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무 살 이후로 혼자 힘으로 살아왔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직접 구한 방에서 내가 직접 볶은 닭가슴살을 씹으면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상이 내겐 지상 최대의 성취였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나를 혼자 설 수 있게끔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이십 대 내내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피 같은 시간을 날렸다. 삼십 대에 접어들어서는 오직 글만 쓰고 싶은 마음을 안정감이라는 허울 좋은 말로 억눌렀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희미하지만 내가 겨우 찾은 빛을 스스로 꺼버리고 회피했다. 난 소파에 들러붙은 암체어 트레블러처럼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면서 내 삶이 옅어지는 걸 방치했다. 내가 퇴사에 관해 얘기하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건네왔다. "너 회사 밖으로 나가봐라. 전쟁터야. 어차피 다시 돌아오고 싶어서 안달이 날 걸."
스무 살 초입에 시작한 이른 돈벌이는 뭐든지 나 혼자 다 해낼 수 있다는 오만함을 심어줬다. 그 과정에서 누구에게도 도움 청할 줄 모르는 천하의 얼간이가 되어 버렸다. 어디 가서든 나 잘났다고 시위하듯 살았다. 아무도 필요 없다고. 연애해도, 동호회에 가입해도, 결국 나 혼자라고 생각했다. 늙으면 고립될 테니 지금부터 혼자를 연습하겠다며 허세를 떨었다. 하지만 어째 세상에 내 마음처럼 혼자서만 잘 되던가. 퇴직 후로 난 너무 위축되어 있어서 차마 내 속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이 세상에 나 홀로 섰다는 두려움에 입도 떨어지지 않았다. 보란 듯이 서서 나 이제 잘 해내고 있다며 당당하게 선언하고 싶었다. "나 이제 좀 사람답게 사는 것 같아." 이제 불혹이 코앞이지만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동안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도 퇴근 후 카페에서 글을 쓰며 살아왔다. 이런 이중생활이 길어지면서 불가피하게 목 디스크마저 생겼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과 출근 후 무기력에 시달렸다. 도무지 소화하기 어려운 원고를 무작정 받아들이고 형편없는 글이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일터에서는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책 쓰느라 회식도 참석 안 한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그래서 난 헬스장에서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운동하는 내 모습에 긍지를 느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난 작가니까. 내 SNS 계정에 해시태그로 붙은 '글 쓰는 직장인'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었다.
고민 끝에 퇴직한 후로 이제 글만 쓰는 백수가 됐다. 이제 목이 아파도 더는 직장인 건강보험이 아니라 내 생돈을 써야만 하는 자유계약자 신분이 되었다. 그렇게 백수 생활 1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난 지난 1년간 겪은 일에 관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나는 왜 여자친구에게,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그 어떤 위로와 조언도 구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나는 무슨 말이라도 좋으니 한마디 해달라고 하지 못했나. 솔직히 다 털어놨다면 지난 일 년이 그렇게까지 혹독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제 글로 써볼 여유는 생겼다.
일 년 전 오늘 난 월요일 아침 회의에 참석한 다른 직원들을 뒤로하고 짐을 챙겼다.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와서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찾는데, 저 멀리 흡연구역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 세웠다. 미처 인사를 드리지 못한 인사과 박 부장님이었다. 그는 내게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이냐고 물었다. 난 "그러게요"라고 말하려다가 너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아서 고쳐 얘기했다. "우선 좀 쉬려고 합니다." 박 부장은 사람 좋은 미소를 거두고 걱정스러운 입 모양을 했다. 그의 표정이 꼭 우울한 얼굴 모양 이모지 같아서 우스웠다. "그러니까 이제 뭘 할 거라고?" 난 "집에 가죠"라고 대답하려다가 그의 기대에 어긋나기 싫어서 달리 대답했다. "그러니까 음. 계속 글을 써보려고요. 곧 새 책이 나오거든요. 부장님도 출간하면 한 권 사주세요" 분명히 차근차근 다 계획하고 회사를 나선 참이었는데 난 왠지 모르게 겸연쩍어서 말끝을 흐렸다. 그는 내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별말 없이 몸을 돌려 사라져 갔다. 그의 손에서 떨어진 담뱃재만 내 앞에서 흩날리고 있었다.
"이제 뭘 해야 하지." 그간 써둔 시나리오를 갈아엎고 새로운 이야기를 써나가야 할 타이밍이었다. 갈고닦은 작화 능력을 발휘해서 당당하게 '나는'이라는 주어를 쓸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데드라인을 코앞에 둔 작가 지망생처럼 난 막막한 기분에 시달렸다. 문장마다 나라는 주어 대신 허구의 인물을 내세웠다. 그럴 땐 차 트렁크에 전에 다 써뒀다가 깜빡 잊고 묵혀둔 기가 막힌 원고라도 있었으면 싶었다. 그런 원고가 있다면 한강 바닥이라도 뒤져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내 모습과 달리 단호하게 "그래 결심했어"하고 외치면서 상상도 하기 힘든 험준한 길을 떠나는 소설적 화자가 필요했다.
혼란을 머금고 회사를 빠져나오니 오전 10시였다. "이 시간에 내가 밖에 있다니." 마라톤 대회 코스처럼 거리가 한산했다. 출근한 사람이 빠져나간 도심에는 여유보다는 스산함이 배어있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픽업할까 하다가 동네 싸구려 카페로 차를 돌렸다. "이제 돈 좀 아껴야지." 난 커피를 주문하고 구석 자리에 앉아 주위를 살폈다. 창밖으로 시간이 흐르는 게 눈에 다 보일 정도였다. 날씨의 미세한 변화까지 실감할 수 있었다. 내가 그간 얼마나 빠른 템포로 살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태어나서 가장 천천히 커피를 들이켰다. "나 지금 나왔어."
무작정 여자친구 품에 안기고 싶었다. 제발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기를 바랐다. 여기서 지금 뭐 하냐고. 앞으로 뭘 할 거냐고. 총선에서 낙마한 중견 정치인처럼 어디 틀어박혀서 정국 구상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리산에 있는 사찰에라도 들어가면 어떨까. "책상 하나랑 맥북 하나 들고 풀만 먹으면서 글을 쓰면 어떨까. 원고지 천 매 짜리 장편 소설 하나 탈고하고 나오는 거야. 진짜 죽이는 걸로다가." 그런 생각을 하니 분명히 아직 다 망한 건 아니었다. 아직 뭐라도 할 여력이 있었다. 고기 탄 맛이 나는 커피를 마저 들이켜고 나는 내가 아직 망하지 않은 이유를 떠올렸다. 우선 첫 번째, 지금 마시는 커피가 너무 맛있었다. 두 번째 아직 쓸 얘기가 남아있었다. 카페인이 온몸에 스며들면서 열이 돌자, 정체 모를 안도가 찾아왔다.
힘을 내서 미처 짐 정리를 마치지 못한 사택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허술하고 누추한 세간이 눈에 들어왔다. 딱 씻고 잠만 잘 수 있는 숙소였다. 여기서 몇 년을 살았던가. 짐 정리라고 할 것도 없었다. 책 몇 권에 옷 몇 벌 그리고 침구류와 세면도구를 챙기니 내 낡은 해치백 소형차에 다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퇴거 점검을 받자 15년 직장생활의 종지부가 찍혔다. 중언부언 비문이 많은 문장이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마침표를 찍은 기분이 들었다. 마침표를 찍었으니 이제 행갈이를 할 차례였다.
나는 차에 올라 그간 모은 돈으로 구한 오피스텔로 향했다. 김혜리 작가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틀며 <내가 아직 망하지 않은 이유>라는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접어든 길, 경부고속도로를 오르는데 책의 목차가 하이패스처럼 자동으로 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망하지 않은 이유를 적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가 살아갈 만한 이유도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비생산적인 서른 후반의 남자는 대체 어떻게 1인분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생애주기에서 한창 일할 때 프리랜서가 되겠다고 선언한 이 무책임한 존재도 각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까. 내 계획대로 글이 나온다면 아마도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으로 첫 에피소드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 현수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쌍절곤을 들고 설치자, 참다못한 아버지가 훈계하듯 쏘아붙인다. "그렇게 살면, 잉여 인간이야! 잉여 인간!" 그렇게 따지면 <내가 아직 망하지 않은 이유>는 '잉여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한 남자의 분투기 정도가 될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아마도 쪼들리는 돈과 허둥지둥하다 실수를 연발하는 N잡러의 삶에 관한 웃픈 농담이 될지도. 뭐가 됐든 한 편의 성장드라마로 바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아직은 다 알 수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