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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12. 2017

낯선 달이 뜨는 동네

소설 1F/B1(일층, 지하일층), 김중혁 저

누군가를 그리워할 때 난 몸의 따듯함을 생각한다. 그래서 내겐 몸이 멀어진다는 것은 이별과 같은 말이다. 육체의 실감이 멀어진다는 것은 명징한 이별의 성질이다. 지난 이별에도 난 며칠 동안 몸을 앓았다. 상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병이 난 것도 아닌데 살 속이 쓰라렸다. 몸이 퀴퀴하니 모든 게 귀찮다. 회사에서 과장한테 신나게 깨져도 머리가 멍해져서 별로 느낌이 없다. 잔소리들이 정수리 언저리에서 윙윙거리다가 사라진다.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최대한 일상을 균형 있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청소도 하고, 빨래도 자주 한다. 퇴근을 해도 일정 시간 동안 걸었고, 30분씩은 헬스장에서 공장의 로봇처럼 덤벨을 들었다. 커피집에서 적당한 시간 책을 읽고, 몸이 아프지 않기 위해 피곤한 몸으로 들어와서 잠을 잤다.

낯선 동네, 어느 다리

잘 가지 않던 미술관도 갔다. 누군가의 사진전도 갔을 것이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대한 집중해보려고 했지만, 큰 감흥이 없다. 최근엔 날씨가 좋아 안 가본 길을 걸어보고 있다. 지하철 주변부의 길을 걷던 나는 지도상의 어느 지점을 부유하고 있다. 익숙한 동네에도 아직 새로운 길이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최근 자주 걷는 집 주변 지하 굴다리가 신경 쓰인다. 굴다리를 넘어가면 여의도가 나온다. 이 굴다리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화려한 고담시티가 있고, 한쪽은 허름한 우리 동네가 있다. 이 어두운 굴다리는 지나갈 때마다 불쾌하다. 어둠은 때론 섬뜩하고, 습한 기운이 넘실댄다. 기침도 한번 해보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콧소리도 내보지만 불쾌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둠 안에서 얼굴이 언뜻언뜻 생각이 나는 걸 막을 방법은 없다. 평소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어둠과 적막이 낯설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굴다리를 건너는 이유는 가장 가까운 영화관과 책방이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중2병 소년처럼 매서운 표정을 하고 걷고 또 걷는다. 빌어먹을 똥폼도 이 얼어 죽을 추위를 막진 못하지만, 사거리 건널목에 우두커니 서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상쾌한 공기를 맛보았다. 어쩐지 영화관과 책방은 사람들이 가장 북적이는 화려한 공간에만 자리 잡고 있다. 그건 누군가가 찾아주어야 제 가치를 발휘하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관객과 독자 없는 책은 의미가 없는 법이니까. 맛있는 식당도 근사한 커피집도 모두 그것들을 위해 존재한다. 어두운 굴을 나와 환한 빛을 머금은 도시를 마주할 때 난 그 북적임이 싫다. 그래서 얼른 책 하나를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저

가장 즐거운 시간은 여전히 이야기를 통과하는 시간이다. 현실의 타협할 수 없었던 기억을 끔찍하게 몰입도가 높은 영화와 소설로 잊는다. 어린 시절 학교 앞 큰길에도 작은 책방이 있었다. 태양을 등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내 젖은 셔츠를 녹여주는 끝내주는 이야기가 있었다. 내 우울한 기분을 달래주는 그런 끝내주는 이야기. 당시엔 이문열 소설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읽었다. 지금은 한 번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하는 그런 책들을 읽었다. 오늘도 그런 이야기를 찾는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웃음을 줄 수 있는 이야기.


어제는 영화관을 나왔다가 집에 화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달 전쯤 선물 받은 작은 화분을 난 신경조차 쓰고 있지 않았다. 냉장고 위에 턱 하니 올려놓은 화분이 눈에 들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코앞에 두고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 상태가 되는 것이다.


지난주에 고른 책은 최근 팟캐스트에서 추천하는 책이었다. 얇은 책이 만 이천 원이나 하니 기분이 상했지만, 식물과 도시가 교차하는 표지가 맘에 들었다. 소설 제목이 <1F/B1>이다. 단편소설집이 스르륵 잘도 읽힌다. 삼백 페이지의 두께지만 크기가 작아 읽으면 읽을수록 아까운 마음이 든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이야기는 <바질>이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바질이란 게 뭔가 찾아봤더니 이태리 향신료란다. 소설은 이 바질이라는 씨앗이 이별을 한 연인을 이어주는 매개(Mediation)가 되어준다는 설정이다. 그와 헤어진 그녀가 네덜란드 출장 중에 산 바질의 씨앗은 그녀의 연립빌라 주변을 덤불로 뒤덮을 만큼 번식한다. 그녀는 어느 순간 그 덤불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헤어진 남자 친구는 그녀의 집을 떠돌다가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 덤불 속으로 뛰어든다.

작은 도시의 원룸촌에서 시작된 직장인들 간의 사랑을 동화 속의 이야기로 변주하는 솜씨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내 성격이 좀 답답해서인지는 몰라도 난 어떤 일이든지 직접적으로 들이대는 걸 참지 못한다. 꼭 중간에 다른 것들을 섞어 그 관계 안에서 은연중에 표현하는 감정을 좋아한다. 소설가 '김중혁'의 <1층/지하일층>의 이야기는 그런 도시의 매개체를 통해 진심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우회로를 용케도 잘 찾아내는 산책자를 만난 기분이다. 다시 바질로 돌아와서, 결국 두 연인은 덤불이라는 매개 속에서 다시금 만나게 된다. 왕자로 빙의한 남자는 그녀를 빨아먹는 촉수를 쳐내고 그녀를 호위한다. 무시무시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바질은 땅에 툭툭 떨어져 죽어버린다. 이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라니.

무라카미 하루키, 1Q84 1~3권

커피 집에서 잠시 책을 읽다가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다시 그 굴다리를 통해 집에 돌아가야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이번엔 길을 돌아 작은 고가도로를 건너기로 한다. 20분은 더 걸어야겠지. 고가를 건너다보니 이 다리 중간에 비상시를 대비해 밑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하나 보인다.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떠오른다. 가슴이 작고 섹시한 다리를 가진 그녀 아오마메가 생각난다. 하루키는 꼭 지 같은 남성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지만, 개인적으론 하루키가 묘사하는 여자도 좋다. 아오마메 역시 마찬가지다. 단정한 입매를 가진 이 여자는 약속 시간에 맞춰 가기 위해 급히 택시를 탔지만, 차가 너무 막히자 비상계단을 통해 고가도로를 빠져나가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가 닿은 다리 밑 세상엔 달이 두 개나 떡하니 하늘에 떠 있다.

아오마메를 사랑하는 덴고는 그 세계를 고양이 마을이라고 부른다. 덴고 마음속 어떤 매개가 다리 밑 세상을 고양이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사랑이란 게 원체 그렇게 서로의 입장에서 찾아내는 매개변수의 이야기다. 여의도 근방 다리를 건너며 나는 아오마메와 마주하는 기분으로 그 계단을 내려가 보았다. 이런 반가운 마음이라니. 일상을 조금 뒤틀어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기분이다.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 신성현 저

최근엔 하루키 소설을 좋아하는 한 오타쿠가 <하루키를 찾아가는 여행>(신성현 저)이라는 책을 출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린 시절부터 상상으로만 보았던 하루키의 공간들이 실제 한다는 가정 아래, 책은 질긴 추적 끝에 만들어졌다. 하루키의 팬들과 그의 수필, 인터뷰 내용들, 그의 어시스턴트의 의견을 종합하여 그의 소설 속 공간들을 찾아간다. 뭘 또 그렇게까지 눈으로 보고 싶어 안달이 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오늘 내가 1Q84의 계단을 걷다 보니 아오마메가 실제 보았던 그 고가도로의 비상계단이 문득 그리워졌다. 난 세상 어디서든지 이야기를 찾아 헤매고 있다. 이 도시엔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지만, 이야기를 통과하고 나면 다시 어둑한 굴다리가 내 눈앞에 다가온다. 그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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