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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by 박민진

오늘의 글쓰기 주제는 늦가을이다. 챗 지피티가 써보라고 뽑아줬다. 나의 결정 부침을 해결해 주는 한 달 2만 8천 원의 행복. 이제 늦가을이긴 하지. 오늘 터틀넥을 처음 입고 나섰다. 11월이 되었고 곧 연말이라고 떠들썩하겠지. 어김없이 봄도 올 터인데 나랑 뭔 상관이람. 그냥 시간은 흐르는 것인데 선을 긋고 여기서부터는 가을 이제 겨울 그리고 다음은 다시 봄이라고 칭하는 단호함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그렇지만 가을은 걷고 커피를 하기에 제격이다. 유럽 여행 생각도 나고 내 삶도 꽤 괜찮은 것 같아서 마음이 포근해진다. 가을은 책을 읽기에 좋은 계절은 아닌 것 같다. 다들 좋다고 술집 거리를 배회한다. 별거 없는 골목에도 사람이 가득하다. 심란하게 독서모임 인원이 줄었다. 어쩌랴 이런 날씨는 드문걸.


확실히 가을은 책보다는 글쓰기의 계절이다. 카페에 가서 앉으면 자연스럽게 노트북 위로 손이 올라선다. 뭐라도 끄적끄적. 가을이 되면 카메라가 많이 팔린다지. 단풍 구경도 가고 놀러도 가고 옷도 많이 팔린단다. 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 나를위함에서도 출사 모임과 하이킹이 인기다. 하지만 난 역시 그 들뜬 마음을 뒤로하고 혼자 책상 앞에서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이번 주에 브런치에 벌써 하나를 게시했는데, 또 하나를 더 게시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11월이 1년 중 손톱이 가장 빠르게 자란다고 한다. 특히 키보드처럼 손가락질을 많이 할 때 더더욱. 아마도 다들 뭔가를 적느라 손톱에 힘을 줘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늦가을에는 시인의 책이 당긴다. 몇 권의 시집을 가지고 있는데, 클래식하게 기형도를 좋아하고 나랑 동향이자 동년배인 황인찬 시인은 힙해 보여서 읽는다. 전에 만나던 친구가 황인찬 예찬을 했는데, 꼭 말끝마다 우리 동네 출신이잖아를 붙였다. 넌 왜 황 시인을 좋아해? 물으면 힙해. 잘생겼어. 그리고 우리 동네 정서가 있어. 책을 처음 읽을 적에는 기형도가 한려수도의 외딴섬 이름인 줄 알았다. 그 친구 덕에 빈집 시집도 사서 가을을 났다. 이후로 질투는 나의 힘, 대학 시절과 같은 작품을 필사하며 시 맛에 눈을 떴다. 괜히 폼만 잡는 게 아니었더라.


시인의 책을 읽고 있으면 시인들이 나를 타박하는 것 같다. 짧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 길게 이야기하나? 시집을 읽으면 이런 글은 못쓴다. 외국에서 2년가량 살 때도 시집을 챙겨 넣었다. 명분은 말맛을 잊지 않으려는 애국심이었다. 유학시절 시집을 두 번은 펼쳐봤나. 여행은 긴 산문과 같아 시집을 열 기회가 없다. 그에 반해 일상은 시집과 잘 어울린다. 나도 하루 종일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사운즈 커피에서 드립커피 시킬 때 진하게 우려 달라고 청했을 뿐이다. 그때 딱 필요한 말한 하는 시인의 감성이 몸을 뒤로 젖히고 숨을 몰아쉬게 한다. 산은 산이고 커피는 카페인이어다. 줄여서 말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줄이는 그 담백함이 가을스럽다. 우리말의 맛 그리고 운율, 리듬, 정제된 언어라니!


어릴 때 시로 학교 문예회에 도전하기도 했다. 내 습작을 읽은 앞자리 영호는 보자마자 가장 가까운 쓰레기통에 빨리 버리고 아무한테도 시를 썼었다고 말하지 말라고 내게 타일렀다. 왜 그러냐 그랬더니, 아예 안 썼다고 하는 게 훨씬 났다더라. 책 좀 읽는다고 폼 잡는 게 얄미웠다. 당시만 해도 학교 독서실에서는 대여할 때 독서카드를 썼는데 녀석은 거기서 1등 하는데 집착했다. 나는 사서 선생님의 칭찬을 독차지하기 위해 독서카드가 아닌 문예회 재패를 목표로 했지만 실패했다. 확실히 내 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백일장도 나가봤지만 광탈했다. 내가 하상욱도 아니고 어떻게 즉흥으로 시를 적나. 흰 종이를 나눠주고 뭐든 쓰라고 하는데, 난 그게 참 싫었다. 상은커녕 언급도 한 번 못 받았다. 상을 못 타서 싫었는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본선에 올라가 본 적 없는 상처뿐이다. 가을은 상처지. 어릴 때는 신춘문예도 내 본 적 있다. 주소를 잘못 적었는지 동아일보와 한겨레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았다. 의례적인 거절 인사도 보내지 않는다. 함축과 절제의 묘인가.


나는 서울 개포동에서 살았는데 그땐 강남이 막 개발된 때여서 우기 때마다 비 피해가 있었다. 지금 타워팰리스 자리가 코스모스 밭이었던 시절이다. 난 비 피해 때문은 아니지만 혼란한 때를 틈타 학교에 매일 지각했다. 그때 개포동 늦가을이 참 예뻤다. 아무도 없는 등굣길에서 본 낙엽과 단풍의 길, 강남도 꽤 고즈넉했다. 물론 지각해서 도착하면 담임에게 몽둥이질을 당할 테지만 그때 가을은 참 근사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 나오는 맨해튼 부럽지 않았다. 그런 날은 교실에서 창문 밖을 바라보며 아무 데도 관심 없는 개처럼 멍하니 하루를 소요했다. 왜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지극히 단순하게도 재미가 없었다. 학교 공부보다 즐거운 일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러 가고 헬스에 러닝까지 가을은 얼마나 풍족한가. 그 생각은 마흔이 된 지금도 유효하다. 개인적인 공부만큼 정겨운 건 없다. 가을은 좀 그래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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