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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Sep 06. 2023

이 도시에서 섹시한 것

 오늘 하루종일 원고와 씨름했다. 조잡한 초고는 아무리 고쳐도 완고가 되지 않았다. 편집자의 한숨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아 조급해졌다. 이제 퇴직을 해서 백수가 되니 시간이 없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가 머리를 책상 위에 박았다. 쿵쿵쿵. 마음이 심란해서 더는 글을 쓸 수 없었다. 글이 풀리질 않으니 기분이 축 가라앉았다. 대충 후드티에 나이키 캡모자를 쓰고 외출 준비를 마쳤다. 미뤄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려다가 그만뒀다. 방도 치운 지가 오래라 개판이었다. 원고 생각에 그냥 다 귀찮았다.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그 지점부터 범죄가 늘어난다는 깨진 유리창 이론 대신, 원고를 제때 끝마치지 못하면 옷이며 집이며 다 개판이 된다는 깨진 원고 이론이 생각났다.


 노트북을 챙겨서 문밖을 나섰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마음이 급해서 씻지도 않고 나왔더니 누가 봐도 백수 차림새가 되었다. 이러려고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는데. 모자챙을 뒤집어서 쓰면서 이틀째 머리 안 감은 걸 들키지 않기를 바랐다. 왠지 캡모자를 뒤집어서 쓰면 패션아이템으로 보이기도 하니까. 난 집에서 가까운 로스팅 카페 문을 열었다. 땅그랑. 카페 직원의 눈빛이 내게로 향했다. 그 눈빛에서 더러운 동네 백수를 보는 경멸을 읽어냈다. 난 모자를 고쳐 쓰고 드립커피 중에 가장 싼 브라질 세라도 원두를 주문했다. '진하게 내려주세요. 입술이 얼얼할 정도로 세게 부탁드려요.'


 카페는 대체로 깨끗했다. 요즘 카페는 인스타그램 홍보가 필수적이라 그런지 더 필사적으로 청결을 신경 쓴 눈치였다. 누추한 내 방을 벗어나서 깨끗한 공간에 오니 괜스레 기분이 나아졌다. 내 생각에 뭐든 깨끗해야 무릇 섹시하다.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자기 작품 <설국>에 이런 문장을 적었다. “여자의 인상은 믿기 어려울 만큼 깨끗했다. 발가락 뒤 오목한 곳까지 깨끗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초여름 산들을 둘러보아 온 자신의 눈 때문인가 하고 의심했을 정도였다.” 작가가 가진 깨끗함을 향한 집착은 가히 변태스럽지만, 일견 일리가 있는 문장이다. 온 도시에 먼지와 매연이 만연하고, 고성과 악다구니로 난리부르스를 추는데 그 와중에 카페가 깨끗하면 눈이 가고 마음이 열린다. 이 카페는 적정한 온도에 공기청정기까지 틀어놓고 있었다. 심지어 화장실마저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해서 누워서 잘 수 있을 정도였다. 왠지 내 너저분한 글도 이 카페에서만큼은 말끔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섹시하게 잘빠진 도자기잔에 맑간 커피가 나왔다. 드립커피가 7천 원 치고는 양이 적었다. 불평도 잠시 한 모금했더니 다시 기분이 섹시해졌다. "그래, 난 이 섹시한 기분을 돈으로 산 거야."


 카페 창으로 요란한 네온사인이 비췄다. 그 아래로 드문드문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초저녁부터 잔뜩 자셨네.' 근처 대형 오피스텔 건물은 벌집처럼 빼곡한데 층마다 한 군데도 빼놓지 않고 불이 다 들어와 있었다. 저 5평 남짓한 공간에서 다들 유튜브 보다가 자겠지. 세탁기 위에 가스레인지, 신발장 옆에 옷장이 있겠지. 뻔하다 뻔해. 내 친구 지우도 공무원을 하면서 오피스텔에 산다. 주말부부를 하면서 오피스텔에서는 잠만 잔다고 했다. 녀석은 고시 공부할 땐 고시원에서 살기도 했다. 녀석은 날 만날 때마다 고시원이 꼭 관속 같다고 했다. 벽이 쿵쿵 울리면 누군가 관을 두드리면서 제 생사를 확인하는 기분에 섬뜩하다고 했다. ‘그럼 나도 생존 신고차 벽을 쿵쿵 치며 응수하는 거지.’ ‘그러면 옆방에서 가만히 있어?’ ‘아니, 더 세게 치지. 무슨 모스부호 주고받는 것 같다니까. 마음대로 두드려도 무슨 얘길 하는지 다 알아들어. 나 보이스카웃 해서 그런데에는 빠삭하거든. 신기하지. 아, 오늘 빨래 넌 거 빨리 걷어 가라고요. 알겠어요. 두 시간만 이따가 걷을게요.’ ‘진짜? 존나 신기하네.’ 난 지우의 너스레를 듣고 실컷 웃었는데 그때 녀석의 눈이 슬퍼 보여서 계속 웃을 순 없었다.


 4년간 노량진 고시원에서 버텼던 지우는 이런 말도 했다. 매일 인터넷 강의를 듣고, 닭장 같은 강의실에서 선생 말을 목 빠지라 듣고 있노라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다고. 발 디딜 틈 없이 빼곡한 강의실에선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기도 버겁다고. 녀석은 곱창을 격렬하게 씹으며 아이작 아시모프 소설 속 사이보그가 된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고시원 쪽방은 머리 하나 들어가기 어려운 창문뿐이라 공상이 깃들 리 없었다. 그래서 지우는 매일 밤 블로그에 아무 글이나 싸질렀다. 녀석은 실제로 글을 배설한다고 즐겨 말했다. 정치 얘기, 여자 얘기, 사회 얘기, 공무원 얘기, 고향 얘기, 옛날 친구 얘기, 부동산 얘기, 주식 얘기, 언젠가는 일시불로 살 차 얘기. 녀석은 얘깃거리가 정말 많았다. 어떻게 입 마려운 걸 참고 사냐 물었더니, 자기 전 블로그에 싸지르는 낙에 하루하루 버틴다고 대답했다. 온종일 입을 다물었다가 입을 떼는 건 고작 식당 아주머니에게 많이 달라는 말뿐이라는 둥, 밤늦게 블로그에 속풀이를 하는 식이었다. 한국사 공부하다가 글을 쓰면 대하사극 같은 글이 나온다나. 하긴 매일 일류 강사 말을 듣고만 사니 어디 배출할 곳도 필요하겠지. 지우는 그렇게 매일 기계처럼 기출예상 핵심영단어를 줄줄 외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았다. 난 녀석이 올린 글을 주말에 몰아 읽으면서 혼자 킥킥거렸다. 신랄하고 맹렬하며 독창적인 불평이었다. 이 시대의 비극은 저런 떠버리가 글은 안 쓰고 공무원이나 하려고 한다는 데 있었다. 죄다 공무원 하면 스탠딩 코미디 각본이나 명랑 소설은 누가 쓰나.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하나. 난 녀석에게 4년간 때마다 곱창을 대접했는데, 그건 녀석이 구사하는 너스레에 대한 구독료였다.


 녀석은 언젠가 도시에서 유머가 사라지면 도시는 본연의 낭만을 빼앗기고 공장처럼 기계 소리만 날 거라는 요지의 글을 써서 날 놀라게 했다. 내가 읽기에는 꽤 섬뜩한 산문이었는데, 말미에는 유머가 가진 힘을 맹신하는 말을 적었다. ‘네가 이런 생각도 한다고?’ 나는 놀리듯이 말했지만, 글이 산뜻하고 기뻐 몇몇 문장을 곱씹었다. "그래서 유머가 없는 도시란 게 네게 뭘 의미하는데?” 난 곱창을 씹으면서 무심한 듯 물었다. "알코올과 카페인에 서서히 감염되면서 무차별적인 성욕과 식욕을 누르면서 사는 좀비가 되는 거지.” ”누가 그렇다는 건데?” 녀석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다 그렇지. 지금, 이 곱창집에 앉아 있는 인간들 봐라. 다 힘들고 애처롭고 피로해서 유머 한 자락 날리지 못하잖아. 배에 소주랑 기름진 곱창을 잔뜩 넣고 내일 출근해야 하는 비극의 서사를 잊으려고 난리잖아. 저렇게 배가 나오고 얼굴은 곰팡이라도 핀 것처럼 우중충한데 그래도 먹고살려고 억지로 웃잖아.” 나는 얘가 왜 이렇게 심각해졌나 걱정이 앞서 고개만 끄덕였다. 지우도 좀 오버했다 싶었는지 나지막이 중얼거리며 젓가락을 들었다. “아마 나도 저렇게 되겠지.” 순간 지우와 나눈 대화야말로 항상 읽는 책과는 다른 의미에서 날 꾀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우와 얘기하다 보면 잡담처럼 가볍고 날렵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난 속된 도시를 좋아하는데, 그 속됨에 속하기는 싫은 거야.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여기서 수업을 듣고 합격 수기나 읽고 있으면 그럴 가망은 없다고 봐야지. 너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왜 노량진에서 이러고 있는 건데?” “병신아, 그러니까 삶이 아이러니 아니냐. 부조리, 카프카 그런 것도 몰라? 글 쓰는 새끼가 아무것도 몰라서 무슨 작가를 한다고.” 난 아이러니를 그렇게 쓰는 게 맞는지 헷갈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지우는 누누이 유머야말로 섹시한 것이라고 했다. 내가 잘 만들어진 몸에 집착하는 것처럼 녀석 역시 유머러스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했다. 그게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믿었다. 유머야말로 로봇이 침범 불가능한 인간 고유의 영역이고, 유머를 통해서 기계 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지우는 이제 한 소도시 공무원이 되어 컵밥 대신 구내식당 밥을 먹는다. 고시원을 졸업하고 좀 더 넓고 쾌적한 오피스텔로 갔다. 이제 노량진에 살지 않아서인지 유머력도 떨어졌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유머 감각도 감퇴시키는 걸까. 관료 사회에서는 시시함이 기본 소양인가. 지우는 이제 글도 안 쓰고, 당시 쓴 글도 모두 지워버렸다. 심지어 그 시절이 부끄럽다고 했다. 하지만 난 녀석의 글을 잊지 않는다. 난 그때 그 시절 지우만 좋아한다. 할 말이 많았던 곱창집의 아이작 아시모프야말로 내 친구였다. 지루하고 사무적인 김 주무관님은 내 친구 안 같다. 장승배기 근처 녀석의 고시원과 매일 입던 남색 아디다스 츄리닝이 아른거린다. 요즘 녀석은 그토록 원했던 생각이란 걸 하고 살까. 서점에서 신간 소설을 사서 읽고 술자리에선 족집게 강사 말에 심취했던 그 시절을 떠벌일까. 톡을 한번 해봐야겠다. ‘어이, 김 주무관님 어디셔?’


 지이잉. 원고를 고치려고 종이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는데 바로 답이 왔다. 지우는 갑작스러운 연락에 놀라워했다. ‘결혼하는 거냐. 아니면 누구 돌아가셨냐. 넌 어딘데.’ 연이어 따져 묻더니 그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말에 안심하고는 자기는 회식 자리라고 했다. 섭섭하게 지우는 내가 어디서 살고 무슨 글을 쓰는지도 전혀 몰랐다. 물론 나도 녀석을 몰랐다. 몰라도 괜찮았다. 인스타그램 사진 속 녀석보다는 목소리가 조금 처진 느낌이었다. 재기와 익살은 그래도 죽지 않았네. 난 녀석에게 요즘도 글 같은 거 쓰냐고 물었다. 어떤 책을 읽고 읽는지 물었다. 녀석은 특유의 말투로 말했다. "이제 글 쓸 시간은 없지. 책은 가끔 근처 도서관에서 빌려봐. 진짜 재미없는 책도 읽어. 계속 승진시험이 있어서 많이 읽지는 못하고. 넌 언제 책 나오냐?” 조금 실망했지만 지우가 나름대로 잘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다음에 언제 한번 보자고 얘기했다.


 그나저나 오늘 지우는 뭘 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보나 마나 섹시함과는 거리가 먼 소리를 하며 회사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있겠지. 나는 과거의 지우가 그리웠다. 섹시한 글을 쓰던 떠벌이가 그리웠다. 지우 덕분에 오늘의 나도 글을 쓰고 있다는 걸 녀석은 알까. 지우와 가끔 소주 한 잔 당길 때 못 보는 게 씁쓸했다. 녀석과 만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씁쓸해도 어쩔 수 없지. 갈 길이 다른데.' 나는 원고를 고치다 말고 한쪽 귀퉁이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섹시함을 잃지 말아야지. 없이 살아도 섹시한 글을 쓰면서 버텨야지.'


 열심히 글감을 생각하다 보면 언제나 지우의 블로그가 떠오른다. 지우가 썼던 문장과 지우가 곱창집에서 떠벌렸던 얘기가 자꾸 내 글 속으로 침투한다. 나도 유머러스한 글을 쓰고 싶다. 지우처럼 웃기게 쓰고 싶다. 잘 쓴 유머는 그 무엇보다 섹시하다는 지우의 말을 잊지 않았다. 누군가 카페 문을 닫지 않고 나갔다. 쌀쌀한 바람이 들이닥쳤다. 바깥공기가 서늘해지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쓸쓸해졌다. 뭔가 재밌는 일이 생길 듯한 저녁 분위기였다. 카페 안에서 웃고 떠드는 사람들을 한참 구경하다 보니 또 다른 글감이 떠올랐다. 헐렁이는 옷차림과 분홍빛 재잘거림에 마음이 동했다. 겉보기에는 뻔해 보이지만 사실 꽤 남다른 그런 사람의 이야기. 시니컬한 유머가 심긴 섹시한 글. 도시의 관능과 멀어지지 않으려는 N잡러의 애환. 마침내 쌔끈하게 휘갈길 수 있는 글감이 떠올랐다. '지우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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