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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Feb 24. 2023

현존하는 최고의 SF소설가 '테드 창'의 대표작 3

 최근 몇 년간 국내 SF소설은 전례 없는 판매고를 자랑했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20만 부를 훌쩍 넘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그치지 않고 천선란, 심너울, 이경희와 같은 뛰어난 신진 SF 작가가 등장하면서 앞으로의 기대를 더 높였다. 한국 출판계에서 이토록 SF소설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아마도 이 질문에 대다수가 '테드 창'이라는 답을 적을 것이다. 그만큼 테드 창은 누구나 인정하는 당대 최고의 SF 작가다. 'SF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휴고상 4회 수상을 비롯한 로커스상과 네뷸러상마저 석권할 정도로 압도적인 경력을 쌓았다. 테드 창은 SF소설 불모지로 불렸던 한국 시장에 처음으로 마니아층을 만든 작가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컨택트>가 성공을 거두며 화제를 모았다. 최근 테드 창은 뉴요커에 '챗GPT'에 관한 기고문을 올려 "인터넷 정보의 복사 열화판에 불과하다"며 인공지능 발전에 회의적인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오늘은 테드 창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작품들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알아보자.


[네 인생의 이야기 (Story of Your Life, 1998)]


 루이즈는 외계 괴생물체가 지구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언어학자로서 접촉한다. 두 마리의 외계 생명체의 이름을 헵타포드로 명명하고 그들이 쓰는 낯선 언어를 배운다. 이야기는 동시에 루이즈가 자기 딸에게 녹록지 않은 운명을 예견하는 편지를 써 내려가는 걸 지켜본다.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네가 가리키는 대상이 바로 루이즈의 딸이다. 그리고 결말에 다다르면 헵타포드와 만난 일이 딸의 운명과 뒤섞이면서 소설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띤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인간과 외계 생물체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세계관의 혼합을 그린 작품이다. 내용인즉슨 루이즈가 외계 언어를 배우면서 헵타포드의 세계관까지 흡수하는 일이 벌어진다. 인간이 지속한 선택을 바탕으로 인생을 일궈가는 것과 달리 헵타포드는 전 생애를 동시에 받아들이며 처음과 끝을 모두 알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른 판단 결과가 삶의 존엄성을 좌우한다고 믿지만, 언어가 다른 헵타포드는 애초부터 정해진 목적지와 경로를 고스란히 따르는 삶을 살아간다. 여기에서 물리학 이론인 '페르마의 최단 시간 원리'와 '사피어-워프 가설'이라고 불리는 언어결정론이 핵심 소재로 등장한다. 쉽게 말해서 외계 생물체와 인간은 언어가 달라 시간을 마주하는 세계관까지 판이한 것이다. 헵타포드의 언어가 시작과 함께 끝을 향한 최단 경로를 계산해 내는 목적론적 세계관이라며, 인간은 시간 흐름과 맞물리는 선형 구조 언어이기에 뉴턴역학을 따른다. 루이즈는 각고의 노력 끝에 헵타포드 언어를 습득하고 세계를 이전과 달리 인식한다.

 이제 헵타포드처럼 시간을 사는 루이즈는 비극적인 미래를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 과연 인간은 끝을 모두 알고도 살아갈 수 있을까. 인생의 스포일러, 대본처럼 대사를 읊고 연기하는 삶을 견뎌낼 수 있을까. 루이즈는 드높은 환희와 땅에 떨어지는 비극을 모두 알고도 계속 나아간다. 그 모든 게 삶의 총체이기에 피하려 들지 않는다. 위대한 선택이 없이도 인간은 충분히 위엄이 깃든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네 인생의 이야기]는 드니 빌뇌브가 영화 [Arrival](국내 개봉 명 '컨택트')로 만들면서 더 큰 유명세를 치렀다. 영화 역시 소설 못지않은 걸작이라서 원작과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 (Liking What You See: A Documentary, 2002)]


 소설은 "아름다움은 행복의 약속이다"("BEAUTY IS THE PROMISE OF HAPPINESS.")라는 스탕달의 문장을 발문으로 시작한다. 한 대학에서 타인을 볼 때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없게 만드는 칼리라는 기계의 사용을 의무화할지 여부를 두고 투표에 부친다. 이 과정에서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를 소설로 풀어냈다. 칼리는 스탕달의 말대로라면 행복의 약속을 저버리는 행동임이 분명하다. 심지어 뇌 일부를 훼손해서 미적 감각을 없애는 건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든 좋은 소설이 그렇듯이 사태가 간단하지만은 않다. 시각 정보로 외모 우열을 가려낼 수 없다면 우리는 진짜 그 사람을 볼 수 있을까.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진실이 있을까. 그렇다면 타고난 출신 성분과 재력 그리고 사회 배경과 얼굴을 비롯한 다른 육체 특성은 어떤가. 테드 창은 인스타그램과 가상현실이 범람하는 우리 사회가 곧 맞이할 미래의 고민을 일종의 사고 실험 형태로 제시한다.

 작가는 먼저 묻는다. 우리 사회가 왜 이리도 외모에 집착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외모에 따른 차별을 왜 교육으로 방지하지 못하는가. 이런 편견과 차별을 인간이 막아낼 수 없다면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는 게 왜 문제인가. 외모지상주의 문제가 그토록 심각하다면 모두를 평등하게 바라보게끔 하는 장치가 왜 비윤리적인가. 좀 더 나아가서 최근 텔레비전 광고와 드라마에서 신기술로 시청자의 소비욕을 제어하는 기술도 모두 막아야 할까. 그 화려하고 현란한 광고가 자아내는 눈속임을 이대로 둘 것인가. 법률과 사회시스템은 어디까지 개입해야만 할까. 날로 인지 영역 바깥을 공략하는 기술을 막아설 텐가. 작가는 학생, 기술자, 신경학자, 의사, 교수 등 사회 각계 입장을 들어보면서 다각도로 상황을 조망해 낸다.

 본 작품은 2003년도에 휴고상을 수상할 뻔했지만, 작가 본인 거부로 무산됐다. 이유인즉슨 편집자의 마감 압박으로 완성도가 떨어져서라고 하니 잘 알려지지 않았던 테드 창의 캐릭터가 어떤지 알 수 있었던 일대의 사건이었다. 테드 창은 다소 가벼운 분위기로 전개하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에서도 마지막에 다다르면 전망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경고한다. 외모지상주의가 예나 지금이나, 아니 예전보다 지금이 더 심각해 보이는 인류는 기술 도움 없이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을까. 아무런 통제 없이 움직이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신뢰할 수 있을까. 로봇이 인간보다 더 나은 윤리 의식을 가지면 또 그걸 막아설 텐가.


[지옥은 신의 부재 (Hell Is the Absence of God, 2001)]


 [지옥은 신의 부재]는 테드 창의 작품 중에서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3대 SF 문학상을 모두 차지한 바와 더불어 수많은 사후세계를 다룬 작품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야기 기본 설정은 신과 천국과 지옥이 신앙이나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실존한다는 설정 아래 시작한다. 천사가 강림하고 지옥이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에서 사는 인간은 어떨까.

 프랑스 수학자 파스칼은 변증법으로 신을 믿어야만 하는지 논한다. 이를 '파스칼의 내기'라고 하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제부터 깔아보자. 신이 없는데 신을 믿으면 잃을 건 없다. 하지만 신이 있고 그 신을 믿으면 영원히 행복할 것이다. 이 단순한 전제를 변증법으로 풀어보자. 신이 없고 신을 안 믿는다면 얻을 건 없다. 하지만 신이 있는데 신을 안 믿으면 지옥행이다. 신이 없거나 있을 때, 둘 중 아무리 봐도 신이 없다고 여겨지더라도 만에 하나 있다면 어쩌겠는가. 낭패가 따로 없다. 무신론자나 종교를 갖지 않는 사람에게도 이 변증법은 합리적인 추론이다. 무려 파스칼이 풀어낸 바 아닌가. 이 논리는 신을 믿고자 하는 이에게 큰 힘이 되어준다. 그런데 이성적으로 신을 믿기로 결정했다고 내 마음대로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여기서 갸우뚱해진다. [지옥은 신의 부재]는 비슷한 딜레마에 빠진 인간 닐이 주인공이다.

 닐은 다리에 장애를 갖고 살아간다. 닐은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었지만, 아내와 함께한 후로는 완전한 삶을 누린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아내를 잃고 절망에 빠진다. 더는 삶에 희망이 없어 천국에 간 아내를 따라 죽고자 한다. 하지만 그는 신앙이 없어서 천국에 갈 수가 없다. 죽어서도 안내를 만나지 못하니 죽을 수도 없다. 그는 평소 신이 부재한 지옥을 꺼리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억지로라도 신앙을 가져서 천국에 가야만 한다. 하지만 교회를 가고 아무리 기도해도 신앙이 생기지 않는다. 극악한 범죄자도 끝내 회개하고 천국에 가는데, 자기는 신의 재앙을 고스란히 견뎠는데도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천사의 빛을 보기 위해 성지를 순례하기로 한다.

 닐은 천국이 존재함을 알며, 천국에 가고 싶어 모든 노력을 다하지만 결국 신앙을 얻을 수 없었다. 신은 인간에 무심한 데다 도리어 자연재해에 가까운 사고를 일으키며 죄 없는 이의 목숨까지 앗아간다. 그런 신을 어찌 섬길 수 있을까. 그런 신의 뜻을 어찌 받아들인단 말인가. 아무리 수학적으로 자명한 명제를 세우고, 논리적으로 신앙을 믿어보려고 해도 신의 섭리를 어찌 이해한단 말인가. 그는 결국 천국의 빛을 보지만 지옥행 티켓을 받아들인다. 그게 고작 신의 뜻이라니 어쩌겠는가.


커버사진 : 영화 컨택트(Arrival) 스틸 사진


관련 영상: https://youtu.be/ifXoufUXh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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