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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다가서는 자의 태도

영화 <환상의 빛>, 幻の光, Maborosi, 1995

by 박민진

처음 지인의 죽음을 접했을 땐 슬픔보다 당혹감을 느꼈다. 사회 초년생 시절 4개월 간 인턴을 마치고 신입사원으로 근무할 당시 난 사무실 일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규율과 복종이 관습화 되어 있고, 신입이라는 터울에 묶여 참신함을 강요받는 상황이 날 옥죄었다. 끊임없는 프로젝트의 융단폭격과 도전과 용기라는 평생 믿지 않았던 가치를 주입하는 매일의 연속이었다. 묘한 반항심이 들끓던 날 굴종시키는 초짜라는 지위를 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폭염에 땀이 셔츠를 적시던 8월의 여름날 저녁, 급히 샤워를 하고 야근을 하던 나는 오늘도 책을 읽지 못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 있었다. 눅눅한 공기와 내 울적한 기분이 뒤섞여 거친 타자기 소리가 유달리 거슬렸다. 그때 내 폰은 요란하게 사무실을 울렸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경험이 생생하다. 난 표정 없이 문자를 읽었다. ‘야 그 형 죽었데, 너 들었어?’ 그 형이 누군지도 모르겠고, 갑자기 죽었다는 문자에 놀라움보다 짜증이 솟구쳤다.

영화 <환상의 빛>, 幻の光, Maborosi, 1995

외설스러운 농담을 잘하던 그 형의 얼굴이 떠오른 건 연락을 받고 5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난 퍼뜩 ‘왜’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 해 간혹 입사 동기들끼리 술자리를 하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그 형은 공부를 잘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하는 사무적인 얼굴과 천연덕스럽게 짓궂은 농담을 하며 좌중을 웃길 줄 아는 사람 정도였다. 긴밀한 대화를 한 적은 없었다. 그저 내가 몇 살 적다는 이유로 의례 하는 칭찬을 건네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른 후 울린 폰에는 '일하다가'라는 짤막한 문자가 새겨졌다. 죽음과 내 일상은 너무나 먼 것이어서 감을 못 잡던 나는 연이어 울리는 문자에 우선 방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었다. 병원으로 가야 했기에 다른 동기들과 만날 장소를 정했다. 무엇보다 자세한 얘기를 듣고 싶었다. 도대체 30대 초반의 남자가 일하다가 죽을 이유가 뭐란 말인가. 어렵게 연락이 닿은 동기의 차를 얻어 타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차를 타고 가며 내가 들은 사인은 과로에 의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다. 격무에 시달리던 형은 느닷없이 쓰러져 죽었다. 당연히 유서도 남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어렵사리 도착한 청년의 장례식장은 비통함을 넘어선 어리둥절함이 뒤섞여 있었다. 유족들의 표정은 차가운 황망함이 서려있었고, 견디기 힘든 곡소리와 침묵의 아우성이 날 밀어냈다. 난 짧은 시간 병원에 머물다 그대로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서 샤워를 하며 죽음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다. 주말 저녁의 생생함을 느끼고 싶어 번화가로 향했다. 죽음의 기척을 남기지 못한 그 형 그리고 그 가족들의 표정들을 끝내 떨쳐내려고 거리를 쏘다녔다.


영화 <환상의 빛>, 幻の光, Maborosi, 1995


몇 달 전 읽은 소설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오랜 시간 동안 절판 상태였다. 최근에야 재출간되어 어렵사리 구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이 소설에 주목하게 된 건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환상의 빛>(幻の光, Maborosi, 1995)의 원작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신작 개봉에 맞춰 재개봉되어 영화와 함께 다시 즐길 수 있었다.

영화 <환상의 빛>, 幻の光, Maborosi, 1995

유미코의 남편 이쿠오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다. 이쿠오는 선로 위를 걷고 있었고,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결혼생활은 무난했고, 아이도 건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릴 적 친구였던 두 사람은 애틋한 사랑을 이뤄내 부족한 생활에도 여전히 사랑했다. 이 전조 없는 자살에 유미코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다. 몇 년 후 유미코는 이웃의 소개로 만난 타미오와 재혼을 결심하고 낯선 시골 동네로 떠난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죽은 남편의 뒷모습과 함께.

<환상의 빛>은 단순한 스토리 속 모호한 전개를 납득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사자후의 공기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대화의 분위기, 그날의 하늘, 더운 여름이 주는 고단함이 과거의 인물에게 진득하게 자리 잡아 직간접적으로 의혹의 뭉텅이를 서술한다. 하나의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파고들어 의문을 증폭시키는 극의 전개 방식은 신선했고, 죽은 남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떠올리며 그에게 말을 거는 유미코의 태도는 이별의 한 방식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궁금함을 그대로 두고 사자의 뒷모습을 굳이 밀쳐내지 않는 태도에는 결연함마저 느껴진다. 그저 조금 이상했던 건 아무도 남편의 죽음을 추적하려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진실이 밝혀지면 더 이상 삶을 견뎌내지 못할 거라는 예감 때문인지, 그것이 사자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명확한 자살이었고, 그저 그런 죽음도 있는 법이다. 이후 별다른 사건 없이 그녀의 속내를 지독하게 파고드는 영화는 죽음 그 자체에 관심을 둘 뿐이다. 그러다보니 회한의 감정이 문장마다 진득하게 배어있다. 난 소설과 영화를 보며 유미코에게 동정의 시선 대신, 그녀가 쉽사리 잠들 수 없었던 어두운 밤을 떠올려봤다. 내 절망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무심한 세상은 의뭉스러운 죽음을 잊고 일상의 평온함을 가질 것이다.

영화 <환상의 빛>, 幻の光, Maborosi, 1995

난 지인의 부음에 낯선 이질감을 느꼈다. 죽음이란 관념은 익숙지 않았고, 그래서 못내 떨쳐내려고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몇 년 후 <환상을 빛>을 만났을 때 그 낯선 도피의 실체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그걸 보는 아버지의 멍한 눈빛은 내게 생채기를 냈다. 인생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틀어지고, 그 뒤 남겨진 사람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환상의 빛의 미망인 유미코는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서도 남편의 뒷모습과 함께 생을 이어나갔다. 그녀에겐 죽은 자에게 듣는 침묵 그 자체가 생의 동력이 된 셈이다. 난 죽음이 내 지근거리에서 보일까 두려웠다. 형의 입관도 가족들의 마지막 모습도 끝내 회피했다. 이내 떨쳐내고 죽음과 상관이 없는 곳에서 기거하고 싶었다. 하지만 죽음은 나이를 먹을 때마다 하나씩 익숙한 얼굴을 드러낸다. 그게 인생의 끝이고 난 그걸 보아야 마땅한 나이가 된 것이다.


영화 <비밀은 없다>, The Truth Beneath, 2015


한국에서 영화 <환상의 빛>과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이경미 감독의 2번째 장편 <비밀은 없다>는 가족의 죽음을 다룬 전혀 다른 지점의 텍스트다. 우선 영화적 외피인 장르에서 차이가 있다. 좀 더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죽음이 망자에게 다다르는 통로였다. 이경미 감독은 일기, 스마트폰, SNS, 이메일 심지어 최면까지 동원해 살인사건이 가진 맥락을 찾아들어간다. 엄마는 딸의 속내를 추측하고, 간절히 진실을 밝혀내길 원한다. 서투른 추적 방식이 둔탁하지만, 엄마는 폭력적인 방식을 불사하고 앞을 향한다. 그 사실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의문을 품고 앓기보단 적극적으로 진실의 조합해나간다. 이것은 딸과의 화해를 위한 시도이자 엄마에겐 구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 끝에 어떤 비탈이 있을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 <비밀은 없다>, The Truth Beneath, 2015

<비밀은 없다>라는 제목은 비밀 자체가 생기기 힘든 침투의 현대사회를 지목한다. 크게 보면 정치권에서는 도청과 기록 유출 등 불법이 만연하고, 아이들은 몰카, 시험지 유출, 녹취 등을 통해 범죄를 저지른다. SNS에 새겨진 각종 진실들은 현실의 추악함에 기름을 붓고, 소녀들의 환상마저 영화는 비린내 나는 현실의 연장선상으로 취급한다. 비밀도 없고, 환상 역시 깨져버리는 곳이 바로 이 도시다. 속된 도시의 밤, 죽음은 요란하게 전시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자극적인 형태로 기록을 남긴다. 어머니의 추적은 딸의 죽음을 불러온 대상에 대한 분노를 동반한 거친 삭제의 과정이다. 딸이 남긴 흔적을 지워서 딸이 죽음 그 자체로 온전히 남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난 이 폭력적이고 다소 경박해 보이는 영화에 큰 감명을 받았다. 연결과 연결만이 남은 이 시대에 온전하게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자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내 뒤통수를 비추는 CCTV에서 난 속절없이 민낯을 드러낸다. 내가 사라져도 기록은 남으니까. 그래서 온전한 죽음에 파열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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