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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ug 30. 2023

북토크빌런 VS 허영빌런

 어느 아침,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난 자동으로 목소리를 깔고 두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작가님! 오래간만이네요. 홍대 땡땡서점에서 북토크 해주실 수 있나요. 아무개 작가님이 너무 바쁘셔서 도저히 못 하시겠다고 하시네요. 그분이 요즘 워낙 찾는 데가 많잖아요." 내가 독서모임 진행 대타, 운전 대타는 다 해봤지만 북토크 대타는 처음이었다. 거절하고 싶었으나, 출판사의 부탁을 거절할 처지는 아니었다. 가뜩이나 1쇄도 다 못 팔아서 죄스러웠기에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네, 저 그날 여유 있어요. 일정이 텅 비어있답니다.' '와, 작가님 감사해요. 제가 스타벅스 기프티콘이라도 하나 보내드릴게요.' 내심 기대했지만 내 새 원고에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카카오맵으로 검색해 보니 북토크 장소는 연남동 부근에 있는 작은 독립서점이었다. 인스타그램으로 몇 번 본 적은 있었는데 '별로네' 하면서 넘겼던 곳이었다. 난 심각한 얼굴로 내 책을 뽑아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무조건 더 잘 썼어야 했는데. 후회해 본들 무엇하리. 그나저나 얼마나 잘 팔리길래 북토크를 튕기냐. 난 책도 잘 팔리고 심지어 얼굴마저 잘 생겨서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그 베스트셀러 작가가 미워졌다. 한 푼 두 푼이 아쉬워서 철 지난 책으로 북토크에 다니는 내 처지가 좀스러웠다.  "거, 문장도 별로더구먼 왜들 그리 좋다고 난리를 치는거야."


 북토크 당일 아침이 되자 걱정이 도지고 긴장이 옮아 붙으면서 새벽같이 눈이 떠졌다. 이른 아침부터 지하철을 타고 가서 연남동 철길 주변을 계속 빙빙 돌았다. 근처 노포에서 짬뽕을 마시듯 먹고 시간 맞춰 서점으로 향했다. 서점 문을 열자 주인으로 보이는 분이 눈을 모니터에서 떼지도 않고 키오스크처럼 일정한 톤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책 구경하세요. 음료 주문하실 때 말씀하시고요."

난 스피커 볼륨을 높이듯이 목소리를 최대한 밝게 높이고 말했다. 

"안녕하세요, 박민진이라고 합니다”

“아, 예약은 하셨나요?”

“아, 제가 오늘 북토크 작가라서요.”

“아, 작가님 이름을 제가 몰랐네요. 죄송해요. 어서 오세요, 음료는 뭐 드시겠어요.”

“커피로 부탁드려요. 아아로다가."


 서점 주인은 한숨을 푹 쉬면서 커피를 내려줬다. 커피를 내리는 와중에도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뭘 보는지 궁금해서 슬쩍 훔쳐봤지만 엿보기 방지 필름이라도 붙어 있는지 캄캄했다. 그래 난 대타니까. 아무리 대타라도 그렇지 어두컴컴한 실내는 그렇다 쳐도 문밖에 안내 문구 하나 없는 상태는 당황스러웠다. 플래카드까지 붙여달라는 건 아니지만, 왠지 섭섭했다. 앉으라는 말이 없길래 창가에 자리를 잡고 이제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는 연남동의 햇빛을 받았다. 책방을 좀 둘러보니 책에 일관성이 없었다. 내 눈에는 그냥 아무거나 꽂아 놓은 것처럼 보였다. 주인장을 향한 불신이 피어올랐다. 절대 나를 환대해 주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난 삐지지 않았다.


 북토크까지 이십 분 정도 남아서인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도 안 오면 집에 갈 수 있겠지.' 딸랑딸랑. 내 헛된 바람이 싹을 틔우기 무섭게 첫 손님이 왔다. '오늘 여기서 북토크하나요?' 난 환히 웃으며 잘 오셨다고 추운데 오느라고 고생하셨다고 인사를 건넸다. 주인장은 내게 손님 응대를 맡기고 다시 모니터 화면을 보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주인장은 내 책을 읽기나 했을까. 그럴 턱이 있나. 혹시 지금 웹툰 보느라 날 꿰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하는 건가. 내가 작가로 성공해서 복수할 거라고, 진짜. 난 커피를 마시면서 북토크 대타로 받은 수고료와 내가 책 팔아서 번 돈을 견줘 봤다. 똔똔이네. 퇴직 이후로 궁해진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자꾸만 계산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안 그러려고 해도 곳간이 바닥을 드러내자 어쩔 수가 없었다. 


 북토크는 순조로웠다.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쓴 책이 도시에서 혼자서 문화생활을 하는 홀로족에 관한 내용이라서 그런지 다들 적극적으로 발언에 참여했다. 나도 나대로 늘 고민하던 주제라서 말이 술술 나왔다. 그 순간만큼은 김영하 작가도 부럽지 않았다. 나 스스로 신기할 정도로 말이 트인 날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신이 나서 농담까지 섞어 뱉었다. 그러다가 어느 틈엔가 요즘 벌어지는 사회 재난 상황과 전국에서 벌어지는 집회, 정부 비리와 노동단체의 분열 등 사회 문제로 이야기가 번졌다. 아마 내가 뉴스 얘기를 꺼내서 그랬을 텐데, 심각한 표정을 한 대학생들이 이를 거들었다. 이를 기점으로 가장 일찍 도착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키가 큰 남자분이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자기가 인근 청년 단체 소속이며 우리 시대는 작가들이 이런 문제에 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해야 한다는 소명 의식에 관해 얘기했다. 적극성과는 거리가 먼 데가 사회를 향해 뭔가를 발언할 생각 따윈 일절 없는 나로서는 그의 말이 당황스러웠다. '엥, 이 사람 왜 이러지. 난 말랑말랑한 얘기만 하고 싶은데.' 너무 분위기가 가볍나 싶어서, 좀 있어 보이게 말을 해보려고 심각한 주제를 꺼낸 내 불찰이 뼈아팠다.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됐다. 서점 주인장이 나서서 수습해 주길 바라며 나는 그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가 대화 방향을 다시 내 책으로 돌려내길 바랐다. 근데 그는 내가 책방에 들어설 때부터 쭉 내 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주인장은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들 대화를 나누는 게 맘에 드는 눈치였다. 그래서 결국 키 큰 남자가 날카롭게 꺼낸 질문에 대해 내가 대답할 차례가 왔다. 다들 똘똘한 눈으로 내 입만 보고 있었으니까. 난 현 정부 노동 정책에 대해서도, 요즘 노동자 근로 환경에 대해서도, 속 시원히 얘기할 만한 지식이 없었다. 난 얼버무리면서 그의 발언을 눙쳤다. 


 내가 말을 끝내자마자 키 큰 남자는 마치 진중권처럼 안경을 고쳐 쓰고 다시 발언을 시작했다. 그가 입은 붉은 패딩 조끼가 마치 노조 위원회 유니폼처럼 보였다. 머리띠만 매지 않았지, 말투와 다부진 입매는 거의 맬컴 엑스에 빙의한 상태였다. 난 덫에 걸려들었음을 직감했다. 말로만 듣던 '북토크 빌런'인가. 그는 국제 금리 상승과 세계 금융위기가 초래한 부담을 청년들이 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현재 부동산 정책이 청년들에게 끼친 악영향에 관해 일갈했다. 북토크가 점점 더 산으로 가는 게 느껴졌다. 산도 거의 히말라야 고봉이라서 다시 내려오려면 산소통이 두 개는 더 필요해 보였다. 쭉 둘러보니 다들 곁눈질하며 집에 가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다. 왜냐하면 그 누구 못지않게 내가 가장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거울이 없는데도 내 난처하고 멍청한 표정이 다 보였다. '내가 다시는 북토크 하나 봐라. 김겨울 작가가 사회를 봐준대도 안 한다.' 


 오늘 북토크 대타를 맡기고는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 편집자도 원망스러웠다. 내가 교정 교열 대충 해 줄 때 알아봤지. 저 망할 사회자는 대체 뭐 하는 거야. 내가 딴생각하는 사이에 키 큰 남자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만,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문 앞에 있던 여자분이 기회를 놓칠세라 가방을 챙겨서 떠났다. 그 뜨거운 커피를 벌써 다 마시고 토끼처럼 소리도 없이 토낀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정리해야 했다. 최근에 억지로 읽은 책 내용에 몇몇 쪼가리 기사 내용을 더듬어서 개인 복지와 국가 발전이 균형을 찾는 법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기본소득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지 발언을 했다. 내 나름대로 정리하고 다음 질문으로 넘기려고 했다. 이를 귀신같이 알아챈 남자는 지난주 광화문에서 경찰이 과잉 진압한 사건을 봤냐면서 다시 논지에 불을 붙이려고 했다. '경찰 수뇌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의경들을 이용해서 청년들과 싸움을 붙이고 있어요.' 


 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의 말을 끊었다. “맞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근데 이번 시간과 어울리지 않는 주제 같네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도 될까요.” 하지만 그는 지지 않고 이 얘기는 내 책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억지를 부렸다. 이 책을 쓴 나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그는 한창때의 에미넴처럼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끝까지 정중했던 내 목소리도 점차 높아지고 있었다. 말리면 안 돼. 말리면 끝장이야. 다들 나만 보고 있잖아. 저 빌런을 내가 정리해야 해. 결국 잠시 옥신각신하다가 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을 읽어보셨나요. 위험사회론에 관해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지요?” 울리히 벡의 이름을 꺼낸 건 나조차도 놀란 우연이었다. 아침에 긴장을 털어내려고 듣던 팟캐스트 신간 소개 코너에서 들은 이름이었다. '지금 내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지.' 나는 최대한 기억을 더듬고 내용을 꾸며내서 서구 중심의 산업화와 근대화가 위험사회를 낳았다고 분석한 그의 저서 내용을 언급하면서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읽고 독서 모임을 하면서 난 내가 아는 바보다 훨씬 더 많이 아는 척하는 수법에 능통했다. '나중에 작가로 성공 못 하면 약이라도 팔고 다녀야지.'


 난 유시민 못지않게 부드럽고 절묘한 말로 그의 난동을 진압했다. 키 큰 남자는 갑자기 급격하게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눈알이 흔들리고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 말이 얼토당토않다고 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 투였으나, 사실 그는 자신이 울리히 벡을 모른다는 지점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역시 내가 정확하게 읽었다. 그는 모름에 취약한 타입이었고, 앎을 말하는 것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울리히 벡을 모른다는 사실에 엄청나게 안도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그가 자신의 유식함과 박식함을 강박처럼 표현해야만 하는 게 약점이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건 나와 몹시도 닮은 약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는 나와 동종의 빌런이었다. 이 아는 척 대잔치의 피해를 본 건 내 책을 읽고 온 고마운 북토크 참가자들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죄송할 따름이다.


 독서 모임을 자주 하면서 느끼는 건데, 나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느낄 때 힘을 얻고 할 말이 없을 때 기운을 잃는다. 고치고 싶은 고질병인데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증세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고 자꾸 헛소리하는 것이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지적 허영이 내가 책을 읽게끔 했다. 편히 자다가도 있어 보이는 글 하나는 써내야 한다고 내 귓불에 속삭였다. '이걸 읽고 또 어디 가서 아는 척해야지!' 나는 내가 모르는 얘기를 뱉는 빌런 앞에서 금세 표정이 어두워졌고 말문이 막혔다. 그래서 다시 허영으로 되갚은 것이다. 허영 곱하기 허영은 매우 큰 허영일뿐일 텐데 말이다. 두 남자의 투 엑스 라지 허영이 내 북토크를 망쳐버렸다. 


 그는 내 공격을 가뿐히 넘어서서 대화 주제를 지방 일자리 문제로 국한했다. 그는 지방의 중요성을 인정받는 게 시급하다면서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주의, 지역 경제를 바탕으로 한 계획 경제 등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하나같이 이때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용어들이었다. 난 어쩔 줄 몰라 잠시 말문이 막혔다. 나는 그런 주제들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주제와 관련된 내용과 인물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런 주제를 다루는 법을 훈련받지도 않았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단지 창피를 당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제야 보다 못한 책방 주인은 짜증이 난듯한 목소리로 책 얘기나 하자고 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책방에서 누군가 '울리히 벡은 제가 대학원 논문으로 써서 잘 아는데, 그는 위험사회론을 마구잡이로 가져다 쓰라고 얘기한 게 아닙니다'라고 했다면 난 아마 바로 고개를 숙이고 도망쳤을 것이다. 그만큼 아는 척은 위험하고 무모한 짓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다시 내 페이스를 찾고 몇몇 분에게 질문까지 받으며 북토크를 무사히 매조졌다. 너무 감사하게도 북토크가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 있던 열 명 남짓한 분들이 내 책을 모두 사주셨다. 나와 사진도 찍고 오늘 좋았다면서 격려도 해주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빌런으로 보였던 키 큰 남자분의 사과도 받았다. 아까는 자기가 조금 흥분해서 죄송했다며, 울리히 벡의 어떤 책을 보는 게 좋을지 물었다. 난 울리히 벡의 책은 다 좋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낯이 뜨거워서 더는 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고개를 숙였더니 그의 허름한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거리 곳곳을 오가며 행동하는 사람일 테지. 나는 말로만 떠들면서 대체 무슨 얘기를 했던가. 


 집에 가는 길에 울리히 벡을 위키백과로 찾아봤다. 훌륭한 업적을 지닌 분이었다. 뭔 소린지 통 알아먹기가 어려웠다. '아, 쪽팔리네! 진짜.' 2호선을 타고 열차 문 앞에 기대서자, 온몸에 긴장이 풀렸다. 누구도 들을 수 없는 나지막한 비명이 마포대교 위에 흩뿌려졌다. 이제 해가 지고 있었다. 왜 나는 모른다는 걸 인정하지 못할까. 잘 모르니 죄송하다고 넘어갔으면 될 일을. 나는 대체 왜 항상 이 모양일까. 너무나 간절하게 타인의 칭찬을 갈망하는 본심이 두려워서 오히려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타인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내쳐지는 느낌이 들까 봐 두려운 걸까. 그래서 나는 언제나 한 걸음 다가가다가도 즉시 물러설 태세를 갖추는 것일까. 그래서 힘든 일이 생겨도 언제나 밝은 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한 척 웃는 걸까. 갑작스럽게 퇴직하고 나서 두렵고 외로워도 허영 때문에 다 잘되고 있다고 허풍을 떠는 걸까. 이러니 내게 모질게 구는 이들을 위한 합리적인 이유를 내가 먼저 나서서 깔아주는 걸까. 그때나 지금이나 난 여전하고, 지적 허영이라는 약점은 잘 고쳐지지 않는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울리히 벡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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