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플라스틱 신드롬

by 박민진

일하기 싫다. 가을은 일이 아니라 이 삼 사 딴생각이 난다. 날이 이렇게 좋은데, 러닝하고 소설 좀 읽다가 낮잠이나 자고 싶다. 출근이 사라지면 살 것 같았는데, 통 틀 무렵 잠에서 깨지 않아도 샤프심처럼 박힌 할 일 거리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지구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플라스틱 같다. 쳐내고 또 쳐내도 새로운 일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왕이면 플라스틱을 쓰지 않으려고 따듯한 아메리카노를 시켜도 가방 속 제로콜라는 여전히 플라스틱이다. 일이 무슨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 번지르르한 말에 가져다 붙이진 못하겠다. 내가 본 책에 의하면 자아실현이라는 말을 처음 쓴 T. H. 그린(Thomas Hill Green)은 공동체와 관계 속에서 도덕적 실현을 이루는 것에 방점을 뒀다. 관계 속에서. 관계 속에서. 매일 혼자 커피숍에 출근해서 이런저런 딴짓들을 하며 재밌게 노는 나에게 일은 자아실현이라기보다는 회피기동에 가깝다. 날 더 실현하는 일은 오히려 헬스 한 후 켜는 넷플릭스 시리즈에 더 가 있다. 넷플릭스 검색창에 내가 자주 치는 해시태그는 다음과 같다. 치정, 살인, 잔혹, 불륜, 복수.


그래도 일을 플라스틱이라고 하는 건 지나친 자기 비하일까. 난 사실 플라스틱이 좋다. 유리컵에 물을 마셔야 목 넘김에 좋다는 걸 알지만 깨지지 않고 값싼 플라스틱 컵이 자취생에게는 최고다. 내 삶은 플라스틱 컵처럼 바닥에 떨어지면 가볍게 통통 튀겼으면 좋겠다. 내 양치컵은 10년 써도 끄떡없다. 썩을 테면 썩어보라지. 내가 요즘 하는 일은 별로 힘에 부치지도 그렇다고 민망하지도 않다. 과거에는 내가 하는 일이 민망했다. 효용성과 실효성을 바탕으로 한 보고서는 늘 과장과 보탬이 있었다. 수치를 적어도 다를 게 없었다. 분식회개처럼 자꾸만 부풀리는 성과에 혀를 내둘렀다. 대동강 물을 돈 받고 파는 격이었다. 지금 하는 커뮤니티 일은 하기 싫은 일만 딱 도려낸 점이 마음에 든다. 귀찮지만 민망하지 않다. 어디 가서 내 일을 떠벌여도 초조하지 않다.


일에 거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여러 글을 고쳐 써왔다. 아무리 해도 글은 날 속이지 못한다. 노트북 위로 펼쳐진 글 앞에 고개를 숙인 나는 취조실에 온 범인과 같다. 승모근이 두툼한 강력계 형사 앞에서 진실을 낱낱이 토해낸다. 제가 일을 꽤 오래 했는데요. 사실 그냥 불안해서 하고 있어요. 누구 말마따나 어디 하나 잘못되면 누가 날 먹여 살리겠어요. 저 지금 들어가면 얼마나 더 일해야 하나요. 일은 딱 이 정도의 죄책감으로 작동한다. 남들 다 하니까. 누군가가 지금 서른 후반이 일을 가장 열심히 일할 때라고 하니까. 이제 일할 전성기라니까. 이 귀찮은 투 두 리스트가 나를 설명해 준다니 반감이 든다. 어제는 혼자 대구 아카데미 영화관에서 '어쩔 수가 없다'라는 영화를 봤다. 근데 거기서도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 영화가 그렇게 얘기한 것이 아니라 내게 이 영화는 일에 관한 것으로 들렸다. 사람이 일터에서 밀려나면 한국에서는 모가지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도끼질을 한다고 은유한다. 내가 아무리 내 일을 천직으로 여겨도 결국 세상이 나를 모가지 하거나 도끼질하면 나는 땔감이 된다. 아니 일터가 사라졌다고 목이 날아가? 이게 무슨 삼국지야? 정말 일이 그 정도야? 그렇다면 일 대신 뭘 가져다 댈 것인가.


우리가 매번 하는 로또 맞는 상상은 사실 따져보면 출근의 소멸이다. 매일 의무적으로 하는 일이 사라진 상태는 자유에 가깝다. 계좌에 돈이 들어와서 0이 몇 갠지 세다가 지칠 수준이라면 나는 뭘 하고 살 것인가. 우선 아침에 노트북을 펴지 않고 천천히 반월당과 신천 부근을 러닝하고 들어오려나. 저 중생들은 아침부터 교통 체증에 1리터 커피를 무슨 연료처럼 받아 들고 가는구나. 팔짱을 끼고 인생의 소중한 것에 대해 논하려나. 어찌 됐든 사람이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일이다. 하루 9시간 하던 게 빠지면 대체 무슨 수로 시간을 채워나가나. 무슨 수로 나를 설명하나. 잘 나가는 CEO들 중에 일 중독이 많은 이유가 뭘까 상상해 보면 하루라는 반복의 틀 속에서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이라는 간판을 세워둬야 할 판이다. 세상에 난 쓰임새가 있다. 난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략자산이다.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나라는 사람의 해시태그는 직업이니까. 대체할만한 게 없다. 글이 막히는데.


멍하니 카페 주인을 바라보며 다음 문단 내용을 떠올렸다. 커피숍 직원들은 손님이 없을 때 폰을 하는데, 내가 신들린 표정으로 쳐다보니 자세를 고쳐 잡는다. 죄송해요. 저들의 폰 속에는 어떤 쇼츠가 흘러나오고 있을까. 난 이 커피숍의 원두 냄새 때문에 매일 아침 오는데, 저들은 저 냄새를 좋아할까. 매일 출근하는 게 싫어서 커피마저 정이 떨어지려나. 난 사람을 만나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다 보니 정말 많은 친구들을 만나지만, 그들이 싫지 않다. 그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기껍다. 그들이 나를 쳐다봐줬으면 싶다. 쇼츠 대신 나를 보아야 내가 산다. #커뮤니티 #모임 #관계 #대화 이 정도면 충분한 거 아냐? 정말 #출산 #양육 #결혼 #내집마련 #노후자금마련도 있어야 해? 직업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면, 그거 없으면 일 안 해도 그만이야?


군 생활 중에 다양한 인간을 만났다. 공군 장교로 임관하고 나면 별의별 사람을 다 보는데, 운 좋게도 내 동기 중에 사고 치는 대기업 자제가 있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한구에서는 술만 퍼먹고 유흥을 즐기다가 군에 끌려온 타입인데, 녀석은 고작 3년인데 별별 사고란 사고는 다 치다가 전역을 했다. 언젠가 그 친구와 중위 2년 차에 우연히 행사장에서 소담을 나눈 적이 있었다. 공군회관 3층 작은 테라스에서 둘 다 정복을 입고 뭐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행사에 차출되어서 선배들 시다 노릇을 하던 차라 기분이 별로였다. 난 뉴스로 보던 애를 마주하는 게 신기해서 인사를 건넸다. 사실 긴장을 좀 하기도 했는데 용기를 내서 말을 걸었다. 너 어디 부서더라? 우리 동기잖아. 너는 나를 몰라도, 나는 널 알지. 우리 기수의 스타. 정책실이야? 거기 꿀 빤다고 하던데. 재벌집 아들답지 않게 얼굴도 별로고 말투도 상스러웠는데 유학파 특유의 혀 꼬부라짐과 난투극으로 뉴스를 탄 점이 그에게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나도 속물은 속물이구나. 우리 9시 뉴스 1면 헤드라인 탄 동기. 자랑스러운 내 동기. 인간 망나니 동기. 페라리와 히비키 21년 산 동기.


커피를 다 마셔갈 즈음, 난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왜 그렇게 신문 지면을 달구면서 노는지 물었다. 돈 많으니까 어디 지하 같은 데서 조용히 잘 놀 수 있을 텐데 의아했다. 녀석은 워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신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다이아 수저에 아버지 후광으로 회사나 물려받는 놈이라고 정의하는 게 싫었단다. (그거 맞잖아. 별게 다 불만이네.) 난 참 혓바닥이 길다고 생각했는데(그럼 왜 물어봤어), 녀석은 실실 웃다가 내심 진지해졌다. 자기가 가진 운명의 수레바퀴, 해야 할 일이 정해져 버린 팔자. 늘 주목을 받고 업신여기는 사람들의 시선. 쉽게 누군가와 친해지기 어려운 위치. 이런 것을 깨뜨리고 싶어서 열심히 강남 술집들을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쳤단다. 그의 형이 아버지의 코스를 고스란히 밟아 제2의 누구가 되는 것을 보면 토가 쏠린다고. 자기는 다르게 살 거라고 했다. 어떻게 다르게? 내가 하는 일 말고, 자기가 하는 메시지가 세상에 울려 퍼지게. 작가가 될 요량이야? 아니 글은 못 쓰고 행동으로 예술을 하겠다고 했다. 너 뭐 전공했어? 경영학. 아 그렇구나.


지금 십수 년이 지난 지금 그는 사고 한 번 잘 치지 않고 계열사 하나를 인계해서 잘 산다. 젊을 적 패기는 군 전역 후에 사라졌다. 군대가 사람 만든다고? 아니 꿈을 꺾는 건 아니고? 상속세를 당당히 낸 아버지 덕에 좋은 이미지도 생겼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규정된 이미지의 답습은 피하지 못했다. 그는 남다르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했다. 녀석과 달리 무척이나 조용했던 나의 군 생활은 남들에게 보이기 좋은 것이었다. 주말에 독서모임에 가서 나를 얘기하기 좋았다. 저 용산 모 부서에 근무하는 공군 대위입니다. 한 마디로 정리가 되니까. 저는 나라에서 보증하는 사람이니 빡빡이어도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공군은 하늘을 연상시키고, 조종사일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어린 눈빛이 좋았다. 군인에 맞춰 몸도 만들었으니 잘 어울렸다. 그들은 내가 새벽같이 나가서 억지로 모니터를 켜고 하루 종일 믿지도 않는 보고서를 쓰면서 시간을 축내는 걸 모르니까.


나의 직업은 내 가리개 용도였다. 난 강남 술집에서 난동을 피울 만큼 답답한 게 없었으니(돈도 없으니) 잘 가려졌다. 난 군인이 적성에 딱 맞았지만, 실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잘 가리긴 했는데 그 가려진 곳에 진짜배기가 있었으니 늘 답답했다. 가리개가 국산에 전라북도 임실산 화문석으로 만들어서 품질이 튼튼하고 내구성도 있다고 말해봤자 본질은 아니었다. 난 독서모임에 나가서 나를 설파했다. 실은 제가 이런 사람이에요. 인간실격을 읽고는 고등유민이라고 나를 소개하고, 데미안을 읽고는 제가 실은 싱클레어 같은 놈이라고 항변했다. 군인은 가짜라고, 난 실은 속이 쿰쿰한 놈이라고 말하길 즐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가 군인이어서 안심하는 눈치였다. 말을 저렇게 변태처럼 늘어놓아도 사실은 안전한 직접을 가진 자니까. 그러니까 난 남의 눈치를 보느라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산 셈이다. 내가 가진 똥을 퍼 나를 곳이 필요했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실패할 것 같지만 작가이고 싶었다. 똥을 똥대로 봐줄 곳이 필요했다.


굳이 일이 나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건 억지라고 봐야지. 이제 어디 가서도 무슨 일 하세요 하면 독서모임 만든다고 하니까. 종일 카페에서 이런저런 일을 골라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옭아 맨 틀을 떨쳐내는 작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군번줄 버리고 전역한다고 그게 될 거라고 믿다니 어리석었다. 플라스틱처럼 쉽게 구부러지고 깨지고 금방 가져다 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쉽게 변하고 흐트러지길. 그 친구는 며칠 전에도 뉴스에 나왔다. 밝은 얼굴로 회사 임직원을 격려하는 자리였다. 20대 중반에 만난 그 친구는 그런 웃음이 없었다. 되려 자신만만 오만함이 넘쳤다. 금방이라도 욕을 퍼부을 더러운 인상이었다. 어느 말 하나 곱게 듣지 못하고 바락바락 했다. 환히 웃는 지금이 그 친구에게 더 나은지는 모르겠다. 글이 말미에 다다른 나는 결국 일이 뭐냐고 되묻는다. 일이라. 썩지 않는 플라스틱처럼 계속해서 재활용해야만 하는 나의 업보.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다시 퐁퐁으로 세척해서 써야만 하는 공산품. 아무리 빈정거려도 모가지 되면 참 곤란한 업.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