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보내지 마

by 박민진

나의 대부분의 관계는 모임에서 이뤄진다. 내가 하는 독서, 영화, 글쓰기, 고전 모임에서 나는 사람과 소통을 하며 산다. 서로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형식 안에서 나는 편안해진다. 그렇게 속 편한 관계 속에서 뒤척이다가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간 모임에서 만난 여자친구들은 모두 결혼을 했다. 어떻게 아냐고? 다들 다투고 헤어진 게 아니라서 그런지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주말 밤에 책을 들고 시내로 나서면서 난 관계와 이별, 냉담과 외로움, 갈등과 멀어짐을 글로 적어왔다. 거기서는 적고 싶은 일들이 벌어졌고, 쑥스럽게도 그것들은 세계문학전집보다는 주말드라마에 가까웠다.


나는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말이 흥미롭다. 어떤 얘기를 하나 듣다가 메모한다. 당신을 일일이 글로 적어서 브런치에 올리려는 것이 아니에요. 내 생각의 틀 속으로 그들을 끌고 들어와서 내 일상과 비견하며 글로 적어나간다. 결국 나라는 사람을 잘 알기 위한 바로미터로 그들을 애용하며 살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좀 미안해요. 그렇게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가끔 상대가 물끄러미 날 바라보면서 내 삶에 관해 얘기해 줄 때가 있다. 그럴 땐 난 고개를 푹 숙이고 모임장의 권한으로 이야기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버린다. 그건 꽤 부끄러운 일이니까. 내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 좋지, 직접적인 언급은 곤란하다. 직시하는 눈빛은 노골적이고 드세다. 난 타원형의 궤적이 더 좋다. 빙글 돌다가 꽂히는 말이 더 아늑하다.


커뮤니티 대표로 있다 보면 평가하는 말에 쉽게 노출된다. 그래서 웬만한 말에는 내성이 생겼다. 나를 걱정하는 말이지만, 사실은 그 말의 매서움에 취해서 즐거워하는 입이 무섭다. 그래도 듣긴 들어야지. 그래야 사업을 하지. 최근에 일어난 두 번의 나를 향한 언급은 어떤 비난도 담겨 있지 않은 순수한 사실의 환기였기에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래서 여기다 옮겨 적어본다. 한 친구는 나를위함 독서모임 내에서 이런저런 모임에 참가했는데, 그의 말로는 내가 다른 모임에서 화제에 오른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임 중독자에 관한 특징을 열거하며 나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모임을 참여하기 위해 본업을 제치고 모든 시간을 모임을 위해 쓴다'는 증상이라 했다. 깜짝 놀라 내가 왜 그렇게 보였는가 물었더니, 모임이 끝나도 사람들을 보내기 싫어서 말을 질질 끄는 게 딱 중독 증세처럼 보였다고 한다. 난 목소리가 잦아들면서 '너희들도 충분히 즐기고 있잖아'라고 항변했다.


난 사람들이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 그들이 더는 나오지 않아도 이상하기 때문이다. 무심히 고개를 돌리고 현관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속절없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그렇다고 붙들 용기는 없으면서 괜스레 말을 한 번 걸어본다. 주말에는 뭐 하세요? 또 모임 놀러 오세요. 주말에도 모임 많아요. 특히 제 모임이 있어요. 두 번째는 한 달도 안 된 최근 얘기다. 얼마 전 나는 시청에서 커뮤니티 운영자를 대상으로 한 포럼에 발제자로 참여했다. 어차피 사업을 하는 몸, 관공서와 잘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참여했더니 평소 대구에서 모임을 한다는 분은 다 모여 있었다.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자리가 편해지다 보니 오래 앉아 있게 되었다. 그렇게 흥미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난 열심히 인스타그램에서 보던 운영자들의 안면을 살폈다.


애초에 끝내기로 한 오후 4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빠져나갔다. 나 또한 이제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난 자리를 계속 지키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보려고 이런저런 농담을 던졌다. 그래도 끝까지 자리는 지켜야지, 내가 제일 오래 했으니까 분위기라도 띄워야지, 내가 군인 출신이니까 용기 있게 사람들하고 맥주라도 한 잔 하자고 얘기해야지. 누구도 부여하지 않은 의무감으로 난 마지막 4명이 남을 때까지 시시콜콜한 대화를 꺼냈다. 그러자 대구에 처음 왔을 때 함께 글쓰기 모임을 했던, 지금은 작은 모임을 운영 중인 친구가 나를 가리키면서 옆자리 지인에게 뭐라고 얘기했다. 저 박민진이는 어떤 모임에서도 결코 먼저 일어나자고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단다. 심지어 저 이는 멤버로 활동할 때도 파트너보다 말이 많았고, 모임이 끝나도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더란다. 내가 그랬다고?


나는 예전부터 모임이 사그라들라치면 불안해했고, 사람들이 집에 가서 더는 내 모임을 찾지 않을까 봐 초조해했다. 이제 커뮤니티를 직접 운영하니 그 증세는 더 심각해졌다. 그러니 별 수 있나. 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중언부언 말을 보태는 것이다. 나는 그간 몇 년을 보지 못했지만, 내 증상을 알아봐 준 그 친구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최근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마음, 독서모임을 사랑하는 나의 모습에 관한 원고를 보태고 있다. 처음 기획 의도는 누구나 커뮤니티를 할 수 있다고 약을 파는 것이었다. 하지만 계속 쓰다 보니 나의 중독 증세를 고백하는 모양새다. 이러니 더더욱 모임을 빼고 나를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책을 한 권 내고 싶어졌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으며 어쩌지? 초조하고 불안하다. 아무리 쓰고 고쳐도 끝장이 나지 않는 불안의 쳇바퀴 속에서 나는 매주 2~3번씩 파트너를 맡는다. 오늘은 또 누구와 모임을 하고 또 누구에게 생각을 청할지 알 수 없다. 하나 분명한 건 그 누구는 점점 줄어들 테고 언젠가 내 모임이 열리지 않는 날도 올 것이다. 몇 번 입술을 깨물고 그날을 상상해 봤지만 그래도 나란 인간은 결코 모임을 먼저 끝낼 것 같지는 않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