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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03. 2016

싱글맨의 정돈된 외로움

조르주 쇠라의 그림들과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작가의 작가론

영국 출신의 작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1904~1986)는 영국에서 태어났지만 20대의 대부분을 나치스가 휘몰아치는 베를린에서 보냈고, 30대 이후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했다그의 인생을 폭력적으로 요약하자면 그가 남긴 소설 그리고 동성애 인권운동 두 가지이다그의 대표작은 20대 시절에 쓴 베를린이여 안녕(1939)이지만내가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그의 자전적 소설 싱글맨(1964)이다.

싱글맨의 줄거리는 간단하다애인이 사고로 죽어 혼자가 된 50대 후반 남자의 하루 일과를 그리고 있다. 1962년 10케네디 정권의 미국은 카스트로 지배 하의 쿠바와 전쟁의 기운에 휩싸인다냉전의 시대쿠바를 포함한 구소련과 미국은 서로를 향한 핵미사일을 조준해 둔 채 팽팽한 긴장의 나날을 이어갔다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국제정세와 다르게 조지의 하루는 단순하다그의 무미건조한 일상엔 죽음의 기척이 그득하며외로움과 상실감은 덧없이 그를 옥죄어 온다시간이 흘러가는 초침의 움직임이 더디고 고통스럽다. 일과는 견딤이 없이 무심코 흘러가지 못하며그는 사회인으로서누군가의 친구로서욕망으로 발기하는 금수로서 기능해야 함에 비탄하다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출근 준비를 하며동료들과 먹는 점심시간에도 우리는 그와 비탄의 시간을 동행해야 한다죽어가는 육신은 그를 더 이상 일깨우지 못한다애인의 여자 친구였던 도리스의 죽어가는 육신을 보며 분노보다 동질감을 느끼는 나이. 19세 젊은 제자와 정신적 육체적 유희를 즐기고 싶지만 끝내 다가서지 못한 싱글맨은 죽음 주위를 배회한다.

싱글맨은 그의 대표작 베를린이여 안녕과는 다르게 미 캘리포니아에서 환갑을 넘어 쓴 작품이다작품의 배경이 1962년이라는 점, 주인공 조지의 나이가 58세인 점그가 게이인 점무료한 하루의 속내를 들춰내는 점 등등 여러모로 그의 노년이 이 소설에 환영처럼 투영되었음을 믿게 한다그런 의미에서 원작 영화는 내게 느낌을 주지 못 했다. 콜린 퍼스가 조지로 분하고그 유명한 톰 포드가 연출을 맡은 영화 싱글맨은 한 유미 주의자의 강박에 의한 소품 정도로 보였다톰 포드는 패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남자 디자이너 중 한 명이지만, 영화감독으로서 이 작품을 연출하는 방향에는 의문부호를 남겼다원작이 황폐하게 다져놓은 궁색한 노년이 아닌슈트를 입고 세상을 조롱하는 섹시남의 불평 정도로밖에 느껴지지 못했다. 하지만 19살 제자와 맨몸으로 바닷속에서 욕정의 몸짓과 대화를 나누는 곳엔 명멸의 교차를 통한 삶과 죽음의 빈틈을 매우는 인상적인 연출력을 보이기도 했다영화는 깔끔하게 재단된 톰 포드의 슈트처럼 반듯하지만심연의 어둠을 비추기엔 현실의 질감이 만져지지 않는다시든 육체에 발기된 남근젊은 청년과 게이라는 정체성이 주는 혼란을 영화는 애써 무시한다.

소설 싱글맨에는 게이 문학이 가진 특유의 억지 밝음이 없다현실을 비틀어 성적 환락이 주는 과도한 미적 치장을 배제하고오직 개인의 삶 속 어두운 곳만 들여다본다시대의 사명이념의 공존도덕적 위세를 모두 외면한 그의 내면은 죽음과 사랑의 이해관계를 적확하게 뚫어낸다때론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며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매일의 의식 속에 삶의 비밀이 숨어있는 법이라고 속삭인다. 그런 맥락에서 영화 싱글맨을 보며 조르주 쇠라의 그림이 떠올랐다영화 싱글맨의 이미지와 고독한 남자 소설 속 조지의 모습이 마치 쇠라의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에서 느껴지는 정돈된 색상의 사용 안의 일종의 고독 같은 것들과 같은 괴를 공유하고 있는 듯 느껴졌다후기 인상파의 특징인 화려한 색감보색의 활용을 통한 깔끔한 이미지 재단법 역시 이 고독과 공허함을 돕는다쇠라는 색을 분리할수록 명도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색이 숨 쉴 공간을 의도적으로 그림 안에 넣었다일종의 수학적 정밀함으로 그림을 배치한 셈이다쇠라는 인상파의 특징인 즉흥적인 붓질이 아닌정교하게 픽셀을 찍어내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다그림 속의 여인과 사람들은 평온한 일생을 보내는 듯하지만이내 무심하다그들은 서소를 마주하고 있지만표정엔 생기가 결여되어 있다모더니즘의 태동기에서 그들은 도시의 고독을 발견했다이셔우드와 톰 포드는 소설과 영화에서 이 분위기를 공유했다남에게 표출하지 못한 일상에 갇힌 그들은 죽음 외에 그 무엇도 표출하지 못한다냉소와 번민이 가득한 그들의 일상은 그림 안에 갇힌 색처럼 화려하지만 이내 움츠러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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