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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12. 2017

수다, 그 이상의 가치

꿈보다 해몽 A Matter of Interpretation , 2014

이야기의 기원, 브라이언 보이드 저 / 휴머니스트

내게 이야기는 무엇일까. 난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근사한 이야기를 위해 조금의 과장을 섞어 감칠맛 나는 수다를 떤다. 커피가 좋은 이유는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을 들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후루룩 불어 마시며 잠깐 뜸을 들이다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길을 걷다. 문득 공원에서, 건조한 사무실에서조차 옆자리 직원의 옆구리를 찔러 막간에 대화를 나눈다. 퇴근하며 듣는 라디오 속 사연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자기 전 블로그에 적어내는 몇몇 문장이 날 숙면으로 이끈다. 하지만 이야기가 내게 주는 힘에 비해, 이야기의 제조과정 그리고 연역演繹에 이르기까지 거쳐 오는 심상들에 대해서는 늘 무관심해왔다. 무작정 펜을 들고 적기만 바빴지 어떤 연유로 내게 그 이야기가 도착했는지 알 길이 없다. 난 왜 이야기에 끌리고, 그걸 들으면 즉각적으로 눈이 커지면서 달려들게 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한 적이 없다.

어제 문고를 갔다가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이란 책을 사서 나와, 근처 카페에서 반 정도 읽었다. 약속시간 전 시간이 남아 읽기 시작했지만, 어렵지 않은 문장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에 대한 애정고백은 공감력이 높았다. 이야기란 것이 창세기부터 인간 생존의 필수요소였다는 논지로 시작된 책의 내용은 다윈의 <종의 기원>까지 소환한 후에야 그 기원을 입증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스토리텔링의 기술이 점점 더 입체적으로 발전하는 것과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의 일맥상통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스토리텔링 능력(걸핏하면 상대에게 무언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픈 마음)은 과연 어디에서 온 걸까. 예술이란 게 결국엔 인간 생존의 안정과 함께 찾아온 잉여라는 평가를 인정한다면 이야기란 놀이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텔링(예술)은 인간이 생존의 조건을 배워나가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설명한다. 정교하게 직조된 하나의 플롯은 우리의 삶을 위한 길잡이로 작동하고, 우리는 스토리를 만들어 현실세계의 번뇌가 결국엔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며 다독인다. 근사한 플롯이 이야기를 조화롭게 만들 듯 그 이야기가 곧 인간이 생존의 이유를 찾는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꿈보다 해몽 A Matter of Interpretation , 2014

어릴 적 방 안에서 이솝우화를 읽으며 현실세계의 선악을 배우고, 좀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잡아내기 위해 엄마를 졸라 어린이 세계문학전집을 사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었다. 소설과 영화를 천착하며 보낸 학창시절을 지나 이제 퇴근하면 개봉영화와 신간소설에 목을 매는 나 같은 남자에게 ‘이야기는 곧 진화’라는 말은 어쩌면 가장 안락한 자기변명쯤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아직도 내 곁에는 소설이란 게 현실세계를 도피하는 하나의 도구쯤으로 치부하는 친구들이 수두룩하다. 동네 책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은 늘 자기계발서이고, 문학은 뒷방 노인신세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야기가 곧 진화라면, 점점 더 이미지의 자극으로만 치닫는 영화라는 매체의 단순함은 곧 우리 진화의 역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마치 담배가 주는 위로를 생각하며 금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합리화처럼, 이야기를 무조건적으로 포용하는 저자의 시각은 소설을 좋아하는 자의 자기변명이 일정부분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놓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힘을 빌려 하루를 버텨나가는 불쌍한 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광국 감독의 <꿈보다 해몽>(A Matter of Interpretation, 2014)은 흥미로운 이야기에 대한 영화다. 이광국 감독의 전작 <로맨스 조>를 통해 이야기에 대한 감독의 사랑이 빚어낸 애정표현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창작에 대한 흥미로운 작법을 보여준다. 이야기를 하는 정서, 이야기가 인물을 구원하는 광경이 이야기보다 중요한 영화랄까. 그것이 꿈이든 거짓말이든 비단 보잘 것 없는 어제의 내 일상이든 누군가에게 들려줌으로 해서 영화 속 캐릭터들은 위로받는다. 이야기를 하는 행위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한 화면에 넣고 그들이 주런주런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에서 성스러운 기운마저 감돈다.

영화의 시작은 연극공연인데 관객이 한 명도 없다. 여주인공은 무대에서 말한다. 도대체 듣는 사람이 없는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왜 우린 듣는 사람도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고. 아무도 그것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리고 무대를 뛰쳐나가 낙산공원으로 간 여배우는 거기서 해몽을 잘하는 형사를 만나 꿈 얘기를 한다. 꿈속에선 그녀가 자살을 하려다가 만난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있고, 해몽은 곧 그녀가 최근 헤어진 남자친구와의 추억으로 얽힌다. 남자친구는 그녀처럼 연극을 하다가 돈이 없어 그녀에게 차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와 같은 꿈속에서 행동하며 아직은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을 건다.
꿈보다 해몽 A Matter of Interpretation , 2014

<꿈보다 해몽> 속 사람들은 자신의 꿈과 과거 그리고 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한다. 현실감이 현저히 떨어져보이는 영화 속 세 명의 인물들은 마치 고전적 화법으로 만든 문학적 실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원에서, 차 트렁크 앞에서, 동네 놀이터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현실세계의 속된 이야기를 벗어내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자세를 고쳐 잡고 대책 없는 헤피엔딩을 꿈꾼다. 결국 현실의 무게를 이길 힘이 없어 이야기에 몰입하는 엘리스가 된 기분이다. 영화는 묻는다. 관객 없이 연극을 하는 극단의 사람들과 꿈을 포기하고 회사를 다니는 남자, 능력은 없지만 해몽은 할 줄 아는 형사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이 된 대학로에서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삶을 살고있는 젊은 예술인들까지 과연 의미가 있는 거냐고. 이야기가 아직도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느냐고. 감독과 배우들이 만든 이 절절한 질문이 날 뭉클한 마음으로 이끌었다. 영화 <꿈보다 해몽>은 한 눈에 봐도 저예산과 짧은 촬영기간, 적은 스텝들의 노고가 모여 만들어진 작은 소품집처럼 보이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가 뚜렷해 시종일관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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