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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n 06. 2023

자전거로만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

그 여름은 터질 것 같이 뜨거운 허벅지와 끝없이 펼쳐진 자전거 도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하다가 카카오톡을 열었더니 생일자 목록에 주호가 있었다. 일을 시작한 이후로 거의 볼 기회가 없던 주호는 프로필사진 속에서 비싸 보이는 자전거를 붙들고 웃고 있었다.


“주호야 생일 축하해. 요즘 너 자전거 타냐.”

“응 주말마다 자전거 여행 다녀. 너도 갈래?”

“나야 운동이라면 다 좋지. 오랜만에 자전거로 유산소 운동해야겠다.”

“그럼 잠실역 12번 출구로 8시까지 와. 늦으면 안 된다.”


중학교 때 이후로 자전거와 본 적도 없던 나는 여행 전날 한강 근처 자전거포에서 괜찮은 자전거 한 대를 빌렸다. 여행의 설렘에 밤늦게까지 자전거를 탔더니 출발 당일 늦잠을 자다가 불길한 기분에 휩싸인 채 깨어났다. 난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고 몸을 일으켜서 '빕숏'이라고 불리는 자전거용 쫄쫄이바지에 몸을 쑤셔 넣었다. 운동화를 구겨 신고 문 앞에 세워둔 자전거에 올라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난 허겁지겁 자전거 도로에 진입해서 달렸지만 약속 시간에 족히 두 시간은 늦을 것 같았다. 주말에는 자전거를 지하철에 실을 수 있다는 주호의 말이 생각나서 마음을 바꿔 가장 가까운 역으로 향했다. 막상 쫄쫄이 사이클복을 입고 지하철 승차장 앞에 서니 날 바라보는 시선에 민망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거울 속의 내 모습은 어릴 적에 본 우뢰매처럼 보였다. 아무리 몸매가 빼어나다 해도 아직까지 쫄쫄이는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수 있는 무기였다. 난 엉거주춤한 자세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지하철을 끝 칸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오르니 자전거 동호회 무리가 바글바글했다. 쫄쫄이바지를 입고 중요 부위에 포춘쿠키를 단 사람들이 지하철 한 칸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난 기이한 광경에 정신을 못 차리다가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았다. 그때 분홍색 두건을 쓰고 스포츠용 선글라스를 쓴 아저씨는 내게 콩떡을 나눠주며 자전거의 세계로 진입한 날 축하해 줬다. ‘청년은 어디까지 가시나.“ ”네 저는 오늘 여주보까지 가려고요." “이 시간에? 어이구, 많이 늦었네.” 나는 비통한 얼굴로 주호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줘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새 잠실역에 도착했다. 무표정한 주호를 보자마자 싹싹 빌었다.


"내가 너 화장실에서 똥 다 쌀 때까지 내가 화장실 문 막고 서있던 거 기억하지. “

“뭐? 무슨 소리야 그게.”

“내가 너 설사하는 거 숨겨주려고 몸으로 육탄 방어한 걸 잊었다고?”

주호는 내 말을 무시하고자전거에 올라타며나지막하게 말했다.

“빨리 가자. 조금 더 지체하면 날이 뜨거워져서 많이 못가.”

“그래, 우리 이제 우리 쌤쌤이야.”


우리는 개천가에 다다라 자전거 전용 도로로 진입하면서 페달을 힘껏 밟아 속도를 냈다. 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주호를 따라갔다. 미친 사람처럼 자전거 페달을 한 시간 정도 밟았더니 금세 허벅지가 뜨거워지고 엉덩이도 뻐근해졌다. 귀에서는 이명이 생겼고 페달을 밟는 것 외에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콩떡을 먹은 덕에 버틸 수 있었다. 주호는 인정사정도 봐주지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힘들었지만 쉬자고 말할 염치가 없었던 나는 참을 만큼 참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저 멀리 보이는 세븐일레븐을 가리키며 사막의 오아시스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외쳤다.


“주호야, 포카리! 포카리! 야 이 자식아 내 말 안 들려? 포카리스웨트 마시고 가자고!”

주호는 별 대답도 없이 자전거를 멈추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주저앉아 포카리를 마시는 내게 매정한 주호는 말했다.

"야 세 시간은 더 가야 해. 빨리 목 축이고 가자.“


우린 경기도 하남 팔당대교에 도착했다. 삼십 도에 육박하는 날씨에 숨이 턱턱 막혔다. 난 지칠 대로 지쳐서 열을 조금이라도 식히려고 편의점에서 산 얼음을 모자 속에 넣었다. 정수리는 시리고 몸은 뜨거운 이상한 감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너무 강도만 높여 달리면서 몸이 더위를 먹은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숨을 더 들이마시기 위한 가쁜 호흡, 심장과 맥박의 소리를 듣는 일 빼고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난 조금이라도 더 힘을 내기 위해 고함을 지르며 미친 듯이 웃어 젖혔다.

"주호야 오늘 너무 좋다. 죽을 것 같은데 좋아"

내가 실성한 사람처럼 웃어대자 앞서가던 주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유심히 쳐다봤다.


우여곡절 끝에 양평 부근에 이르자 우린 남한강 중앙선 폐철도 구간에 도착했다. 폐철로로 난 긴 터널은 여름임에도 몸이 얼어붙을 정도로 시원했다. 마치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 들어가는 것처럼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면서 열이 식고 상쾌한 기분이 느껴졌다. 그간 양평 여행을 수도 없이 다니면서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경험이었다. 폐철로에 이렇게 자전거 도로가 잘 나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로만 볼 수 있는 도시의 모습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한강을 따라 속력을 높이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석양에 채색된 구름을 구경하며 자전거를 몰았다. 실바람이 코에 감기면서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이파리까지 다 보였다. 흰 티셔츠가 바람에 나풀거리니 포카리스웨트 광고라도 찍는 기분이었다. 몸과 자전거가 하나 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우린 목표로 했던 여주보에 한참 못 미친 양평에서 점심을 먹었다. 주호는 영 아쉬운지 그 맛있는 초계국수를 먹으면서도 아쉬움을 토했다.

“요즘 여주보 날씨가 기가 막히다던데,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충주까지도 갈 수 있었는데.”

난 벌겋게 달아오른 목덜미에 선크림을 바르면서 말했다.

“오늘만 날이냐. 다음 주에 또 가면 되지 그건 그렇고 자전거가 한 시간에 500칼로리 빠진다잖아. 우리가 여기까지 네 시간 가까이 왔으니, 초계국수 곱빼기에 만두까지 먹어도 살 빠지겠다.”


양평에서 다시 잠실까지 돌아오는 길은 해가 떨어지면서 어두침침하게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했다. 사위가 캄캄해지고 몸이 지쳐가면서 자연스럽게 길에 주저앉아 쉬는 시간이 길어졌다.중간중간 나오는 편의점은 우리의 카페이자 아지트가 되었다. 칼로리를 핑계로 그간 마시지도 않던 초코우유와밀키스를 사 마셨다. 곱빼기로 먹었던 초계국수가 마치 몸 어딘가에서 증발한 것처럼 다시 배고 텅텅 비어버렸다. 여행이 점차 끝나감에 따라 우린 그간 나누지 못한 대화를 나눴다.


난 주호한테 물었다.

“왜 그렇게 자전거를 타는 거야?”

녀석은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얘기했다.

“너처럼 허벅지 두꺼워지려고.”

“허벅지는 키워서 뭐 하는데.”

“하긴 뭘 해. 그냥 키우는 거지.”

“븅신.”

"속이 시끄러워. 집에 들어가도, 회사로 출근해도 숨통이 조여 호흡이 어려울 정도야.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사는지 몰라. 그래도 주말에 자전거 타고 서울을 벗어나면 그나마 숨통이 틔여. 그래서 타.“


주호와는 일을 시작한 이후로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더벅머리 시절부터 친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린 서로에 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만나면 피시방에서 게임하고 운동하다 헤어지기 바빴지, 서로 뭘 생각하는지, 뭘 고민하는지 알 기회가 없었다. 우린 표면적으로 어떻게 사는지 알았을 뿐, 속으로 뭘 그리며 사는지는 몰랐다. 어릴 적부터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어색해서 그냥 넘기면서 지냈다. 때론 사는 게 바쁘다고 모른 척 지나쳤다. 근데 산과 들판뿐인 텅 빈 자전거 도로에서 모든 게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전에 없이 솔직한 얘기들이 터져 나왔다. 어색해서 나눌 수 없었던 가족과의 전쟁, 신앙에 관한 고민, 연애의 실패, 토할 것 같이 지겨운 직장. 우린 앞으로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이 캄캄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때 주호와 나눈 대화는 지금도 내가 쓴 글 곳곳에서 출현한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내밀한 속내를 듣고, 그 아픔을 상상하는 경험의 신비로움을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그날 자전거 여행 이후로 주호와 난 틈만 나면 만나서 한강부터 양평, 여주, 문경, 동해안 그리고 도림천에서 북악스카이웨이까지 전국의 내로라하는 자전거 명소를 여행했다. 아까운 줄 모르고 자전거 도로에 내 젊음을 흩뿌리며 다녔다. 아마도 그 여름 주호와 자전거 여행을 하며 전국을 일주하던 때가 내 전성기였지 싶다. 날렵한 내 몸을 믿었고, 내 체력은 날 실망하게 하는 법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허벅지에 힘이 빠지고 예전만큼 자전거를 타지 않지만, 여전히 자전거가 내게 남긴 그 여름을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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