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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01. 2017

의미 없는 삶의 살풍경

영화 리바이어 던

바닷가 외딴집에 자동차 정비공 콜랴(알렉세이 세레브리아코프)와 아내 릴랴(옐레나 랴도바), 아들 로마가 산다. 이들이 살던 땅이 개발 대상지로 선정되면서 콜랴의 가족은 내쫓길 위기에 처한다. 콜랴는 시 당국의 회유를 거부한다. 콜랴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시장 바딤은 어느 날 밤 콜랴의 주거지에 무단 침입해 협박한다. 콜랴는 시장을 고소하기 위해 변호사 드미트리와 함께 경찰, 검사, 판사를 찾아가지만 누구도 이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급기야 경찰서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이유로 콜랴가 구금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영화 <리바이어 던>을 보고 나왔는데 몸이 축 처졌다. 한심한 남자를 보고 나와서 그런가. 영화에서 아버지이자 남편이고, 가문의 땅을 지키며 사는 콜랴는 모든 걸 빼앗긴 후에야 끝을 맞는다. 영화에서 그의 아내는 남자의 오래된 친구와 바람을 피운다. 감독은 잔인하게도 이 과정을 세심하고 디테일하게 연출하다. 누군가의 삶이 무너져가는 과정이 그 누군가의 욕정과 대치된다. 서늘하고 잔인한 장면들은 영화관의 좌석을 더는 버티게 힘든 불편한 곳으로 만든다.

리바이어던Leviafan, Leviathan, 2014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은 영국의 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1651년 출간한 책의 이름이다. 원제는 '리바이어던, 혹은 교회 및 세속적 공동체의 질료와 형상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 and Civil)이다. 성서에서는 이 동물을 혼돈과 무질서한 동물로 표현하지만 홉스는 반대로 리바이어던을 통치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며,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존재로 여겼다. 인간은 본디 이기적 존재이며, 자기보호를 최우선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적인 상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자기 보호를 위해 폭력적 성향을 드러내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free for all)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일부 권리를 통치자에게 양도함으로써 복종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 사람은 국가의 통치자가 된다고 보았다.

모든 걸 빼앗긴 남자는 사회가 행한 사회 규약의 큰 붓에 희생된 자그마한 희생양이 된다. 그 부스러기 같은 인생은 종말은 이렇다. 출근하다 말고 바다에서 죽음을 택한 아내, 술만 마시다가 모든 걸 잃어버린 남자 그리고 모스크바의 유능한 변호사이자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핀 절친한 친구, 참을성이 고갈되어 반항하는 아이까지. 답답한 마음으로 우연히 마주친 랍비에게 남자는 호소한다. "도대체 신은 어떻게 생겨먹은 거요?" 랍비는 가볍게 대답하고는 사라진다. "신은 폭풍의 형상으로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오." 이처럼 ‘리바이어 던’이라고 불리는 괴물은 어김없이 인간에게 나타나 뜻 모를 파멸을 안겨준다. 이를 이겨낼 방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신의 뜻을 어찌 알랴. 그렇다면 인간은 극도로 가벼워진다. 생각해봤자 우려해봤자 불안해봤자 예측이 불가능한 거대 괴물 앞에 버텨낼 재간이 없다.

리바이어던Leviafan, Leviathan, 2014

영화 <리바이어 던>의 몰락해가는 사람들의 죽음에는 부재된 상상력이 만든 비극처럼 보이는 면모가 있다. 마치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처럼 매일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다가 죽어버린 형상이다. 가끔 일탈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노동자들. 불륜, 만취, 가출, 폭행이 지속적으로 출몰하는 인생.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책으로 상상과 꿈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멀리하는 기이한 인생. 영화는 국가권력의 횡포, 인간 모멸의 순간을 그리는 듯 보이지만 영화 후반부가 되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이 남자가 처하는 환경은 그저 영화 말미를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것. 이 남자가 사는 자그마한 마을의 황량한 풍경과 동물의 뼈만 남은 형상, 마을버스의 지친 사람들, 무색무취한 길거리. 삶의 기쁨을 느끼기엔 벅찬 인생들이 그득 찬 그저 그런 공간. 비루한 맛만 남기고 별다른 웃음을 찾아낼 수 없는 무색무취의 사람들. 영화는 거대한 메시지를 품은 듯 보이지만, 정작 관심을 두는 것은 황폐한 세상의 보잘것없음이다. 그 어떤 의미부여 힘든 귀갓길이 날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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