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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26. 2023

헬스의 꽃

Ver. 2.0

 헬스에는 3대 운동이 있다. 학창 시절의 국어, 수학, 영어처럼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가장 비중이 큰 스쿼트(S), 벤치프레스(B), 데드리프트(D)를 말한다. 영국의 문학비평가 윌리엄 해즐릿은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설명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천재의 힘을 알고 싶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야만 하고, 학식의 무의미함을 알려면 그의 주석자들을 연구하면 된다.” 내가 헬스에 관해 고쳐 말하면 3대 운동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정도의 비중이고, 그 밖의 운동은 3대 운동을 뒷받침하는 주석에 불과하다. 세 종목의 기록만 측정하는 파워리프팅 대회도 있을 정도니 그 중요성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3대 운동은 왜 그렇게 중요할까. 이 세 종목은 단순히 신체 한 부위만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전반에 부하를 줄 수 있는 운동들이기에 훈련 효과가 크다. 세 종목으로 하체와 등, 가슴과 같은 큰 근육들을 자극하면 전신 운동에 가까운 효율을 낼 수 있다. 작은 근육들은 큰 근육을 단련하고 나서 추가로 더 하는게 합리적이다. 바쁘고 피곤한 직장인이라면 큰 근육을 자극해서 좋은 효율을 얻어야 최대한 시간을 아끼면서 운동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월요일에는 가슴(벤치프레스), 화요일에는 등짝(데드리프트), 수요일에는 하체(스쿼트)를 한다. 시간이 없을 때는 3대 운동만 딱 하고 나오는 날도 많다. 그렇다면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뭘 하지에 대한 답도 나온다. 직장인이라면 헬스장 주 3일도 버거울 테니 3대 운동 위주로 분할해서 운동하고, 추가로 이틀 정도는 속 편하게 유산소를 하거나 어깨나 복부, 팔처럼 작은 근육을 단련하는 시간을 갖는 게 이롭다. 일이 너무 바쁘거나 몸이 안 좋으면 어쩔 수 없이 운동하는 요일을 월, 수, 금 정도로 느슨하게 짜서 하체를 마지막으로 주말을 맞이하는 루틴도 나쁘지 않다. 그런 경우에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가벼운 러닝이나 맨몸 운동을 해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계획은 계획이고 어떻게든 일주일에 세 번은 헬스장을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고약한 누군가가 내게 평생 1가지 운동만 할 수 있으고 으름장을 놓으면 어떤 걸 택할지 생각해 봤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펄쩍 뛰다가 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스쿼트라고 대답할 것이다. 스쿼트는 하체 운동의 꽃이자, 전신에 부하를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고중량 운동이다. 몸을 전체적으로 두텁고 탄탄하게 만들고 싶다면 무조건 스쿼트를 해야만 한다. 인체에 있는 근육 7할이 하체에 몰려있으니 그 중요성은 두말할 거 없다. 그래서 스쿼트하는 날은 한주 운동의 성패를 결정하는 헬스의 정점이다. 하체 운동은 엄청난 강도와 통증을 유발하기에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 부위다. 언제나 힘에 부치고 가혹한 기분에 시달려서 도망치고 싶어 진다. 내 친구는 헬스에 하체만 없다면 매일 할 수 있다고 떠벌인다. 나도 헬스에 관해 뭘 모를 때는 허벅지가 굵어지는 게 싫어서 하체 운동을 등한시했다. 실제 다리통이 두꺼운 보디빌더를 보면 확실히 바지핏이 엉망이다. 근데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하체 운동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절대 간과할 수 없다. 하체를 제대로 하면 앓는 소리가 절로 나오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심하면 살짝 현기증이 나고, 좀 더 심할 경우에는 점심에 먹은 돈가스까지 식도를 타고 역류하면서 메슥거린다. 내가 몸을 제대로 단련하고 있음을 제대로 각인시켜 주는 헬스의 참맛이다. 하체가 커지면 몸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지고, 다룰 수 있는 바벨 중량도 늘어나서 결국에는 헬스에 재미를 들일 수 있다. 그리고 아무리 스쿼트를 열심히 해도 선수들처럼 하체를 두껍게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하체를 한 다음날이 하체 운동의 하이라이트다. 출근길에 지하철과 사무실 계단을 오를 때 만신창이가 된 허벅지와 엉덩이가 비명을 지른다. 한 계단 두 계단 오를 때마다 근육 세포 하나하나가 제멋대로 봉기하는 걸 떠올릴 수 있다. 종일 사무실 의자에서 짓눌린 지방 덩어리가 찢어지고 그 자리에 '헬리코박터 프로젝트 윌'에 든 캡슐형 유산균보다 더 딴딴한 단백질 알갱이가 콕콕 박힌다. 이를 전문 용어로 초과 회복이라고 하는데, 상처 난 근육이 아물어가면서 다음에는 아프지 말라고 추가로 근육 세포를 덧대주는 원리다. 그러므로 헬스라는 건 몸을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근육에 상처를 내서 앞으로는 덜 상처가 나게 해달라고 더 큰 근육을 요구하는 사기 행위다. 일종의 자해 공갈이지만, 좋게 보면 노화에 드러내놓고 반항심을 드러내는 항거 행위이기도 하다. 노화는 나의 적이니까. 안티에이징이 시대적인 모토가 된 마당에 근육으로 만든 탄탄한 육체의 이데올로기를 탑재하면  몇 조각 뜯어먹고 방치한 파전처럼 눅눅해진 내 자존감도 쉽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헬스장을 찾아 하체를 위해 파워랙 앞에 섰다. 군대 영장을 받아 든 표정으로 첫 세트를 준비하는데 어쩐지 멀찍이서 한 무리가 내 운동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빅뱅의 뮤직비디오에나 나올법한 건들거리는 청년이었다. 봉에서 바벨을 하나 빼려다가 자존심상 스쿼트 무게를 좀 더 올렸다. 컨디션이 별로였지만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헬스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더니 난 고새 그걸 잊고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운동으로 전환했다. 괄약근과 배에 힘을 꽉 주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고통과 저항이 공존하는 공개 시험대에 나를 내던졌다. 다리가 풀리는 걸 가까스로 참아내며 겨우 5개를 채웠다. 근데 나를 지켜보는 줄 알았던 청년의 시선이 내 옆자리에 가 있다는 걸 눈치챘다. 나보다 바벨을 30킬로쯤 더 끼우고도 조용히 열 개씩하고 있던 무림 고수였다. 세상에는 날고 기는 강자가 너무 많다. 그래서 헬스는 하면 할수록 더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난 조용히 바벨을 두 개씩 빼고 내 페이스를 찾았다. ‘겸손하게 하자, 겸손하게. 내 무게를 찾자.’


 조금 무리했더니 힘이 빠지는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 내게 가해지는 중력 가속도가 9.8㎨를 초과해서 나를 주저앉힐 기세였다. 절로 혼잣말이 나왔다. '그래 고마해라. 할 만큼 했다 아이가.' 머리가 핑 도는 걸 참고 짐을 챙기려던 차에 스판덱스 여신이 사라진 자리에 나랑 동년배로 보이는 콧수염이 물통과 벨트를 내려놓았다. 다 값비싼 장비들이었다. ‘장비빨이나 세우는 촌뜨기구만. 뭐든 장비 탓으로 돌리고픈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저 양스러운 콧수염은 또 뭐래.’ 그의 몸은 태닝 기계에 초벌구이 한 듯 까무잡잡했다. 무슨 식용유를 처발랐는지 번들거렸다. 머리를 바짝 세웠고 콧수염은 관리가 부실해서 어제 라디오스타에서 본 김흥국 씨와 닮아 보였다. 콧수염은 몸을 풀면서 지나치게 인위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건 거울 속 제 모습에 만족하는 미소였다. 그리고 분명히 누군가를 의식한 표정이었다. 그의 팔뚝 안쪽에 달팽이 모양 문신이 있었다. 민트 그린 색 나이키 트레이닝 상의에 언더아머 쫄쫄이라니. 그는 딱 130을 끼우고 스쿼트를 시작했다. 분명히 내가 120킬로라는 걸 보고 하나 더 끼운 거였다. ‘한 번 해보자는 거지. 바로 옆에서 스쿼트를 하는 것도 못마땅한데 감히 무게를 떠 끼워?’ 어느새 분위기는 다시 후끈 달아올랐다. 에어팟으로 들리는 공격적인 '창모'의 래핑이 내 남성 호르몬에 마라향을 첨가했다. 어느새 콧수염과 나만 남겨진 오징어 게임이 되어버렸다. 


 그가 한 번 하면 내가 그보다 한 개 더하고, 그가 다음 세트에 무게를 늘리면, 나도 오 킬로를 더 끼워서 우위를 점했다. 그는 나와 동종이었다. 어디서든 경쟁을 모토로 삼고, 승부에 접어들면 바로 삼국지 관우가 되어버리는 미련한 유형. 그는 세트가 끝날 때마다 거울 앞에서 어색한 포징을 하며 날 메슥거리게 했다. 턱을 살짝 들고 인스타그램용 사진을 찍는 꼴불견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어디 대회라도 나가는지 국회의원 선거포스터 같은 표정을 짓고 수도 없이 포즈를 취하는 게 꼭 나를 도발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싸움을 걸면 나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 난 내일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였다. 더는 이어가지 못할 타이밍에 다행히도 콧수염은 에어팟을 귀에 꽂고 누군가와 통화를 시작했다. ‘내가 이겼다.’ 난 그의 도망을 즐겼다. 거울에 몸을 기대고 앉아 숨을 몰아쉬었다. 콧수염은 남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큰 목소리로 애인과 스무고개를 시작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란 놀라울 정도로 전형적이었다. 자신이 운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오늘 자기를 괴롭힌 상사가 얼마나 못됐는지. 롤렉스 시계를 어떻게 싸게 샀는지. 대학 시절 룸메이트를 우연히 만났는데 자신과 달리 폭삭 늙어버려서 놀랐다든지. 실내 인테리어 견적을 뽑았는데 얼마라든지. 그는 점점 더 크게 떠들기 시작했다. 절로 타이레놀 두 알을 찾게 하는 허세였다. ‘어 근데 이거 다 내가 글로 쓴 내용이잖아?’ 그의 통화를 엿들으면서 나는 생각보다 콧수염에 관해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그의 요즘 일과를 들었고, 지난 주말 애인과 갔던 오마카세의 상호명을 기억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콧수염에 관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하체는 분노로 점점 더 부풀었다. 콧수염의 요란한 기합 소리와 신음 섞인 말을 견뎌내며 마지막 힘을 짜냈다. 관세음보살에 가까운 초탈한 표정으로 운동을 끝마쳤다. 콧수염 덕분에 평소보다 삼십 분 더 운동을 했다. 허리 통증이 와서 쿡쿡 쑤셨지만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허벅지의 자극에 만족스러웠다. 난 벨트를 어깨에 매고 승리자의 뒷모습을 남기며 자리를 떴다. 다음에 콧수염을 보면 같이 짝을 이뤄서 해보자고 할 생각이었다. 샤워실로 향하는데 내 뒤로 보이는 거울 속 콧수염이 날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난 승자의 웃음으로 답했다. 샤워를 하며 예전처럼 짝을 이룰 동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사무실 경찬이, 옆 사무실 원도와 운동이 끝나고 웃고 떠들었던 옛 시절이 그리웠다. 난 요즘 소란이 필요한 시기를 겪고 있다. 이건 대도시의 고독이라고 아무리 우겨대도 별로 나아질 게 없는 헬스인의 외로움이었다. 하체 근력의 중요성을 글로 적을 게 아니라 운동 끝나고 맥주 한 잔에 치킨 뻑뻑 살을 뜯으면서 떠들 동료가 필요했다.


 집에 돌아와서 몸을 뉘었다. 침대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왓챠에서 <데브스>라는 드라마를 틀었다. 미래 사회를 그린 SF물인데 다들 몸이 날씬했다. '미래에는 스쿼트도 안 하나.' 나는 베개에 기댄 채 모니터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편의점에서 사 온 비빔밥 그리고 후식으로 먹을 아몬드를 늘어놓고 흐리멍덩한 눈으로 미래 사회의 살풍경한 청사진을 눈에 담았다. 그러니까 미래에는 체중 조절도 기계가 해주고, 아몬드 25알을 챙겨 먹지 않아도 알약 하나만 먹으면 배가 하나도 안 고픈 그런 세상이 오는구나. 정말 그런 세상이 오면 난 헬스장을 가지 않게 될까. 나는 동공만 열어두고 입맛을 다시며 잠에 빠져들었다. 머릿속은 차츰차츰 뒤안길로 물러났고 풀려가는 눈은 하루의 끝을 반겨왔다. 그러다 놀라서 퍼뜩 일어났다. ‘아 제기랄. 프로틴 먹는 걸 까먹었다. 삼십 분 내에 먹어야 하는데!’ 나는 용수철처럼 의자에서 몸을 튕겨내고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서 초콜릿 맛 프로틴 두 스푼을 셰이커 통에 넣어 마셨다. 아이허브에서 유기농이라고 칠만 원 넘게 주고 산 독일제 농축 단백질 가루였다. 누가 이런 건 선수나 먹는 거라고 했지만, 자고로 운동은 먹는 게 다라서 나도 프로의 마음가짐으로 샀다. 마음은 선수 못지않으니까. 옷을 벗고 거울을 보며 몸을 체크했다. 허벅지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퇴부 근육이 부풀어 있었다. 내가 젊을 때는 당연한 줄 알았던 몸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걱정한 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어쨌든 오늘 내 하체는 수요일을 버텨냈다. 내일은 몸을 좀 풀고자 달리기를 해볼 생각이다. 내일은 헬스장 대신 천변으로 나가 바깥공기를 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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