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독서>
난 항상 책을 찾는다. 주의가 산만해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고 카톡에 답장하느라 집중을 못 해서 그렇지 꼭 독서대에 펴놓고 본다. 자투리 시간에 책을 읽으면 마음이 놓인다. 생각해보면 난 작가들이 하는 얘기를 귀담아듣고 싶은 사람인 것 같다. 그러니 잠을 청할 때도 오디오북을 듣고, 운동할 때도 음악 대신 독서 팟캐스트를 듣겠지. 독서를 읽는다는 행위로 한정하면 난 결코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다. 어릴 때는 꽤 절절하게 읽어댔는데 지금은 의무감이 크다. 애초에 밤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코가 삐뚤어지게 읽던 시절이란 건 없었다. 쾌락 독서니, 지적 유희를 즐긴다는 말도 그냥 하는 말이구나 싶지 와닿지 않는 수사다. 내게 독서는 확실히 노력이고 어쩔 땐 버거운 노동이다. 잘 읽히면 너무 쉬운 걸 읽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에 시달리고, 어려워서 너무 안 읽히면 내 밑천이 드러나는 것 같아 초조해진다. 아무도 강요한 적 없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유는 책 읽기를 제외한 독서의 모든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취재만 안 하면 좋은 직업이고, 작가가 글 안 쓰면 가장 편한 직업인 것처럼 독서는 책 읽기만 빼고 다 재밌다. 책을 고르고 관련 기사를 읽고 잘 차려입고 가서 쇼핑하고 표지를 잘 보이게 인테리어로 쓰고 인스타그램에 책 관련 글귀를 올리고 불특정 다수에게 많이 읽은 척 떠들어대면 책 읽기를 제외한 독서의 즐거움을 실감할 수 있다. 이러니 몇 권 읽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독서광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가끔 내가 어디 가서 다독가인 척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자주 있다. 왜 그리 유난을 떠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독서는 혼자 하는 행위라서 티 나지 않는 게 정상인데, 독서 모임을 하고 책에 관한 글을 써대니 그렇게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당연하다. 솔직히 말하면 내 입으로 내가 책 진짜 좋아한다고 떠벌인다. '어제 밀란 쿤데라 책을 읽었는데 말이야.' 마치 정초부터 금연하겠다고 선언하는 애연가처럼 사실 내가 진짜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누가 얼마나 읽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피하고 비장한 각오로 읽고 있다고 답한다. 이런 허영이 없이 난 독서를 할 수 없는 종자다.
내가 독서를 통해 취하고 싶은 건 읽는 과정보다는 책 읽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다. 내가 책을 옆에 두고 사는 이유도 책에 가까운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매끄러운 책 표지를 만지면서 얼굴을 비비고 아양을 떤다. 나 좀 봐달라고 나 진짜 책을 사랑하는 것 좀 알아달라고 손을 번쩍 들고 사진도 찍고 말도 붙여본다.
<작가는 무엇인가>는 파리 리뷰(잡지사는 파리는커녕 뉴욕에 있다)에서 한 작가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인데, 여기서는 소문난 지식인이자 학자로 유명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인터뷰도 실려있다. 인터뷰어는 초짜 문학 기자인데 세계적인 작가 에코를 만난다는 생각에 잔뜩 움츠러든 모양이다. 인터뷰 장소가 에코의 서재였는지 기자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대뜸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에코 씨, 혹시 이 책들은 다 읽으신 건가요." 에코가 앉은 1인용 소파 뒤에는 아마도 그가 평생 모아 온 수없이 많은 책이 빽빽이 꽂혀있을 것이다. 에코는 예의 그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 같은 미소로 이렇게 답했다. "아 저 책들은 다 지난주에 읽은 겁니다. 곧 다른 책들로 교체될 거예요." 에코는 기자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조크를 날리고, 기자는 그제야 웃으면서 본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소문난 애서가요, 장서가(藏書家)인 에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다. 난 인터뷰를 읽으며 내가 바라는 이상형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돈이나 여자에 관해 떠드는 래퍼는 아니어도 책에 관해서라면 우사인 볼트급의 자신감과 여유를 가진 지식인. 이게 진짜 힙합이지.
요 모양이라서 책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난 어떻게든 말을 보탠다. 내가 아는 얼마 되지도 않는 상식선에서 기꺼이 아는 척을 한다. 읽지 않은 책도 주워들은 말은 있게 마련이다. 작가와 관련한 가십성 얘기로 흥을 돋운다. 가령 움베르토 에코의 경우에도 읽은 거라곤 산문집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는 방법>뿐이지만, 에코와 관련한 몇몇 일화는 알고 있다. 에코가 댄 브라운을 조롱한 일화라든지, 베를루스코니를 대놓고 씹었다는 타블로이드에나 실릴 법한 가십이다. 난 그의 대표작 <장미의 이름>의 줄거리도 모르지만, 장미의 이름이 지닌 명성에 관해서는 거들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독서의 한 부분이라고 철석같이 믿는다. 책을 향한 동경에서 비롯된 추근댐이니 귀엽지 않은가. 사랑해서 스토킹했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궤변이지만 아무렴 어떤가.
상태가 메롱일 땐 보통 책을 산다. 예전에는 울적할 때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표지만 예쁘면 다 데리고 왔다. 실내낚시터보다 괜찮은 놈을 낚을 확률이 희박했지만, 알록달록한 표지를 곁에 두면 기분이 나아졌다. 누가 곁에 다가오면 물어버릴 수도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울타리를 쌓고 스스로 가둔 셈이다. 난 문학으로 지금 이 시련을 이겨내고 있다고 주문을 걸면 진짜 작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책이 잘 읽힐 리는 없었다. 정신이 딴 데 있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한 페이지만 계속 펴놓고 딴생각에 골몰하고, 핸드폰으로 지난 사진들을 지우다가 시간을 다 보냈다. 독서대 뒤에 숨어서 노는 건 시험 전날에 했던 방 청소만큼 짜릿하다. 내가 쓰는 글이 신변잡기로 흐르는 것도 무의미의 축제에서 힘을 얻기 때문이다.
이렇게 독서의 주변부를 배회하다 보면 거실에 쌓인 책이 저를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그래도 책은 변심하지 않는다. 피시방처럼 요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영화처럼 한 번 졸면 다 지나가 버리지도 않는다. 독서대에 올려진 책은 내가 뭔 짓을 하든 늘 같은 페이지다. 가격도 알맞아서 가성비 최고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형질은 안 변한다. 책은 과묵하고 무뚝뚝하나 그게 오히려 미덕인 친구다. 한 번 잡으면 한 달 가까이 고스란히 날 지켜준다. 얼굴 평가는 좀 그렇지만 책은 생긴 것도 딱 내 스타일이다. 각진 턱은 게르만족처럼 강인해 보이고, 설탕 같은 아이패드처럼 수리비가 깨질 염려도 없다. 안 팔려서 절판해도 누군가의 냄비 받침으로 살 각오를 하고, 인테리어 소품으로 써도 될 만큼 있어 보이기도 한다.
파스칼은 불행의 근원을 한 가지로 정의했다. 조용히 혼자서 자신의 방에 머무를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혼자서 있을 수 있다는 건 혼자서도 혼자가 아닌 것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책 읽기는 엄연한 혼자여도 같이 있는 기분이 든다. 책 속 인물들은 대체로 다 말이 많고 분주하다. 그들과 함께 놀다 보면 외로움은커녕 정신만 산란하다. 외로움은 위장술이고 실은 이야기 속에 은거하며 꽤 바삐 논다. 그래서 가장 취약한 시간인 자정 무렵이나 피로에 시달리는 퇴근길과 주말 늘어진 아침에 독서는 혼자인 나와 놀아준다. 지난 2001년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50주년을 맞아서 저마다의 홀든 콜필드를 기리며 자신이 이 소설을 읽는 모습을 인증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샐린저가 만든 홀든 콜필드는 하나지만, 그들 각자의 홀든은 제각기 다 달랐다. 어떤 사람은 서점에 서서 홀든과 만났고, 어떤 이는 침대 맡에서 잠에 빠지기 전에 파수꾼으로 살았다. 이런 광경을 보고 있으면 책이 오직 읽는 것이 다라는 말을 믿기 힘들다.
독서는 사랑을 글로 배울 수 있게 도와준다. 중고서점을 가면 사랑에 관한 책들이 버글버글하다. 그놈에 알랭 드 보통, 기욤 뮈소는 어디서나 극성이다. 나는 왜 사랑했는지 사랑일지 물어보는 투의 제목은 그 자체로 힘을 가진다. 책 제목만으로 내게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도 책은 제목만으로 화두를 던진다. 책은 평소 낯익고 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을 붙잡고 새롭게 보려고 하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책은 뻔해 보이는 내 일상과 습관도 어쩌면 다 이유가 있지는 않은지 살펴준다. 애인처럼 아니 권태가 없다는 점에서 애인보다 더 한결같다.
결과와 목적만 따르던 삶에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봐 주는 건 책밖에 없다. 한번 생각해보아라. 못할 말 없는 친구 사이에서도 진지한 사랑 얘기는 어렵다. 오글거려서 눙치고 답이 없는 말처럼 느껴져서 시시하다. 괜히 그런 소리 했다가는 진지한 벌레라고 네가 갓 쓴 선비냐고 통박을 줄 것이다. 하지만 독서 안에서는 다르다. 독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문제시할 수 있는 특권이 있다. 그래서 독서 모임에 가면 평소 할 수 없는 얘기들을 불쑥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간의 오해와 달리 사랑을 글로 배우는 건 사랑 고수가 되기에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글로만 배우는 게 문제이다.
책은 새벽 두 시가 오면 낭만적인 말로 나를 구슬린다. 내 꽁꽁 언 발을 덥혀주고 등을 어루만져 준다. 새벽의 관능을 아는 녀석이다. 난 그래서 나가서 친구랑 수다를 떠는 것보다 독서를 더 좋아한다. 기분을 맞출 필요 없고 변덕스럽지도 않은 책이 더 풍요롭다. 각기 다른 이들이 모여 사는 사회생활은 직장으로 족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를 먹든지 심심풀이 책이나 읽는 게 내겐 더 사랑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