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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20. 2023

서툰 거짓말쟁이

 난 어릴 적부터 거짓말하지 말라는 얘길 듣고 살았다. 거짓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잘 들켜서 그랬다. 좋은 거짓말쟁이는 남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 말솜씨가 핵심이다. 그러려면 펜티엄 이상이 되는 머리는 기본 소양이다. 거짓말이 통하기 위해서는 흔들림 없는 눈빛과 동요 없는 목소리도 갖춰야 한다. 하지만 난 둔한 데다가 간 크기도 자그맣다 보니 항상 들통이 나는 케이스다. 내가 이렇게 좋은 거짓말쟁이가 될 소양이 없으니 사기꾼이 될 염려는 사라졌지만, 직장을 다니면서 내 미숙한 거짓말은 도마 위에 올랐다.


 난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바엔, 솜씨 좋은 거짓말쟁이가 상대에게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마음에 없는 칭찬과 예의도 넓은 의미에서 거짓말이라는 걸 고려하면 사회생활에도 필수적이다. 나는 직장을 다니면서 수많은 거짓말을 했다. 난 회식에 빠질 때마다 건강이 안 좋다거나, 가족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뻥을 쳤다. 마감이 임박한 원고를 쓰면서 거래처 미팅 일정을 내 마음대로 연기했다. 누가 들어도 알아챌 수 있는 서툰 거짓말이었다. 이토록 거짓말이 허술하니 직장 상사에게 깨지기 일쑤였다. 그놈의 망할 인터넷이 문제였다. 부장님은 갤럭시라는 네모난 검열기로 내 사생활을 낱낱이 알아냈다. 내가 글에 솔직해질수록 그의 검열 항목은 촘촘해졌다. 상사는 내 앞에서 보란 듯이 검색창에 내 이름을 적었다. 터치 한 번으로 검열 결과가 쏟아졌다.


'오 민진이 어제도 글 썼나 보네. 아 그래서 거래처 미팅을 연기했구나.'

'그건 예전에 쓴 글이에요. 거래처 미팅은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다음으로 넘긴 거예요.'

'넌 내가 뭣도 모르는 등신으로 보이니. 나도 다 보는 눈이 있고 듣는 귀가 있다.'


 회사 내에서 내가 일보다 글을 더 열심히 쓴다고 소문이 파다했다. 이렇다 보니 그 흔한 작가명을 짓지 않은 걸 후회했다. 박민진이라는 이름으로 글이 올라올 때마다 내게 사사건건 태클이 들어왔다. 누구 말마따나 '낭만필객' '쿤데리즘' '용산불도저' '용산구근육짱짱맨'과 같은 필명을 쓸걸 그랬나 싶기도 했다. 내가 첫 책을 출간하고, 그 책이 떡하니 회사 건물 서점에 깔리면서 날 향한 비난은 더 혹독해졌다.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다느니, 주변머리는커녕 채신머리까지 없다느니 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날 갈궜다. 심지어 구내식당 밥상머리 앞에서까지 면박을 줬다.


'너 어제 회식 안 오더니, 밤까지 굶으면서 글 썼냐. 오늘따라 유달리 잘 먹네. 작가가 이렇게 먹어도 되는 거냐.'

'부장님, 전 항상 잘 먹었는데요. 그리고 회식은 제가 술을 못 먹어서 못 간 거고요. 저 보약 먹는 거 아시면서 그러세요. 그리고 작가들도 잘 먹는 사람 많거든요. 김중혁, 박상영 음 또 누가 있더라, 헤밍웨이.'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는데 내가 운동 에세이 책을 쓰기 시작하자, 내 지나친 운동량 때문에 일에 집중을 못 한다고 갈구기 시작했다. 그는 몸을 키우는 게 나이트 삐끼멘키로 날라리나 하는 짓이라며 천만 헬스인을 모독했다. 내 근육이 쓸모없는 파우더 근육이라고 깎아내렸다. 아마도 내가 나이 먹고 부장님처럼 배불뚝이가 되지는 않겠다고 쓴 글을 읽은 모양이었다. 나도 염치가 있어서 대들진 못했다. 하긴 부장님은 내가 데드리프트로 키운 척주기립근으로 밤늦게까지 글을 쓰면서 투잡을 뛰는 줄을 몰랐을 테니까. 난 핍박받을수록 쇳덩이에 더 집착했다. 운동 에세이 원고가 두툼해질수록 내 직장 생활은 얼렁뚱땅 넘기면서 어영부영하다가 산산조각 났다.


 난 퇴직하고 프리랜서 작가가 되면서 거짓말을 멈출 수 있었다.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내 이름으로 된 이메일을 보내면서 거짓말이 확 줄었다. 누구에게도 변명을 하거나 내 정체성을 설명할 필요가 사라졌다. 난 글을 쓸 때 확실히 더 나은 거짓말쟁이로 변신한다. 직장에서는 미숙한 거짓말쟁이지만 글 속에서는 보다 그럴싸하게 거짓말을 한다. 내 숱한 퇴고로 만들어진 허구의 세계는 단단하고 냄새도 좋은 원목마루를 제공한다. 연기 거장 말론 브랜도는 <삶을 위한 거짓말>이라는 책에서 거짓말을 잘하면 뛰어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문학부터 영화 그리고 희곡, 드라마는 결국은 스토리텔링이라는 거짓말 안에서 약속이라는 것이다. 글 속에서는 거짓말을 뱉어도 확실히 안전하다. 이야기에 테두리를 잘 두르면 누구에게도 해가 가지 않는 거짓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


최근 온라인 서점 구매평에 내 글이 지루하고 허술하다는 댓글이 달렸다. 욕만 하지 않았지, 댓글을 단 독자는 화난 눈치였다. '내 글이 설마 그 정도라고!' 그는 박민진 작가가 함량 미달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악플도 아닌데 당황하는 내가 이상했다. 잘 생각해 보니 그 악플은 과장이라는 호칭을 때네고 난 후 첫 욕이었다. 온전히 박민진 작가로서 겪은 수모였다. 난 그냥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책을 욕한다거나 문장이 별로라고 했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른다. '박민진 작가'로 욕을 먹으니 '박 과장'으로 받은 모욕과는 차원이 다른 아픔이 느껴졌다. 난 아직 글 속에서도 미숙한 거짓말쟁이라는 게 탄로 났다. 난 숨을 곳 없는 명명백백한 비판에 큼지막한 자상을 입었다.


 난 패닉에 빠져서 이메일함을 뒤적이면서 그간 편집자와 나눈 대화를 보며 출판사 탓을 했다. '내가 무명작가라고 퇴고를 대충 해준 거 아냐.' 근데 내 편집자는 세간에 좋은 평가를 받는 베테랑이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한 일 처리를 보여주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내 글은 온전히 내 이름값이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난 나 스스로 작가임을 밝히며 비난 댓글에 해명을 달 생각이었다. 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며 마음을 다잡고 변명 댓글을 쓰기 시작했다. '문장이 허술한 건 인정하는데요. 다른 분들을 재밌다고 하던데요. 그리고 한 번 더 읽어보시면 훨씬 재밌을지도 몰라요.' 천만 다행히도 내 이마에 붙은 자기 객관화 버튼이 켜졌다. 엔터키를 누르기 전에 이성 버튼에도 불이 들어왔다. 난 가까스로 평정심을 되찾고 주기도문을 외웠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난 그간 회사를 다니며 직함 뒤로 잘 숨어 다녔다.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내 미숙한 글에 면죄부를 주었다. 하지만 퇴직하고 비로소 좋아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탓할 곳이 사라졌다. 회사에 다닐 땐 출근 탓, 먹고사는 탓이 통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내 이름 석 자를 거론하며 날 쏘아붙인 댓글이 내가 지금 피할 데 없는 곳에 와있다는 걸 보여줬다. 이제 서투른 거짓말에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난 요즘 전화를 받으면 박 과장입니다. 대신 ‘박민진입니다’ 심플하게 얘기한다. 어느 서류를 작성하든, 박민진이라고 적고 있다. 누구에게도 들킬 염려가 없는 내 얘기를 글로 쓰고 산다. 하지만 아직도 직업란에는 '프리랜서'라고만 적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 직업란에 '작가'라고 써도 어색하지 않을 때가 오지 않을까. 작가라는 호칭 앞에서 겸연쩍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박민진에서 박 작가로 변신하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최근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날 '박 과장'이라고 불렀다. 난 민진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아니, 박 작가로 불러달라고 했다. 직위와 직책으로 15년을 살다 보니 이름이 불리는 경험이 생경했다. 그간 작가라는 호칭은 내가 거부했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작가라는 타이틀을 걸치며 살고자 했다.

'어머니 직장 때려치운 지가 언제인데 자꾸 과장이래요. 민진이로 불러주세요.'

'나 왜 이렇게 네가 회사를 그만둔 게 싫은지 모르겠다. 그냥 이상하게 눈물이 나네. 허탈하고.'

'지금이 더 행복해요. 아시겠어요?'

'근데 목소리는 왜 그 모양이야. 네가 행복하면 나도 안심이다. 어쩌겠니.'

 어머니의 목소리가 서글펐다. 난 내 이름을 얻은 대신 뭘 잃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요즘 박민진 작가로 살면서 글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 직장을 다닐 때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부담감이다. 전에는 무시했던 내 글에 관한 평가에도 예민해졌다. 글에서마저 서툰 거짓말을 하면 도망칠 곳이 없다는 걸 내가 잘 알기 때문이다. 픽션은 자유롭다고 공인된 세계지만, 프로들의 각축장이기도 하다. 세기의 대문호들이 픽션 안에서 감히 삶 속에서도 엄두도 못 낼 짓을 벌였다. 새빨간 거짓말도 문학이라는 당의정에 둘러싸이면 예술로 탈바꿈했다. 그러니 언젠가 내 삶은 공들여 쓴 거짓말로 가득 찰 것이다. 누군가를 공격하고 슬프게 하는 서툰 글이 아니라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문학이 탄생할 것이다. 나는 프로 거짓말쟁이가 될 생각이다. 그러니까 오늘은 기필코 마감치고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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