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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Mar 29. 2024

싯다운스토리클럽

30. 

“치료를 지속하는 게 의미가 없는 상황입니다” 

“병원에서 해드릴게 더 이상 없습니다” 

“환자의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곧 의사로부터 이런 얘기를 듣겠구나 싶긴 했다. 예감하지 못한 일도 아닌데 말을 듣고 보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의사에게 들은 말은 이거였다.  

“그동안 못 만난 가족분들이 있다면 서둘러 만나시는 게 좋겠습니다.” 


진료 후 평소처럼 복도 한쪽에서 간호사를 기다렸다. 보통 진료실에서 의사와 짧은 대화 후, 다음 예약이나 주요 사항에 대한 안내는 복도에서 간호사를 통해 전달된다. 평소보다 빠르게 간호사가 엄마의 이름을 부른다. 간호사는 나에게 원무과에 들러서 수납하고 가란다. 

다음 예약 없음 

이것이 치료의 종료와 머지않아 닥칠 엄마의 죽음을 말하고 있었다. 거창한 인사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헛헛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그동안 엄마를 치료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아쉽고, 이와 같은 인간다운 교류와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의료 시스템이 원망스럽다. 어서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지 싶으면서도 복도에 있는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옆 의자에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비쩍 마른 노인의 발이 보인다. 슬리퍼를 신은 발이 풍선처럼 부풀어있다. 내 엄마의 손과 발처럼 그렇게. 그 옆에선 간호사를 붙들고 치료를 시작한 후 오히려 삶이 질이 떨어졌다고 푸념하는 보호자가 보인다. 항암 하기 전에는 친구분들과 식사도 하고 그러셨는데 요즘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태라는 말. 엄마의 항암 초기,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홍제천을 산책하던 때가 떠오른다. 사람이 한적한 길에서 휠체어를 밀면서 조금씩 걸음을 떼던 엄마, 두 발로 땅을 딛고 걸을 수 있던 그때의 엄마. 자리에 서기는커녕 침대에 몸이 묶인 지금 엄마를 생각하면 꿈같은 시절이다. 저 보호자도 언젠가 아버지가 집에만 머무는 지금을 그리워하게 되겠지.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언니 오빠에게 메시지로 전하면서 횡단보도 앞까지 걷는 길이 길고 멀다. 주차장에서 느릿느릿 나오는 차들과 반대 방향에서 주차장을 향해 쏟아져 들어가는 차들이 보인다. 차로 가득한 도로와 녹색 신호를 기다리며 길에 서 있는 사람들. 그 사이를 걸으면서 이 중에 환자와 보호자는 얼마나 될까 생각한다. 아니, 그런 생각이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머리가 멍하고 발은 자주 멈춘다. 밥을 먹어야지, 커피를 마실까, 그냥 집으로 갈까. 


복도에서 한 노인이 이렇게 사람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데가 어딨 냐고 소리친다. 처음엔 설명을 하다가 다음으로 달래다가 무반응을 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안쓰럽다. 저건 무슨 사연일까, 이곳엔 얼마나 많은 각자의 사정이 이리저리 얽혀있을까. 각자의 사정 중에서 어떤 게 쓸모 있고 어떤 게 무쓸모 할까. 

지난번 자리가 났을 때 입원을 했으면 좋았겠다는 의사의 말이 나를 통과해 저 멀리 사라진다. 이번엔 대기가 더 길다고, 앞에 스무 명이 있다는 말도 나를 통과한다. 호스피스를 사람들이 죽으러 오는데라고 오해를 많이 해서 그런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엄마의 경우 입원이 빠르면 빠를수록 도움이 될 거라는 말도 그냥 나를 통과한다, 통과해 버리게, 통과해서 저 멀리 가게 둔다. 말이야 바른말로 죽으러 오는 데가 맞지 않냐고 대거리를 할 힘도,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고 상의를 할 의지도 없다. 1인실이라도 괜찮으니 병실이 나면 연락 주세요라고 말하고 진료실을 나온다.  


집에 돌아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눕는다. 가만히 누워 천장을 쳐다본다. 하루가 참 길다. 아침 8시부터 엄마의 현재가 있는 요양병원과 엄마의 과거가 있는 대학병원 그리고 엄마의 미래가 있는 호스피스 병원까지 세 개의 병원에 들렀다. 엄마의 과거가 그립고 엄마의 현재는 가엾고 엄마의 미래는, 모르겠다. 엄마의 미래, 다가올 죽음 앞에서, 나는 지금 두렵다기보다 무섭다기보다 그저 피곤하다. 죽음까지 가는 그 길에 어떤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지 짐작할 수 없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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