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버티고 버티다가 근처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간헐적 단식의 효과가 있기를 기도하자. 봉덕동 골목 안쪽에 차여사 국밥을 찾아갔다. 상호와 다르게 모던한 디자인에 여사님이 아닌 이십 대 총각이 주방과 서빙을 겸하고 있었다. 차여사님은 어디 가시고. 대파와 다대기를 확 풀어서 국물을 얼큰하게 해서 한 숟갈 했다. 허기진 배가 올림픽 메달리스트처럼 포효했다. 빨갛고 뜨거운 국물에 흰밥을 만 뒤 가늘게 찢은 머리 고기와 함께 후루룩 넘기며 땀을 뻘뻘 흘렸다. 혼자 일하다 보니 남 눈치 안 보고 여유 있게 먹으면 되는데 점심시간에 식당에 혼자 오는 게 또 눈치가 보인다. 난 마치 아서왕에 나오는 원탁의 기사처럼 국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누가 쫓아온다고 그러니. 어머니의 잔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이마에 맺힌 땀과 입가에 묻은 붉은 기름을 휴지로 닦아낸 뒤 물을 마셨다. 식탁 위 계산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다 말고 옆자리에 눈길을 던졌다. 대낮에 한 여자분이 소주에 국밥을 먹고 있었다. 국밥보다는 소주가 주식이고, 공깃밥은 열지도 않은 폼이 딱 봐도 사연 있어 보이는 여자였다. 핸드백은 가죽이 번쩍대는 게 명품처럼 보였고, 투피스의 옷차림으로 봐선 회사 다니는 사람 같은데 이 시간에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여자는 단순히 옷을 잘 입는 게 아니라 마치 머나먼 세계를 향해 날아오르는 새처럼 우아했다. 하루키의 표현처럼 특별한 바람을 몸에 걸친 것처럼 매우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난 출근 안 하는 백수라 반바지에 유튜브 켜고 국밥 먹으면서 킬킬대지만, 저 사람은 왜 새처럼 입고 와서는 국밥에 소주일까. 그냥 그 속내가 궁금했다. 슬금슬금 숟가락 들고 다가가서 놈팡이처럼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오늘 무슨 일 있었나요?
희주는 퇴근하면 꼭 합정역 인근 해장국집에서 소주와 함께 국밥을 먹었다. 넌 별로 국밥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차량 맞게 그러고 있어. 내가 용산으로 오면 밥 사줄게. 아냐. 그 맛이 아냐. 소주랑 국밥은 혼자 먹어야 해. 이게 되게 분위기 있어. 소주로 속이 확 뜨거운데 국밥 국물이 들어오면 이상하게 삶의 페이소스가 느껴진다니까. 뜨거운 상처를 이태리 타올로 문지르는 느낌 알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건 중정에서 하던 고문이잖아. 내 말은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지닌 멋이 있다는 거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몰라? 사강 몰라? 직장도 멀끔한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페이소스는 무슨. 부잣집에서 오냐오냐 커왔으면서 네가 상처가 어딨어. 아 몰라. 난 왜 그냥 이런 게 멋져 보이는지 몰라. 무뢰한에 나오는 전도연 같잖아. 이렇게 먹다 보면 김남길이 오겠지. 그 멋짐은 김남길 말고 온 동네 아저씨들이 다 아는 눈치였다. 국밥집에서 신세한탄하는 치들은 희주에게 합석하자고 조르고 난리를 쳤다. 혼자 국밥에 소주 마시는 여자는 그냥 둘 수가 없는 거지. 희주는 끝끝내 거절하고 귀찮아하면서도 이모님 해장국집을 일주일에 세 번씩 가곤 했다.
희주는 일단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이었다. 많은 얘기를 나누고 헤어진 뒤 찝찝하지 않은 기분을 주는 사람. 헤어짐 후의 허털감, 아 괜히 그런 말을 해가지고 하는 식의 반추를 안 하게 만드는 사람. 상대에게 자신이 간파당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 따듯함과 유쾌함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가지만 이상하게 울적한 느낌을 줘 등을 토닥여주고 싶은 상대였다. 난 녀석을 독서모임에서 만나서 친해졌다. 평일 모임이라서 뒤풀이가 없는데 몇몇 이들이 모여서 근처 해장국집에서 소주에 야식을 먹었다. 난 술도 잘 못하면서 먹는 시늉을 하고 그 자리를 지켜냈다. 내일 새벽같이 출근해야 했어도 밤이 아쉬워서 늘 근처 이바돔 감자탕집에 들이닥쳤다. 책을 읽다가 어디서든 아는 척하려고 적어뒀던 개똥철학을 벗 삼아 심도 높은 토론을 했다. 희주를 지금 떠올려보면 일단 소주랑 국밥이 생각나고, 일단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은 드물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런 사람의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줄어들어 과거만 떠올리게 만든다. 희주는 우리가 아름답지 않아도 서로가 그런 존재임을 가여워하고 수긍해 주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희주는 그렇게 나의 지방 전출로 더는 보지 않는 사이가 됐다. 대구로 오고 1년 정도는 부지런히 서울을 오갔지만, 대구에도 함께 해장국집을 갈 수 있는 동료들이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국밥을 먹을 땐 녀석이 눈에 밟힌다. 동네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시비를 걸어도 웃어넘기고, 숙취에 아침이 힘겨워도 기분 좋은 카톡을 보낼 줄 알았던 희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언젠가 녀석과 해장국집을 나와 긴 가로수 아래로 도시의 수돗물이 흐르는 천변을 걸으며 긴 얘기를 나눴었다. 삶이 기대만큼 풀리지 않았다는 점과 그래도 한 해 한 해 지나면 괜찮은 뭔가가 있을 거라는 막연한 낙관이 모여 을지로 3가의 선선한 바람을 만들어냈다. 모임 멤버들에 대한 인물평과 매달 10만 원 가까이 지출하며 유지되는 관계가 참 도시적이라는 말 따위를 보탰다. 우리가 이토록 열심히 몰두하는 커뮤니티 대표는 이토록 많은 인연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알고나 있을지 궁금했다. 그건 참 신비로운 건 아닌지 떠들었던 기억도 난다. 나중에 내가 직접 꾸린 공간에서 모임을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난 호언장담했고, 녀석은 그런 날이 오면 뒤풀이로 국밥집에서 소주 한 잔 때리자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