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나도 모르게 눈이 떠졌다. 내게 하루라는 텅 빈 시간이 주어졌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텅 비어있었다. 출근만 없으면 꽤 괜찮은 삶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 빼고 다 출근한 아침이 오니 장기 적출이라도 당한 사람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퇴직은 내게 글 쓸 시간을 주었지만, 그럴싸한 계획은 앗아갔다. 명함을 내밀면서 뭘 하며 산다고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사라졌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면서도 문화와 예술에 조예가 깊은 아무개라는 캐릭터도 이제 지난 일이다.
이제부터는 누군가 무슨 일 하냐고 물으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작가라고 얘기해야 한다. 민망해서 되려 더 당당하게 작가라고 얘기해야겠지. 에세이스트라고 말하는 게 더 쿨 해 보이려나. 미심쩍은 상대의 얼굴에다 대고 브런치에서 상도 받았다고 덧붙일 것이다. 그러다가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면 조바심이 나서 브런치가 뭐라고 주절주절 설명하겠지. 그게 말이에요. 다음카카오 아시죠. 거기가 작가 등용문이래요. 말을 뱉다 말고 민망해서 입술을 살며시 오므리겠지. 그러지 말고 이렇게 얘기할까. 쿨하게 글로 밥 벌어먹고삽니다. 그건 거짓말이지. 난 글로는 밥 먹고 못 산다. 글로 낭만을 먹고 어쩌고 저쩌고. 됐다 됐어. 작가는 무슨, 전업작가 지망생이 딱 어울린다.
캄캄한 집 안을 걸어 다니니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하루키 소설 남자들은 일을 안 해도 될 만큼 돈이 충분한데, 나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걔들은 아침부터 파스타를 볶고 간단하게 맥주까지 곁들이던데 나는 일회용 햇반에 차가운 닭가슴살이 다다. 물론 나도 돈은 있다. 방금 '돈' 뒤에 '꽤 있다'라고 쓰려다가 지웠다. 퇴직금과 그간 모아둔 돈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돈이었다. 나는 많다고 생각해도 세상은 고작 그거냐고 할만한 돈이긴 했다. 나는 회사를 나와서도 세상 기준에서 내가 어느 정도인지 기가 막히게 알았다. 딱 봐도 잔잔바리다. 이 돈으로 안심할 순 없다. 정확히 말하면 텅 빈 시간이 자아내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나는 커피를 내리면서 가끔 심심풀이로 낙서하던 연습장을 폈다. 아침에 눈 뜬 직후라서 그런지 요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오줌이 마려워서 다리를 비비 꼬면서도 불안을 덜어낼 현실 자각이 더 급했다. 의자 끝에 엉덩이 한쪽만 걸치고 앉아서 내가 한 달에 버는 돈을 적어봤다. 잡지사에 프리뷰 기사로 15만 원. 취재 원고 20만 원. 인세는 음 됐다. 이번 달에 출판 계약금 100만 원. 그래 우선 한 달은 됐다. 근데 다음 달은 어쩌지.
난 불쑥 우유배달을 떠올렸다. 복잡한 거 없이 몸으로 때우고 싶었다. 난 운동을 좋아하니까. 유산소 운동차 열심히 이 동네 저 동네 뛰어다니면서 땀 좀 빼야지. 다 끝나면 우유 한잔하고 집에 들어와서 샤워하고 글을 쓰면 상쾌하지 않을까. 아니면 헬스 트레이너에 도전해 볼까. 매일 헬스장에 가니까 겸사겸사 좋지 않을까. 그 업계는 문턱이 낮다던데. 무슨 자격증을 따야 하지. 사람은 사는 대로 산다고 출근 안 한 지 하루 만에 다시 어디론가 출근하려고 기를 쓰는 내가 징그러웠다. 이러면 퇴직이 무슨 의미가 있냐.
노트를 죽 찢어냈다. 손날로 노트 위에 덮인 먼지를 털어냈다. 그래, 다시 정리해 보자. 난 무엇 때문에 우유를 배달하려고 하는가. 여자친구도 잘 못 가르치면서 무슨 트레이너를 하겠다고. 내가 일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뭔가. 우습게도 내가 땀 흘리고 마시는 흰 우유의 청량함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같은 이유로 나는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마시는 단백질 음료 맛만 생각했다. 나는 노동을 생각하면서도 쾌하고 싶었다. 우유를 먹고 속이 든든하면 내가 시달리는 이 모든 불안이 차츰 사라지리라 생각했다. 몸에 근육을 붙이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다. 그래, 난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서 프리랜서 작가가 된 거 아닌가. 그걸 잊지 말자.
이제 서른일곱. 지금까지 모아둔 돈을 갉아먹기만 하면서 살 수는 없었다. 고정적인 수입이 끊긴 지금, 내게는 잉여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한 당위가 필요했다. 역시 문제는 돈이었다. 내 불안의 요체는 돈이 맞았다. 글만 써서 월 200씩 나올 구석이 있다면 나도 아침 눈 뜨자마자 바로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로 출근했을 것이다. 참다못해 화장실로 달려갔다. 쏴아. 소변을 보며 내가 가진 돈이면 몇 년을 살 수 있을까 계산했다. 졸졸졸. 한 삼십 년은 되지 않을까. 똑똑똑. 괜찮긴 뭐가 괜찮아. 늙어서 아프면 어쩔 건데. 결혼이라도 하면 어쩔 건데. 사기라도 당하면 어쩔 건데. 부르르르. 난 은행 앱으로 계좌를 열어서 내 예금 잔액을 살폈다.
지출내용과 함께 방만하게 뻗어나간 내 욕망의 뿌리들. 그놈의 스타벅스랑 초밥 정식. 영화관과 YES24. 이제 다 끝이다. 난 쿠팡에 들어가서 냉동 닭가슴살을 잔뜩 시켰다. 출근과 퇴근이 사라졌으니 입 속 뻑뻑함 정도는 감내해야지. 아무렴. 이제 커피는 다 집에서 내려 먹는다. 영화는 이제 다 넷플릭스다. 카페와 식당에서 쓰는 돈만 아껴도 지출의 반 이상이 줄어들었다. 여자친구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내가 다 계획이 있어. 들어봐. 이제 우린 닭가슴살만 먹고 집에서 면벽참선할 생각이야. 책 읽으러 도서관에 가지 않을래? 거긴 에어컨도 공짜고 커피는 삼백 원이면 자판기에서 달달한 게 나오더군. 어때? 괜찮지? 여행 가고 싶다고? 동네 산책이 다 여행이야. 동네 카페 투어하자. 이런 내가 싫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야. 이럴 순 없는 노릇이다. 뻗어나간 욕망의 뿌리는 땅을 파헤치지 않는 한 잘라낼 수 없다. 단호한 결의가 필요했다. 난 노트 한 장을 더 잘라내고 연습장 위에 모나미 볼펜 똥을 쓱 문질렀다.
노트 맨 위에 제목부터 적었다. <사람 구실하고 살 수 있는 한 달 지출 계획> 써놓고 보니 내게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있었다. 내가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들. 우선 여자친구와의 데이트 비용. 음, 한 달에 30만 원가량. 식비와 통신비 등 자질구레한 걸 다 모으면 50만 원가량. 아니네, 관리비랑 부모님 용돈 그리고 보험비도 내야지. 30만 원 더. 끼니로 때울 닭가슴살과 햇반. 아아, 그리고 프로틴 파우더랑 영양제도 있는데. 이게 뭐야, 주유비가 한 달에 20만 원이나 해? 적다 보니 점점 더 늘어났다. 사람 구실은 너무 비쌌다. 우유배달에 신문 배달까지 해도 모자란 금액이었다.
영화관은 포기하자. 책은 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핸드폰은 알뜰폰으로 바꾸고, 생명보험은 해지하자. 여자친구랑은 되도록 집에서 데이트하자고 해야지. 헬스장은 동네에서 가장 싼 곳을 찾기로 했다. 그리고 광고에서 '내 차 팔 땐 전화해'라고 난리 치던 업체 세 곳에 내가 먼저 견적을 의뢰했다. 내겐 따릉이가 있으니까. 안 그러려고 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왜 그래 민진아. 출근만 안 하면 행복한 삶이라며. 뚝 그치지 못해.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이 생각났다. 작가는 '탈근대'를 이렇게 정의한다. 돈을 주고 경험을 사서 문화자본을 축적하는 시대. 멋진 말이다. 문화자본, 나는 이 단어를 이곳저곳 많이도 써먹었다. 근데 그건 시대 탓이 아니라 주머니 사정 때문이었다.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니 이왕이면 형체가 없는 경험을 사는 게 이득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난 문화생활에 돈을 참 많이도 썼다. 없이 살기에 그렇게라도 자존심을 챙겨야 했다.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 후, 봐봐, 내 일상이 그렇게 지루하지만은 않다며 자위했다. 난 그래서 문화에 관해서라면 내가 이건희이고 정주영이었다. 왓챠피디아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4,443시간이나 보셨네요. 당신은 상위 0.01%에 꼽히는 '베테랑 영화인'입니다." 내가 쌓아온 문화자본 리스트를 쭉 내리다 보면 뿌듯해진다. 정말 잘 살았구나. 근데 그게 밥이 될까? 글밥을 먹고살지 못하듯이 문화자본은 이자도 붙지 않았다.
이제 문화자본을 많이 쌓았으니,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마이너스가 되지 않는 삶을 구축해야 했다. 이번에는 노트를 찢지 않고 다음 장으로 넘겼다. 3초 정도 고민하다 다시 맨 위에 제목을 붙였다. <문화자본으로 먹고살기 계획> 좀 거창한가. 현실성이 부족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좀 나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유배달은 문화자본이 똥값 되면 그때 생각해 보자. 아직 내게는 다음 이야기가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