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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Mar 20. 2024

싯다운스토리클럽

29.

죽고 싶다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가 자신이 아직 걸을 수 있을지 궁금하단다. 죽고 싶은 건 죽고 싶은 거고 걷고 싶은 건 걷고 싶은 건지. 엄마는 참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한다 싶다가 그게 왜 말이 안 되는 거지 하면서 혼자 묻고 혼자 답한다. 

호스피스 병원에 입원 상담을 했을 때 의사 선생님은 입원 전에 두 가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했다. 보호자들이 환자가 나을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받아들일 것, 환자 스스로 자신이 나을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것. 걸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는 엄마 얘길 듣고 보니 엄마는 어떨까 궁금하다. 과연 엄마는 자신이 나을 수 없다는 걸, 죽어 간다는 걸 알까. 아는 것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건 또 다른 문제일 테니 엄마는 과연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있을까. 다리가 굳을까 봐 걱정이라며 누운 채 발을 까딱하면서 엄마는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라고 혼잣말을 한다.  


호스피스는 보통 최대 입원 기간이 정해져 있다. 

60일. 

그 60일이 지나도 살아있다면 퇴원을 해야 한다. 입원은 머잖아 죽을 거라는 걸 전제로 하고, 퇴원은 아직은 살아있지만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전제로 하는 곳. 60일 안에 죽지 못해서 퇴원했다가 죽을 것 같아서 다시 입원하는 등, 그렇게 입퇴원을 서너 차례 반복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 죽음이 앞으로 다가왔다 뒤로 물러서는 와중에 환자와 보호자는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딜 것인가. 나을 수 없는 상태임을 받아들이는 것과 죽을 테지만 그 죽음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것. 환자와 보호자는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어떤 것을 모른 척해야 하는 걸까. 그리고 언제까지 그 상태를 반복해서 겪어야 할까. 


호스피스 입원을 위해서 필수로 필요한 서류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주치의의 소견서다. 이 환자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하다는 것과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확인시켜 주는 서류인데, 특정한 몇 개의 단어가 필수로 들어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받기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 대신 주치의를 만났다. 엄마의 췌장암을 6개월 동안 치료해 온 주치의. 뜻밖에 주치의는 항암을 계속해보잔다. 이미 응급실에서 엄마의 폐와 신장 기능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에 연명치료를 지속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고 설명했지만, 주치의는 폐와 신장의 기능이 떨어진 이유가 반드시 암 때문은 아니라고 답했다. 몸을 좀 추스른 후에 다시 한번 항암을 해보자고 하며 다음 예약을 잡는다. 멍해진 내가 호스피스 이야기를 꺼내자 주치의는 그건 그것대로 알아보시라고 간편하게 말한다. 

의사는 끝까지 해볼 생각이구나. 끝까지 치료해 보자는 의사의 의지에 대해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마땅할 텐데 나는 조금도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응급실 의사의 더 이상 치료할 수 없음이라는 판단과 췌장암 주치의의 항암을 계속해보자는 판단. 한 개뿐인 엄마 몸을 두고 서로 다른 두 개의 판단. 결국 결정은 환자 자신 그리고 보호자의 몫이라는 사실. 알고 있지만 어려워서 피하고 싶은 결정 앞에서 나는 또 가만히 멈춰 선다.  


“오늘 병실이 나왔는데 내일 입원하실 수 있으세요?” 

병실이 나왔다는 건 밤사이 누군가 돌아가셨다는 얘기겠구나. 며칠 더 시간을 주실 수는 없냐고 물으니 그럴 수는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럼 이번에는 입원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하니, 그럼 호스피스 병동 입원 대기 상태에서 취소 상태가 되는 거라고 외래 진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단다. 그렇구나, 다시 시작해야 하는구나. 네, 알겠습니다 답하고 같은 병원에 전화를 해서 다시 진료 예약을 잡는다. 지난번에 몇 주를 기다린 것에 비하면 이번엔 그래도 한주 후에 예약이 잡힌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힘을 낸다.  


엄마가 혈액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지인은 엄마의 몸이 연결되어 있던 기계에서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삐”소리가 날 때 간호사를 불러서 기계가 고장 났다고 했단다. 그만큼 엄마의 죽음이 갑작스러웠다고. 무균실이 아닌 일반 병실에 자리를 잡아준 것도 의료진이 엄마에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은 것도 뒤늦게 생각해 보면 가망이 없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그런데도 그때는 그걸 눈치재지 못했단다. 

호스피스 입원을 알아보는 와중에도 나는 자연스럽게 60일 이후 엄마의 퇴원부터 걱정했다. 퇴원을 하면 요양병원에 입원을 했다가 다시 호스피스 대기를 해야겠지, 이런 생각을 했다. 한쪽 눈을 가린 것처럼 60일이라는 기간 안에 엄마가 죽는다는 가정은 모른 척했던 거다. 모른 척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만큼, 60일 후에 엄마가 두 발로 걸어서는 아니더라도 죽고 싶다는 푸념을 하면서 퇴원을 할 거라고 나는 믿고 있었다. 

의사의 말이 다시 들린다. 엄마가 나을 수 없는 상태임을 알 것, 그건 분명히 나도 안다. 엄마가 나을 수 없는 상태라서 곧 죽을 수도 있다는 것, 그건 아직 아니, 앞으로도 모르고 싶다. 

지금은 엄마 목소리가 기억나지 않아서 아쉽다는 지인의 말을 기억하며 엄마에게 말을 건다. 언니와 오빠 그리고 나의 태몽이 뭐였지? 하면서 알면서도 엄마에게 묻는다. 큰언니는 맑은 개울 바위 위에 서서 커다란 바구니 한가득 다슬기를 잡았고, 오빠는 아주 빨간 고추를 땄고, 나는 산골짜기 높은 데서 크고 흰 풋밤을 주웠다고 말하는 엄마를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산골짜기 높은 데서 풋밤을 주워서 내가 사는 게 이렇게 고달픈가 봐, 평지에 있는 걸 주웠으면 신세가 편했을 텐데라고 어리광을 부리면 엄마는 피식 웃겠지. 그게 왜 그런 뜻이 되냐고 말을 잇는 엄마를 나는 계속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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