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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24. 2023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Ver. 2.0

 헬스는 내 위기와 함께 찾아왔다. 죽은 것과 다름없는 걸어 다니는 송장 시절. 음매 하며 울지는 않았지만, 소처럼 과묵하게 일만 하던 시절. 막 취업하고 삶의 성취가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온 느낌. 그때 그 무렵 나는 내가 진정으로 뭘 하고 살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삶이 무료하고 시무룩했다. 한편으로는 평생 내가 원했던 일상이 지금이 아니냐며 자신을 스스로 다그치기도 했다. 어떻게 이룬 평화로운 일상인데 배부른 생각을 한다고 여겼다. 글도 잘 쓰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써도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보이질 않았다. 열심히 써도 누구나 좋아할 만한 글이 나오지 않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글을 쓴다는 게 어불성설로 느껴졌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에 난 방에 우두커니 서서 어질러진 이불과 널브러진 빨랫감 그리고 여기저기 흩어진 책을 보면서 그게 지금 내 인생이 아닌가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이 어떤 마음인지조차 가늠하지 못하는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건 마치 콘돔, 담뱃값, 속옷 등을 인위적으로 어질러 놓은 영국 미술가 '트레이시 에민'의 침대 작품처럼 삶을 방치하는 태도에 가까웠다. 어디로든 흘러가겠거니 하며 두 발짝 정도 뒤에 선 방조자의 마음이었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몸을 부딪쳐 대며 이렇게 끌려다니다가는 그냥 평범한 아무개로 사는 게 두려웠다. 여차저차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고 나면 미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다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들고 신나서 떠드는데도 나 혼자 텅 빈 방에 몰린 기분이었다. 아마 지금 내 여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면 전문가에게 상담받아 보라고 할 테지만, 난 이런 공허함을 고통이 아닌 분수에 넘치는 권태라고 단정했다. 나 스스로 징징거리지 말라고 다그치는 게 가장 편했다. 


 처음 내 문제가 심각하고 느낀 건 내가 쓴 글에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았을 때였다. 그건 자신감이 떨어졌다거나 글솜씨가 모자라니 더 연습해야 한다는 자의식이 아니었다. 글을 쓸 때마다 모든 문장이 피상적으로 보였다. 주변 친구는 내가 블로그 구독자도 많다면서 추켜세웠지만 좀처럼 믿음이 가질 않았다. 이런 글을 쓰다가는 결국 아무런 성취도 없이 그만두리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이렇게 우울감과 자기혐오가 뒤섞여서 회사 생활을 하니 그게 제대로 될 턱이 있을까.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관계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었다. 삶이 견딜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삶 전체에 만족도가 떨어지니 외모 자신감도 하락했다. 난 내가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워서 외출을 꺼렸다. 현관 거울 앞에 서서 이런저런 신경을 쓰고도 못생겨 보일까 봐 불안했다. 정확하게는 평범한 ''남자 1''로 살아가기가 싫었다. 내 감정과 성격이 평이하게 여겨졌고 볼품없는 육체의 너저분함이 옷 밖으로 삐져나올까 두려웠다. 이러니 늘 외출 전에 거울 앞에서 쇼하다가 약속 시간에 늦곤 했다. 옷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내게 엄마도 '지랄도 가지가지네. 쇼한다 쇼해'라고 외치며 내 쇼에 감탄했다. 머리를 이렇게 만지고 저렇게 만지다가 한 시간을 훌쩍 허비했다. 옷을 입었다 벗기를 반복하고 빡빡 깎은 머리에 손댈 데가 어디 있다고 포마드를 뭉쳤다 헝클어뜨리기를 반복하며 꼴값을 떨었다. 얼굴값이 저렴하니 꼴값으로 치르려는 심산이었지만 쉽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옷이 없다는 흔한 말의 참뜻을 실감했다. 옷이 없어도 옷값은 더 없었다. 옷은 옷장에 가득 걸려 있지만, 그건 입고 나갈 수 없는 천 쪼가리일 뿐이었다. 입고 나갈 수는 있겠지만, 입고 나갔다가는 그날 하루를 망칠 거적때기였다. 옷 따위로 하루를 망치는 내 모습이 싫었다. 


 거울 속 나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인상이 칙칙했다. 이렇게 외출에 힘겨웠으면서도 가끔 약속 장소에 나갈 때는 가관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대로 포멀한 흰 셔츠에 진 청바지를 입고 힘을 뺀 척하면서 머리를 힘주고 다녔다. 가방에 소설책과 노트북을 챙겨 넣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누가 널 본다고 그래. 신경 쓸 거 없어. 누가 뭐라든 다 개소리야.' 그러다가 버스 정류장에 서면 다시 자신감이 하락했다. 정류장 뒤편 돈가스집 까만 유리창에 내 모습을 비춰보면서 절망에 빠졌다. 광고 전단에서 환히 웃는 젊은 남자 모델이 아비꼬 정식을 먹으면서 날 놀려대고 있었다. 153번에 올라타면 여의도로 가는 단정한 셔츠 차림의 넥타이 부대 앞에서 주눅이 들어ᅠ힐끔거렸다.


 그때 난 내가 특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사춘기를 제때 제대로 관통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중이염이 생길 나이에 중이병이 걸려서 골골댔다. 특별하지 않고는 살기 싫은데 특별할 도량이 없으니 늘 갈급했다. 지금은 나이 탓인지 서울특별시에서 직장을 다니는 그 흔한 누군가로 특별함과 담쌓고 살지만, 스무 살 초입의 나는 젊음이란 특별해야 한다는 강박에 힘겨워했다. 상태가 심해졌을 땐 친구가 오랜만에 술자리로 불러내도 거절 놓기 바빴다. 나는 몇 시간을 망설이다가 어떻게든 변명거리를 만들어서 내뺐다. 걔들 인스타그램에서 본 화려한 지인과 같은 공간에 있을 생각을 하니 괴로웠다. 녀석들은 태어날 때부터 외모 가꾸는 법을 배운 것처럼 능숙했다. 한 마디로 조기 교육이 잘 되어 있었다. 녀석들은 기가 막히게ᅠ트렌드에 민감했고 늘 어디서 본 듯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키도 작고 왜소한 나는 녀석들이ᅠ교만한 태도로 나를 관찰하는 게 싫었다. 밤이 늦어 자리가 끝나고 술을 못 마시는 내가 일찍 귀가하면, 녀석들이 포장마차에 자기들끼리 모여서 순두부찌개에 소주를 하면서 잔혹하리만치 집요하게 내 외모를 두고 놀리진 않을까 불안했다. 그때 난 세상이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있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었는데 정말 없을까 봐 조바심을 냈고, 누가 관심이라도 보이면 그게 날 놀리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다.


 변화는 헬스를 처음 권유한 직장 선배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대뜸 사내 메신저 단체 쪽지로 권상우 몸매를 만들고 싶은 자는 퇴근 후에 남으라고 올렸다. 보니까 후배에게만 보낸 메시지 같았다. 난 그 무례하고 무뚝뚝한 말투가 싫어서 피했다. 운동이 싫다기보다는 배우 권상우를 별로 안 좋아했다. 당시 드라마 천국의 계단을 한참 볼 때라... 한 마디로 선배와 내 취향은 엇갈렸다. 어이없게도ᅠ사무실에서 잔업을 하다가 그에게 붙들려서 처음 헬스장에 갔다. 그 아스라한 고무와 쇳내가 아직도 생생하다. 평소 그의 무쇠와 같은 팔과 터질듯한 셔츠를 눈여겨봐 왔지만 그게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저런 파우더 근육을 어디다 쓰나 싶었다. 그런 근육을 달고 사무실로 돌아와서 종일 프로그램 소스를 코딩한다는 게 우스웠다. 솔직히 말하면 권상우보다는 마동석처럼 보였고, 여자가 좋아하기보다는 골격근 냄새가 나는 남자들만 몰려와서 운동법을 물어볼 만한 두께였다. 업무도 팔뚝만큼 고압적인 스타일에다 성격은 또 어찌나 과묵하기. 하여튼 나 같은 수다쟁이와는 먼 사람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는 헬스장만 가면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자였다. 


 헬스장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옆구리가 잔뜩 파인 나시를 입고 나선 그는 내 앞에서 헬스가 얼마나 숭고한 운동인지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 컬컬한 목소리가 헬스장에 가니 꾀꼬리처럼 울렸고, 말투도 긍정을 씹어 먹는 족집게 강사처럼 변했다. 그는 모든 힘을 죽이고 살다가 헬스장만 오면 다 쏟아붓고야 마는 헬스에 미친 작자였다. 난 그와 어울리면서 도무지 가까이하기 싫은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으면 그가 좋아하는 소재로 대화하라. 그가 뭐로 시간을 보내며 평소에 뭘 생각하고 사는지 알아내라. 그는 늘 운동 유튜브를 보고 있었고, 점심때 짬뽕을 먹을 때도 편의점에서 닭가슴살을 사 와서 국물에 욱여넣었다. 왜 그리 유난을 떠냐는 동료의 놀림도 기분 좋게 받아넘겼다. 미소를 지으면서 따봉을 치켜드는 그의 팔뚝이 모든 유난을 불식시켰다. 난 그와 운동하면서 절친해졌다. 지금도 가끔 연락할 만큼 돈독한 사이로 남았다. 선배는 최근에도 내가 여전히 운동에 푹 빠져서 사는 걸 자기가 새운 혁혁한 공으로 여긴다. 솔직한 얘기로 그는 내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그와 만난 이후로 절로 잠이 오고 절로 정신이 번쩍 뜨이며 절로 밥맛이 도는 데다가 절로 살까지 빠지면서도 절로 몸이 두꺼워지기까지 하는 헬스의 세계로 진입했다. 누군가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알게 된 중량 운동의 위대함을 난 헬스에 미친 선배 덕에 갓 스무 살이 넘어서 알아챘다. 운동을 배운 지 얼마 못 가 너무 힘들고 정신이 해이해져서 간혹 운동에 빠지기라도 할라치면 혹독한 비난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몸이 좀 안 좋아서 헬스장을 빼먹고 집에 가는데 지하철에서 카톡을 열었더니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보다 긴 카톡이 와 있었다. 남북전쟁과 노예해방보다 심각한 어조였다. 여자친구가 비정하게 날 찰 때도 이렇게 긴 카톡은 아니었다. 요지는 이거였다. 뭐든지 정신력 싸움인데, 너는 나약하게 굴고 있다.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지만, 고비를 넘기면 분명히 아파도 운동을 해야 다 괜찮아지는 시기가 올 거다. 그러니 빼먹지 말라는 얘기였다. 위인전이나 인생극장에나 나올법한 오글거리는 말투였지만, 그는 진심이었다.


 선배는 내가 더 무거운 무게를 들어낼 때마다 고함치며 호들갑 떨길 좋아했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으면서 "민진아 지금 너무 좋아. 등에 완전히 먹고 있어. 자 세 개만 더해보자. 오 완전 터프해!" 그는 이런 식의 오그라드는 말투로 내 운동능력을 그리스 신전에 올려놨다. 그는 혀가 짧아서 '민진아'를 항상 '밍깅아'라고 외쳐댔고, '좋아'를 '됴아'라고 했다. 그걸 우연히 들은 회사 동료가 '밍깅아 됴아'를 날 놀리는 유행어로 만들어서 1년을 우려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운동에 점점 더 빠져들었다. 이처럼 때론 무섭고 때로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그를 계속 따라다닐 수 있었던 건 확실한 결과가 보였기 때문이다. 다리가 풀릴 정도로 힘들고 난데없는 욕을 먹으면서도 몸무게가 늘고 등이 탄탄해지니 헬스장을 빠질 수 없었다. 남들은 돈 주고 개인 교습을 받는다는데 도무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던 나로서는 코칭은 물론 단백질 파우더까지 나눠주고 가끔가다 저녁까지 사주면서도 생색 한 번 내지 않았던 그에게 보답하고 싶어서 운동을 더 악바리처럼 했던 것 같다.


 오늘도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난 벌떡 일어나서 헬스장으로 향했다. 월급은 안 나오지만 내겐 재출근의 시간이다. 일보다 더 열심히 하는 시간이다. 관계나 금전 부분에서 상당 부분을 포기해도 꼭 내야만 하는 시간이다. 삶이 운동과 밀접해지면서 모든 게 좋아졌기 때문이다. 연인을 만났다가 헤어졌고 누군가와 가까웠다가 멀어졌으며, 회사도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만, 운동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이 고스란하다. 출장을 가서도 남들 다 사우나 갈 때 헬스장에서 피로를 해소했고, 기분이 우울할 때도 밀크초콜릿 대신 단백질 셰이크를 마셨다. '사장님 일일권 하나 주세요. 목욕탕은 빼고요.' 이제 헬스장에서 그 과묵하던 선배가 왜 그렇게 방방 뛰었는지 잘 안다. 외모 콤플렉스는 여전하지만 이제 운동으로 그 기분을 감쇠시킬 줄 안다. 여전히 옷옷만 사면 낭패인 '옷못알'이고 영어로 하면 패션 테러리스트지만 뭘 입든 운동을 열심히 하면 맵시가 난다는 걸 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운동은 그때도 좋고 지금도 좋다. 운동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틀리지 않았다. 좀처럼 보기 드물게 확실히 말할 수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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