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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Apr 24. 2024

싯다운스토리클럽

33. 

주의 깊게 보는 사람 하나 없어도 꺼질 줄 모르는 병실 안 텔레비전은 열심히 선거 소식을 전하고 있다.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후보자들의 주장과 상대편을 향한 험담 그리고 그걸 자극적으로 편집해서 전하는 방송이 지겨울 만도 한데, 이번에도 나는 욕을 하면서도 관심을 쏟고 있다. 이런 나만큼이나 한국의 선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있으니 바로 간병인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오늘도 빨간색과 파란색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뉴스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연변이 고향인 선생님은 한국에 와서 간병 일을 한 지 6년째라고 했다. 남편분도 간병일을 하고 있어서 부부간에 서로 얼굴 볼 일이 별로 없다면서, 남편은 옆에 있거나 말거나 별 상관이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중국에서 공무원으로 일한다는 딸에 대해 말할 때 선생님의 얼굴에 뿌듯함이 선명하게 자리 잡았다. 반면 아들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셨다. 어쩌다 지나는 말처럼 얘기할 때도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거나 한국에서 일하는 걸 힘들어한다거나 그저 얕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연변에선 옷장사부터 시멘트 공장일까지 두루 일을 했고, 돈을 벌기 위해 러시아에도 다녀왔단다. 한국에서도 식당일부터 여러 일을 해보신 것 같았다.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육십이 조금 넘는 세월 동안 저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된다. 


가끔 선생님이 낯선 표현을 쓰거나 모르는 단어로 말씀하실 때가 있다. 내 말 역시 선생님에게 때로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겠지 아마. 나의 질문이나 말에 선생님이 별말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거나 슬쩍 웃을 때면 내 말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그럴 때 나는 구체적인 단어를 골라서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하려고 나름 애를 쓴다. 선생님은 ‘우리는 한 민족 한 동포’라는 이야기를 즐겨하시는데 그 말처럼 한 동포라서 그런지 낯선 선생님의 표현이 나는 늘 신선하고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기저귀나 물티슈 등 사 올 것이 없느냐는 나의 질문에 아직은 충분히 남아있고 다 떨어지면 말하겠다는 뜻을 담은 이런 말. 

“내, 수요가 있으면 말하겠습니다.” 


“나는 저들이 말하는 것에 동의되지 않습니다.”    

뉴스를 보면서 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여당의 정책에 대한 선생님의 간단한 감상평이다. 사람은 항상 자기보다 힘이 약하거나 가난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하물며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요즘 한국의 주요 정치인들은 힘이 세고 돈이 많은 자신들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본인은 그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정확히는 ‘동의되지 않는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굳은 심지가 전해졌다. 한참 이야기에 빠져있던 선생님이 문득 겸연쩍었는지, 웃는 얼굴을 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엄마에게 묻는다. 

“내 어머니 대신 투표 해도 되겠습니까?”


“그 거이 그저 자연스러운 겁니다.” 

산소포화도가 뚝뚝 떨어지고, 폐렴까지 쉬이 낫지 않아서 엄마의 상태가 부쩍 안 좋아졌을 때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복도에 가만히 서 있는 나에게 다가와 간병인 선생님이 저렇게 말했다. 엄마는 아픈 환자고 이제 많이 좋아질 수는 없고 서서히 안 좋아질 거라고, 그런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말이다. 나도 다 알고 있는 말이어도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주니 마음이 좀 놓였다. 복도에 나를 남겨두고 병실에 먼저 들어간 선생님은 엄마를 향해 목소리 톤을 높이고 말했다.

“어머니, 웃으십시오. 웃어야 기운이 납니다.” 

병실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선생님이 양손으로 두 개의 브이자를 만들어서 엄마 얼굴 앞에 흔들고 있었다. 간병인 선생님은 엄마와 나 둘 다를 위로해주고 있구나. 나에겐 나에게 필요한 것을, 엄마에겐 엄마에게 필요한 것을. 

선생님과 우리가 한 민족 한 동포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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