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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살 추석

by 박민진

저는 서른 살이 되던 해를 기억합니다. 별거 없었는데 회사 앞 교보문고에 들러 최승자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나온 저녁은 떠올리곤 합니다. 39페이지 <삼십세>라는 시에 이런 시구가 있습니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지금 다시 읽으니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폼 잡는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이건 마치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처럼요. 예전에야 서른이 뭐 됐지만, 이제 삼십이라는 나이는 생애 주기로 따지자면 학교를 갓 졸업해서 겨우 직장에 발을 걸칠 나이잖아요. 결혼 적령기라는 말도 옛말이지 햇병아리 같은 얼굴로 겨우 먹고사는 그런 나이에 무슨 죽음 타령을 하나요. 먹고살기도 바쁜데.


저의 서른도 마찬가지였어요. 사느냐 죽느냐를 논하기엔 아직 추수한 게 변변찮으니 우선 눈앞에 샛노래진 이삭들에 눈이 갈 수밖에 없었죠. 올해 마흔이 된 저는 이렇게 살다가 별거 없이 죽을 것 같다는 짐작은 합니다. 관성처럼 집 앞 커피집에서 아침에 라테 점심에 아메리카노 저녁에도 한 잔 더 마시다 보면 어느새 오십이 올 것입니다. 저는 요즘 생각해요. 먹고사는데 바쁘고 싶지 않아요. 인생이 중대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좀 더 가벼운 글을 쓰며 살고 싶어요. 그 가벼움 속에는 별에 별 생각들이 깃들어 별거 아닌 것을 중대하게 취급하는 글이었으면 해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해요. “인생이란 한 통의 성냥갑과도 같다. 중대하게 취급하면 바보 같지만 그렇다고 중대하게 취급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인생이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포레스트의 순진한 말보다는 훨씬 와닿지 않나요.


고전문학을 읽다 보면 생애 주기가 점점 더 앞당겨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세계문학전집의 맨 뒤편을 들춰보면 작가들의 연보가 나오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걸 유심히 보세요. 대부분의 대문호는 아직 뜸도 들지 않은 약관의 나이에 척척 인생의 중대사를 다 치러냅니다. 저는 청춘의 본전도 못 뽑고 늙어버렸는데, 그들은 할 거 다 하고도 고작 서른 즈음이죠. 경험치가 잔뜩 쌓여서 이제 쓸 일만 남은 것처럼 보일 정도예요. 가령 프랑스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19살에 첫 소설을 썼고, 이 데뷔작으로 프랑스 문학비평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리고 사강은 얼마 안 가 결혼을 했는데, 서른 전에 두 번이나 이혼했습니다. 사강은 25살에 첫 남편이자 언론사 편집장이었던 기 스콸레르와 헤어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새벽 4시에 잠자리에 들고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말을 타러 간다. 결정은 내려졌지만,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생활을 계속할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작가가 될 팔자인가 봐요. 불과 스물 중반에 이런 곡절을 겪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 아닐까요.


요즘 유튜브 쇼츠에 예능에 출연한 유부녀 김연아와 18살에 올림픽을 제패한 김연아가 동시에 뜹니다. 알고리즘은 시대를 뒤섞고 생각에 맥락을 결여시켜요. 각기 다른 두 사람은 한 시점을 얘기하고 있어요. 그녀의 영광의 시절은 19살 밴쿠버니까요. 이제 서른이 된 그녀는 나는 한 물 갔다고 얘기해요. 아이돌처럼 10대 후반에 삶의 최고점을 찍은 셈이니까요. 그렇다면 저의 생애주기는 지금 어디쯤일까요. 저는 이번 추석 연휴를 모두 영화모임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사람이 덜 모인 날은 모임을 취소하고 근처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올해 제 추석은 모임과 영화였습니다. 아무에게도 안부 인사를 남기지 않았어요. 매일 새로운 멤버들과 영화에 관해 깊게 얘기했어요. 가족이 사라진 명절, 고양이 울음뿐인 아침. 텅 빈 헬스장과 선선한 바깥 날씨. 영화관에 들고 들어가는 종이컵의 감촉. 이게 여유인지 외로움인지 쓸쓸함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마흔은 지금 뭘 추구하고 있을까요. 이렇게 살다가 어떻게 될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정도로 갈음합니다.


마흔이란 무엇일까요. 지난해와 올해가 하루 차이이거늘 무슨 상관일까요. 하루는 성실하게 제게 주어지고 있습니다. 나이라는 건 매해 하나씩 먹다 보니 어색하지 않은 것 같아요. 두 해 전부터 제가 마흔이 될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왕왕 마흔에 뭔가를 이룬 작가들을 찾아보곤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격랑의 근현대사를 통과하며 마흔 살에 등단한 고 박완서 작가가 계시죠. 선생은 전쟁과 이념 투쟁의 사회변혁을 다 겪으신 후에야 펜을 드셨습니다. 얼마나 든든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삶이 고되고 퍽퍽했던 만큼, 여성이 글을 쓰기 어려운 시대에 작가는 평생을 소설가로 살며 무수한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후배와 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세상을 떠나셨으니 늦은 등단에도 아쉬움 없이 쓰고 가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마흔 살은 늦은 나이는 아닌가 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정유정 작가처럼 문학과 별 관련 없는 간호사로 살다가 마흔 넘어 등단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목도합니다. 저도 아직 늦지 않았다고 희망을 품어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은 생전에 인터뷰에서 이런 말도 했습니다. “농담하세요. 사랑은 2년 이상 안 갑니다. 좋아요, 3년이라고 해두죠.” 몇 번의 결혼을 지쳐빠진 작가는 외로움에 져 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신을 자조하며 말했습니다. 저는 카프카의 연보를 읽다가 밑줄을 두 번 친 곳이 있어요. 카프카, 세 번 약혼하고 세 번을 모두 파혼하다. 사랑은 하지만 결혼을 피해 달아났던 무책임한 새끼. 저 역시 외로움이 미쳐 결혼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다가선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발을 뺀 적도 몇 번 됩니다.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그땐 제 전성기가 더 있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아요. 뭔가 더 있을지도 몰라. 이대로 서른을 끝낼 순 없어. 나의 시대가 올 거야. 그런 이유로 저의 삼십 대는 결혼을 피해 도망쳐온 10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때 팔았어야 했나? 전 마땅히 좋은 사람들을 놓쳤고, 제 결정을 후회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안도의 마음이 더 큽니다. 휴우하고 지금의 상황을 낙관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잘 내뺐구나. 외로움에 지지 않았구나. 지상 최대의 연휴 속에서 영화뿐이었지만 마흔이 저를 환대한다고 느낍니다. 비틀스의 명곡 <엘리노어 릭비>의 후렴구 “세상의 모든 외로운 사람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거야?”라는 가사가 고개를 까딱이게 하는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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