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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ug 23. 2023

내가 주민센터에서 알로에를 먹은 이유

 나는 퇴직 후에 하루가 통으로 비었지만 도통 원고 집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입이 끊긴 상황에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살긴 어려웠다. 운동하고 식사하는 평범한 일상이 모두 사치였다. 영 밥맛이 없었다. 통 기운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고, 당최 만날 사람이 없었다. 어디 하나 도움 청할 곳도 없고, 가족에게도 손을 벌릴 처지가 아니었다. “그간 15년을 일했으니 한 달 정도는 쉬어도 괜찮잖아.”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 난 전업 작가로 살고 싶었다. 글로 돈을 벌고 싶었다. 다시 직장으로 기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글로 먹고사는 삶의 범위를 넓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자존심부터 굽혀야 했다. 난 우선 ‘링커리어’, ‘위비티’ 같은 곳에서 글 쓸 수 있는 단기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구직을 위해 ‘숨고’와 ‘사람인’에도 내 프로필을 등록했다. ‘청년센터’와 ‘평생교육원’에도 초심자를 위한 글쓰기 강연 프로그램을 올렸다. 전화만 주면 언제든 달려간다는 멘트도 덧붙였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니 필연적으로 공모전 사이트에 들어갔다. 관공서에서 동네 도시 재생 서포터즈를 구한다는 기사를 봤다. 서포터즈가 하는 일은 취재와 홍보 기사 작성이었다. 전이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잡일이었다. 잡일이라니. 우선 그런 고정관념부터 없애야 했다.


 나는 그렇게 작가가 하는 일의 기준을 바꿨다. 취재와 자료조사를 거쳐 몇 자라도 써서 어디에라도 글을 올릴 수 있다면 다 작가의 일로 여기기로 했다. 쉽지 않았지만, 수입을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바로 옆 동네 주민센터에서 모집하는 도시 재생 서포터즈 기자단에 지원했다. 지원 자격은 블로그 보유 여부와 39세 이하의 연령이었다. 39세는 청년의 상한이다. 전국 대부분의 행정자치구에서는 청년의 나이를 39세까지로 정해놓고 있다. 이것도 처음 안 사실이었다. 불혹에 다다라서 청년 행세라니 부끄러웠다.


주민센터에 메일을 보낸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시간 되시면 지금 들르라는 문자가 왔다. 난 급히 바지와 티셔츠를 챙겨 입고 밖을 나섰다. 언제든 전화만 주시면 달려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헬스장 간 걸 제외하면 삼일만의 외출이었다. 주민센터에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 급히 나오느라 씻지도 않고 온 터였다. 머리에 물을 묻히고 세수도 했다. 거울 속 청년은 도시 재생에 앞장설 일꾼으로 보였다. 나는 두 손으로 볼을 때리면서 주문을 걸었다. 넌 잘 해낼 수 있어. 네 한 몸 건사하는 건 쉬운 일이야. 일을 찾아보면 충분히 할만한 일이 있을 거야. 무슨 일이든 난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아. 언제나 믿음직했잖아. 늘 기대 이상으로 해냈어. 난 운도 좋은 편이야. 봐봐 오늘도 눈을 떴는데 정확히 7시 정각이었잖아. 오늘 뭔가 괜찮은 일이 벌어질 거란 신호야.


 주민센터 한 번 가는 걸로 바짝 쫀 내가 웃겼다. 한때는 출장차 유럽으로 가서 수십억이 호가하는 연수를 받고,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이백억이 훌쩍 넘는 계약을 성사했는데. 고작 도시재생을 서포팅하는 데 이럴 일이냐. 다시 주문을 걸기 시작했다. 난 온 세상을 우습게 봐. 그래, 내가 지금까지 한 일을 보면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거야. 내게는 이게 좋아하는 일이자 취미니까. 쫄 거 없어. 절박한 거 없어. 그냥 일을 홰. 맡은 걸 끝내면 돼. 내일이면 모든 게 나아질 거야. 뭐라도 맡으면 다 해치우는 거야. 알았지? 긴 주문과 달리 화장실 거울 속 내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난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머금은 채 인사를 하며 주민센터로 들어갔다. "혹시 김 주무관님 계시나요." 우선 도시 재생 서포터즈 담당자를 찾았다. 파티션에 얼굴을 숨긴 직원들은 날 쳐다도 보지 않았다. 어디선가 저쪽 끝자리라고 속삭이는 말이 들렸다. 사무실의 숙연한 분위기가 내 몸을 움츠리게 했다. 나는 작가의 마음으로 사무실을 관찰했다. 반복적이고 정적인 직업을 굉장히 오래 한 사람들 특유의 무심한 얼굴이 보였다. 이 장면은 잘 기억해 뒀다 글에다 써먹어야지. 아무런 표정도 없이 키보드만 두드리는 사람들. 그 사람이 공무원이든, 교사든, 관광 가이드든 누구든 간에 다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랬으니까.


 파티션 뒤에 있던 흰 셔츠에 푸른색 바지를 입은 직원이 나오더니 자기 옆 스툴에 앉으라고 했다. 그는 다짜고짜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난 음주 단속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순순히 주민등록증을 넘겼다. "잠시만요. 복사 좀 하고 계약서 드릴게요" 그는 날 보지도 않고 복사기에 민증을 넣더니 급여는 글 하나당 10만 원이라고 했다. “아 네네.” 생각보다 높은 금액에 고무된 나는 불쑥 의욕이 솟았다. 정해진 글 분량이나 꼭 넣어야 하는 내용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김 주무관은 복사를 다 끝내더니 계약서와 함께 작은 병에 든 알로에 음료수를 내밀었다. “한 잔 드시고 가세요. 자세한 내용은 메일로 드리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네, 저 알로에 좋아해요. 건더기가 씹히잖아요. 꼭 조갯살 같아요." 난 계약서를 들춰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가 시킨 대로 했다. 알로에 병마개에 덮인 비닐을 까고 뽕 소리가 나게 뚜껑을 열었다. 꼴깍꼴깍. 그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서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모니터를 바라봤다. 내 손에 봉투도 없이 들린 계약서는 프리랜서로서의 첫 시작을 의미했다.


 난 테이블에 놓인 쿠크다스를 하나 까먹으면서 주민센터를 구경했다. 입구 근처에 앉은 최 주무관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책상에 놓인 사무자동화 실기 책이 보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나. 비교적 최근에 나온 김금희 작가의 짧은 소설집이 보였다. 그 옆에는 이승우 작가의 소설도 있었다. 제목이 뭐냐. 한낮의 시선. 따분하고 무심하게만 보였던 그의 뒤통수가 달라 보였다. 그의 얼굴이 궁금해졌다. 그를 가로막은 직업윤리라는 파티션이 어쩌면 그의 취향, 삶, 꿈, 뭐라고 해도 좋을 무언가를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인생의 상당 부분을 고지식하게 살았다. 매우 관습적으로 굴었다. 모험을 싫어해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들 입을 모아 안정적이라고 말하는 직장에 취업했다. 그 이후로도 남들이 납득할 만한 길을 따랐다. 내심 속으로는 전업으로 글을 쓰고 이따금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기를 바랐다. 글 감옥에 갇히는 건 내 은밀한 욕망이었지만 주위 눈치를 보며 전형적인 삶에 안착했다. 난 작은 방에 의자와 책상만 있으면 되는 사람이었지만 관습에서 벗어난 길은 꺼렸다. 그러기에는 난 너무 착한 아들이었다.


 나는 내 소망보다는 부모의 뜻에 부응하여 살았다. 그래서 한 직장을 그렇게 오래 다녔고, 제때 결혼하지 못해서 죄스러웠고, 안정된 생계를 위해서 월급 대부분을 적금에 넣었다. 나는 내가 평범한 인간, 안정된 삶을 위해서라면 간이라도 빼놓을 인간 이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생계를 위해 감내한 굴욕과 모욕감이 그걸 증명했다. 일하는 동안에도, 잠을 자야 할 시간에도 나를 휘감은 굴레에 번민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한밤중에 발작적으로 깨길 반복했다. 회사 파티션에 머리를 대고 밖으로 나갈 해방구를 뚫기 시작했다. 바깥이 무섭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보다 어딘가가 더 낫다고 여겨졌다. 답도 없는 소리였지만 나가면 답도 보일 것 같았다. 그건 제멋대로 살자는 게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난 나와 어울리는 곳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나는 두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직장인과 작가. 그건 붙여놓으면 유능해 보이지만,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죄목이었다. 난 순응에 따르는 한계나 그것이 주는 안락 어느 쪽에도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 다만 내가 진짜 순응하고 싶은 곳에 있기를 바랐다. 내가 부딪치고 싶은 한계에서 고꾸라지고 싶을 뿐이었다. 이제 다 늙었다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이제 고작 서른일곱인데! 불안정한 삶을 걱정하는 일은 여든다섯에 가서 하면 돼! 내 손에 들린 서포터즈 계약서에 알로에 색 얼룩이 생겼다.


 난 검색창을 열고 도시재생과 관련한 블로그 포스팅을 모아봤다. 다들 내용이 비슷했다. 낙후한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넣을 방법. 수두룩하게 빽빽한 아파트 말고 작은 골목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방법. 구독자가 많은 블로거가 그 매력을 밝혀달라. 공무원은 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그래, 충분히 할 수 있다. 내 문화자본으로. 내가 본 영화와 책에서 본 대로. 전형적인 문장 안에 일말의 문학적인 수사가 들어가도록. 난 작가니까 한끝 다르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직도 가족에게 내 퇴직 소식을 전하지 못한 터였다.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었다. 가족은 내 처지에 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었지만, 내 결정을 이해할 힘은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건 부모 탓이 아니라 평소 나라는 인간을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한 게으름의 결과였다. “아, 일하죠. 그냥 일해요. 별일 없어요. 곧 집에 갈게요.” 언젠가 어머니는 항상 말이 적은 내게 엄마한테는 뭐든 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호한 말투였다. 하지만 난 어머니에게 복잡한 속을 터놓을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속이 평온하기를 바랐다. 37살 아들이 월급이 끊겨서 더는 동남아 패키지여행에 돈을 보탤 수 없다고 얘기하긴 싫었다.


 서포터즈 게시글을 다 써서 보냈더니 김 주무관에게서 짤막한 메일이 왔다. ‘홍보 기사는 너무 방만하게 쓰시면 안 돼요. 문장 기교도 좀 덜어내시고요. 더욱이 만연체는 안 됩니다. 그냥 쉽고 편안하게 읽힐 수 있게 써주세요.’ 나는 바로 답장했다. ‘죄송합니다. 심플하게 사진 위주로 해서 올릴게요.’ 김 주무관은 눈웃음 표시로 화답했다. ‘아까 급하게 보고할 게 있어서 제가 신경을 못 써드렸는데 다음에 오시면 차 한잔하시죠.’ 나도 눈웃음 표시로 화답했다.


 글을 고치려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뭐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문득 아홉 살 적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비탈길에서 롤러블레이드를 타다 머리가 깨져서 엉엉 울었다. 급하게 수술해야 해서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갔다. 택시를 탈 상황이었지만 마을버스를 타면 병원까지 십 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난 엄마 품에 기대 피가 나는 머리를 누른 채 버스에 올랐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괜찮아. 별거 아냐. 머리 꼭 누르고 있어.’ 어머니 덕에 난 불안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수술대에 누워서도 별로 겁나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다시 어머니를 가까이 두고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엄마, 나 머리가 깨질 것처럼 어지러워. 이제 또 뭘 해서 먹고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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