑갑하고 답답한 내 심정에 아랑곳없는 자식들이 원망스럽다.
내가 죽으면 걱정되는 사람 하나, 나의 남편이라는 사람이다. 바보가 되어버린 사람. 나 만큼이나 몹쓸 병에 걸린 사람. 나 없이 어떻게 살까. 지금도 멀쩡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망가지면 어쩌나. 물론 자식들이 돌보겠지만, 어미인 나를 돌보고 이어서 아비까지 돌보면 자식들이 힘들겠지. 어미인 나를 돌보는데 지쳐서 아비를 나 몰라라 하면 어쩌지. 아니, 내 자식들이 그럴 리가 없지. 죽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 있고 싶다. 그래도 누구보다 편하고 만만 한 건 남편인데. 얼마 남았는지 알 수 없는 나의 남은 생을 편한 내 집에서 편한 사람 곁에 있고 싶다는 게 너무 큰 꿈인가. 내가 내 몸을 조금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텐데. 평생 생각한 대로 움직여주던 내 몸뚱어리가 지금은 내 생각에 아랑곳없이 작동을 멈춰 버렸다.
티브이에 올해 구십 여덟이 되었다는 노인이 망치질을 열심히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열 살을 갓 넘겨 먹고살기 위해 시작한 놋그릇 만들기를 구십이 넘어서까지 하고 있단다. 막내딸이 옆에서 저걸 당장 그만두고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라고 하면서 혀를 찬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저렇게 마음껏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일을 멈추고 집에서 티브이나 보고, 좋은데 여행 다니면서 사는 삶이 최고라고들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노인이 몸이 허락할 때까지, 죽기 전까지 하고 싶다고 답한다. 막내딸이 또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젓는다. 그런 딸을 보는데 한편으론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를 때가 좋을 때지 싶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가을이면 수확을 하고 겨울엔 봄을 준비하던 그 시절이 고단하긴 했어도 사는 맛이라는 게 있었다. 공부하라는 잔소리 한번 안 했는데 남들 보기에 떳떳한 성적표를 가져오던 자식들. 내 힘으로 자식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충만함. 그렇게 키운 자식 넷은 지금 내 곁에 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어리석은데 결혼은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옆에 앉은 막내딸이 떠든다. 지가 결혼을 안 한 건 안 한 거지 남자들 흉을 저렇게 볼 건 또 뭐람. 성에 안 차고 모자라더라도 남편이 곁에 있으면 좋을 텐데.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도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기라도 하면 남편과 자식이 없다는 게 당장 얼마나 아쉽겠나. 모아둔 돈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 돈을 내 병치레한다고 써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내가 얼른 죽어야지. 그래야 막내딸 돈을 덜 축낼 텐데 말이다.
좀 어떠세요?라는 질문. 질문을 듣자마자 말문이 막힌다. 다리는 늘 코끼리 다리처럼 두껍고 단단하게 부어있어서 더 이상 내 다리 같지 않고, 머리는 이상하게 딩딩 울리고, 오줌은 자꾸 마려운데 시원하게 나오지 않고, 가슴에 박혀있는 관은 좀처럼 익숙하지가 않다. 불편한 걸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고 어느 정도가 되어야 불편하다고 속 시원히 말할 수 있을까. 아픈 몸은 내 몸 같지 않고 낯설다. 이곳저곳이 불편하고 아픈데도 쉬이 죽지 않는다는 게 원통하다. 육십이 넘어서부터 죽어야지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시어머니의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겠다. 죽음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처럼 가까이 있는데 왜 나를 데려가지 않을까. 얼마나 더 살아야 하나.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