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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29. 2023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ᅠ올해 들어서 긴 여행과 잦은 과식 그리고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을 빼먹으면서 몸이 확 망가졌다. 거울 앞에서 흰머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을 받았다. 잠시 꼬삐를 풀었더니 매끼 먹방을 찍듯 먹어댔다. 이제 불혹이 코앞이라 몸이 잘 돌아오지도 않는다. 내가 하도 스트레스를 받으니 여자친구도 신경이 쓰이는지 자꾸만 어디 배가 나왔냐며 날 안심시킨다. 사실 그렇다. 호들갑을 떨 정도로 나쁘진 않다. 내가 우려하는 건 공들여 잘 만들어온 루틴이 깨져서다. '이게 다 리추얼이 무너져서 그렇지 뭐.' 이럴 때일수록 내가 다시 기대고 의지할 곳도 루틴뿐이다. 다시 하루 일과를 잘 짜서 하나씩 지켜나가는 것밖에는 방도가 없다.


 ᅠ난 오래전에 ‘메이슨 커리’가 쓴 <리추얼>이라는 책을 읽고 십 년도 넘게 리추얼 타령을 해왔다. 책 읽는 티를 내기보다는 깨달은 바가 있어서다. 책에 따르면 리추얼(Ritual)의 어원적 뿌리는 성스럽게 행하는 종교의식을 뜻하는 라틴어 'ritus'에서 왔지만, 내 경우에는 의식이라고 하면 좀 거창하고 그냥 습관을 좀 개선해 보려는 시도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제발 좀 지키게 해달라고 바라고 염원하니까 무척 종교적이긴 하다. 이 책에서 보면 작가 '실비아 플라스'는 고작 열한 살부터 이십 년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시간표를 짜고 그걸 지키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1959년 일기에서 그는 "이제부터 이런 시간표가 가능한지 실험해보려고 한다. 자명종을 7시 30분에 맞춘 다음 피곤하든 않든 간에 무조건 그 시간에 일어난다. 8시 30분까지 아침 식사와 집 안 청소를 끝낸다. 9시가 되기 전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9라는 숫자의 저주를 떨쳐낸다"라고 썼다. 작가의 비극적인 삶을 연상케 하는 무서운 주문이지만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면 책상 위에 늘 놓인 페트병 생수를 세 모금 마신다. 지하철에서 줄 서면 잠시나마 케겔 운동을 하고, 점심시간이 와도 흥분을 가라앉히고ᅠ 식판에 밥은 쥐꼬리만큼 푸고 국은 외면한다. 반면에 고기반찬은 어떻게든 두 칸 이상 담아서 단백질량을 늘리는 사소한 습관이 있다. 꽤 괜찮은 리추얼이다. 다만, 에스프레소를 시킬 때 꼭 백설탕ᅠ한 봉지를 넣어 먹고, 사무실에서 나도 모르게 집어먹는 초콜릿 두 조각과ᅠ충분히 걸어걸 수 있음에도 운전대를 잡으려고 하는 나쁜 습관도 빼놓을 수 없다. 외출하고 다녀오면 뒤집어서 벗는 양말이나 아무 데나 던져 놓은 외투도 내가 버리고픈 리추얼이다. 이렇게 시간표를 만들어서 일상을 점검해 보면 뺄 것과 담을 것이 확연히 나뉜다. 아마도 내가 리추얼을 통해 얻으려는 건 건강한 몸일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사는데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고 얘기하셨지만, 내 경우에는 우선 몸을 잘 가꿔야 정신도 차릴 수 있다고 믿는 유물론자에 가깝다. 우선 거울 앞에서 당당해야 모든 게 잘 풀린다고 믿는 외모지상주의자인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난 좋은 습관으로 몸에 공을 들이는 게 하루를 사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ᅠ 리추얼은 혼자서 하기보다는 열심히 다른 사람에게 떠들고 다니는 게 지속가능성이 높다. 리추얼은 잘 만들어놓고도 작심삼일 신세인 경우가 많은데, 그게 보는 눈이 없어서다. 어느 자리를 가든 이런저런 습관이 있다고 떠벌여야 한다. 내가 안 지키면 만 원이라도 준다고 호언장담을 해야 효과가 더 커진다. 오만 원을 내밀기에는 어기면 사임당 뵐 낯이 안 서니 딱 만원 정도로 한정하자. 나도 보궐 선거에 나간 의원처럼 다수의 공약집을 읊고 다녀서 내 주변 사람들은 내 리추얼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언젠가 회사 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는데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러 온 동료에게 딱 들켰다. 동료는 내가 에스프레소에 설탕 두 조각을 넣는 걸 보고 벌금을 고지한 것이다. '너 설탕 안 타 먹는다고 지난번에 그러지 않았냐. 빨리 카페로 부쳐.' 느닷없는 수금에 당황한ᅠ 난 아직 덜 녹은 설탕을 빼내며 겸연쩍게 웃었다. '딱 걸렸네.' 그러니까 리추얼은ᅠ 금연 캠페인처럼 세상의 방해를 자처하면서 나를 지켜내는 의식이다.


ᅠ 비슷한 원리로 늘 붙어있는 여자친구나 가족들에게 리추얼에 관해 협조를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회사에서도 이제 커피믹스 안 마신다고 노래를 부르고, 매일 보는 경비아저씨에게도 이제 계단만 쓸 거니 승강기 비용은 안 내겠다고 외치는 거다. 난 어려서부터 조선의 사림들이 그토록 따랐던 신독(愼獨)이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그게 마치 사나이의 길처럼 고독하고 과묵해 보여서 멋졌다. 근데 ᅠ홀로 있을 때도 삼갈 수 있어야 한다는 고귀한 덕목은 나처럼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유혹에 소나타에 불과하다. 내가 더 좋아하는 원리는 뉴턴이 얘기한 관성의 법칙이다. 제1 다이어트 운동 법칙에 따르면 타인의 시선이 작용하지 않는 한, 사람은 계속 그 상태로 지낼 뿐이다. 그러니까 관성은 그 자체로 습관이다. 타인의 힘을 빌려서 내 의식을 바꿔내지 않으면 벗어나거나 뉘우치기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쌓아온 습관이 어디 쉽게 바뀌랴. 이제 다시는 라면 먹지 말아야지 수백 번 다짐해도 마트에 가면 신라면 건면 한 세트를 자연스럽게 집어 드는 게 바로 나다. '이건 기름에 튀기지 않았으니 라면으로 볼 수 없지 않을까.' 맛도 익숙한 맛이 가장 끌리듯 습관만큼 무서운 무의식의 산물도 없다. 그래도 희망을 품어보자면 나쁜 리추얼을 하나씩 소거하다 보면 나도 의식할 새 없이 어느 순간 바람직한 하루를 보내지 않을까 기대한다.


 ᅠ리추얼은 또 깜냥이 중요하다.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무리한 걸 습관화시키려고 들면 필패다. 작년 이맘때쯤엔 당시 한창 유행하던 리추얼인 '미라클 모닝'을 시도했다. 아무도 없는 이른 새벽 헬스장에서 다른 목적 없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잡념을 풀어내며 공복 러닝머신을 타는 내 모습을 기대하면서 부푼 기대를 걸었다. 그렇게 미라클 1일 차가 왔다. 난 졸린 눈을 비비고 죽상을 한 채 일어나서 아침 6시에 헬스장에 도착했다. 무슨 미라클이 그렇게 피곤한지 그날 하루를 다 망쳤다. 분명히 전날 일찍 잠들었는데도 종일 너무 피곤해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퇴근하고도 뭘 못하고 바로 집에 가서 침대에 몸져누웠다. 며칠을 더 시도해 봤지만, 도무지 시차 적응이 되질 않았다. 나만 유럽 시간으로 사는 기분이었다. 리추얼이고 뭐고 출근 버스에서 내릴 때 현기증이 나서 혼났다. 잠이 부족하니 헬스장에서도 내 근육은 시무룩했다. 하루 8시간은 자야지 근육이 잘 발달한다는 보디빌더 강경원 선생님의 말이 사실이었나 보다. 우리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이야기 중에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이 있는데, 다 늙어서 철이 들 수는 없다는 말인지도 모르다. 비슷한 속담에 ‘철들자 망령이다’라는 말도 있으니까. 난 아직 죽을 때가 되진 않았는지 보름도 지나기 전에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다시 원래 기상시간으로 되돌아왔다. '그래, 미라클은 미라클일 뿐이다. 기적이 유행 따라 막 일어나면 기적이 기적이 아니겠지.' 리추얼도 분수에 맞게 시도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미라클 모닝 대신 미라클 점심을 시도했다. 늘어난 뱃살 때문에 고생하는 동료와 점심 먹고 딱 30분만 공원을 걷기로 했다.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을지는 모르겠지만, 벌레 입장이라면 일찍 일어났다가 피 보기 십상이다. 그냥 몸이 나른할 때 열량 소비라도 하는 게 정신 건강에 유리하다.
 

 최근 수년째 새 널리 퍼지고 있는 리추얼은 단순한 자기 계발로만 보긴 어렵다. 요즘 세대는 먹고사는 문제와 더불어서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가꾸는 데 공을 들이기에 나타나는 사회 현상이다. 리추얼을 통해서 뭐든 상관없으니 내가 고유하다는 기쁨을 얻는 게 포인트다. SNS에 '#미라클모닝' '#리추얼'로 검색하면 무수한 아침형 인간들이 일찍 일어난 새를 자처한다. 그뿐 아니라 러닝, 헬스, 식단 등 건강한 몸을 가꾸기 위한 습관형 피드가 즐비하다. 이들은 자신이 가꾼 습관을 온라인에 인증하면서 남과 다른 나를 시위한다. 엇비슷한 사람이 모여 사는 대도시에서 고유한 이야기를 만든다는 기쁨이 그들의 아침잠을 쫓는 걸까. '부지런들 하셔.' 단순히 일찍 일어난다는 행위보다도 자신의 개성이 잘 묻어날 수 있도록 취향 하나를 첨가시킨다. 나 역시도 잘 만든 리추얼 목록을 떠벌이면서 남다른 기분을 느끼며 산다. 사소한 습관의 개선에 불과하지만 그런 작은 성공담이 모여서 결국엔 삶을 주도하는 기분을 움켜쥔 달까. 이처럼 리추얼은 코로나다 재택근무다 해서 축 처지기 쉬운 방구석 세대에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쥐여주는 문화 현상으로 자리매김했다.


ᅠ 일상에 취향이 묻어나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정량의 글을 쓰는 리추얼로 유명하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러닝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든다. '하루키 라이프'는 에세이 판매고가 증명하듯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난 이 속된 대도시에서 저만의 고유한 리듬을 만들며 사는 하루키야말로 혼자 놀기 '리추얼'의 대표 사례다. 하루키의 가장 큰 특징은 그의 삶과 그가 행하는 예술이 모두ᅠ 취향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하루키는 러닝, 음악, 독서, 글쓰기, 위스키, 심심한 요리, 여행 혹은 이주를 바탕으로 한 루틴을 통해 문화와 교양이 어우러진 리추얼을 만들어낸다. 이에 그치지 않고 이 모든 취향의 여파를 자신의 소설에 녹여내면서 허구의 인물과 작가 자신이 포개어지게끔 만들었다. 수도승 같은 하루키의 일상을 좋아하는 팬은 그의 책을 읽으면서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되는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 내가 하루키를 가장 신기하게 여기는 건, 그 모든 리추얼을 혼자 하는 것 같은데 조금도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취향과 삶이 물아일체 된 경지가 주는 충만함이 아닐까 미루어 추측해 본다. 


 ᅠ이동진 작가의 책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에서 행복에 관한 흥미로운 구절을 남겼다. "삶을 이루는 것 중 상당수는 사실 습관이고, 습관이 행복 한 사람이 행복한 것이다." 이처럼 리추얼은 습관이 곧 자기 자신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격언까지 소환한다. 실제 이동진 작가는 유별난 다독가로 욕조에서 책을 일곱 시간 넘게 읽기도 하는 유명하다. 또한, 그는 자신이 머무는 공간에 책을 놓아두고 독서를 즐긴다고 한다. 욕조는 물론이고 변기 옆, 운전대 옆, 작업실 책상 서랍, 식탁 귀퉁이, 거실 소파 위에 ᅠ책을 두고 독서를 일상 구간에 편재하게끔 만든 것이다. 그는 이런 습관성 독서를 자신의 책과 방송에서 자세히 들려준 바 있다. 이동진 작가는 불특정 다수에게 다 알려진 만큼ᅠ 공공연하게 자신의 독서 습관을 모두 다 알아버렸으니 모르긴 몰라도 ᅠ이제 어디를 독서를 해야 할 것이다. 단 백 원도 걸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리추얼을 책으로 남기고 독자들과 내기를 벌인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동진 작가가 집에서 폰을 붙들고 쇼츠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며 잠을 청하는 걸 상상할 수는 없다.


 ᅠ난 리추얼 대선배인 이동진과 하루키까지는 아니어도 올해 기필코 원고지 천 매 짜리 원고를 만들어서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런 빅 이벤트는 잘 일어나지 않을뿐더러, 일어나도 일회성에 불과하다. 순간적인 환희는 크나 결코 지속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오히려 작고 소소하더라도 일상에 습관을 잘 들이는 게 행복에 더 가깝다. 하루 대부분을 할애하는 직장이나 집에서 리추얼의 성공 경험이 잦다면 행복에 조금 더 다가갈 것이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 리추얼을 가장 방해하는 건 손바닥만 한 폰이다. 나뿐 아니라 요즘 세대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뗄 수 없는 뉴미디어 시대를 산다. 폰을 열면 곳곳에 다채로운 자극과 유혹이 산재해서 도무지 고요해지기가 어렵다. 나도 침대맡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에서 헤엄을 치다가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침 지하철에서도 책을 읽기보다는 유튜브를 켜고, 퇴근하고 카페에 들러도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시끌벅적할수록 고유한 나를 드러내고 싶다는 바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오직 나 하나만으로 오롯한 순간을 염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마트폰은 힙스터를 만들 수 있는지는 몰라도 리추얼과는 척 진 ᅠ몰취향의 냄새를 풍긴다. 스마트폰을 들고 고개를 파묻는 순간 나만의 표정과 제스처가 사라지는 기분은 혼자만의 착각일까. 그래서 난 ᅠ인스타그램을 깔았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유튜브 없이 살아보려고 사이트 차단까지 해놨지만 여전히ᅠ 놓여나진 못했다. 롤러코스터의 노래처럼 습관이란 건 참 무서운 거라서 자꾸만 앱을 재설치하고 차단 목록을 풀면서까지 리추얼의 난맥상을 겪는 중이다. 최근에는 유명한 게이머가 하는 스타크래프트 게임 방송에 빠졌는데, 피시방 간지가 어언 십 년은 된 나도 ᅠ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간첩이 접선하듯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가서 방송을 본다. 이건 내가 원하는 리추얼이 아닌데 불가항력으로 이끌린다. 이런 걸 보면 '길티 플레저'가 리추얼이 되면 놓여나기가 쉽지 않다. 다들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나? 스마트폰은 리추얼의 영원한 난제임이 분명하다.


ᅠ 내 주위에는 의도치 않은 리추얼로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다. 내 작은 삼촌은 명절 때 고스톱을 좀 치다가 기원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바둑에 미쳐버린 사람이다. 바둑은 그 중독성에 비해 왠지 이미지가 신선처럼 고고해 보여서 경각심을 잘 갖진 않지만 중독성이 대단한 스포츠다. 삼촌은ᅠ 심심할 때마다 기원에 나가서 바둑 기보를 공부하고 복덕방 김 영감에게 훈수를 받으면서 제 삶을 놓아버렸다. 내기 바둑을 두다가 바둑판에 인생을 내던진 꼴이었다. 1980년대 초, 세상이 흉흉하던 시절 당시로서는 드물게 서울 사 년제 영문학과를 나온 우리 삼촌이 한순간에 '장그래'가 되어버렸다. 장그래는 나중에 취업이라도 잘했지, 운동권 학생들은 혁명이라는 대업이라도 이뤘지 우리 삼촌은 바둑에 인생을 걸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가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바둑알처럼 되기까지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 공부 잘하는 청년이 그 딱딱한 바둑판으로 투신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기원에서 삶을 종 칠 줄 누가 알 수 있었을까. 삼촌은 기꺼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완생을 점차 미생으로 바꿔냈고, 저녁 식사는 기원에서 끓여주는 라면으로 때우면서 건강까지 해쳤다. 백화점처럼 창문 하나 없는 기원에는 삼촌처럼 바둑과 동고동락하는 이들이 가득했고, 삼촌은 이창호 9단의 바둑 기보를 복기하며 그 몇 평 되지도 않는 공간으로 인생을 축소시켰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삼촌은 바둑판에서 '갈라 치기'에 능한 선수였지만, 그 묘수가 생계에는 어림도 없는 잡기였음이 탄로 난 것이다. 난 요즘도 간혹 삼촌을 만날 때마다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어리둥절해하는 느낌을 받는다. '삼촌 얼굴이 안 좋은데, 지금이라도 헬스장 다녀보는 게 어때?'


ᅠ 이처럼 좋든 나쁘든 습관이 그 사람을 규정한다. 난 누군가의 하루를 보면 그의 삶 전체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프랙털처럼 하루가 모여 인생 전반을 형성한다고 믿고 산다. 내겐 습관이 아버지고 신이고 하나님이다. 내가 운동을 잘 빼먹지 않는 이유다. 오늘 하체 운동을 빼먹으면 내일 등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진도가 밀리면 초조해지고, 그렇다고 무리하면 부상 위험이 올라간다. 허리를 다치면 중요한 일을 해낼 수 없다. 그러니 리추얼이 깨지면 하루의 실패로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연쇄적인 실패의 프랙털이 내 삶에 새겨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의지력을 구매하는 서비스에 구미가 당긴다. 소정의 금액을 지불하고 다수의 멤버가 참여하는 온라인 인증 서비스나 전문가가 하는 헬스장 개인 교습이 인기가 많다. 의지력은 현찰로 하면 꽤 비싸지만 우리에게는 신용과 할부가 있지 않나. 돈 벌어서 뭐 하겠나, 나한테 투자해야지. 금연 캠페인이 보여주듯 뭘 하든 함께하는 것만큼 든든한 버팀목도 없다. 이러니 서울 시내에 커뮤니티 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것일 테지. 물론 우리 시대에는 유행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는 트렌드가 즐비하지만, 내 생각에 지속 가능성에 관해 끝없이 묻고 답하는 리추얼만큼은 한 철 반짝하고 사라질 것 같진 않다. 삶은 생각보다 길고 반복은 숙명과 같으니까. 별 수 없이ᅠ 나도 내일 아침부터 억지로라도 물 한 잔을 들이켜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사무실에 오르면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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