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공주 Han Gong-ju, 2013, 이수진 감독
영화 <한공주>는 '천우희'의 신데렐라 스토리로 현실에서는 해피엔딩을 맞았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건은 지금도 막막한 어둠 그 자체일 뿐입니다. 가해자는 약한 처벌에 놓여 공분을 샀고, 피해자는 쥐 죽은 듯 말이 없습니다. 이 영화를 볼 당시에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내용에 대해 사전에 들은 바가 있어서인지 극장에 앉자마자 한숨부터 나오더군요. 내 눈앞에 펼쳐질 광경을 감당할 수 있을까. 화창한 주말에 혼자 꿀꿀한 기분으로 이 가혹한 영화를 견뎌야 할까. 복잡한 마음이 오갔습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라는 쓸 데 없는 생각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내게 영화란 결국 심심풀이 땅콩은 아닐 테니까. 좋은 영화의 기준이 진실과 사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공주에게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체 극장에서 걸어 나오더라도 그저 방관자로 머물 테니까.
이창동 감독의 <시>를 봤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영화를 '서정시가 사라진 시대에 써진 시'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작은 개천에 머리를 처박고 흘러 내려오는 소녀의 이미지 위로 꾹꾹 눌러쓴 그 ‘시’라는 글자. 그리고 그 소녀를 앞에 두고 자신의 시를 읊어야 하는 미자라는 할머니의 얼굴이 꼭 시가 사라진 시대의 군상처럼 보였으니까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소녀의 죽음과 물이라는 이미지는 두 영화가 공유한 참혹한 단면일 겁니다. 영화에서 공주의 친구가 작은 개천에서 발견되었을 때 <시>와 <한공주>는 제게 공명하는 무언가를 주었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17살 공주는 구원의 가능성이 명백하게 없는 세상을 둘러봅니다. 냄새나는 일 호선 지하철, 굳은 표정, 군중을 희미하게 하는 텅 빈 시야가 그녀를 괴롭힙니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뻔한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 죄가 없음에도 유배를 가야 하는지 묻지만, 그 대답을 향해 날아드는 응답은 알 수 없는 논리입니다. 살 곳이 없는 그녀는 선생님 어머니 집에 신세를 지기로 합니다.입니다.
보이지 않은 것에 더 큰 무게를 둔 이 영화에서 공주에게 처해진 사건을 모두 알고 들어가는 관객은 더 비참해집니다.(이 영화는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력 사건을 암시합니다.) 그 비겁한 입장이 객석을 불편하게 하고, 객석에 앉아 방기한 체 공주를 둘러싼 이들과 함께합니다. 담임선생은 수습하기 바쁘고, 무책임한 엄마는 그녀를 외면하며, 무기력한 아버지는 도망갑니다. 남겨진 공주는 그저 평범하게 살아보려 욕심을 가지지만, 그녀가 도달할 수 없는 수영장의 폭처럼 현실은 냉혹하리만치 버겁습니다. 언론은 자극을 향해 치닫고, 가해자 가족은 제 자식을 위해서라면 적반하장을 깔고 나옵니다. 이 지겨운 이야기 언제까지 들어야 할까요. 그럼에도 <한공주>엔 차가운 복수와 가해자를 향한 손쉬운 감정 표출장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사회 고발 영화라면 으레 빠지기 쉬운 감정의 증폭은 누르고, 소녀가 처한 현실의 기척에 귀를 기울입니다. 돌멩이들이 하나하나 모여 바윗 덩이가 될 때쯤 공주는 추락과 비상을 선택하는데, 그것은 자살과 죽음이라는 선택보다는 소녀의 비상과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는 목소리로 들리는 것은 제 마음속 바람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한강을 마치 거대한 바다처럼, 공주를 마치 돌고래처럼 그린 이 응원이 절절합니다. ‘부디’라는 말과 ‘제발’이라는 말 사이에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이 영화에서 공주가 종교이자 구원이라 믿는 것은 노래입니다. 멜로디를 흥흥 거리며 상처를 잊어보려는 공주에게 노래는 깨고 나면 사라져 버린다는 점에서 그녀가 처한 현실과 닮았습니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수진 감독은 여자라고 오해할 만한 섬세한 손길로 공주의 이야기를 풀었고, 몇 마디 말없이도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은유적인 대사로 주목받았죠. 가슴에 박히는 대사들을 통해 우리가 미처 도달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가슴에 안착합니다. 윤리적으로 옳다는 믿음이 영화의 연출에 확신을 주었고, 새로운 노선으로 건너가려는 야심이 영화의 미덕으로 다가옵니다.
<한공주>의 가장 잔인한 장면이라면 홀로 한강 다리에 내몰린 공주의 전화를 받지 않는 친구 은희의 망설임을 볼 때죠. 은희를 연기한 아역 출신의 정인선의 얼굴은 천사가 따로 없습니다. 은희에겐 우리가 보편타당하게 바라 마지않는 소녀다움의 정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어두운 영화에 그녀가 등장할 때면 마음을 놓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녀가 영화에 등장할 때면 긴장하던 몸에 온기가 돕니다. 힘든 공주를 위로해 줄 메신저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죠. 그러던 은희마저 공주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자 관객에게 영화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비탄을 선사합니다. 그녀가 징징거리며 울리는 휴대폰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게만 느껴집니다. 그다음 쇼트에 쓸쓸히 무거운 가방을 끌고 다리로 향하는 공주의 뒷모습, 오랜 시간 동안 잊지 못할 이미지로 가슴에 담길 것입니다.
뉴스와 각종 영화에서 보았던 피해자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던 익명의 그녀들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천우희의 상투적이지 않은 연기는 물음표로 채워진 기사의 행간을 파고듭니다. 우리가 의례 빠지기 쉬운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선입견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방어적이고 날카로운 몇 마디 대사로 관객을 찾게 하는 얼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