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 여전히 영화를 적는 이동진과 김혜리
영화 주간지 <씨네 21>을 구독 중이다. 과거에는 차고 넘치던 영화잡지지만, 오랜 시간 동안 명맥을 유지하는 잡지는 씨네 21이 유일하다. 종종 궁금해진다 왜 사람들은 이제 영화를 글로 않을까. 영화를 보는 것만큼 재밌는 것이 영화를 향해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짧게 생각해보면 가장 큰 이유는 스마트폰의 보급 때문이다. 걸어 다니면서 동영상을 볼 수 있는데, 굳이 영화를 잡지로 읽을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다. 책과 잡지를 잔뜩 백팩에 넣고 다니는 나와 달리, 간편한 짐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은 스마트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영화로 제작되어 유명해진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의 주인공은 '닉'이라는 전직 기자다. 대중문화 평론을 하며 밥을 먹고살던 닉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자신이 글을 쓸 수 있는 매체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전통적인 활자매체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매체의 소멸은 곧 글을 써서 먹고사는 직업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닉은 기자라는 멋있는 직함으로 한 때는 잘 나가 뉴욕 맨해튼의 고층 아파트를 소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형적인 금발의 미녀 에이미를 그 집 안으로 초대해 꼬셨다. 하지만 잡지사는 망했고, 그는 뉴욕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고향 미주리로 도피한다.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살던 신혼부부가 남편의 실직으로 강원도 한적한 시골로 떠난 이야기를 떠올려보시라. 한국에서도 닉의 전성시대처럼 대중 평론 매체가 넘쳐나고, 글빨을 자랑하는 프리랜서 기자들이 즐비하던 때가 있었다. 매거진 문화의 부흥은 곧 영화와 문학에 비평의 씨앗을 심었다. 지하철을 타면 수많은 직장인들이 신문과 잡지를 들고 대중문화를 읽어나가곤 했다.
이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유튜브를 통해 접촉한다. 스마트폰에 싱싱한 영상들이 HD 화질로 나오는 마당에 사람들이 글을 읽을 턱이 없다. 그러니 매거진과 신문사들은 점점 더 사라져만 간다.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전자책과 애플리케이션으로 수단을 바꿔 사용자를 공략하려 하지만, 이미 동영상에 빼앗긴 주도권을 찾긴 요원해져만 간다. 과거에 나는 지하철을 타면 은근히 신나곤 했다. 지하철 플랫폼의 가판대에는 영화잡지들이 빼곡하게 놓여있었다. 단돈 천 원에 읽을 수 있었던 필름 2.0과 무비위크, 두툼해서 꽤나 고심했던 키노와 스크린 그리고 가장 무게감 있는 정통 평론에 앞장섰던 씨네 21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영화를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사라져만 갔다.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경우 조선일보에서 13년 동안 영화 관련 글을 쓰고, 이후에도 영화잡지와 이동진 닷컴이란 영화평론 사이트를 운영해 온 전형적인 글 쓰는 평론가였다. 하지만 현재 그는 정통 영화평론을 활자로 기고하지 않는다. 대신 그의 활동은 대부분 TV, 라디오, 유튜브, 팟캐스트, 영화관 씨네토크 등 글자가 아닌 영화를 말로 설명하는 공간에서만 활동하고 있다. 사용자가 찾는 매체가 활자가 아닌 동영상으로 바뀌다 보니 영민하게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 셈이다. 가장 인기 있는 영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은 가진 이동진의 변화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의 모든 활동 영역들이 유튜브를 통해 유통되고, 사람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듣는다.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영화에 대한 담론의 소멸이 아니다. 아마도 활자가 사라져 가는 현상에 대한 두려움이다.
최근 CGV가 진행하는 시네마톡이 점점 더 활성화되는 모양이다. 멀티플렉스 CGV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예술영화, 독립영화의 대중성에 노고가 있기 때문이다. 예술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아트하우스 상영관과 관객과 대화하는 시네마 톡은 사라져 버린 영화에 관한 글을 사람들이 가장 편리하게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다. 글 쓸 곳이 사라진 평론가와 기자들은 점점 더 증가하는 씨네마톡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제는 글이 아닌 말을 통해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다. 시네마 톡 행사가 대중화되면서 메가박스와 여타 다른 예술영화관들도 그 수를 점점 증가시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메가박스는 걸작 영화들을 매년 초에 상영하는 자리를 마련했고, 예술영화를 보급하는 비율도 증가했다. 소규모 다양성영화관들 역시 소설가, 기자를 가리지 않고 영화가 끝난 후에 다양한 주제로 강연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CGV는 최근에 라이브 톡이라는 행사를 통해 전국의 CGV에서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네마톡 생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또한, 큐레이터 제도를 개발하여 관객들에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를 설명해주는 제도를 마련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영화를 즉물적으로 보고 느끼고 그치는 소비성 문화로 굳어져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이 잘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MBC 출발 비디오 여행이 생긴 이후부터 각 방송사들은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데 열을 올리는 프로그램을 앞다퉈 제작해왔다.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영화의 스포일러를 무분별하게 올리며 그 경쟁의 막장에 치닫는 것이 아닌지 우려를 사기도 했다. 하지만 SBS의 <접속 무비월드>에 <영화는 수다다>라는 프로그램이 생기면서, 확실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서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유튜브를 통해 여전히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다. 흥미 위주의 영화광인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과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케미스트리가 워낙 좋고, 단순히 영화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화 비평과 관전 포인트를 정리해주는 프로그램의 포맷 자체가 사라진 영화잡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요소가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채널 CGV의 <더 굿 무비>가 있다. 지나간 영화도 다시금 의미를 되새기며 볼 수 있게 방영과 포인트를 잘 짚어주는 프로그램이다. 유튜브에는 이동진의 <무비썸>과 <영화당>이 있다. 무비썸은 신작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고, 영화당은 과거 영화들을 주제별로 접근하여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다. 1시간이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전문성과 대중성을 염두에 둔 듀오 체제의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영화는 수다다>와 비슷한 점이 많다. 허지웅의 <영화의 품격>, 채널 CGV의 <무비 버스터즈> 역시 신작 소개 프로그램으로 즐길 수 있다.
잡지 씨네 21엔 정통 평론도 있지만, 김혜리 기자의 <영화의 일기>는 개인적 감정에 가까운 영화 이야기를 글로 풀고 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꼭지다. 글의 반응이 좋자 점점 더 연재에 대한 주목도도 높아지고 있다. 김혜리의 칼럼은 최신 개봉 영화 소개부터 배우, 감독의 인터뷰, 정통 영화평론까지 다양하지만, 영화의 일기는 오로지 영화를 향한 김혜리 개인의 애정에 의지하고 있다. 섬세한 언어의 조탁과 골똘히 영화의 측면을 훑어내는 자세까지 그녀의 영화는 남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곳에서 빛이 난다.
김혜리를 생각하니 소설 <나를 찾아줘>의 작가 길리언 플린이 떠오른다. 전직이 영화에 관한 서평과 리뷰를 쓰는 뉴욕타임스 기자였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녀는 비평의 장이 점점 더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고 활동 영역을 바꿔 소설가로 데뷔했다. 현재 큰 성공을 거둔 그녀의 소설 <나를 찾아줘>에서 주인공 닉이 큰 곤경에 빠지는 이유는 작가 길리언 플린처럼 대중매체 평론가로서 글을 쓸 수 있는 매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골로 도피했고, 바람도 피웠으며, 아내에 의해 살인자로 몰리기까지 한다. 작가의 현실 위기가 소설 속에 그대로 투영된 셈이다. 내가 느끼는 현재의 감정도 비슷한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복잡하게 피어오르는 감동의 느낌들을 영화잡지로 풀며 해소하던 그런 시절은 지나갔다. 충무로는 천만 영화의 범람으로 축제 분위기지만, 영화는 점점 더 얄팍해져만 가고 있다. 그나마 날 위로해주는 몇 가지 프로그램들에 의지해 갈 뿐이다.