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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15. 2017

가족이 될 수 없어도 괜찮아

웰컴 투 마이 하트 (Welcome To The Rileys, 2010)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이제 세계적인 여배우의 반열에 올라선 모양새다. 그녀는 이제 할리우드 배우라 부르기에도 모호한 다국적의 뮤즈로 자리매김했다. 퍼스널 쇼퍼, 클라우즈 오브 실즈 마리아를 통해 한 끝이 다른 배우가 되었다. 과거 열애설과 성적 정체성으로 요란한 루머들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그녀의 이름 옆에는 이제 우디 앨런, 올리비에 아사야스라는 거장의 이름이 따라다닌다. 물론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섹시한 외모도 여전하다. 영화 <웰컴 투 마이 하트>는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숨겨진 소품이다. 크리스틴은 플로리다에서 불운한 사고로 부모를 여의고 뉴올리언스에 홀로 정착해 스트립걸로 살아가는 15세 소녀 멜로리 역을 맡았다. 상처가 많은 역할인 탓에 욕설이 많고, 노출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외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녀의 눈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경계와 온정을 동시에 품고 물러서고 다가서기를 쉼 없이 반복하는 피곤한 역할이다.

웰컴 투 마이 하트 (2010) Welcome to the Rileys

사실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크리스틴이 아니다. 교통사고로 딸 에밀리를 잃은 라일리 부부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아간다. 아내 로이스(멜리사 레오)는 사고에 대한 죄책감으로 8년간 한 번도 집 밖을 나서지 않은 불운한 삶을 이어가고, 남편 더그(제임스 갠돌피니)는 그녀의 상처를 모른 척 외면한다. 두 사람이 우연한 계기로 크리스틴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혼란과 소동이 영화의 스케치를 이룬다. 조용하고 정적인 순간마다 서로의 맘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 영화는 조용히 따라나서는 형국이다.

아이를 잃은 상처에 일상을 견뎌내지 못하는 부부의 이야기는 유사한 영화 <레빗홀>이 있다. 레빗홀은 오랜 시간이 지남에도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부부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웰컴 투 마이 하트> 역시 부부는 아이가 없어진 일상을 애써 모른척하며 일상을 버텨나갈 뿐이다. 래빗홀이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상처가 쉽게 지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부부의 태도에 있다. 부부는 가치 있는 일상을 위해 몸부림치겠지만, 절대 그 상처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저 시간이 지나 조약돌만큼 크기가 작아졌을 때 다시금 만져보며 그 크기를 확인할 뿐, 아이를 잃은 상흔에 애써 웃음 짓는 묘수를 부리지 않는다. <웰컴 투 마이 하트>의 경우엔 우연히 뉴올리언스에 출장을 가게 된 더그가 죽은 딸의 나이와 같은 크리스틴과 만나면서 그의 일상이 요동친다. 딸의 사진을 꺼내보며 크리스틴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확인하는 더그는 망설일 여유조차 없어 보인다. 그는 살아갈 무언가가 필요했고, 크리스틴은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타락한 소녀였다. 그리고 남편의 변화를 눈치 첸 아내가 8년 만에 집을 나서 그를 찾아 뉴올리언스로 가면서부터 영화는 과연 그들만의 세상이 어떤 봉합으로 나아갈지 흥미롭게 그려진다.

웰컴 투 마이 하트 (2010) Welcome to the Rileys

영화를 보는 이라면 누구나 크리스틴이 라일리 부부와 가족을 꾸리길 간절히 원한다.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극복이라는 구원으로 나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단호히 '가족의 탄생'을 거절한다. 그것이 불가능함을 납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대안 가족으로 쉽게 때우려는 수많은 영화들의 길을 거부하는 것이다. 대체자가 아닌 서로를 지켜봐 주는 거리감을 가지는 것.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명확히 알고, 더 이상 발을 들이지 않는 태도. 우리는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과잉된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닐지. 영화는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미덕이 접촉의 시대가 가질 수 있는 묘안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들이 비록 가족이 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제스처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이 먼 길을 포기하지 않고 걷을 수 있길.

웰컴 투 마이 하트 (2010) Welcome to the Rileys

이 작품은 배우들의 앙상블이 무척 뛰어나다. 앞서 말한 대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무리하지 않는 연기도 연기지만, 두 부부를 연기한 제임스 갠돌피니와 멜리사 레오의 노련한 연기력에 애정이 간다. 특히 침묵하는 시간이 많은 연기를 한 멜리사 레오는 격앙된 눈과 안절부절 한 몸짓으로 자신의 상처를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기분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제임스 갠돌피니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난 배우답게 이 작품에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두 여배우의 중심을 잡아준다. 이제 세상을 떠난 그의 모습을 보는 소중함을 느낀다. 연출을 맡은 제이크 스콧은 거장 리들리 스콧의 외아들이다. 아버지가 가진 선이 굵은 연출과는 다른 스타일로 절제할 줄 아는 차분한 연출력이 향후를 더 기대하게 한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지만, 좀 더 건조하고 차분한 사람 이리라 추측해본다.)

웰컴 투 마이 하트 (2010) Welcome to the Rileys

요즘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잔혹한 살인사건들을 뉴스로 보면서, 과연 저들의 가족은 어떤 상처를 앉고 일상을 견뎌내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에도 시간을 흘려보낼 그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섣부른 고민을 한다. 여기 이 가족들은 애쓰고 때론 참혹한 마음을 흘려보낸다. 그것이 존엄이랄지 위로랄지 하는 낡은 단어와는 다른 지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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