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엠제이 Apr 10. 2024

싯다운스토리클럽

31. 

엄마의 묘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느냐는 오빠의 메시지에는 술 냄새가 잔뜩 묻어있었다. 화장을 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매장을 하는 게 좋을까, 둘 중 어떤 걸 선택하고, 위치는 어디로 하는 것이 좋을까. 메시지는 여러 가지를 묻고 있었지만 혼잣말에 가까웠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오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순순히 적어 보냈다. 저녁 식사에 꼭 술을 곁들이는 오빠를 엄마는 저러다가 몸 상한다고 무척 걱정하는데. 나도 그게 좋아 보이진 않지만 술에 기대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리고 부모의 잔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을 나이는 한참이나 지났다. 이젠 오빠가 잔소리를 내뱉는 부모가 된 지 오래니까.  


아빠와 내가 앉은 벤치 위로 활짝 핀 벚꽃 잎이 날린다. 참 좋은 계절이다라는 생각이 절로든다. 나는 늘 봄이 싫다고 얘기해 왔고 지금도 마음 한편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계절이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마구 피어나는 꽃과 잎사귀들 그건 곧 생명을 의미했고 이내 죽음을 앞둔 엄마를 생각하게 했다. 이렇게 좋은 계절에 엄마가 죽으면 좋을까.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계절에 죽은 동네 아주머니를 부러워했던 엄마를 떠올린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건 봄 아니면 가을인데, 이번 봄을 엄마는 살아서 지나고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이 계절에 피어나고 자라는 꽃과 나물을 엄마는 참 좋아했는데. 병원 안에 갇힌 엄마에게 이 계절을 보여주지 못하는 게 아쉽다. 봄기운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꽃을 사가면 엄마는 잠깐 얼굴을 활짝 폈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코에 있는 산소 호흡기 호스 때문에 냄새도 맡아지는 둥 마는 둥 하고, 흐려진 눈과 떨어지는 기운 때문에 모든 게 힘겨워 보인다. 지금 엄마는 대부분의 일이 대체로 귀찮고 성가신 것 같다. 좀처럼 감정을 알아채기 힘든 엄마의 무표정이 한편으론 낯설고 한편으론 자연스럽다. 이렇게 살아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신세와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에 지쳤겠지. 왜 안 그렇겠나, 어떻게 안 그럴 수 있겠나.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아빠가 혼잣말을 한다. 그 말에 나는 뭘 어쩌냐고 이젠 엄마가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도록 도와야겠지라고 말을 내뱉는다. 이어서 아빠는 병원비가 남아있냐고 묻는다. 병원비로 쓰라고 아빠가 준 돈 천만 원은 간병인 선생님께 일주일에 91만 원씩 드리고 2주에 270만 원씩 병원비로 나가고 있다. 천만 원은 거의 사라졌고 이젠 엄마의 통장에 들어있는 암진단 보험료로 병원비를 충당해야 한다. 

엄마는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고 거기에 돈을 모아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삶을 살지 못했다. 아빠와 함께 은행에 가서 만든 통장은 아빠가 보관했고, 자식들이 준 용돈을 엄마는 군말 없이 아빠에게 줬다. 그리고 엄만 아빠에게 필요할 때 돈을 받아서 썼다. 그게 자연스러운 시절과 동네에서 살았다 엄마는. 그렇게 산 엄마가 자신의 치료비마저 누가 준 돈이 아니라 자신의 보험 진단료로 써야 한다는 게 비현실적일 만큼 안쓰럽다.  

짐을 정리하러 원주 집에 갔을 때다. 싱크대 서랍장을 비우려고 열어보니 한 서랍에 봉투가 수북했다. 엄마에게 물으니 자식들의 용돈이 담겨있던 봉투를 차마 버릴 수 없어서 모아뒀단다. 내가 자주 주지도 못한 돈을 봉투에서 꺼내 아빠에게 건네고 봉투를 싱크대 서랍에 넣었을 엄마 모습을 떠올린다. 짠한 뒷모습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다. 그럼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뒤에서 꽉 껴안아 주고 싶다. 엄마를 은행에 데리고 가서 돈을 입금하고 카드를 만든 다음에 어떻게 돈을 찾고 써야 하는지 왜 진즉 엄마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 엄마의 과거를 추억하면 후회의 늪이 펼쳐진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아빠와 할머니 몰래 돈을 편히 쓸 수 있게 도울걸, 그 많고 고된 농사일을 그만두라고 할걸, 싫다는 걸 억지로 끌고 좋다는데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닐걸. 늪에 빠져 허우적대다 그 시간마저 아깝다는 생각에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입금된 암진단비를 찾으러 은행에 가는 날, 아빠는 택시에도 실리지 않고 번거로우니 휠체어를 가지고 가지 말자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휠체어 없이는 엄마가 힘들어서 안된다고 난리를 피웠더니 아빠가 입을 꾹 다문다. 택시 기사님은 흔히 겪는 일인 듯, 반쯤 짐칸 밖으로 나온 휠체어 바퀴를 끈으로 동여매 짐칸의 고리에 단단히 고정한다. 허리가 아프니 병원에 한번 갔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부탁을 매몰차게 거절했다는 아빠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뜨거워진다. 기동력이 없어서 안된다고 했다나. 택시 불러서 혼자 병원도 가지 못할 만큼 엄마의 세상은 얼마나 작고 사방이 꽉꽉 막혀있었던 걸까. 그래, 나는 뭐 잘 났나. 자식이라고 엄마가 그러고 있는 것도 몰랐으니. 엄마는 통장에 든 암진단비 이천만 원 중에서 천만 원은 오빠에게 보내주고, 사백만 원씩 큰언니와 나에게 입금하라고 한다. 오빠네 집에 머물고 있으니 그만큼은 줘야 엄마가 마음이 편하고, 아빠를 대신해 세금을 낸 큰언니에게 그 돈을 보내고, 오며 가며 애쓰는 나도 같은 돈을 가져가라고. 한사코 안 받겠다는 나에게 남편도 자식도 없는 너는 돈이라도 모아 놔야지 라는 엄마의 말에 알겠다고 했다. 비밀번호가 어떻게 되냐고 했더니 엄마가 아빠 생일을 말한다. 아주 사랑하나 봐?라는 나의 말에 엄마가 싱긋 웃는다. 엄마의 저 귀여운 미소는 자식 넷 누구도 온전히 물려받지 못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웃는 건 엄마가 제일 예쁘다. 예쁜 엄마의 미소, 그 찰나의 순간을 눈에 담고 가슴에 담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어려운 숙제를 마친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보였다.  


아직 고사리가 안 나왔겠지 혼잣말을 하는 엄마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또 그 생각을 한다. 이 봄,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계절을 나의 사랑스러운 엄마는 무사히 살아서 다음 계절로 건너갈 수 있을까. 떨어지는 벚꽃이 아깝기만 하다.  

작가의 이전글 싯다운스토리클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