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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 투머치토커

by 박민진

주말 아침 모임 공간을 찾아 청소를 시작했다. 에어팟맥스로 음악을 틀고 바닥과 테이블을 닦고 연필을 깎고 모임 발제문을 뽑아 놓았다. 매일 하던 일, 매일 하는 일. 내 의식은 벌써 집에 가서 먹을 점심밥에 쏠려 있었다. 어제 먹다 남은 보쌈을 라면에 넣어 먹을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때 책상 귀퉁이에 놓인 낯선 휴대폰이 눈에 들어왔다. 얕은 실망감에 한숨이 비어졌다. 나의 일상을 깨뜨릴 아이폰. 화면이 들어오지 않아 켜보려 했으나 켜지지 않았다.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두고 다시 청소기를 돌렸다. 곧 들이닥칠 사람들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서둘렀다. 맨발에 반바지 씻지 않은 몰골을 보여주기 싫었다.


3년 전 처음 독서모임을 하겠다며 오피스텔을 구할 땐 작은 원룸이면 족했다. 하루에 딱 한 모임만 열면 그만이었다. 하우스디어반 오피스텔 2014호. 도심 중심가에 20층이 훌쩍 넘어서 뷰가 좋았다. 공간이 작아 내가 모든 걸 꾸밀 수 있었다. 어느 한 곳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난 퇴직 후에는 끊었던 인스타그램을 다시 활성화했다. 내 공간을 찍어서 올렸다. 나라는 사람보다 자랑스러운 공간이었다. 15년 내내 군 관사를 전전하던 시절도 끝이다. 비록 반전세지만 내 집은 내 집이니까.


독서모임 사업은 망해도 괜찮았지만 망할 것 같지 않았다. 될 대로 되라고 한 커뮤니티 사업이었지만 될 성싶었다. 일이 즐거웠다. 책을 고르고 대화할 주제를 픽해서 책 좋아하는 파트너에게 모임을 맡기는 과정은 그 자체로 설레는 일이었다. 교보문고 1층에 딱 들어설 때의 설렘. 그래서 디퓨저도 교보문고에서 나는 향을 카피한 제품을 샀다. 그때 처음 내가 공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 걸 알았다. 난 노매드의 삶을 추구한다고 여겼던 말이 다 현실 부정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공간이 생기니 늘 텁텁하던 입과 목이 촉촉해졌다. 내 집 마련을 위해 젊음을 갈아 넣던 30대의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아파트 하나가 인생인 것처럼 여기던 그들의 무모함을 답습하고 있다.


대구 독서모임 나를위함을 시작할 땐 꽤 고전했다. 1년 만에 7킬로그램 넘게 찌고 근육이 다 녹았다. 마케팅, 세금, 통신사업자 등록까지 처음 해보는 일이 가득했다. 군부대라는 터울 속에서 얼마나 따듯했던가. 그땐 거울로 나를 보기 싫었다. 운동과 멀어진 돼지. 피부는 버석해서는 악습을 되풀이했다. 나는 차마 눈을 마주치며 물을 수 없었다. 너 망해도 괜찮다매. 이백만 원만 벌면 된다며. 매일 새벽 집에 들어가면 라면을 찾았다. 난 컴컴한 방에서 인스타그램을 켜고 다들 어떻게 사나 보며 불안해했다. 다들 번쩍번쩍거렸다. 스크롤은 쉬지 않고 내 새벽을 잠식했다. 전 여자 친구와 이별이 힘들었던 것도 그 고된 시간을 함께 견딘 시간 때문이었다. 함께 고생한 사이는 끝이 다가와도 헤어짐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하긴 내가 군인이라고 타지에 살 때마다 내 친구와 가족이 되어 주었던 과거의 연인들과도 다 힘든 이별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며 모질게 굴었다. 몹쓸 놈이 된 기분이다.


에어팟맥스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힙합인데, 몸이 발라드처럼 축축 처졌다. 이제 화장실도 다 닦았고, 테이블마다 과자도 올려뒀다. 맥심 원두를 머신에 붓고, 정수기에 튄 커피 얼룩도 지웠다. 9시 20분. 주말 모임은 아침부터 스무 명 가까이 공간을 찾는다. 토요일 하루를 다 합치면 50명도 훌쩍 넘어간다. 그들이 각자의 이야기로 이 공간에서 웅성거릴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내가 지금 뭘 하며 사는 거지?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자유로워지려나. 그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난 갑자기 머리를 매만지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소매를 접은 하얀 셔츠를 입은 여성분이었다. 난 잽싸게 백팩을 메고 공간을 나설 차비를 했다. 라면에 보쌈을 넣어먹을 거면 도대체 보쌈은 왜 새벽에 주문한 거야.


하우스디어반 오피스텔에서 2년 전세계약이 끝나자 여유가 생겼다. 독서모임은 궤도에 올랐다. 그제야 한 달 유럽여행을 갈 수 있었다. 7년 만에 베니스와 시칠리아를 찾았다. 생활이 안정이 되면서 몸무게와 근육량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왔다. 인스타그램 피드가 내 사진들로 채워졌다. 구독하는 사람들도 사업가들이 많아졌다. 그들은 눈에 힘을 주고 죽을 둥 살 둥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 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난 더 큰 투자금을 들고 새 오피스텔과 계약했다. 시내 중심가에 가장 비싸다는 업무용 오피스텔을 턱 하니 계약했다. 룸 네 개짜리 오피스텔로 옮기면서 난 한시도 일을 생각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감옥으로 날 몰았다. 아무리 바빠도 머릿속으로는 계속 유럽을 떠올렸다. 어쩌면 올해도 긴 시간 걷고 하루 종일 수영하며 며칠씩 산에 오를 수 있는 유럽의 작은 동네에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죽을 듯이 일하면! 이스탄불에 다시 갈 거야. 스톡홀름에 다시 갈 거야. 시칠리아로 가게 될 거야.


밖을 나서려던 차에 방금 들어온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사장님. 어제 놓고 간 게 있는데요. 그는 나를 부르고는 책상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난 알면서도 뭘 놓고 가셨는지 물었다. “아이폰 12 빨간색이요” “아 제가 가지고 있어요. 어제 모임 하셨나 봐요.” 그는 휴대폰을 찾고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 차 한잔을 드리면서 잠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그를 자세히 보니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제가 석희 님을 아는 것 같아요. 제가 인스타그램 구독하거든요." 실물과는 다른 인스타그램 사진 대신 그가 든 빨간색 아이폰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아 그런가요." 그는 조금 곤란한 눈치였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다른 사람들의 사교 활동에 관한 피드로 넘쳐난다. 앱으로만 연결된 지인들은 계속 하루를 중계한다. 정현이의 서른아홉 번째 생일에 누가 참석했는지, 지윤이가 연 모임에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 팔로워 숫자가 좀 되는 친구가 주말에 산 옷이 얼마나 힙한지, 저 녀석은 얼마 전 여자친구랑 헤어지고도 또 만나네 쩝. 난 그런 시시콜콜한 걸 침대에 누워서 다 흡수한다. 분명히 모르는 사람인데 난 그의 점심 메뉴까지 아는 상태. 이게 좋은지 싫은지 구분도 하기 전에 다음 피드가 나타난다. 난 인스타그램을 열 때마다 세상이 외향적인 사람들을 따른다는 걸 실감한다. 고작 집에 앉아 책을 읽는 건 전혀 멋진 일이 아니며, 브런치에다 내 생각을 꼼꼼히 정리한다거나 뜨근한 욕조에서 어린 시절을 곰곰이 반추하는 일에는 다들 별 관심이 없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러니 난 실패에 관한 생각이나 솔직해지기 두려워지는 나의 쿰쿰한 마음을 남몰래 브런치에 적는다. 누가볼 새라 음침하게 기록으로 남긴다. 모임 공간에 우연찮게 나타난 석희 님은 아이폰 12를 찾고도 바로 돌아서지 않은 탓에 내 넋두리를 모조리 들어야만 했다.


내가 정녕 겁내는 것이 뭘까. 누군가와 안부 인사를 나눠도 “아주 좋죠! 거긴 어때요? 잘 지내요?” 따위의 얘기만 하는 관계가 두렵다. 내가 사는 세상은 외향적인 사람들이 확고한 위치를 갖고 있지, 내향적인 사람들은 발언권이 적은 곳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이 있는 사람은 글이 없이도 잘 산다. 근데 글을 적고 싶은 사람은 인스타그램의 기세에 눌려 글로 적을 엄두를 내기 어렵다. 마치 최대 인파의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인기인 것은 책이 아니라 책 관련 굿즈인 것과 같은 이치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혼자 있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속삭인다. 시끄러운 방에서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싶지 않은 마음, 혼자 간단히 식사하고픈 마음, 종이 한 장만 놓고 혼자 앉아 있고 싶은 나음, 근처 공원에서 산책하고 싶은 마음은 비정하게도 돌봐주지 않는다.


난 어느새 인스타그램으로만 알던 석희 님과 인생 얘기를 나눴다. 그는 나를 모르고 나도 그를 모르지만 충분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나의 빈 공간에 찾아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찬 물을 조금씩 나눠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저 사람 중증이구나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치료가 필요해. 자낙스 한 알이 필요해. 난 문제가 있는 사람답게 머리를 긁적이면서 웃어 보였다. 내 얘기는 이제 그의 피드로 옮겨갔다. 그가 사진을 찍어 게시글로 올린 직박구리 새 한 마리나 테라로사 카페에 몰린 관광객을 멀찍이서 찍어 올린 사진 얘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강릉 여행은 재밌으셨어요? 그에게 화면 너머 다른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그건 예의가 아니지. 석희 님 인스타그램을 보니 이곳저곳 정말 많이 돌아다니시는 것 같더라고요. 커피도 종류 별로 다 드시고요. 그가 부끄럽게 웃어 보였다.


이제 그의 얘기를 들을 차례였다. 허기 때문에 이제는 집에 가고 싶었지만 난 꾹 참고 그의 얘기를 경청했다. 석희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카페에서 일하고 밤이면 쿠팡 물류센터에서 알바를 한다. 번 돈의 일부는 부모님께 보내고 월세를 낸 후에 남은 돈은 다 저금한다. 석희님은 인스타그램과 함께 햇반에 김을 먹고 저녁에는 물류센터 귀퉁이에서 인스타그램과 함께 커피를 마신다고 했다. 내가 그렇게 먹고 어떻게 사냐고 했더니, 그렇게 살아서 살이 찌지 않는다고 슬며시 웃어 보였다. 나는 진심으로 감탄하며 얘기했다. 석희 님은 참 반듯한 분이시네요. 나는 거칠고 팍팍할 것이 분명한 그의 하루가 궁금했지만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진으로 족했다. 곧 더 많은 회원들이 들이닥칠 터였다. 난 그의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며 얘기했다. 나중에 제 글쓰기 모임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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