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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제이 May 06. 2024

싯다운스토리클럽

34. 

무릎을 가슴에 바짝 대고 웅크린 자세로 호미질을 하는 작고 늙은 사람. 비쩍 마른 노인이지만 호미질만큼은 힘차고 거침이 없다. 호미질 몇 번에 풀이 사라지고 짙고 축축한 흙이 꽃을 감싼다. 인기척에 뒤돌아 나를 바라보는 얼굴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죽은 할머니가 살아 돌아왔나 싶게 고모의 얼굴은 할머니와 꼭 닮았다. 집에서 빈둥빈둥 놀지 왜 풀을 뽑고 있냐는 내 말에 앙칼진 고모의 말이 날아온다. 

“내가 안 뽑으면 어떤 것들이 대신 뽑아주기라도 하냐?”  


아빠의 유일한 형제인 고모네 식구와는 줄곧 한동네에서 함께 살았다.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고모네 식구와 함께한 기억이 빼곡하다. 고모 그리고 고모부, 그들의 자식인 아들 둘과 딸 셋. 나뿐만 아니라 나의 언니 오빠도 거의 한집처럼 고모네 집을 드나들며 살았다. 

호미를 바닥에 내리고 모자를 벗은 고모는 나에게 엄마가 어떤 지부터 묻는다. 조금 전까지 앙칼지고 억센 고모의 목소리에 잔잔한 슬픔이 묻어있다. 폐렴으로 한동안 고생을 하고 숨 쉬는 게 어려워 호흡기를 바꾸기까지 했는데, 요즘 상태는 괜찮다고 하니 고모가 늘 하는 얘기를 또 한다.  

“한 동네에서 얼굴 한번 안 붉히고 살았는데. 왜 그런 몹쓸 병에 걸렸는지 몰라.”  

한눈에 봐도 꼬장꼬장한 시누이와 싸울 수나 있었겠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를 친동생처럼 챙겼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라 고모의 말에 가만히 고개만 끄덕인다. 엄마 얘기가 끝나자마자 슬슬 며느리 욕을 시작하려는 고모의 이마 한가운데 주름이 좍좍 잡히기 시작한다. 엄마 얘기를 할 때 잠깐 눌러뒀던 고모의 독기가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다.  


할머니가 고모의 신랑 자리를 알아보면서 첫 번째 조건은 맏이가 아닌 사람이었단다. 그 이유는 하나뿐인 딸이 맏며느리로 들어가서 고생하는 걸 걱정해서가 아니라 할머니 말마따나 성격이 지랄 맞은 고모가 맏며느리 역할을 제대로 할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할머니의 마음에 꼭 들어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모부는 고모와 정반대라고 할 만큼 순했다. 늘 허허하며 웃고 나의 아빠와는 다르게 동네 아이들에게 잔소리 하나 안 하던 고모부는 편안하고 포근한 어른이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중에 고모부를 만나면 늘 반가웠다. 경운기에 짐이 아무리 많아도 고모부는 나 하나 앉을자리를 금세 만들어서 거기에 태워줬다. 아빠에겐 잘하지 않던 어리광도 고모부에게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모는 대체로 화가 잔뜩 묻은 말투로 누군가를 흉보거나 한탄조로 말했는데, 특히 고모부에게는 과하다 싶을 만큼 독기 어린 말을 쏟아냈다. 제대로 대거리를 할 법도 한데 고모부는 그러거나 말거나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거나 말을 삼키는 모습이었다. 그럴 때마다 어린 눈에도 고모부가 어쩐지 가엾었다. 독한 고모와 착한 고모부, 어린 눈엔 그렇게만 보였다. 

담배 농사를 짓던 고모부가 찌고 말린 담뱃잎을 쌈지에서 꺼내 종이에 둘둘 말아 입으로 가져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보던 그 얼굴도. 


작고 조용한 동네에 구급차 소리가 귀가 따갑게 울려 퍼졌다. 내 기억인지 아니면 들은 얘기에 기초해서 만들어낸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구급차에서 나오던 빨간 불빛이 우리 집 담벼락에 어른거리던 게 생각난다. 고모네 집에서 나오던 들것과 차 문을 서둘러 닫고 떠나던 구급차와 함께 점점 멀어지던 빨간 불빛. 

담배 농사로 번 목돈을 손에 쥐고 겨우내 노름판을 들락거리던 고모부와 그 뒤를 쫓아 애들을 손에 쥐고 시내를 누비던 고모. 고모의 딸이자 나의 사촌인 기자 언니는 집마다 돌면서 아빠가 있는지 확인하던 그때를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자기가 너무 안쓰럽다고 했다. 대문 안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던 그때의 기억. 뒤에는 엄마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섰고, 앞에는 아빠가 있을지도 모르는 노름판이 있던 그때를 얘기하며 기자언니는 몸서리를 쳤다. 때마다 반복되는 고모부의 노름 버릇을 보다 못한 고모는 약을 먹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고모는 그때부터 몸이 비쩍 말랐고 평생 가려움과 만성피로와 같은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지금 내 앞에서 보자기를 기우겠다고 실에 바늘을 꿰느라 애를 먹는 이 사람이, 뭐 하나 입에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투덜대는 이 노인이, 죽겠다고 약을 먹은 그때 그 사람과 같은 사람이라니. 그때 죽지 않고 살아 팔십이 넘는 생을 이어가고 있는 지금의 고모는 생이 만족스러운지 아니면 지겨운지 묻고 싶다. 고모는 시원스레 답을 해줄 수 있을까. 모르긴 해도 쓸데없는 걸 물어본다고 고모는 타박부터 하고 말을 시작할 거다.     


멀미도 심하고 먹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다면서도 언니와 나의 성화에 고모는 차에 올라탄다. 화사한 겉옷과 외출용 모자를 쓴 고모의 모습이 순하고 귀엽다. 본인은 집에 있겠다는 아빠를 고모를 핑계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투닥거리면서도 유일하게 남은 핏줄인 서로를  눈에 띄지 않게 아끼는 아빠와 고모다. 대놓고 드러내는 건 체질이 아닌 사람들. 식당까지 가는 중에 고모는 밭에서 자라는 것들을 보면서 종알종알 떠든다. 고모 입에서 이르게 심은 곡식들의 이름과 때를 맞춰 한 해 농사를 시작한 집과 풀이 수북하게 자라게끔 내버려 둔 게으른 농사를 짓는 집까지 하나씩 소환된다. 풀이 많은 밭은 아마 약을 안 치고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서 그럴 거라고 내가 아는 체를 했더니 약을 안치면 풀도 뽑으면 안 되는 거냐고 고모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온 김에 양은 냄비를 사야겠다는 고모와 함께 마트에 들렀다. 한참을 헤맨 끝에 매대의 맨 아래 칸에 크기별로 줄을 선 양은 냄비가 보인다. 쪼그려 앉아 크기별로 꺼내 보며 어떤 걸 살까 고민하던 고모가 한마디 한다. 

“어떨 땐 말이야. 내가 이 나이에 냄비는 사서 뭐 하나 이런 생각이 들어. 죽을 때 다 돼서 냄비는 사서 뭐 하냔 말이야.” 

고모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없어서 잠자코 듣고만 있다. 늙는다는 건 뭘까,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일지 모른 채로 자주 아프고 빠르게 늙은 몸으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가끔 좋은 것도 있을까. 

제일 작은 양은 냄비와 중간 크기의 양은 냄비를 보던 고모가 말을 잇는다.  

“두 개 살까? 아님 기왕 사는 거 세 개 살까?” 

조금 전까지 우울한 목소리로 냄비는 사서 뭐 하냐고 하다가 갑자기 냄비가 두세 개 사고 싶어지는 것, 이렇게 빠른 생각의 전환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늙은 건가 보다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 사고 싶으면 사도 되는데 세 개는 너무 많지 않을까 하고 답을 하니 고모가 또 그러는 거다. 

“이게 양은 냄비인데도 되게 얇게 만들지는 않아서 쓸만하겠어.”

늙으면 남의 말 따윈 가뿐하게 무시할 수 있고 무시해도 되는 배포가 생기는 것만은 분명하다. 고모는 옆에서 내가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이 양은 냄비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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