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꽃집 냉장고에 있는 카네이션 꽃송이가 탐스럽다. 세 가지 색의 카네이션으로 다발을 만들어달라고 했더니 금세 알록달록하고 싱그러운 꽃다발이 완성되었다. 꽃다발을 얼굴 앞으로 가져가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꽃향기보다 풀 내음이 짙다. 그래서 더 좋다.
병실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엄마 침대에 커튼이 쳐졌다. 엄마가 대변을 보는가 보다. 문을 옆으로 살살 밀어 열고, 손을 씻은 다음 꽃다발을 한쪽에 두고 휴게실로 향한다. 휴게실에 멍하니 앉아있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싶어서 병실에 가보니 아직 커튼이 쳐진 채다. 살살 다시 걸어 나오는데 커튼 너머로 간병인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옳지, 옳지, 좋은 똥 나온다, 좋은 똥 나온다.”
대변을 볼 때마다 애를 먹는 엄마를 응원하고 아기처럼 살살 달래는 간병인 선생님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뜨듯해지고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의사가 병실에 와서 피검사 결과가 좋다고 말하고 갔다. 언제 다시 나빠질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현재는 좋습니다,라는 말. 의사가 나가고 간병인 선생님이 엄마를 향해 이렇게 좋아지면 한 달 후에는 집에도 갈 수도 있겠다고 하니 엄마는 집이 아니라 자신이 가야 할 곳은 산이라고 그런다. 뭐 그런 소리를 하냐고 내가 그랬더니, 엄마는 말을 잘못했다고 화장을 할 거라고 또 그런다. 찾아보니 요즘은 화장을 한 다음에 봉분을 따로 만들지는 않더라도 산에 작게 매장을 하는 경우도 있더라고 그랬더니 엄마가 손을 저으며 극구 싫어라 한다. 산에 두는 건 결국은 자식들 고생시키는 일 밖에 안되더라고, 그냥 화장을 해서 이곳저곳에 뿌리라고.
이런 얘기를 엄마랑 나누는 게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지 나조차 좀 놀랍다. 억장이 무너질 것처럼 큰 슬픔이나 애통함보다 엄마의 죽음 그리고 그다음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귀하다는 생각이 더 크다.
엄마 말처럼 이곳저곳에 뿌리는 게 요즘은 안될 거라고 답하니까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게 왜 안되냐고 그런다. 그러면서 이러는 거다.
“나 아는 사람 그 누구냐, 잣나무골 아주머니는 남편 화장한 거를 찹쌀에다가 섞어가지고 휘휘 뿌렸단다. 그렇게 하면 새들이 참 잘 주워 먹는다는데?”
그게 참 좋은 생각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엄마나, 화장한 유골을 찹쌀에 섞는 아주머니나 참 기가 찬다. 기가 찬다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이런 거 까먹기 전에 어디 적어둬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다. 이런 나도 기가 차기는 마찬가지인가 싶기도 하고?
설핏 잠이 들었던 엄마가 모종을 살 때는 키가 크기만 한 거면 안되고, 짧고 굵직한 걸로 사야 한다고 잠꼬대처럼 말한다. 땅을 깊게 판 다음에 물을 주고 거기에 모종을 넣은 후 흙을 덮고 꾹꾹 눌러야 한다고. 어린이날인 5월 5일 이후에 꼭 그 이후에 심어야 한다고 앞서 열 번도 넘게 한 말을 또 한다. 어린이날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있다니까 혹시 몰라서 그런다는 엄마의 말에 나는 알겠다고 꼭 어린이날 다음에 심겠다고 답한다. 내 답을 듣고 엄마는 안심한 듯 다시 잠이 드나 싶었는데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그런다.
“이거 할 때 말이야, 아빠랑 꼭 같이해. 안 그러면 너희 아빠 또 꼼짝 안 한다.”
알겠어 엄마, 아빠를 들들 볶아서 같이 할게,라고 답하니 엄마가 다시 눈을 감는다. 엄마의 입꼬리에 ‘꼬시다’라는 말로 번역될 것 같은 미소가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