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r. 2.0
구내식당에 줄을 서고 오늘 점심 메뉴를 확인했다. 제육 덮밥에 깍두기 그리고 가지볶음이랑 미역국. 매주 같은 요일에 같은 메뉴가 나온다. 요일별 칫솔처럼 월요일은 제육, 화요일에는 임연수어, 수요일에는 김치찌개 냄새가 복도를 메운다. 식재료의 일관성이 중요한 단체 급식의 운명이다. 물론 지겹지만 어쩌겠는가, 싸고 간편한데. 사실 꽤 만족하며 살고 있다. 끼니마다 새롭고 다채로운 점심은 애초에 언감생심이다. 후딱 다녀올 수 있으니 피같이 아까운 점심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점에서 구내식당은 적절하다. 마음 같아서는 닭가슴살을 잔뜩 썰어 넣은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싶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그런 식단은 지속할 수 없다. 지속 가능성이 없는 식단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가장 손쉬운 선택지에서 최선의 길을 찾는 것이 내 방식이다.
구내식당은 메뉴는 미리 다 정해져 있어서 미덕이 있는 경우다. 스포일러를 포함 대사 하나하나까지 다 미리 알아도 재미있는 영화 <타짜>나 <범죄와의 전쟁> 같은 경우는 아니고, 무언가 골라야 한다는 선택의 부담이 없는 게 매력이다. 무언가를 골라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골치 아픈 일이니까. 오죽하면 술집 안주에 '아무거나'가 생겼을까. 무엇보다 기대하지 않으면 급식은 예상외로 맛이 있다. 내가 고르면 선택의 결과를 기대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불평할지언정 실망할 리 없다. 같이 온 선배는 나완 달리 지난주와 별다를 게 없다는 불평을 늘어놓았다. '또 제육이네. 영양사 양반까지 월요일이라고 부담을 팍팍 주는구먼.' '그러게요. 진짜 제육 지겹죠'라고 화답했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딴 거 먹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비싼 돈 주고 먹으면 되지 않냐고 묻고 싶었다. 주위를 쓱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비슷한 불평이 들려왔다. 스스로 자초한 메뉴 앞에서 매주 비슷한 불평을 하는 게 더 지겨운 일 아닐까. 그건 마치 지금 타짜에서 평경장이 왜 죽냐고 따지는 꼴이다. 고니와 정마담이 나누는 대사가 진부하다고 설왕설래하는 촌극이다. 하긴 그런 걸 다 따져서 뭐 하겠나. 배만 더 고프지. 지금 식당 줄에 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 함께 불평하고 있다는 유대감일 텐데. 그걸 잘 아는 나는 능숙한 사회인답게 질세라 호응했다. '아, 제육 냄새 진짜 지겹네요.’
어쩌면 매일 비슷하게 사는 직장인에게 가장 필요한 건 지겹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 자주 놀러 가던 오락실 문 앞에 입이 시커먼 똥개가 묶여 있었는데, 난 오락실에 갈 때마다 개집에 들러서 보름달 빵을 잘라줬다. 어느 순간부터 똥개는 내가 코빼기만 보여도 꼬리를 막 흔들면서 침을 질질 흘렸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하게 생긴 녀석이 나타나니 보름달 빵이 제 앞에 떨어질 거라는 걸 아는 눈치였다. '이게 바로 조건반사!' 장난기가 발동한 난 녀석에게 파블로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빵을 줄 듯 말 듯 놀리며 장난을 쳤다. 그럴 때마다 파블로프는 자지러지듯이 낑낑거렸다. 설마 안 주고 토끼면 어떡하냐는 듯이 절박하게 울부짖었다. 보름달 생크림 빵을 먹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난 녀석의 귀여움보다 그 조바심과 간절함을 똑똑히 기억한다. 어쩜 항상 저렇게 좋을까. 지겹지도 않나. 매일 같은 곳에서 같은 사람과 같은 간식을 먹고 심지어 똑같은 말로 귀여워해 주는데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혀를 내밀며 반기는 파블로프에게서 행복의 비밀을 엿볼 수 있었다. 내 눈에 녀석은 멍청해 보이긴 보단 반복을 지겨워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자로 보였다. 술자리에서 교수님이 지루한 소리만 늘어놔도 런닝맨 급 반응해 주면 자리 분위기가 사는 것처럼 태도 문제였다. 어느 날 어김없이 빵을 사서 파블로프를 보러 갔는데 개집과 줄만 남고 녀석이 도통 보이질 않았다. 그 이후로 녀석이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별말 없이 더는 보름달 빵을 사 먹지 않았다. 난 진즉에 그 빵이 지겨웠다. 파블로프가 사라진 슬픔보다 이제 더는 보름달 빵을 먹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더 기쁠 정도였다. 파블로프의 간식을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에서도 놓여났다. 동네에는 파블로프 외에도 똥개가 많았으니까. 난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빵을 사 먹었다. 어느 날은 카스텔라를 고르고 어느 날은 미니 호떡을 골랐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그마저도 사지 않았던 것 같다. 난 파블로프와 달리 빵이 지겨워졌다. 문방구에는 너무나 많은 불량식품이 있었다. 요즘도 난 삼립에서 나왔던 그 둥근 빵을 볼 때마다 파블로프의 축축한 혀가 떠오른다. 권태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환희의 물기가 내 혀에서도 배어 나온다. 혀를 있는 힘껏 내밀고 최선을 다해 내 다리를 핥던 녀석은 지루함 따위에 지지 않았다.
사내 식당은 자율배식이라서 단백질과 섬유질을 조금이라도 챙겨 먹기 위한 절묘한 손놀림이 필수적이다. 나는 내 차례가 다가오자 매직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실눈을 뜨고 단백질 반찬을 파악했다. 섬세한 반찬 이송을 위해 손을 풀었다. 아침부터 줄곧 허기가 져서 그런지 지나치게 들뜬 마음을 감추기 위해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혀에서 자꾸만 군침이 새어 나와서 입맛을 다셨다. 난 다리를 달달 떨면서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달큼한 쌀밥 냄새와 시뻘건 제육이 오감을 자극해 왔다. 지난주에도 먹었고 그 전주에도 먹었지만 어른들 말씀처럼 시장이 곧 반찬이다. 밥솥 앞에서 다시 한번 평정을 되찾고 주걱 끄트머리를 잡고서 소박하게 밥을 반 주걱 펐다. 한 번 더 풀까 고뇌하다가 가까스로 참고 주걱을 내려놓았다. 내 심란함을 눈치챘는지 옆에서 산더미처럼 쌀밥을 쌓던 선배가 놀리듯이 말했다. 애걔, 야 고거 먹고 오후에 일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두 숟갈밖에 안 돼 보이는데 어차피 너 회의만 들어가면 쿠크다스랑 커피 믹스 마시잖아. 그럴 거면 그냥 밥 먹는 게 이득 아냐.' 도발적인 도발이었지만 미소를 띤 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때가 아니었다.
나와는 달리 흰밥이 소복이 쌓인 선배 식판을 보면서 뜬금없이 작년 겨울을 떠올렸다. 주말에 늦잠을 자다 일어났는데 요사스러운 기분이 들어 커튼을 걷어보니 간밤에 내린 눈이 동네를 완전히 뒤덮었다. 예쁘기보다는 심각할 정도로 쌓여있었다. 뉴스에서는 백 년만의 폭설이라며 한치의 창의성도 없는 뻔한 소리를 늘어놨다. 아파트 단지와 인도까지 온통 눈으로 가득해서 냉골인 집보다 밖이 더 따듯해 보일 정도였다. 열심히 눈을 밀어내는 경비아저씨 이마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났다. 주섬주섬 어젯밤에 허물처럼 벗어 놓은 운동복과 점퍼를 걸쳤다. 뻗친 머리를 감추기 위해 나이키 모자를 쓰고 책가방을 챙겼다. 별생각 없이 문밖을 나섰는데 아파트 문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낮의 밑바닥이 백설기처럼 하얬다. 내 목적지는 근처 브런치 카페였지만 몇 걸음을 내딛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창가에서 볼 때는 눈 쌓인 풍경이 아늑해 보였는데,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쌓이니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그즈음 나는 누구나 별생각 없이 할 수 있는 일마저도 처리할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었다. 어렵사리 출퇴근만 하며 지내다 보니 집에 먹을 게 있을 리 없었다. 폭설 때문에 배달도 되지 않았고 라면 하나 없었다. 심지어 그 흔한 커피믹스도 하나 없었다. 전날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뱃속이 쓰라렸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패배감이 느껴졌다. 커튼을 치고 방을 캄캄하게 한 후에 왓챠를 틀고 드라마를 봤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다시 마트로 가기 위해 집 밖을 나섰다. 하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고심 끝에 생전 가본 적도 없는 이웃집 초인종을 눌렀다. 뭐라도 먹지 않으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문이 빼꼼히 열리더니 낯이 익은 아주머니가 무슨 일인가 나를 훑어봤다. 난 뻗친 머리를 하고 계면쩍은 표정을 지었다. '혹시 눈 때문에 밖을 못 나가서 그러는데요. 죄송하지만 먹을 것 좀 얻을 수 있을까요.' 나를 동네 똥개처럼 쳐다보시던 어머님은 알만하다는 듯이 날 쳐다보며 말했다. '총각이 밥을 못 잡쉈나 보네. 오늘 한 끼도 못 한 거요?' 라면이라도 얻어볼 심산이었지만 내 입에서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네 쌀 한 톨 못 먹었지 뭐예요.' 옆집 아주머니는 내 말을 듣더니 잠시 생각하고는 널찍한 자기 그릇에 밥을 잔뜩 퍼 주셨다. 난 얼떨결에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고 밥을 들고 들어와서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쌀이 떨어져서 그러는가 싶어 정말 밥솥에서 밥을 퍼주신 것이었다. 설마 하니 집에 반찬 하나 없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것이다. 쌀밥을 식탁에 올려놓고 고민하다가 냉장고에 덩그러니 하나 있는 고추장 통을 꺼냈다. 삼겹살 먹고 남은 인스턴트 고추장이 있었다. 기름이 껴서 허예졌다. 전자레인지로 녹여서 흰밥에 비벼 먹었다. 어찌나 맛있던지. 흰밥은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된 지금이나 나를 구해줬다.
밥을 펐으니 다음은 김치류다. 깍두기는 쪼금만 펐다. 짠 음식은 최대한 줄여 마땅하니까. 파김치나 오이소박이라면 내 자제력은 무너졌겠지만, 깍두기는 어감처럼 볼품이 없어서 참을만했다. 다음으로 멸치볶음과 매실장아찌가 있었지만, 한 젓가락씩만 담았다. 무엇보다 식판에 고기를 담을 공간을 충분히 남겨둬야 했다. 자투리를 대충대충 집으면서 곁눈으로는 주요리를 파악했다. 오늘의 주력 메뉴인 제육볶음은 짜고 지방이 많지만 괜찮은 단백질원이다. 붉은 제육에 천천히 다가서면서 난 고기가 줄어드는 양을 살폈다. 내 차례가 되기 전에 양이 모자라면 낭패니까. 넉넉하게 푸기 위해서는 어느 지점을 공략해야 하는지, 집게 모양은 어떤지까지 대충 알아놓아야 한다. 그렇게 사전 탐색을 마치자 이제 오직 고기만을 위한 시간이 찾아왔다. 복부에 힘을 주고 최대한 기민하면서도 무심하게 펐다. 조용하고 신속하게 만족할 만큼 푸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침착함을 발휘했다. 누가 봐도 '어머 쟤 좀 봐' 할 만큼은 아니었고, '이 사람 꽤 먹는구나!' 싶을 정도는 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뒷사람이 매의 눈으로 쳐다보며 빨리 가라고 재촉해도 아랑곳하지 않는 기개다. 초보 운전 스티커를 차 뒤에 붙이고 다니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된다. 난 도로 주행을 삼성역 앞 왕복 10차선 도로에서 했는데, 시험 시간이 6시 퇴근 무렵이라서 다 성난 얼굴로 내 차를 향해 클랙슨을 날렸다. 난 벌벌 떨면서 그 지옥과 같은 러시아워에서 살아남았다. 내가 노란색 도로 주행 차량이라는 걸 알고 마구잡이로 위협 운전을 해대는 무뢰한 앞에서 침착한 코너워크를 선보였다. 마치 임자 만났다는 듯이 구는 베테랑 운전자는 날 업신여겼지만, 절대 움츠러들지 않았다. 두 다리가 덜덜 떨리며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기어이 정신을 다잡았다. 엄마가 시험장에 가기 전에 손에 꼭 쥐여준 예식용 흰 장갑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 어찌어찌 주행 시험을 통과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뒤에서 뭐라고 하든 말든 중요한 절차를 모두 지켜냈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 옆자리 감독관은 아주 흡족해하며 90점을 판때기에 받아 적었다. 난 당시 잊을 수 없는 승리감에 취해서 오늘도 식판 가득 제육을 담고 집개를 내려놨다. 뒤에서 한참을 기다린 사람은 내 수북한 제육을 보며 감탄하는 눈치였다.
제육을 산더미처럼 펐으니 이제 남은 건 국이다. 아예 먹지 않기에는 된장국이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국물보다는 건더기 위주로 떴다. 짠 국은 아예 안 먹는 게 좋지만 목 넘김을 위해서 타협했다. 이 정도 타협도 없다면 자비도 없는 것이다. 식판을 들고 주위를 살피다가 구석 자리에 앉았다. 맛있게 드시라고 선배에게 인사를 건네고 무념무상 상태로 앞만 보며 밥을 먹었다. 좋아하는 시간이다. 음식이 내가 되고 내가 곧 음식으로까지 나아가는 물아일체의 순간이다. 식당 한쪽 구석에 달린 텔레비전에서 YTN 뉴스가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갤럽 리서치 설문조사 결과 현 정부 지지율은 삼 주째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난 시간 날 때마다 서촌 부근을 산책하는데, 내 기억에 갤럽 본사가 서촌 사직단 근처에 있었다. 작고 아담한 건물이지만 지대가 높이 솟아있어서 눈에 띄었다. 난 어릴 적에 통계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통계자료를 역학으로 분석해서 사회에서 일어나는 불가사의한 일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내놓고 싶었다. 갤럽은 그런 의미에서 온갖 세상일에 관해 알 수 있으니 내게 딱 맞는 직장이었다. 갤럽 사원증을 걸고 이 혼란한 세상을 조금이나마 단정케 할 수 있기를 바랐다. 고등학교 때 영화를 좀 줄이고 책상머리에 더 붙어 있었다면 지금 난 제육 대신 갤럽 구내식당 밥을 먹었을까.
밥 먹는 속도는 나이를 먹어도 좀체 느려지지 않는다. 씹는 둥 마는 둥 술술 잘도 넘어갔다. 뭐가 그리 급한지. 끼니때마다 잔뜩 허기가 지니 씹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졌다. 맛있는 걸 먹고살겠다는 의지는 없지만, 식욕은 매년 치솟고 있다. 양껏 먹고사는 건 포기했는데 대신 빨리 먹는 습관이 들었다. 허겁지겁 허기를 지우는 게 버릇이 됐다. 제육 상추쌈에 취해 한창 밥을 흡입하는데 골치 아픈 카톡이 왔다. '선밴데 내가 오늘 문서 보내려고 하는데, 혹시 자료 좀 바로 보내줄 수 있을까.' 점심시간의 여유를 조금이나마 더 이어가기 위해 1을 지우지 않고 마저 식사를 다 했다.
한때 회사 선배들을 무척 어려워했다. 지금은 선배고 뭐고 업무 시간 외에 전화하면 눈을 부라리지만 처음 입사했을 때는 회사 기강이 너무 세서 선배만 보면 잔뜩 위축됐다. 무엇보다 식사 거부권이 없었다. 선배가 밥을 먹자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야 했다. 밥이라도 편하게 먹자는 주위였던 나로서는 약속도 없이 불러내서는 같이 밥 먹으러 가자는 선배가 가장 싫었다. 그래서 아예 밥을 안 먹는 척하다가 식당에 사람이 다 빠지고 가서 조용히 먹고 오는 날이 많았다. 선배가 밥을 사줘도 밥은 속 편히 내 들숨과 날숨을 느끼면서 먹고 싶었다. 그렇게 조용조용한 식사를 하던 언젠가 그날도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평소 엄하기로 소문이 자자해서 피해 다녔던 선배가 내 앞에 앉았다. 그는 한창 밥을 잘 먹다가 내가 푼 깍두기를 보더니 잘 펐다고 칭찬했다. '이 양반 왜 또 시비야.' 대체 무슨 소린가 했더니, 내가 푼 깍두기가 국물이 흥건하고 윤기가 흐르는 게 맛나 보인다는 말이었다. 일이 너무 바빠서 미쳤나 싶었지만, 그는 진지하게 자기가 푼 깍두기를 보라면서 자조적인 말을 이어갔다. 그는 모놀로그라도 하는 것처럼 깍두기를 자기처럼 말라비틀어지게 푸면 밥맛이 떨어진다고 했다. 난 도무지 이해가 안 가서 한참을 벌건 깍두기 국물만 바라봤다. 그는 깍두기 얘기를 하다 말고 이런 말도 했다. ‘너처럼 밥을 맛있게 먹는 애는 본 적이 없다 내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놀라서 급히 자리를 떴는데, 며칠 후에 선배의 퇴사 소식을 들었다. 말은 자진 퇴사였지만 사실상 권고사직이었다. 그는 깍두기 사건이 있던 날 해고를 통보받은 상태였고, 세상 맛있게 숟가락으로 깍두기를 퍼먹는 날 보면서 요사스러운 말을 남긴 것이다. 난 그때 그의 속도 모르고 이런 말을 했다. ‘선배 제가 깍두기 좀 대신 퍼드릴까요.’ 세상이 마음대로 안 될 땐 밥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마도 선배는 그 흔한 깍두기 하나 맛있게 못 푸는 자신을 비관했을지도 모르겠다. 깍두기에 빗대 제 나약한 처지를 반추했을지도. 난 이 우스꽝스러운 기억을 깍두기 먹을 때마다 떠올린다. 이게 뭐라고 선배의 깍두기 타령을 잊지 못한다. 게걸스럽게 먹는 내 앞에서 죽상을 한 선배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평생 안 그러다가 최근에는 밥 먹고 낮잠을 때린다. 이게 다 넷플릭스 때문이다. 침대에서 드라마를 켜면 오기가 생겨서 시즌을 마쳐야 잠에 들 수 있었다. 늘 새벽에 자니 점점 더 오전 시간이 버거워졌다. 그러니 끼니가 번거롭고 어떨 때는 성가시기까지 했다. 매일 두 끼나 챙겨 먹어야 한다는 게 인생이 사사롭다는 증거처럼 여겨졌다. 세상에 중대하게 다룰 일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식판 위에 음식을 퍼야 살 수 있는 비루한 노릇이라니. 그냥 식사 대용 알약이 있어서 3초 만에 영양을 보충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사실 모든 생리현상이 다 이 모양이다. 글이 한창 잘 나올 때도 배가 아프면 흐름이 딱 끊겼다. 매일 밤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게 아까운데도 꼭 잠을 자야 하는 내 존재가 너무 번거롭다. 평일에 거의 혼자서 밥을 먹는 내게 저녁밥은 한숨 나오는 시간 낭비다. 어쩌면 선배의 한낱 깍두기 타령은 너는 대체 삶의 허무를 어떻게 견디냐는 질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점심을 먹고 소화라도 시킬 겸 산책을 하다가 친한 선배와 명상의 아름다움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늘 불면증에 시달리던 선배는 최근에 명상을 배우면서 가까스로 깊이 잔다고 했다. 고민이 사라지니 두통도 말끔해졌단다. 선배는 너도 해보라면서, 내가 생각이 많아 보이니 명상이 딱이라고 했다. 난 명상을 시도해 본 적도 없을뿐더러, 호기심조차 느끼지 못했다. 난 팔짱을 끼고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시면서 흘려듣고 넘겼는데, 그 이후로 선배는 명상 전도사가 되어 내게 한 번 해볼 것을 강요했다. 그땐 끄덕끄덕했으면서도 눈만 감으면 잠이 쏟아져서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명상이 잠과는 다르다는 말이었다. 잠은 오히려 꿈 때문에 생각이 바쁘고 부산스럽지만, 명상은 뭔가가 틈입할 새 없이 계속 비워진다고 했다. 난 가끔 꿈속에서 성난 동물이 쫓아오고 어떨 때는 동물과 격렬한 격투까지 벌이는 터라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삶이 무거워지기 전에 의미를 발라내고 텅 빈 머릿속을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되어보는 경험이다. 잡념을 휴지통에 쏟아버리고 나면 갈피 없이 뒤척이는 마음이 잠잠해질까. 오늘은 고작 50분 남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명상이라도 한 번 해볼까 했지만 제육의 포만감 때문인지 단 오 분 만에 잠에 들었다. 꿈이 없는 순돈 백 프로의 꿀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