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사라진 것들

소설집 <바깥은 여름>, 김애란 저

by 박민진

성탄절이 얼마 안 남은 즈음 졸음과 추위를 이기며 출근을 하는 도화가 보인다.

"오늘은 꼭 헤어지자고 얘기해야지."

경찰청 교통정보센터에서 일하는 도화는 생방송 교통정보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이다. 그녀는 이 도시의 공공선에 기여하는 자신의 직업에 긍지를 느낀다. 이 시스템의 부품이 되고 싶었고, 마침내 그것을 이뤘다. 반면 그녀의 남자 친구 이수는 몇 년 이 넘는 준비에도 결국 공무원이 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한 친구의 회사에 취직해서 일을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지맘대로 그만둬버렸다. 며칠 전 도화는 이수가 자신의 전세금을 빼돌려갔음을 알게 된다.


김애란 소설집 <바깥은 여름>

노량진 부근에 2년 정도 살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노량진 옆 대방동에 살았다. 출근길에 늘 노량진을 거쳐 용산으로 향했다. 노량진은 한강 가까이에 위치하면서도 한강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기어이 육교 위로 올라가야 간신히 보이는 정도다. 그건 여의도의 고층빌딩이 경관을 가린 이유도 있지만, 어째 내 기분엔 이곳은 수 십만 명의 수험생들을 수용하여 기약 없는 고시 합격에 몰두하게 하는 일종의 파놉티콘(Panopticon)처럼 느껴진다. 벌집 같은 원룸촌과 쉼 없이 학생을 토해내는 도서실, 무수한 기업형 학원들, 늘 악취에 시달리는 노점 골목과 유난히 좁은 차로. 노량진은 수많은 학생들을 전혀 위로하지 못한다. 이 유사 가옥의 밑바닥엔 일말의 낭만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멘트 덩어리의 명백한 흉물은 낡지도 부서지지도 않는다. 노량진 1호선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자살자가 발생하기로 악명이 높다. 하루 수 십만 명이 이곳을 거쳐 가지만, 누군가는 끝내 이 곳을 무덤으로 삼는다. 지하철 한 정거장만 건너면 빌딩 숲이 만연한지만, 그들의 투신은 바쁜 이들의 코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

이탈리아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의 <옥중수고>에서 저자는 지배계급이 사회적 약자를 지배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자본주의 한계라고 역설한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을 주도하고, 무솔리니의 파시즘에 맞서다가 감옥에 갇힌 그람시는 이 글을 통해 권력에 칼을 들이댄 것이리라. 그들이 만든 헤게모니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그들이 만든 어항에서 팔딱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메커니즘이란 견고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뻔한 문제의식으론 답을 찾기 어렵다. 마치 노량진 수상시장의 돌돔처럼 키로 당 8만 원에 팔려나가는 꼴이다. 난 이 노량진이라는 어항이 그람시가 우려한 헤게모니의 조형물처럼 보인다. 지난한 경쟁과 증발 없는 고민을 눈에서 없애기 위해 택한 스스로의 굴레다. 더 나은 세상보다는 이 어항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애쓰는 꼴이라니. 그렇다면 이 헤게모니 지층구조의 최하층은 누굴까.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원 선생을 천국으로 가는 열쇠처럼 우러르는 이 학생들은 어떨까.


저녁 노량진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서 노량진 수산시장을 배경으로 한 <건너편>이라는 이야기를 첫머리에 적어봤다. 이것이 문득 지난날 노량진에 대한 소회를 적은 메모를 떠올리게 했다. 아주 오래전에 쓰고 메모 프로그램에 저장해놓은 이 문장은 치기와 분노가 가득 차 있다. 아마도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수고를 읽던 때 작은 식당 TV를 통해 접한 노량진 역의 투신사고가 내 마음을 자극했으리라. 김애란의 과거 소설에도 종종 노량진이 등장했지만, 그건 젊음이 실패하는 장소의 상징성을 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건너편>의 노량진은 이별의 장소가 되었다.

모처럼 외출을 한 두 사람은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를 먹기로 한다. 무리해서 21만 원짜리 돌돔으로 식사를 하던 중 도화는 결국 이별을 말한다. 김애란은 시험에 붙은 도화와 아직 붙지 못한 이수라는 존재를 통해 명백히 계급적인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직장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도화와 자기 주변의 웅덩이를 파며 침잠하는 이수를 대비시키는 방식으로 명백하게 구분 짓고 있다. 도화는 이수가 자신의 전세금을 빼돌린 것을 알고서, 화가 나는 마음 이면의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나는 네가 돈이 없어서, 공무원이 못 돼서, 세금을 빼가서 너랑 헤어지려는 게 아냐. 그냥 내 안에 있던 어떤 게 사라졌어.”

한 번도 제철을 찾지 못했던 연인과의 헤어짐을 택한 도화는 목울대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끝내 도화를 찾진 않을 것이다. 시스템에 편입된 자는 시스템 밖을 떠올리지 못한다.


작가 김애란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2017)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작가의 전작인 <비행운>(2012)과 상반된다. 일상과 젊은이의 비애 집중했던 청춘들은 이제 나이를 먹고 개개인의 역사에 몰두하는 어른이 되었다. 데뷔 초부터 이어지던 코믹함과 후반부의 진지함이라는 구조 역시 <바깥은 여름>에 이르러서 해체되었다. 대신 그 자리에 전반적인 체념의 정조가 안개처럼 자욱하다. 이것을 두고 어떤 이는 세월호 비극에 대한 대응으로 보는 이도 있는 반면, 나 같은 사람은 나이 듦의 한 방식으로 읽는다. 이는 외부에 있던 관찰자가 시스템 내부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감지하는 변화로 이해했다. 김애란은 몇 년의 시간 동안 스타 작가가 되었고, 서른 중반으로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주류 문학의 기수로 자리 잡았고, 그녀와 같이 나이를 먹고 있는 독자들을 두고 있다. 이제 조금은 냉정하게 젊음과 거리를 두고 덜컹거리는 세상에 펜촉을 들이대는 것이다. 사실 <건너편>을 비롯한 7편의 단편이 다루는 소재들은 전과 다를 것이 없지만, 이번 소설집에서는 이 시스템의 공범자로서 소설 속 화자가 기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점이다. 바꿀 엄두도 그렇다고 쉽사리 비난도 할 수 없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눈치나 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걱정을 가장한 흥미의 형태로, 죄책감을 동반한 즐거움의 방식으로 화제에 올랐을 터였다. 누군가의 불륜, 누군가의 이혼, 누군가의 몰락을 얘기할 때 이수도 그런 식의 관심을 비친 적이 있었다. 경박해 보이지 않으려 적당한 탄식을 섞어 안타까움을 표한 적 있었다. (중략) 동일한 출발선을 돌아본 뒤 교훈을 찾고 줄거리를 복기할 입들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색한 침묵이 돌면 금방 다른 화제를 찾아내겠지. 어쩌면 다른 친구들도 이미 타인의 삶에 심드렁해진 지 오랜데.


도화는 소설의 말미에 일하다 말고 이수를 떠올린다. 추운 날씨에 집에 들어온 자신의 몸을 녹여주던 손과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선풍기 바람이 오게 하려고 애쓰던 녀석을 떠올린다. 이제 이수는 어디로 가야 할까. 도화는 끝내 도리질 치며 다시 모니터 화면을 응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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