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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Oct 01. 2016

블로그엔 여성들이 많다.

영화 <연애의 온도>와 카페에 웅크려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험담

네이버 블로그에 이어 브런치로 이사한 지 이제 불과 서너 달을 넘지 않는다. 그 전 싸이월드 블로그를 10년 정도 운영했으니, 새로운 10년을 브런치와 함께 하게 된 셈이다. 이렇게 내 삶의 작은 위로가 된 블로그를 하다 보면 신기할 때가 있다. 특히 방문자 집계 분석을 보면 내 블로그를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을 상상하게 된다. 단순히 숫자 이상의 그들을 느낄 수 있다. 내 글을 읽고 스쳐가는 사람 하나하나의 제스처를 상상하고, 내 글이 그들의 두뇌에서 뻗어나갈 영향을 짐작한다. 그 미미한 영향성 하나만으로 난 블로그를 하는 충분한 포만감을 느낀다. 무엇을 원해서, 뭐를 하다가, 어떤 경유로, 무슨 이유로 내 블로그까지 오게 되었을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이다. 그래서 종종 블로그의 유입을 분석해주는 페이지를 유심히 살펴본다. 신기하게도 내 블로그를 주로 찾는 사람들은 20대 여성들이 상당하다. 책, 글, 매거진, 활자 콘텐츠 자체에 여성 위주의 시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난 내가 여성의 취향에 더 맞는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70퍼센트 이상이 20대 여성분들이라니 참. 남성 대 여성의 비율로 계산하면 8:2에 육박하게 된다. 고마워요 여성 동지들.

내가 사랑하는 키비, 그의 대표곡 소년을 위로해줘는 가사가 인상적이다.

난 이성 친구가 많지도 않고, 그들과 뭔가 통한다거나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지나간 여자 친구들은 매주 자신을 이해 못하는 나라는 남자를 비난하고, 난 쩔쩔매며 날 힐난하는 그녀들의 눈을 피한다. 직장생활을 5년 넘게 하면서 더더욱 여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까이하기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다. 아무래도 일할 때는 더더욱 여성과 남성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그 다름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 블로그가 보여주는 여성들의 수치는 더더욱 의뭉스럽다. 종종 블로그 여성 이웃들은 내가 여자인 줄 알고 친해지려다가 내가 남자인 것을 뒤늦게 깨닫고는 당황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남성 블로거분들 중 내가 여자인 줄 알고 호감을 품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동안의 추이를 살펴봤을 때, 내가 내린 결론은 내 블로그의 분위기는 지극히 여성스럽지 아니한가 하는 추측뿐이다.

연애의 온도는 김민희의 연기를 통해 더 가치 있는 영화로 변모했다.

난 늘 카페에서 블로그를 즐긴다. 그리고 내 주변으로 분주하게 수다를 떠는 몇몇 여성분들을 자연스레 보게 된다. 카페에서 옹기종기 모여 커피 한잔 시켜놓고, 마음껏 수다를 떠는 분들은 여성들이 대부분이다. 아주 사소한 내용부터 연애의 중대사와 직장 내 꼰대들의 역습까지 성토하는 분위기다. 내가 아는 여성분들의 특징은 삶의 구석구석 아주 사소한 일상까지 모두 공유하길 원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윤색과 각색의 과정을 거치는지 잘은 모르지만, 무엇이든 터놓고 얘기하고 듣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즐거워 보인다. 지켜보는 나 역시도 저렇게 다 털어놓고 나면 건강에 좋을 거라는 막연한 경외심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떨까. 우선 둘이 만나면 피시방이나 가고, 셋 이상이면 당구장을 간다. 그 외에도 비슷하다. 보통 시선을 마주치는 것을 거부하고, 피시방에서 반인반수를 사냥하거나 평소엔 도통 시험할 길이 없는 승부욕을 스포츠 게임으로 푼다. 막상 그러고 나면 시간이 많이 남는다. 그럴 경우 백발백중 술집을 가는데 맨 정신으로 눈 마주치고 얘기하기 불편한지 연신 술을 들이켠다. 대화 내용도 뻔하다. 차 얘기, 여자 얘기, 야한 얘기 바로 이어지는 돈 얘기와 연봉 얘기, 마무리는 돈 많고 좋은 차 모는 애 험담이 된다. 여기서 지리멸렬한 인생 얘기하는 애는 바로 욕먹는다. 일상의 사소한 얘기를 공유하거나, 삶의 일정한 부분에 대해서 터놓는 행위 자체를 계집애 같은 행위라고 여기는지 들을 수 없다. 나 역시도 친구들과는 풀어놓지 못하는 소소한 얘기들을 블로그에 적곤 한다.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못할 때 블로그라는 창구는 유용하다. 특히 영화 얘기와 그에 따른 생각들을 풀어놓고, 내 삶과 밀접하게 연계되는 것들을 생각하는 데 블로그만 한 창구는 없다. 막상 친구들 앞에서는 그것을 대화로 풀어내기 낯 간지럽다.

사실적 연애 심리묘사가 돋보인 영화 연애의 온도

키비라는 래퍼의 <소년을 위로해줘>라는 곡의 가사를 좋아한다. 단순한 소년의 관점이 아닌, 겉모습은 어른이지만 아직 마음은 소년의 자취가 남아있는, 마음속에 품은 감정을 잘 건드리는 가사가 돋보인다. 어른이라는 통과의례를 마치 허세와 건방짐의 장착으로 믿는 남자들만의 시각에 부정적인 메시지를 던진 달까. 검은 실이 온몸을 휩싸이게 되면서 우리는 욕을 툭툭 뱉고, 솔직하게 터놓는 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여성과의 공존할 수 없는 간극과 남성 사회라는 상아탑의 거부감은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내 블로그는 그런 일상의 소소한 것들을 마음껏 토해내는 수다스러운 곳이었으면 좋겠다. 목적과 의식도 없이 마치 하루키의 수필처럼 바로바로 읽어 내려갈 수 있는 그런 곳. 솔직하게 생각을 마구잡이로 떠벌일 수 있는 일상이 녹아있는 곳. 심각함보다는 가벼움이 더욱 크고, 영화라는 매체에 한정되어 있다 보니 딱히 사고의 스펙트럼을 시험해볼 필요도 없다. 어디 영화 싫어하는 사람 있는가. 그런 이상을 가진 블로그를 더 오랫동안 운영할 생각이다.
연애의 온도라는 영화를 무척 즐겁게 봤다. 이 영화는 내가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연애라는 장치를 통해 극적으로 풀어놓는다. 특히 연애하는 남녀의 심리 묘사가 꽤 적절했다. 특히 내레이션으로 현재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바로 엎드려 울고 술주정하는 커플의 모습은 현실에서 잡아온 듯 싱싱하다. 겉으론 남들에게 초연한 척, 불쌍해 보이거나 구차하지 않은 척, 결국엔 혼자 방에서 통곡을 서슴지 않는 그런 연애가 즐겁다. 그런 면에서 마치 다큐를 찍듯 두 사람을 빙빙 도는 카메라는 다큐와 로맨틱 코미디의 장점들을 오간다. 또한 영화 속 인터뷰에서 미세하게 떨리는 표정이나 어색한 웃음들이 사랑스럽고, 두 배우가 이 작품이 말하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연애의 온도에서 찌질한 남성 캐릭터를 연기한 이민기

오랜 시간 일상생활을 공유했던 연인과 헤어지기 어려운 이유는 아무래도 눈에 밟히는 모든 것들에 그와 함께했던 추억이 서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의 애틋함을 유발하는 소품들은 이별을 준비하려는 연인들을 방해한다. 모퉁이의 가구, 흘러간 약봉지, 몸을 섞던 침대와 얼굴을 마주했던 소파까지 쉴 새 없이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어느 순간부터 일취월장한 존재감을 선보이는 김민희는 자신의 무너지는 마음과 그리움의 씨앗을 통제하지 못하는 여성 심리를 잘 그려내고 있다. 그녀가 맡은 영은 지극히 사실적인 상황과 구어체적인 대사로 현실 날것의 연애를 낱낱이 묘사한다. 여성 감독의 영화다 보니 여성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것은 당연하지만, 김민희가 표현하는 섬세한 심리묘사 덕분에 영화가 풍성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에 남성 캐릭터를 연기하는 동희는 어떠한가. 이 찌질남은 영과 모든 것을 공유한 일상 속의 동반자이지만, 그녀가 공유하고 싶어 하는 애틋한 마음을 거부한다. 설명하길 거부하고, 툭하면 거친 고함을 지른다. 꼴에 남자라고 툭하면 폭력을 휘두르고,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반복한다. 그가 딱 어른이라는 허울을 급하게 뒤집어쓴 애어른의 대표적인 사례다. 스스로 마초가 되길 원해 여성이 주는 사랑을 제대로 받아먹지 못한다. 아무래도 감독 노덕의 개인적 원한이 남성 캐릭터에 매몰되어 있지 않나 추측해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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