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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Apr 06. 2018

결국, 당신 인생의 이야기

영화 <컨택트> Arrival, 2016

우주를 건너

 

좋은 기회가 생겨 세계적인 기업의 인공위성 생산 공정을 견학하고 왔다. 건물 입구에서부터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것저것 다 뺏기고 겨우 진입했다. 철저한 보안 감시 속에 드디어 공정이 거의 완료된 인공위성과 마주했다.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는 위성이라는 실체는 얼핏 보면 고철덩어리 그 이상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공정을 이곳저곳을 돌며 세계 각국의 엔지니어들이 하는 설명을 듣다 보면 뭔가 깨달은 듯 고개를 연신 끄덕이게 된다.

사실 그들을 보는 내 무표정과 다르게 난 큰 감명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자국의 인터넷 속도에 취해 세계의 인터넷 보급 환경에 관해서는 무심하다. 막상 유럽만 와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한국처럼 국토가 집약적인 곳이 아니고, 드넓은 영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아프리카, 중남미, 몇몇 아시아 국가의 상황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인터넷 환경이 낙후되어 있다. 이런 고민 속에 세계의 유수의 기업들이 눈을 돌린 건 우주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저궤도 위성을 수 백, 수 천 개 우주에 띄워서 커버리지를 전 세계 곳곳으로 뻗치려고 한다. 아직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는 세계 영토의 60%를 위한 사업이다. 누군가 공장과 연구소를 떠올릴 때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는 차가운 기업가의 손아귀를 생각했다면 다시 제고해볼 문제다. 내게 그들의 프로젝트는 공익성과 세계 영향성을 동시에 잡겠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동경하는 문학적 세상은 과연 이들의 취지와 전혀 무관한 건지 궁금해졌다.

<컨택트>의 시작은 갑자기 지구에 도착한 외계 비행물체가 발단이 된다.

인류가 과학기술이라는 돌멩이들을 통해 쌓아 올린 바벨탑은 결코 내가 쉬이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 부수고 새로운 걸 만들기 좋아하는 변덕스러운 인간에게 우주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인류가 풀지 못한 마지막 수수께끼이자, 형이상학적 목표를 수치로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우주의 고아는 고매한 표정을 하고 저 위에 떠 있지만,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쏟아부은 노력엔 책상물림의 지난한 과정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공위성을 말할 때 학술서에는 인류가 가진 과학기술의 총체라 칭한다. 하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나 같은 사람은 인간에게 주어진 마지막 낭만으로서 우주를 떠올린다. 그때부터 이 고철 덩어리는 하나의 물리적 실체가 아닌, 인류 문명이라는 관념을 등에 진 소크라테스가 된다. 난 겸허한 마음으로 그 성취를 즐기며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인문학'?


나 같은 공돌이 출신에겐 ‘인문학’은 어쩌면 잔인하게 나를 차 버린, 멋모르던 시절의 여자 친구 같은 존재다. 잠 못 드는 새벽이면 떠올라 정체모를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알 수 없는 열등감에 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래서 늘 소설책을 읽고 싶어도 인문학 서적을 사러 교보문고로 갔다. 세상이 극찬하는 인문서적을 손에 들어 올리곤 “그래 이런 걸 읽어줘야 어디 가서 아는 척이라도 하지”하며 우쭐한 표정으로 근처 카페를 찾곤 했다. 없는 흥미를 만들어냈기에 졸음과 지루함은 교차 편집처럼 화려하게 날 우롱한다. 그렇게 참고 읽은 인문학 서적들이 축 늘어진 어깨로 내 책장에 고이 꽂혀있다. 이런 인문학을 향한 알 수 없는 내 불안은 그저 나만 혼자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 컨택트, 언어학자가 시간의 비선형성과 언어결정론을 해독하는 장면들이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최근 몇 년간 팔린 인문학 열풍은 감당도 되지 않는 책을 등에 짊어진 직장인들의 축 처진 어깨를 불러왔다. 그중에서 가장 잘 팔린 인문학 서적의 책 제목이 히트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누가 이런 기획으로 요런 제목을 붙일 생각을 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의 저자와 출판사는 현대인이 가진 지적 허영과 실용주의 노선을 잘 읽어냈다. 뭔가를 읽고 느끼고 지적 상태를 고양시키고 싶은데, 저녁에 책을 들고 침대 한 귀퉁이에 기대면 졸음이 쏟아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세상이 한없이 공허한 것이다. 이런 ‘깊이에의 강요’는 삶에 지속되는 권태를 불러오고, 지구라는 문명의 쇼윈도에서 먼지보다 못한 존재감으로 스스로를 옥죈다. 불편한 진실을 피하기 위해 도리질을 치며 와인을 한 잔 마시고, 클럽에서 춤을 춰도 지독한 권태감은 풀리지 않는다. 이 책은 그런 현대인의 마음을 위로하려고 다가왔고, 책의 품질과 상관없이 무지하게 팔려나갔다. 자매품으로 눈치 빠른 한 방송국 PD가 만든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영화 <컨택트>, Arrival, 2016


최근엔 이렇게 인문학에 치우쳤던 관심이 점점 사회과학 및 순수과학으로 옮겨 붙는 모양이다. 대중과학 저술가들의 책들이 사회적 영향을 가진 이들에 의해 재조명받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칼 세이건’, ‘유발 하라리’,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책들이 서점 베스트셀러 순위에 속속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3년 전 여름 영화 <인터스텔라>를 자녀에게 보여주기 위해 평소 관심도 없던 ‘클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을 보러 온 가족단위의 관객들의 행렬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최신 SF 걸작 3선으로 꼽히는 <인터스텔라>, <마션>, <그래비티>은 모두 한국에서 대히트를 기록했는데, 그 이면에는 우리 애들을 어떻게든 과학 영재로 키워보려는 학부모들의 영향이 컸다는 건 모두가 아는 바이다. 그리고 작년엔 전설적인 현역 SF작가 ‘테드 창’ 원작의 영화 <컨택트> Arrival, 2016가 개봉했다.     

유사 이름의 영화 <콘택트>는 내가 학창 시절에 봤던 근사한 SF영화의 제목이다. <콘택트> 역시 여주인공이 중심이 되는 서사이고, 외계의 알 수 없는 접촉에 대응하는 과학자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 역시 두 영화는 유사점이다. 총명하고 당찬 표정의 지적인 여인 ‘조디 포스터’의 열연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아마도 한국 배급사 측에서 이 점을 노려 이 영화의 제목을 컨택트로 선정했으리라 유추할 수 있다.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이다. 누가 도착한 건가? 그렇다 외계인이 지구로 왔다. 느닷없이 길고 거대한 타원형의 물체가 지구 곳곳에 도착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서 왜 그들이 왔고, 지금 이 현상이 위기인지 파악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쏟는 이야기다. 난 이 작품을 ‘테드 창’의 원작 소설과 같이 읽었다. 소설집의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이 중 영화 <컨택트>의 원작이 표제작인 <당신 인생의 이야기>이다.

작가 테드 창,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저자

전설적인 SF 소설집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난 오래전에 구입하고도 읽지는 못하고 있었다. 보통 어려운 책이 아니라는 소문과, 각 소설에 속하는 전문지식을 사전 학습하지 않으면 즐기기 어렵다는 리뷰들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들로 ‘테드 창’의 소설은 SF 소설 덕후들의 전유물처럼 소비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근데 이런 작품을 고맙게도 ‘드니 빌뇌브’ 감독이 각색하여 영화로 발표한 것이다. 그것도 잘 빠진 웰메이드에, 서사의 복잡성을 어느 정도 유지한 체 말이다. 난 가끔 원작에 대한 존경이 없는 영화의 각색을 보며 불쾌함을 가지곤 한다. 영화와 소설은 다른 매체지만, 각색에는 원작이 가진 기조에서 벗어났을 때 지켜야 하는 예의라는 것이 있다. 완전히 다른 얘기로 태어나든지, 원작 특유의 기조를 훼손하지 않고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드니 빌뇌브는 이 지적 탐험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성공했고, 난 갑자기 이 고단한 여행을 같이할 동반자를 만나 신이 났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저


한국에는 SF 장르 마니아 층이 꽤 두터운 편이지만, 아무래도 메인스트림에서 이 정도로 팔려나간 SF소설은 ‘테드 창’의 작품이 처음일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랐던 지점은 문학이 과학기술 관련 학문과 만나서도 서사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우리가 상상할 때 SF 소설에 이론적 복잡함이 들어가면 마치 중간에 틈입한 잡생각처럼 각주가 자리하게 된다. 하지만 ‘테드 창’은 각주를 최대한 줄이고, 이야기에 이론적 배경 설명이 작 녹아들 수 있도록 신경을 쓴다. 그 이론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이 되는 것이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그리고 벌어지는 현상으로 이론이 관객에게 체화되면 이야기의 흐름은 탄력을 받는다. 그 결과 테드 창의 소설집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배경지식을 학습하면 재미가 2배가 되고, 그 어디에서도 읽어본 적 없는 당대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컨택트>에는 극적인 반전을 통해 지적 유희에 도달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어려운 SF 소설과 영화를 즐기는 메커니즘에는 내 지적 허영을 채워주는 으쓱함을 부인할 수 없다. SF 소설 특유의 복잡스러운 이론을 인터넷으로 열심히 찾아가며 이야기를 꿰매어 가는 건 마치 추리극의 탐정과 같은 기분을 자아낸다. 난 그래서 이 책을 구글링의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구글로 검색하고, 이해하고 다시 책장을 펴는 말 그대로 광대역 시대의 작품인 것이다. 관람 중간 정보를 찾아볼 수 없는 영화 <컨택트>의 경우에는 이런 더딘 진행을 방지하기 위해 대화체의 서술과 암시적인 장면을 통해 최대한 쉽게 풀어내려고 노력한 점이 눈에 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늘 복잡한 플롯을 꼼꼼하게 다루는 것으로 전작부터 정평이 난 감독이다.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 <에너미>, <프리즈너스> 모두 마찬가지로 서사의 복잡성이 러닝타임을 압박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장기를 <컨택트>에서도 어김없이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인물을 최소화한다. 언어학자와 물리학자가 손을 잡고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언어 결정론과 비선형적 구조를 파악하면 영화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막힘없이 이해가 가능하다. 언어 결정론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그 존재의 사고를 규정하고, 사고의 방식을 통해 시간의 흐름까지 뒤틀 수 있다는 식의 전개다. 원형적 시간구조는 곧 이 작품이 복잡하게 보이는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이 그 어느 작품과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핵심이다. 소설이 여러 가지 이론적 배경을 통해 사건을 입체화 시켰던 것에 비하면, 영화는 로맨스와 서스펜스, 반전까지 꼼꼼히 챙기는 여유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결국 내 재 관람을 불렀고, 소설을 꼼꼼하게 뜯어보고 나서야 작품이 말하려고 하는 온전한 실체를 감당할 수 있었다.     

유시민과 정재승의 비트코인 관련 토론, 제공 : Jtbc 뉴스

<컨택트>는 많은 이들에게 2017년 최고의 영화로 꼽혔다. 한국의 인문학 관련 열풍이 과학기술로 옮겨 붙는 데 한몫을 한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사회과학을 위시한 대중과학 역시 인문학 못지않게 흥미로운 분야라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를 건너가지 않고는 우리가 사는 실체를 온전히 목도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비트코인 투기 광풍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다. 투기 형태의 자본 흐름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시선이 하나 있고, 블록체인과 연계된 기술적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 없이 시류를 거스르는 정부의 제재에 반발하는 세력이 있다. 이는 뜻하지 않게 인문학 대 과학기술의 모양새로 갈등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그 시작에는 과연 전문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이 지금 드러나는 현상으로 이 사회적 의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의 논의로 발전 중이다.

유시민과 정재승이 JTBC에서 늘 꼿꼿하신 손석희 사장을 가운데에 두고 이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두 지적인 양반은 서로 날 선 주장을 했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당연한 귀결을 받아들이게 됐다. 한 가지 사회 현상에 대해 인문과 과학으로 양분하는 사고란 얼마나 부박한가. 결국 하나의 온전한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지적 영역의 구분을 무화하고, 온전한 형태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 최근 이처럼 발전적인 논의를 하는 TV토론을 본 적이 없다. 모두에게 보여줘야 마땅한 지적인 토론이었다고 생각한다.



Strange Meadow Lark, Dave Brubeck

https://youtu.be/3B879cagn_w

데이브 브루벡의 이 곡을 들으면 하늘을 나는 작은 새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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