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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27. 2023

공손한 접대 테니스

Ver. 2.0

 달력이 파란 토요일, 오늘은 어머니 생신인데 댁이 아니라 스타벅스에 있다. 알리바이는 밀린 일이지만 난 한 시간째 파란 하늘과 비행운을 구경하며 커피를 즐기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어젯밤에 고향집에 도착했어야 했는데 내 핑계 없는 무덤은 허름한 철책에 둘러싸여 인적이 끊이고 괴괴했다. 난 초라하기 그지없는 무덤 앞에 엎드린 채 그동안의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카톡으로 용돈을 삐쭉 내밀었다. 디지털 봉투에 내 죄스러운 마음만큼 액수를 더 보탰다. 그럼 왜 이런 궁색한 마음을 방치하고 혼자 열 평 남짓한 방에 머물러 있을까. 답하기 쉽지 않은 문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불효를 감수하기로 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부모님의 다 이해한다는 카톡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날 이해할 수 없었기에 겸연쩍은 표정을 짓는 이모티콘으로 대충 넘겼다.


 평소와 달리 스타벅스에는 가족 단위 손님이 많았다. 화기애애한 수다 소리가 백색 소음처럼 귀에서 웅웅댔다. 졸음을 쫓느라 양 뺨을 손바닥으로 치니 옆자리 학생이 나를 쳐다봤다. 그의 눈빛도 흐리멍덩했다. 우린 '책 보긴 어려운 분위기다. 그렇지'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그사이 낮이 기울고 따사로운 봄볕이 누그러져 있었다. 노을의 찬란한 향연이 스타벅스 실내를 가득 채웠다. 늘 보던 카페가 일류 건축가가 만든 공간처럼 멋스러워 보였다. 작년까지 서울 안국역 근처에서 자주 갔던 '노스테라스' 카페가 그리워졌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첫 책을 탈고하던 때를 떠올렸다. 창밖으로 지는 네온 속의 노을을 보면서 글로 먹고사는 삶을 꿈꾸곤 했다. 나름대로 추억이 있는 공간인데 코로나를 잘 통과하나 싶더니 최근에 폐업했다. 도시에서 조용한 카페는 살아남을 수 없다. 스타벅스처럼 사람이 와글와글해야 불황도 버텨낼 수 있다. 십 분 정도가 더 지나자 농밀하게 달궈진 노을빛이 실내로 쏟아졌다. 바삐 스러져가는 황혼의 조짐이 내 심란함을 위로해 줬다. 에어팟 노이즈캔슬링으로 왁자지껄을 소곤소곤으로 만들고 빌 에번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 앨범을 들으며 한동안 창밖만 바라봤다. 코카인 중독에 의한 합병증으로 이른 나이에 죽은 천재 피아니스트 빌은 기존에 내가 알던 재즈와 달리 서정적이고 감미로워서 독서에 잘 어울렸다. 심지어 헬스장에서도 그의 거침없는 손놀림을 상상하면서 쇳덩이를 든다. 재즈와 헬스가 어울리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노을이 지기 전에 산책을 하려고 서둘러 짐을 챙겨 카페를 나섰다. 날이 참 좋아 근처에 자전거가 없는지 살폈다. 공유자전거 따릉이 앱을 켜고 배터리가 가득 찬 바이크를 찾아냈다. 폰에서는 빌 에번스가 고개를 처박은 채 담배를 꼬나물고 연주하는 마지막 트랙 <Like Someone In Love>가 흘러나왔다. 동네를 몇 바퀴 산책하며 땀을 쭉 빼고 맛있는 걸 먹고 싶었다. 공원을 걷는데 어깻죽지가 뻐근했다. 어제 한 테니스 탓이었다. 어제 경기는 라켓줄이 뜨거워질 정도로 쉽지 않은 랠리였다. 나는 나름 우리 회사 '박 페더러'인데 상대가 윗분이라서 제대로 한 번 휘두르지도 못했다. 네트 위로 넘어오는 연두색 테니스공에 힘은 덜고 예우와 존경을 담아 사뿐히 넘겨드렸다. 그들이 아무리 풀 스윙으로 라켓을 휘갈겨도 난 공을 스펀지처럼 완충해서 살포시 받아냈다. 상사의 포핸드 각도에다가 나 좀 잡아드시라고 정확하게 떨궈줬다. 지는 것도 자연스럽고 능숙해야 한다. 1세트는 그렇게 나의 아슬아슬한 패배로 끝이 났다. '오늘 컨디션 너무 좋으신데요? 따라갈 수가 없네요.' 내 너스레가 잘 먹혔는지 그는 힘 좀 내라며 날 격려했다.


직장생활 10년 차 관록으로 2세트 랠리를 이어갔다. 어설픈 척 못 치는 척 안 배운 척. '댁은 오늘 편안하게 사무실에서 앉아 쉬었겠지만, 난 어제 새벽까지 글 쓰고 오늘 회의를 세 건이나 주재했다고.' 두꺼운 헤드밴드를 맨 상사는 마치 자기가 '라페엘 나달'에라도 빙의한 듯 체중을 싣고 힘차게 공을 넘겼다. 나는 표정 하나 구기지 않고 나자빠졌다. 난 시종 그의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이 거슬렸다. '왜 테니스코트에 축구 유니폼이야. 신발은 왜 족구화인데. 저런 몰상식한!' 쓸데없이 심사가 뒤틀린 나는 성질 같아선 그의 미간에 내 강력한 백핸드를 먹이고 싶었지만 내 근육은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앞에선 파우더일 뿐이었다. 내 목구멍은 포도청까지는 아니더라도 구치소나 파출소 정도는 되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 참을 수 없을 즈음 마침내 코트 조명이 꺼졌다. 랠리는 두 시간을 넘겨서야 겨우 끝이 났다. '어머니 아버지, 오늘 작은 아들은 비 오는 클레이 코트에서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느꼈답니다.'


내가 생각하는 끝이 그들에게는 본격적인 시작이었는지 김 부장은 약속이나 한 듯 '메기 매운탕에 소주 한잔'이라는 구호를 덧붙였다. 나는 머리를 굴리다가 내일이 어머니 생신이라는 사실이 퍼뜩 떠올랐다. 지금 어머니가 된장찌개를 끓여놓고 하나뿐인 막내아들이 오길 코가 빠지라 기다리고 계신다는 택도 없는 핑계를 댔다. 속으로는 매운탕은 사랑하지만 그걸 댁들의 하나마나한 조언 따위나 들으면서 먹기는 싫은 거라고 되뇌었다. 난 율동이라도 하는 것처럼 다양한 제스처로 공세적인 참석 제의를 애써 뿌리쳤다. 겸연쩍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코트를 빠져나가는데 뒤에서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다 들렸다. '아 쟨 술 안 마셔. 우리 같은 노땅이랑 금요일 밤에 놀겠냐.' 그렇게 잘 알면 테니스 코트에 부르지도 말았어야 했다. '다 놀아줬더니 뭐라고? 네들 덕분에 오늘 어깨랑 복근하는 날인데 헬스장도 못 갔잖아!' 치미는 짜증을 억누르며 차에 탔다.


차에 오르자마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구슬픈 노래를 따라 불렀다.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그렇게 살아가고 그렇게 후회하고 눈물도 흘리고' 집에 가지도 않을 거면서 당치 않은 이유로 엉뚱한 곳에 부모님을 팔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금요일이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화가 치미면서 단말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한 번 더 술 먹자고 하면 나라까지 팔아먹을 생각이니, 제발 나 좀 부르지 마쇼.' 발작하듯 액셀을 밟고 4천 아르피엠을 찍고 달렸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단속 카메라를 보고 다시 속도를 줄였다. 요즘엔 어디서도 홧김에 말을 뱉기 어렵다. 내 화는 오직 헬스장에서 쇳덩이와 씨름할 때만 뿜어져 나온다. 사무실만 가면 바로 카디건 하나는 거쳐야 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린다. 파티션 밑에 다소곳이 웅크린 나는 놀랄 것도 기쁠 것도 없는 미생에 불과하다. 늘 북유럽 날씨처럼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일을 그만둘 수 있는 12가지 방법만 생각하다 퇴근한다.


 길고 긴 공복 랠리 탓에 배가 너무 고파서 근처에 사는 친구를 불러 고기를 구워 먹었다. 금요일이라서 그냥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식단 한다고 한참 피해 다녔던 삼겹살을 먹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앞에 있는 '먹음돼지'라는 가게로 들어갔다. 세트 메뉴를 시키고 열심히 가위로 비계를 떼어내며 고기를 구웠다. 곧 유학차 떠나는 친구와 정겨운 대화를 나누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외톨이인 나와 놀아주던 친구가 떠난다니 서글펐다. 그간 곁에 머물러줘서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뉘앙스를 전달했다. 노곤한 몸을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고 최근 우리에게 생겼던 일을 하나하나 복기하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는 대화에 굶주려서 충동적으로 깜짝 놀랄 비밀을 털어놨다. 농담 반 진담 반 과장을 섞어서 어디까지나 믿기 어려운 얘기를 꺼냈다. 지난 몇 달간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식당에는 가족 단위 손님으로 가득했다. 다 좋은 아들 좋은 딸 노릇 하려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케이크를 나눠 먹었다. 다시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생신인데, 고향 집에 갔었어야 했나.' 난 친구의 미래를 기약하며 마지막 회포를 풀었다.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타서 부모님 댁 주소를 내비로 찍었다가 바로 다시 취소 버튼을 눌렀다. 아무래도 금세기에 효자 노릇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운전대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하느라 바쁘다는 말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컴컴한 방 불을 켰다. 얼마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내 동거 식물 붓꽃이 발아한 게 보였다. 난 너무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다. 누가 들으면 라면을 발등에 쏟은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 세간도 없이 혼자뿐인 집에 메아리가 치는 것 같았다. 자식처럼 키웠더니 이것도 효도인가 싶어 눈물이 핑 돌았다. 옆에 심은 새 화분도 곧 싹을 틔울 모양인지 흙이 촉촉하고 생명의 냄새가 났다. '내가 너희들 밥 주려고 집에 안 간 거 알지? 역시 사랑은 내리사랑인 거 이해하지?' 난 물을 흠뻑 적시며 새삼스럽게 내가 독거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간 귀찮게만 여겼던 동거 식물의 성장에 감동해서 한동안 멍하니 베란다에 앉아 있었다. 사람 기분이 작은 싹 하나에도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놀라웠다. 부모님도 내가 태어났을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도 않고 전에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오 무렵 일어나서 노트북을 켰다. 휴일에도 바삐 울리는 톡을 읽지도 않고 지웠다. 대체 휴일에 왜 업무 얘기를 이렇게 해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꼭 이렇게 업무 못하는 사람이 주말에 설레발이지. 백핸드도 하나 제대로 못 칠 때 내가 알아봤지.' 대부분 볼 필요도 없는 허튼소리라서 공손한 말투로 월요일에 확인하겠다고 아뢰었다. '아이고 어머니 메시지도 있네.' 가족 단톡방에서 나를 빼고 가족끼리 점심 식사 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아버지와 형이 뭘 하길래 안 오냐며, 지금이라도 오라고 보채는 메시지를 가뿐하게 무시하고 그냥 잘 챙겨 먹는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요즘 너무 좋다고 어머니도 건강관리 잘하시라고 답장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사놓은 눈웃음치는 이모티콘을 안부인사에 담았다. 마지막 숫자가 지워지기 전에 메시지가 하나 날아왔다. 기대했던 연락이다.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평생 휴대전화기를 손에 쥔 기분마저 들었다. 먼저 연락할 용기가 없어 뜸을 들였는데 막상 메시지가 오니 반가웠다. 요즘 근황을 매개로 이어질 깊은 대화를 이어지기를 기대했다. 1이 지워지고 1을 생성하며 긴장감을 높여갔다. 기대와는 달리 진부하게 뜸을 들이고 전형적으로 떠보는 대화로 가득했다. 민방위훈련이라도 하는 것처럼 오 분 만에 샤워를 하고 나왔다. 몸무게를 쟀더니 바늘추가 76킬로를 무슨 핵소 고지라도 되는 것처럼 떡하니 지키고 서 있었다. 퇴근하고 두 시간 넘게 테니스를 쳤으니까 체지방은 좀 덜어내지 않았을까 기대했지만 여전했다. 샤오미 체중계는 그래프로 내 몸무게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우량주임을 보여줬다. 이렇게 이번 주말도 여느 주말과 다르지 않게 끝을 고했다. 어머니 아버지 불효자는 두 분의 결혼기념일을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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