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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un 10. 2017

반칙왕이 내린 곳은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지금 이 시점에서 전 결혼을 원하지 않습니다. 명절 때 어머니를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하다가 하는 말 치고는 꽤 부적절했다. 난데없이 꺼낸 이 말에 어머니는 사정없이 가혹한 비난을 퍼부었다. 올해 헤어진 여자 친구에겐 결혼은 원하지만, 아이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을 때도 비슷했다. 왠지 모르게 별것 아닌 놈이 되었구나 하는 자조. 나라고 왜 어른들이 순리라 말하는 것들을 착착해가며 칭찬받고 싶지 않겠는가. 여자 친구의 손을 잡고 앞으로는 아름다운 미래가 펼쳐질 거라며 뻐꾸기를 날리고 싶지 않겠는가. 그저 내키는 대로 무작정 손 사레 치는 바보는 아니다. 그저 뭔가를 취하면 얻는 것에 비해 애써 버려야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칙왕The Foul King, 2000

울은 참 좋은 도시다. 카페도 많고 커피는 맛있다. 24시간 편의점이 줄을 잇고, 놀거리도 잔뜩이다. 지하철을 타고 여의도 공원과 대림미술관을 오가면 주말은 슉 지나간다. 문제는 이 풍요로운 도시의 발전이 그대로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80년대 학생운동 시대와 90년대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중흥은 이제 끝났다. 내가 태어난 86년은 청년들이 거리에서 이 나라를 바꾸겠다며 영웅적 제스처를 취했지만, 현재로선 먹고사는 일에 하찮은 비굴함을 엮어야 하는 굴비 신세다. 더 이상 끝을 알 수 없는 경제 침체와 빈부격차라는 거대한 벽이 거리거리마다 그득하다. 이 도시에서 난 남들이 말하는 훌륭한 어른이 될 자신이 없다.

작가 김애란

내가 대학에 들어간 04년은 정치와 문화적으로 모든 결론이 난 상태였다. 유예기에 다다른 현시대는 기득권이라는 벽만 보였다. 대기업과 좋은 차를 뽑아서 스펙 좋은 여자와 결혼해 그럴듯한 가정을 꾸리고 할부금을 갚아가는 인생이 최고라고 배웠다. 하지만 시대 중흥의 요란한 잔치는 끝났고, 될 성 부른 고요함이 찾아왔다. 시대적 이상은 빛을 잃었고, 책을 읽어봤자 신자유주의는 미친 짓이라며 떠드는 소리뿐이다. 마이클 잭슨과 서태지(사실상)도 죽었고, 킥보드의 바퀴는 빠진 지 오래다. 학원과 대학, 대기업과 내 집 마련, 사교육과 실버타운이 모든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최근 삼십 년간 서울 사람들은 그토록 열심히 일한 결과로 물질적 풍요로움을 얻었다. 잘 먹고 잘 살자는 구호는 이제 지나갔다. 차별성이 존중받고, 개인주의가 테제가 되어버린 세대다. 전시대를 답습하며 희생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살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살인적인 만원 전철과 경기도 외곽의 24평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삶을 탕진하는 짓은 하지 않으련다. 그 짓을 30년 넘게 하며 얻은 삶이란 게 나는 좆같다고 생각하니까.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늘 본전 치기만 목표로 하는 샐러리맨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귓속말해봤자 평균수명은 늘어만 간다. 머성인가 누군가 그러더라, 먹고살만하니까 팔자 좋은 소리나 한다고.


김지운의 영화 <반칙왕>을 좋아한다. 늘 상사에 꾸중만 듣고 살던 무능한 직장인이 테헤란로를 지나쳐, 영등포 외곽의 허름한 공장지대에 내린다.(이게 순환선의 장점이지.) 그리고 창고를 개조해 만든 이상한 건물 안에서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백드롭을 연습한다. 이것은 일탈이자 반항이다. 유머러스한 분위기와 송강호의 독특한 말투에 가려졌지만, 명백한 슬픔이 온몸을 머금는다. 할 수 있는 거라곤 퇴근 후에 마스크나 쓰고 유아기적 환상을 가지는 거라니. 지금 내 심정이 딱 반칙왕의 퇴근길과 닮았다. 그건 마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따위에 나오는 개혁을 향한 움직임 같은 것이 아니다. 미국 소작농들의 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미국 사회의 움직임과 지금 이 서울의 나 따위의 젊은것들이 하는 생각과 일치하는 점은 없다. 졸음을 참으며 잃고선, 마치 뭔가 깨달은 듯 유치한 발상으로 여러 말을 할 테지만, 그저 흥미를 찾아가는 파랑새에 불과하다. 어떠한 반항과 일탈에는 시대적 명제가 끼어있기 마련인데, 지금의 난 그런 게 없다. 나 하나 편하게 잘 살아보자고 이런다. 난 별 탈 없이 부모가 해준 뜨신 밥을 먹고 나름 괜찮은 동네에서 문학과 영화를 분유처럼 먹고 자란 세대다. 그래서 이런 불평은 블로그에나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소리를 누군가와 공유해봤자 배부른 놈 고생을 덜했다며 혀 찬 소리만 듣는다.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

서울 언저리에 사는 다양한 인물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김애란의 소설 <비행운>은 나같이 불만 많은 젊은이들이 새겨들어야 할 주변부 인물이 가득하다. 남몰래 좋아했던 선배의 부탁에 레슬링복을 입고 푸드파이터와 대결하게 되는 백수(‘너의 여름은 어떠니’)와 조금씩 “그럴듯해” 보이는 삶을 살고는 있지만 실은 “멀리 쫓겨난 사람”처럼 느끼는 직장인(‘큐티클’). 세상의 종말과 같은 순간에 홀로 살아남아 골리앗 트레인 위에서 버티는 소년(‘물속 골리앗’), 조선족 아내를 잃고 “제 자리는 어디입니까?”를 물으며 서울을 달리는 택시 운전기사(‘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교도소에 있는 아들에게 사식을 넣어주기 위해 추석에도 추가 근무를 하기로 결정한 인천공항의 청소부(‘하루의 축’)도 있다. 남자 친구의 배신으로 다단계 판매 조직에 발을 들이고, 결국엔 자신을 따르는 학원 제자마저 팔아넘기는 파렴치한 여자(‘서른’), 헤어진 남자 친구에 전화를 걸어 자신을 만나 불행했냐고 물어보는 여자(‘호텔 니약 따’). 이야기들 마다 온탕과 냉탕이 뒤섞여 있어 현실감을 구원으로 여기는 도시의 낭만자객들의 마음을 녹인다. <비행운> 안의 사람들은 어중간한 위치에서 움직이는 타자들이다. 우리 동네 앞 근거리에 있어 관찰하기 쉽지만, 내 이야기가 아니라 무심해지는 심적 거리감이 있다. 아 내가 저 상황이 아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할지 모르지만, 정작 내가 그들과 비슷한 일로 곤란함을 겪을까 봐 우려하게 된다. 소설집 비행운의 몰입은 이런 관찰하기 좋은 그 적정거리의 풍경의 기시감에서 기인한다.

내가 유독 마음에 품은 작품은 그중에서도 기옥 씨의 사연 <하루의 축>이다.(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라디오 청취자의 하소연 같다.) 기옥 씨는 세계 최고의 공항이라 불리는 인천 국제공항에서 근무한다. 화장실 청소 용역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많은 사람들이 배설하고 가는 그곳을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만든다. “기옥 씨는 항상 세면대와 변기, 바닥과 거울 위를 ‘이제 막 닦아낸 것처럼’ 만들어놔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공간에서 바로 그 ‘드나듦의 흔적’을 없애는 것. 이것이 공항 청소의 핵심이었다.” 그녀 자신도 마치 승강기와 의자처럼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하고 있다. 편의를 위해 희생하는 삶, 아들 영웅이의 호주 어학연수를 꿈꾸며 창밖을 바라보는 하루하루다.

하늘 위로 보이는 비행운은 그런 그녀의 막연한 희망이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삶이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는 이유. 아무 일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청결한 화장실 안에는 오만불손한 인간들의 흔적이 그녀의 손에 의해 씻겨나간다. “사람들은 화장실에서 뜻밖에 많은 일을 했다. 씻고 싸고, 버리고, 꾸미는 것은 기본이고, 먹고, 울고, 싸우는 일을 비롯해 폭행이나 추행, 폭발물 설치 같은 것까지.” 마치 청소를 하며 구시렁거리듯 오물 하나하나를 지워갈 때마다 그녀는 생각에 생각을 꼬리 물며 도시를 해부한다. 그녀는 촌철살인으로 타인의 속물근성과 인간의 표리 부동함을 까대지만, 정작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는 애써 피해버린다. 다시 창밖을 보니 비행운은 사라져 있다.

반칙왕The Foul King, 2000

가깝지만 먼 도시의 유랑인들이 있다. 매일 카페에서 보는 아르바이트 학생, 서울역 지하철을 지날 때 창밖으로 보이는 서대문구의 다닥다닥 붙은 집들 안의 그 누군가. 서촌 사직단을 관리하는 수위 아저씨와 아직도 유심히 누군가와 통화하며 담배를 무는 도식적인 광경까지 난 꼼꼼히 지켜본다. 소설 <비행운>의 지독한 현실감은 나와 비슷한 일로 보잘것없는 고민을 하는 아둔한 인간들이 이 도시에 같이 묶여있다는 동질감이다. 가끔 소식을 듣는 대학 동창생들의 삶은 녹록할까. 속내를 알 수 없으니 쉴 새 없이 쏟아지는 SNS라는 포장지는 도리어 거리감만 키운다. 몇 년 전 친하게 지냈던 군대 동기는 훈련 중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꽤 친한 형이었는데 여전히 카톡 프로필에 사진이 올려져 있다. 당시엔 눈물이 손목에 떨어질 정도로 슬픈 일이었는데, 문득 완전히 잊고 지낸 몇 년간의 시간들이 무위로 돌아간 것만 같은 두려움이 엄습해온다.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지만, 그 흘러감을 인식하지 못하니 더없이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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