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수에게 전화가 왔다. 폰에는 '병수병신'이라고 적혀 있었다.
'바비디 뭐 하냐.'
항시 경황이 없고 말을 더듬는 게 딱 학창 시절 병수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별명을 불렀다.
'어 병수병신, 오랜만이네. 뭐야 너 결혼하냐?'
병수는 오 년 넘게 회계사무소에서 일했는데 아직도 고치지 못한 어눌한 말투 때문인지 엑셀 시트만 붙들고 사는 일이 천직으로 보였다.
'결혼은 니미. 그냥 걸었지. 네가 연락을 통 안 하니까 내가 친히 안부 여쭈려고 전화하는 거 아니냐. 비도 오고 기분도 그런데 내 생각 안나더냐?'
'났지, 났지. 니 새끼가 또 어디서 차여서 질질 짜고 있을지 감이 딱 왔지.'
병수와 작년 이맘때 통화했을 때는 연애에 한창이라고 거들먹거렸는데, 지금은 또 혼자라서 지지리 궁상이란다. 안부를 주고받고 나자 나는 통 할 말이 없다는 게 느껴졌다. 우린 사는 모양새가 다르니, 공통분모가 전혀 없다시피 했다.
'너 다음 책은 언제 나오냐? 쓰고 있는 거 맞아? 작가가 책 한 권 내고 왜 이렇게 함흥차사야.'
'야 뒤질래. 작년에도 한 권 냈어. 말 나온 김에 빨리 두 권 사고 yes24 구매내역 캡쳐해서 올려. 네가 내 글을 읽든 안 읽든 상관없는데, 그래도 친구가 책은 좀 사줘야 되지 않겠냐.'
'알았어, 알았다고. 그새 책을 냈어? 재주도 좋아. 다짜고짜 회사 때려치우더니, 믿는 구석이 있었네.'
병수는 대화에서 용건을 뺀 이런저런 말을 다 하고도 뜸을 들였다. 슬슬 짜증이 날 즈음 녀석이 말을 꺼냈다.
‘너 언제 집에 오냐. 백수면 집에 와서 효도도 하고 친구들한테 밥도 얻어먹고 해야 하는 거 아냐? 그건 그렇고, 네가 좀 나서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윤정이랑 준규가 이혼할 모양이야.’
생각보다 놀랍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이혼한 커플이 어디 한둘인가. 물론 안타까운 일이지만 병수가 이렇게 전화까지 하는 건 우스웠다.
‘둘이 이혼한다는데 내가 뭘 나서서 할 게 있는데? 내가 신구 선생님도 아니고 4주 조정기간이라도 줄까?'
'무심한 새끼. 그래도 우리가 친군데 같이 잘 살도록 설득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오지랖 부리지 말어. 어디서 남의 커플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건데.'
'그럼, 술이나 마시자. 우리가 넋두리 들어주는 건 할 수 있잖아.’
난 왠지 술자리만은 피하고픈 마음에 일부러 다음 주면 어머니를 뵈러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근데 궁금하긴 했다. 왜 이혼했을까. 그 깨소금 떨어져서 고혈압을 유발하는 닭살 커플이 무슨 문제가 있었길래. 난 목소리를 가다듬고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슬쩍 나의 귀환 소식을 알렸다.
'나 다음 주에 출판사 들렀다가 안양에 한 번 들를 건데 잠시 시간이 비니 보든지 하자. 그때 하던 얘기마저 하자고.'
'바비디 졸라 바쁜 척하네. 그냥 오라면 올 것이지. 백수가 어디서 튕겨.'
'좋은 말로 할 때 작가님이라고 불러라. 이 고리대금업자새끼야.'
난 슬그머니 병수를 재촉했다.
'그럼 준규나 윤정이도 부르는 건가?'
'불러야지. 친구 좋다는 게 뭔데.'
난 죄책감을 동반한 호기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난 스무 살 넘어 직장으로 인해 전국을 떠돌며 살았다.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프랑스까지 오가면서 자연스럽게 옛 친구들과는 멀어졌다. 연락이 끊긴 건 아니었다. 문자나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다. 잊을만하면 경조사가 생겨서 삼삼오오 모여서 갈비탕이나 육개장을 먹고 헤어지곤 했다. 같은 경기도 신도시에 모여 산 우리는 아파트 단지만 달랐지 옹기종기 모여 자랐다. 난 초원마을 출신이고 병수는 성원아파트, 윤정이는 두산아파트, 준규는 한가람아파트에 산다. 신도시가 처음 분양할 때 이사를 와서 짧지 않은 스무 해를 함께 보낸 사이다. 우리 부모는 내 집 마련해서 평생 살려고 안양에 정착한 케이스다. 높디높은 서울 집값을 피해 떠밀려온 셈이다. 다른 집도 다를 건 없었다. 대부분 지금쯤이면 아파트 대출금도 다 갚고 자식새끼도 다 키워서 달랑 아파트 하나만 믿고 사는 노부부 신세였다. 자식들은 다 커서 대부분 서울이나 판교로 취직해서 통근했다. 아직까지는 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직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새 원고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해가 아직 저물기 전에 4호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만원인데, 내가 입은 터틀넥 스웨터는 또 너무 더워서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평촌역에 내려서 숨 좀 돌리고자 버스 대신 좀 걸었다. 내 유년 시절을 함께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유유자적 풍경이 안온했다. 병수, 준규, 윤정이는 다 내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매일같이 붙어 다니던 친구는 아니고 종종 만나 수다를 떨고 논 사이였다. 보통 가장 친한 친구는 같은 아파트 단지나 같은 반 친구 중에 있었는데, 녀석들과는 교내 신문 동아리에서 친해졌다. 우린 만나기만 하면 대충 회의를 하고 노래방에 갔다. 먹을 걸 잔뜩 챙겨가서 술도 좀 마셨다. 모른 척해주는 이모님에게 서비스를 재촉하며 두 시간씩 뻐기다가 나왔다. 우리 모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서도 이어졌다.
우리들 사이가 돌연 멀어진 건 내가 일찍 취업하면서 동네를 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못 가 윤정이와 준규가 연애하고 결혼 테크트리를 타면서 와해됐다. 우리들 중에서 알파라고 볼 수 있는 두 사람의 결혼은 친구들 간의 구심력을 약화시켰다. 난 이상하게 그 둘이 같은 침대에서 자고 밥을 먹으면서 살림살이 얘기하는 걸 보기가 싫었다. 아무도 정한 적 없는 친구 사이의 룰을 어그러뜨린 것에 대한 원망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난 간간이 병수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녀석들 소식을 들었다. 입이 싼 병수는 들으면 들은 대로 얘기를 옮기면서 내 생각을 물었다. 그때마다 난 퉁명스러운 말로 관심 없는 척 '알게 뭐래'라고 답했지만, 귀는 계속 열려있었다.
톡을 보니 병수는 먼저 피시방에 가 있겠다고 했다. 준규랑 윤정이는 보자고 연락했는데 둘 다 연락이 없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난 집에 가서 어머니랑 밥 먹고 가겠다고 답했다. 게임을 하는지 아무 답이 없었다. 병수는 희한하게 준규랑 윤정이가 결혼한 후에도 부부 사이에서 친하게 지냈다. 연락이 완전히 끊긴 나완 달랐다. 다툼이 잦은 두 사람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했다. 준규와 윤정이도 병수를 결혼식 사회로 세웠다. (나름 달변이라고 자신하는 나 대신 병수에게만 부탁을 했다.) 여름만 되면 셋이 놀러 다녔다. 한참 모태 독신을 사수하던 병수의 병신스러움으로 3인 관계는 끝날 줄 모르고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난 병수를 볼 때마다 항상 말했다.
‘네가 거길 왜 껴. 너도 네 친구랑 놀아. 연애를 하든지 병수병신아.’
병수는 지지 않고 항변했다.
‘걔들이 불러서 같이 놀자는데 네가 왜 난리야 난리는. 같이 안 놀 거면 초치지 말아 새끼야.’
이런 병수도 작년부터 연애에 골몰했다. 작년 연말, 정말 오랜만에 난 병수랑 준규를 불러서 동네 투다리에서 놀았는데 병수는 그날 정말 좋아 보였다. 집 앞 투다리에서 수다를 떠는 자리였는데 병수는 불쑥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왔다. 녀석이 행복해 보여서 안심이 됐다. 병수 애인이 자리를 뜨자 준규는 질문을 퍼부었다.
‘했어? 한 거야? 여행은 어딜 갔는데? 너 평생 그 입으로 밥만 먹었지. 이제 챕스틱이라도 바르고 다녀.’ 준규랑 내가 그렇게 놀려대도 병수는 화 한 번 안 내고 받아줬다. 난 준규랑 윤정이 얘기보다 병수가 왜 헤어졌는지가 더 궁금했다. 착해 빠져서 이용만 당하다가 차인 건 아닌지, 오늘 보면 꼭 물어봐야지.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지는 연애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의 부부 이혼사에 끼어드는지. 그러니까 이제 다시 독거노인이 됐으니 예전처럼 부부 사이에 껴서 놀겠다는 건가. 아무튼 병수는 병신이었다.
언제 봐도 우중충한 우리 집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오줌 색 아파트 건물을 보는 순간부터 내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시작했다. 왠지 기분을 잡쳐서 내 평온한 바이오리듬이 들쑤셔질까 두려웠다. 그냥 찍고 가는 거야. 그럼 한동안 안 올 거잖아. 띡띡띡띡. 이사 온 후로 한 번도 바꾸지 않은 도어록을 누르고 들어가자 어머니가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면서 저녁을 차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 기억 속에 단 한 번도 아버지와 사이가 좋은 적이 없었던 어머니는 시큰둥한 얼굴로 아버지와 요즘 연락이 되는지 물었다. 내가 오랜만에 와서 반갑다는 건지 오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건지 헷갈리는 태도였지만, 4인용 식탁 위에 올라온 반찬은 으리으리했다. 생굴과 보쌈에 겉절이 김치가 맛깔스러웠다.
어머니는 대충 씻고 한쪽 다리를 식탁 의자에 올리고 게걸스럽게 먹는데 어머니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간 못 뵌 사이에 이것저것 많이도 쌓여있었다. 집에 온 지 채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는 친구 자식 얘기. 이모와 그 며느리, 아버지 흉, 친척 집이 무리하게 벌린 사업 부도 등 지인에게 닥친 온갖 불운을 늘어놓았다. 난 밥그릇에 코를 박고 전혀 대꾸하지 않았다. 안 좋은 이야기만 골라서 하는 것 같아서였다. 친구 남편이 하는 파산 직전의 공장에 관해 이야기하면서는 1년 전만 해도 돈이 넘쳐나 대단한 양 거들먹거리던 양반이 경기 침체로 한순간에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도 사채까지 끌어왔다며 혀를 끌끌 찼다. 그게 안타깝다는 건지 인과응보라는 건지 아리송했다. 어머니는 장광설을 끝내며 말했다.
'우리가 집이 기울었어도 너도 착실히 일하고, 장남도 결혼해서 애 낳고 서울에서 잘 살고 하니 우리가 그래도 다른 집에 비해서 확실히 더 잘된 거야.'
어머니는 마치 자신의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찾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불행을 그러모으는 사람 같았다. 나는 점점 심기가 불편해졌다.
나는 내 퇴직 사실을 어머니에게 말하지 못했다. 어머니에겐 나의 직급과 직책이 계급장이었다. 자신의 삶이 불행하지 않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내가 그 증거물을 허락도 없이 파손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직 망하지 않았고, 실패자가 아니라고 설득할 게 없었다. 언젠가는 말해야 했지만, 내가 말하지 전에 들키고야 말 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함구해야 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머니의 말이 옳다고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우리 집은 그래도 꽤 괜찮은 편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코너는 가족들 상태 점검이었다. 연말이 되어도 연락하지 않는 형네 부부. 집을 나가서 어디를 갔는지 들어오지도 않는 아버지. 그리고 완전히 무관심한 나. 점점 더 내 신경이 곤두섰다. 신경을 꺼버릴까 했지만 어머니의 말 하나하나에 나를 향한 비난이 섞여 있어서 전원 버튼이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무심해서 가족들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말에 참다못해 화를 내고 말았다.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밥맛이 확 떨어졌지만 오랜만에 왔으니 참아야 했다. 나는 명절마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와 언쟁을 피하려고 마지못해 집에 오곤 했다. 근데 지난 명절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견뎌야 마땅했다. 그래 난 예수다. 나 손바닥이 찢어지고 오른뺨을 맞아도 다 견디리라. “의를 위하여 박해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저녁을 먹고 과일까지 싹 다 해치우고 뉴스를 좀 보다가 외출할 틈을 봤다.
'엄마 그 병수라고 기억나. 알지? 어수룩하게 생겨서 우리 집에 몇 번 왔던 애. 왜 오면 라면 끓여달라고 하고 꼭 남기던 애 있잖아. 걔한테 전화가 왔는데 준규랑 윤정이가 이혼한대. 맨날 싸워대는 통에 정신없나 봐.'
마치 난 KBS 일일드라마 줄거리를 외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어머니도 호들갑을 떨며 답했다.
'둘이 그렇게 어울리더니 어쩐 일이다냐. 무슨 일 이래. 둘 다 잘생기고 예뻐서 얼마나 보기 좋았는데. 걔네 애가 있었나.'
난 불행의 등급을 가늠하는 판관처럼 묻는 어머니에게 한숨을 내쉬면서 한심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나도 왜 헤어지는진 잘 몰라. 근데 병수가 잠깐 보자고 하는 거 보니까 뭔가 있긴 한가 봐. 둘 사이에 있었던 일로 나랑 논의할 게 있나 봐.'
엄만 날 째려보면서 표정을 확 구겼다.
'무슨 논의를 해. 헤어지면 끝이지.'
'나도 몰라. 혹시 우리가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난 병수가 날 왜 부르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외출을 위해 밑밥을 깔았다.
'다녀와서 말해줄게.'
엄만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왔는데 잠시도 집에 붙어있지를 않는구나. 너나 니 아비나 똑같아.'
엄만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면서 더는 내게 신경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버지 후드를 대충 걸쳐 입고 밖을 나섰다. 고작 삼십 분 전에 어머니의 험담에 화가 났다가, 나 역시 친구들의 불행을 저잣거리 장사꾼처럼 떠벌이고 나온 참이었다. 누구 아들 아니랄까 봐. 버스정류장 가는 길이 익숙했다. 정말 오랜만에 걷는 길이었다. 파란색 파나소닉 시디플레이어를 들으며 등교하던 골목이었다. 교복의 까끌까끌한 재질. 학교라는 지옥. 금수처럼 흉악한 수컷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난 지금의 내가 좋았다. 집과 멀찍이 떨어져서 어디를 가든 이방인으로 사는 소립자의 삶이 편했다. 회사를 다니지 않고도 도망칠 곳이 있다는 게 내겐 아직 살 가망이 있다는 구원이었다. 이 동네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면 그것으로 내 인생은 끝이었다. 내 생각이 끝나기가 무섭게 3번 버스가 도착했다.
우린 약속한 대로 범계역 몽땅 치킨에서 보기로 했다. 가게 문을 열어보니 병수가 벌써 오백을 한잔 때리고 있었다.
'야 닭도 안 나왔는데 벌써 마셔?'
매년 늙어가는 병수는 손을 훠이훠이 저으면서 말했다.
'지랄하지 말고 앉아봐 새끼야.'
우린 마치 오래된 친구들의 특권이라도 되는 것처럼 욕설을 퍼부었다. 서로를 비난하면서 애정을 확인하는 방식이었다. 서로에게 무심해졌으니 급속 충전이 필요했다. 바쁘다는 핑계도 대지 않을 만큼 뜸해졌으니, 이런 사건 없이는 만날 일이 없으니 거리를 좁히는 따스한 어휘가 넘실댔다.
'너는 그 나이에 피시방에서 놀고 싶냐. 애들이랑 뿅뿅뿅 거리는데서 칼질하니까 고독이 잠잠해지디?'
'게임을 한다기보다는 우리 길드원들이랑 합을 맞추는 거지. 의리로 뭉친 관계 아니냐. 너처럼 의리라고는 비락식혜만큼도 없는 놈은 그걸 모르지.'
'의리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나잇값 좀 해라.'
실컷 비난을 퍼붓고 나니 할 말이 없어진 우린 천장에 매달린 오래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도로공사가 흥국생명에게 세트스코어 2:0으로 발리고 있었다. 조만간 여자배구도 한 번 보러 가야지 싶었다. 커피나 마시면서 느긋하게 네트를 오가는 배구공을 보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다. 내 심란함도 흥국생명의 분홍색 유니폼에 사그라들 것이다. 병수는 배구에 심취한 나를 보며 음울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준규는 이제 이혼남이네. 난 한 번도 못해봤는데 벌써 졸업까지 했네. 준규 걔는 재혼도 나보다 먼저 할 것 같지 않냐. 그럼 또 내가 사회를 봐줘야 하나.'
'그건 그렇긴 하네. 야 박정아 진짜 스파이크 뒤지지 않냐.'
'...'
가만 보니 병수는 두 사람의 이혼을 제일처럼 아파하는 것처럼 보였다.
'누가 보면 네가 이혼도장 찍은 줄 알겠다. 좀 있으면 처 울겠네. 왜 그렇게 오버해. 이제 캠핑 따라가서 불 피울 일 없으니 좋은 거 아냐.'
병수는 놀랍도록 그렁그렁한 눈으로 항변했다.
'넌 친구가 이혼한다는데 오버가 뭐냐 오버가.'
'누가 봐도 백 퍼센트 오버지. 그지 새끼도 아니고 거길 네가 남의 커플 캠핑에 왜 껴. 운전은 또 왜 해. 아 진짜 이해가 안 간다니까.'
병수는 게슴츠레하게 나를 보더니 대뜸 말했다.
'내가 따라가고 싶어서 갔냐. 둘만 있으면 할 얘기 없다고. 나 없으면 싸우기만 한다고 불러대서 그렇지.'
난 작정한 것처럼 잔소리를 늘어놨다.
'그럼 넌 거기 스탠드업 코미디 하러 간 거야? 네가 공채 개그맨이야?'
당하고만 있던 병수가 고개를 끄덕이면 다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넌 왜 안 온 건대. 너 예전에 윤정이한테 까여서 안 온 거지.'
'이 새끼가 일사 후퇴 때 얘기를 처하고 있네. 내가 언제 까여. 너야말로 김칫국 마시다가 전화까지 차단됐잖아.'
할 말이 없어진 나는 바로 본론으로 뛰어들었다.
'그래서 둘이 왜 헤어졌다고?'
병수는 마치 독립운동하는 광복 투사의 얼굴로 목소리를 깔며 얘기했다.
'좀 있다가 준규 오면 물어보고 네가 잘 타일러 봐. 그래도 걔가 네 말은 잘 듣잖아. 네가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잘 쓴다고 네 말은 드는 시늉은 한다니까.'
난 어이가 없어서 비아냥댔다.
'뭘 또 그렇게까지 하냐. 진짜 설레발에 오지랖에. 자고로 부부 일은 부부만 아는 거야. 누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고. 준규 그 새끼가 내가 무슨 얘기한다고 듣겠냐. 회사 그만두더니 생전 관심도 없던 남의 일에 오지랖 부린다고 비아냥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예나 지금이나 말이 많은 병수는 다 이유가 있다는 듯이 한쪽 팔을 테이블에 올려두며 말했다.
'야 말도 마. 준규 대인기피증 걸려서 거실에서 혼자 술만 처먹어. 윤정이는 잘만 놀고 지내는데, 걔만 병신같이 고꾸라졌다고. 윤정이 인스타에는 작정한 것처럼 매일 다른 남자애들이랑 술 먹은 사진이 막 올라오는데.'
그럴 만도 했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세상이 싫어지겠지. 그렇게 남한테 보이는 걸 중요시하고, 체면치레에 목숨을 거는 놈이 이혼남 신세를 어떻게 견디겠나. 지금쯤 이를 갈면서 재기를 꿈꾸고 있을 거다. 내가 아는 준규는 그런 놈이었다. 아마 곧 화려한 싱글이라며 어린 여자애를 꾀어서 나타날 것이다. 그에 반하면 윤정이는 속을 알 수 없는 타입이었다. 속이 상해도 티를 내지 않았다. 점점 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오늘 그럼 준규는 안 나오겠네.'
병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네가 봐도 안 나올 것 같지?'
'당연하지. 너라면 오겠냐.'
'나라면 나오지.'
'그래서 네가 병수병신인 거지.'
녀석은 잠시 눈치를 보더니 말했다.
'그래서 윤정이를 불렀어. 윤정이는 나온다고 하네.'
'돌았냐. 둘이 마주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면 더 좋지.'
'윤정이가 준규 불렀다는데도 나온대?'
'응 나온대. 걘 신경 안 쓴대. 안 그래도 할 말 있다고.'
난 잠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둘이 왜 헤어진 거래. 뭔 일 이래.'
잠시 고민하던 병수는 말했다.
'내가 할 말은 아닌데 윤정이 말만 들어보니 준규가 때렸대.'
'그럼 끝난 거잖아. 그 새끼는 왜 지금 그럼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난리래?'
'준규 말로는 윤정이가 먼저 바람을 피웠대.'
뭐 알만했다. 그렇고 그런 얘기구나. 엄마 말대로 정말 막장 일일드라마와 다를 게 없었다. 예측과 딱 맞아떨어지니 시시해졌다. 위로해 준답시고 여기까지 나온 내가 한심했다. 전형적으로 헤어졌으니 곧 전형적인 새 출발 소식이 있을 터였다. 그러고 보니 내가 안양 집으로 온 순간부터 뻔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뻔한 동네 뻔한 줄거리. 내가 왜 이 동네를 떠났는지 새삼 다시 깨달았다. 난 이런 구태의연한 얘기 말고 새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고 민증이 나오자마자 서울에서 자취를 시작한 것이었다. 병수는 더 보탤 얘기가 있는지 목소리를 낮추고 얘기했다.
'근데 말이야. 이건 진짜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준규가 며칠 전에 이상한 얘기를 하더라고. 윤정이가 바람을 피워서 때렸는데 사실 준규 지도 여자가 있었대. 결혼 전부터 자길 쫓아다니던 애라는데 종종 만나왔나 봐. 준규 그 새끼가 워낙 인기가 많았잖아. 근데 더 웃긴 건 윤정이도 그걸 다 알고 있었대. 그래서 지금 이혼 소송이 진흙탕 싸움이 됐나 봐.'
녀석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듯 입맛을 다시며 얘기를 이어 나갔다.
'오늘 윤정이가 오면 소송에서 너랑 나를 증인으로 세우고 싶어 하는 것 같아. 탄원서도 받고. 두 사람을 고통으로 아는 지인이 우리 둘 뿐이잖아.'
난 갑자기 겁이 나기 시작했다. 멀찍이서 구경하면서 걱정을 가장한 위로를 보내려던 내가 셋과 함께 진흙탕에 빠질 참이었다. 이게 보령 머드축제도 아니고 난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난 폰을 들고 병수 얼굴을 향해 흔들면서 말했다.
'걔들 본지가 언젠데 무슨 증인이고 탄원서고 같잖게 지랄이야. 야 나 집에 갈래.'
병수는 마치 쥐라도 본 고양이처럼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야 기다려. 어길 가는 거야. 윤정이라도 보고 가야지.'
병수는 나잇살 처먹고도 여전히 병신 같은 소리만 해댔다.
난 택시를 잡으려고 골목 끄트머리에 섰다. 카카오 택시를 켜는데 내 앞에 때마침 택시가 멈추어 섰다. 뒷자리 문이 열리는데 준규였다. 난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안 온 더디니? 왔네.'
녀석은 전혀 반갑지 않은 목소리로 날 반겼다.
'오 민진, 오랜만이다. 어디가. 한잔하고 가야지. 회사 그만뒀대매? 어쩌다 그랬어?'
녀석은 호탕하게 웃으면서 내 어깨를 흔들었다. 곧 죽어도 불쌍한 티는 안 내겠다 이거지. 갑자기 그 뺀질뺀질한 얼굴이 더 보기가 싫어졌다. 몇 해 전 준규가 나를 향해 던졌던 말이 되살아났다. 교묘하게 나를 낮추고 자기는 올리는 비열한 말투. 긍정주의를 가장한 오만한 왜곡. 절로 말을 말자고 느끼게 하는 힐난까지. 그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상대를 깔아뭉개는 태도에 소름이 끼쳤다. 내가 대체 이놈들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그들의 불행이 내게 옮겨 붙어 나를 옴짝달싹 못 하게 할까 봐 두려워졌다. 부끄러운 통쾌함과 위악적인 기운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난 더 노골적으로 기분 나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야 난 연로하신 우리 어머니와 환담이나 해야겠다. 조금만 마시다가 들어가라. 기운 내고!'
난 일부러 재수 없게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돌렸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택시를 탔다. 집으로 갈까 하다가 용산역으로 가자고 했다. 난 어서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다. 엄마한테는 얘기가 길어져서 병수네 집에서 자고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혹독한 비난이 뒤따를 것 같았지만 폰만 열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았다.
난 머리가 복잡할 땐 택시를 타는 버릇이 있다. 골치 아플 때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사람들 얼굴이 견딜 수 없이 부담스럽다. 난 오늘도 택시 우측 좌석 창가에 머리를 대고 네온사인 글자를 읽으면서 생각을 딴 데로 돌리려 애썼다. '성원 새시. 토토 프로토 판매점, 세븐일레븐, 이혼 전문 법무법인 장전, 환희 성인용품, 통영 국밥.' 기사님이 중얼거리는 나를 한심한 듯 쳐다봤다. 난 술집에 병수만 두고 나온 게 괜히 미안해졌다. 프랑스 덩케르크 해안에 전우를 두고 떠나는 영국 파일럿이 된 기분이었다. 준규와 윤정이 사이에서 절절매고 있을 녀석이 웃기고 불쌍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 내가 계속 있어 봤자 무슨 소용일까. 뾰족한 수라도 있으려고?
윤정이까지 왔다면 재미는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모두에게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면서 팔짱을 끼고 어쭙잖은 조언을 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바깥에 서서 그들의 고통을 다 이해한다고 얘기했겠지. 윤정이에게는 침착하라고 소송으로 가면 다 끝장이라며 타이르고, 준규에게는 우선 식장부터 취소하고 대출금부터 갚기 시작하라고 해결사를 자처했을 것이다. 병수에게는 너는 네 일이나 신경 쓰고 얘들 일에는 신경 끄라고 또 욕을 퍼부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두 사람에게 지금 감정이 진심인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도 말해줬을 것이다. 그래도 애가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진작 알았으니 이제 새 출발할 일만 남았다고 마음에도 없는 뻔한 말을 늘어놨을 테지. 생각만 해도 그런 피상적인 내가 역겨웠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한단 말인가. 지금 내 코가 석자인데. 지금 내가 살 길이 막막한데. 전형성과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놈들 사이에서 대체 무슨 얘길 한단 말인가.
난 어릴 적에 동네를 떠난 덕에 가끔 선지자 노릇을 했다. 친구들은 내가 책도 쓰고 아는 것도 많다고 가끔 연락해서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난 그럴 때마다 관심 없는 척하다가 마지못해 충고랍시고 더 혼란스러운 말을 보태곤 했다. 어사무사한 말로 그럴싸한 얘기를 하면 녀석들은 고마워했다. 난 모호한 말을 있어 보이게 하는 재주가 있어서 그들에게 괜찮은 중재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정작 내 얘기는 되도록 삼갔다. 나만 겪는 걱정거리와 내가 저지른 한심하고 대담무쌍한 행동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난 기꺼이 친구들이 부여한 좀 아는 친구 역할에 충실했다. 세속적인 것과 거리가 먼 척하는 뜨내기 샌님.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이제 백수라는 자격지심이 날 억눌렀다. 팔리지 않는 책을 붙들고 작가라고 얘기하는 내가 안쓰러웠다. 이런 내 모습도 분명히 나의 일부분이지만, 내가 멀리하고 싶은 모습이었다. 나는 친구들이 뚫어져라 바라보는 그 술자리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배은망덕하게도 날 키워준 내 동네가 싫어졌다. 친구들과 부모님, 다닥다닥 붙은 아파트 단지와 상가, 따스한 저녁이면 공원에서 열리는 시장, 이제는 멀티플렉스에 먹힌 백화점 옥상에 딸린 작은 영화관까지 죄다 싫어졌다. 친구들도 만날 때마다 거리가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현재의 관심사를 공유할 수 없는 관계에 지쳐갔다. 어울리려고 무던히도 애썼던 그들의 목소리도, 우리가 자주 가던 호프집의 누런 벽지 색깔마저도 지겨워졌다.(몽땅 치킨 닭은 비둘기보다 작았다) 솔직히 말하면 어른이 되기 전까지 내 삶은 악성 종양이었다. 짧지 않은 스무 해를 산 나의 동네는 돌아가기 싫은 내 모습을 상기시켰다.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이는 두려움,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 통제할 수 없는 감정에 대한 두려움, 선택과 결정에 대한 두려움, 실패에 대한 두려움, 지독한 열등감과 무기력한 내 모습이 담긴 나의 총체가 싫었다. 청승을 떨기 싫어졌지만 어느새 라디오에서 들리는 루이 암스트롱의 구슬픈 목소리로 청승택시가 되었다. 난 부끄러운 줄 모르고 청승맞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도 옛 친구들과 부모님을 만나 과거의 나를 마주할 때면 나는 나 자신과 너무나 닮았지만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 녀석을 마주한다. 옷은 후줄근해서 할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병신 새끼. 그런 의미에서 스무 살 넘어 독립한 것은 새 출발의 기회였다. 16년 전, 이민 가방에 짐을 챙겨서 대전으로 가던 그날의 밝은 기운이 떠오른다. 밝은 태양 아래 민낯으로 거울을 보는 게 늘 두려웠던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이었다. 이제 독립해서 돈도 벌고 사무실에 출근하며 사람구실하며 산다는 자부심이 나를 동네에서 구해냈다. 이제 16년 후, 난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때와 달라진 게 있을까. 한 번 떠난 나의 동네는 이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실낙원이 되었다. 용산역에 내리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게 느껴졌다. 택시비는 만 칠천 원. 할증이 붙었지만 그건 청승값이었다. 스무 해 넘게 내가 살던 동네와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형적이지 않게 보란듯이 성공해서 돌아올게. 동작대교를 시원하게 달린 아저씨가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